러시아 파병 북한군이 전투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쿠르스크 전선. 서방 외신을 통해 현지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크게 서너가지다. △러시아군의 거센 반격과 영토 수복 △이를 저지하기 위한 우크라이나군의 서방 장거리 미사일(미국의 에이태큼스와 영국의 스톰 섀도) 공격 △북한군의 전투 참전 △전투 격화에 따른 사상자수 급증 등이다.
쿠르스크 전선은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8월 러시아 국경을 넘어 쿠르스크주(州) 국경지대를 급습하면서 생겨난 전투 지대다. 당시 일부 전문가들은 쿠르스크 공격을 가뜩이나 열세인 우크라이나군의 전력을 분산시켰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 측의 자충수로 분석했다. 필자도 이에 동의했다.
우크라이나군의 쿠르스크 공격/사진출처: 텔레그램 @V_Zelenskiy
바둑판 위의 '공방전'으로 치환(置換)해 보면,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공격은 주 전선(동부지역 돈바스 전선)의 대마(大馬)가 극히 위험한 상태에서, 상대(러시아)의 집 안으로 과감하게 뛰어든 행마(行馬)로, 집을 짓고 살아남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러시아는 별다른 작전 변경없이 대마를 잡는데 주력하면서, 집 안으로 들어온 상대(우크라이나)의 말(馬)을 포위, 압박해 손을 들게 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로부터 3개월 여가 지난 지금,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을 국경 쪽으로 상당히 밀어낸 상태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우리 식으로는 합동참모본부)의 고위 관리는 지난 22일 현지 언론에 "러시아군은 최근 몇 주 동안 지난 8월 우크라이나군에 빼앗긴 쿠르스크 영토의 거의 절반을 되찾았다"고 인정했다. 그는 "우리(우크라이나)는 한때 쿠르스크에서 1천376㎢ 정도의 땅을 점령했지만, 이제는 약 800㎢"로 줄었다"며 "러시아군은 우리보다 3~10배나 많은 병력으로 반격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군도 돈바스 주둔 병력과는 달리, 첨단 무기를 보유하고, 정기적 순환근무를 통해 사기를 올려 이에 맞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군의 쿠르스크 급습 초기, 포로로 잡힌 러시아군인들/영상 캡처
그러나 우크라이나 군사정보 채널 '딥 스테이트'는 우크라이나군의 통제지역이 560㎢, 러시아 군사전문 텔레그램 채널은 450~500㎢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편다. 스트라나.ua는 "러시아군이 최근 쿠르스크주 남부의 올고프스키 산림 지대를 탈환한 것으로 보인다"며 "러시아군은 이를 통해 최전선으로 가는 물류 공급망을 단순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군이 주요 물류망을 탈환함으로써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공세가 향후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뜻이다.
러시아군은 동시에 쿠르스크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 북부 수미주(州) 공습에 나서면서 쿠르스크 주둔 우크라이나군의 퇴로도 차단하는 중이다. 소위 (러시아) 집 안으로 들어온 (우크라이나의) 말을 다 잡아내겠다는 작전이다. 바이든 미 행정부가 그토록 반대해온 장거리 미사일의 러시아 본토 공격을 전격적으로 허용한 것도, 우크라이나에 대인지뢰를 지원하기로 한 것도 쿠르스크 전선에서 우크라이나의 패배 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명분은 북한군의 참전을 내세웠다. 궁극적으로는 쿠르스크 전투가 국제전으로 비화하는 것은 막고, 단기적으로는 북한군의 추가 파병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정적인 또다른 변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대선 승리다. "24시간내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한 트럼프 당선자는 집권 2기 내각 구성에서 전쟁의 조기 종식을 지지해온 인물들을 대거 발탁했다. 내년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과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쟁의 판세는 '협상 국면'으로 급격히 전환될 게 분명하다. 그때까지 우크라이나는 쿠르스크라는 유력한 '협상 카드'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하고, 러시아는 그 카드를 뺏어야 하는 입장이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WSJ)도 24일 우크라이나군 부대 지휘관들을 인용해 "러시아군이 트럼프 당선자의 취임 전 쿠르스크 탈환을 위해 24시간 내내 공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제47여단 대대장은 WSJ에 "러시아군은 아침, 낮, 밤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공격을 가하고 있다"며 "그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트럼프 당선자의 취임 전에) 국경에 도달한다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어, 우리를 국경 바깥으로 밀어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우리도 우크라이나 최강의 부대로, 녹록하게 밀려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부대내 반론도 있다.
퇴임을 앞둔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4년 임기의 공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무리를 하더라도 수세에 몰린 우크라이나군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지 않을 경우, 지금까지 수백억 달러를 투입하면서 버텨온 그의 대(對)우크라이나 전략이 한방에 무너질 판이다. 특히 취임 직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 명령으로 치욕을 맛본 그가 퇴임을 앞두고 또다시 우크라이나에서 모욕을 당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의 막판 정책 전환(장거리 미사일 사용 허용과 대인 지뢰 제공)이 쿠르스크의 판을 바꿀 수 있으리라고 보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의 에이태큼스 미사일 발사장면/사진출처:록히드 마틴 홈페이지
오히려 장거리 미사일 사용 허용에 따른 후폭풍이 세계 주요 언론의 관심사가 됐다.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오레슈니크'로 우크라이나 드네프르 지역을 때린 러시아가 앞으로 또 어떤 카드를 꺼낼 지 지켜보는 분위기다.
스트라나.ua는 26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기사의 '러시아는 새로운 공격을 준비'(Россия готовит новый удар) 라는 코너에서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쿠르스크를 겨냥한 우크라이나군의 두 차례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 공격을 확인한 뒤, 이에 대한 보복 조치 준비를 발표했다"고 알렸다. 이 매체는 "쿠르스크와 브랸스크주(州)에 대한 서방 장거래 미사일(에이태큼스와 스톰 섀도)의 공격 이후, 러시아는 이를 공식 확인한 뒤 21일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오레슈니크'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며 "러시아가 통상 우크라이나의 미사일 공격을 공식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26일 두차례 에이태큼스의 공격을 확인한 것도, 보복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전 조치"라고 해석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23일 쿠르스크 배치 S-400 방공 시스템을 향해 에이태큼스 미사일 5발을 발사했고, 이중 2발이 방공 시스템을 타격했으며, 25일에는 쿠르스크 비행장을 향해 날아온 미사일 7발 중 한발이 목표물에 때렸고, 두 명의 군인이 부상했다"고 발표했다. S-400은 미국의 패트리어트와 비슷한 성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 첨단 방공 시스템이다. 러시아군은 또 격추된 에이태큼스 미사일의 파편을 공개하기도 했다.
러시아 국방부가 공개한 에이태큼스 미사일 파편/사진출처:러시아 국방부
러시아의 '오레슈니크' 미사일 공격에 맞서 바이든 대통령이 퇴임 전에 키예프(키이우)에 핵무기를 이전할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미 뉴욕타임스 NYT)도 나왔지만, 즉각 새로운 권력(트럼프 지지층)의 거센 반대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마조리 테일러-그린 공화당 하원의원 등은 퇴장하는 권력(바이든 대통령)이 '핵전쟁을 시작하고, 이를 트럼프 당선자에게 권력 이양을 막는' 명분으로 삼으려한다고 크게 반발했다. 퇴임하는 권력이 새 권력의 동의없이 핵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배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상상하기 어렵다.
국내 언론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파병된 북한군의 동향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RBC-우크라이나는 24일 아나톨리 바릴레비치 우크라이나군 참모총장을 인용해 "우크라이나군이 쿠르스크 전선에서 북한군과 교전했다"고 보도했다. 바릴레비치 참모총장은 "북한군은 연합군 부대(러시아 정규군과 국방수비대, 자원군 등이 섞여 있는 부대/편집자)에 속해 있으며, 러시아 극동지역의 토착민으로 위장하고, 신분증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파병 북한군의 훈련 영상이라고 올린 텔레그램 계정
그러나 사브리나 싱 미 국방부 대변인은 최근 "우리는 그들이 전투 작전에 참여할 것이라고 믿을 만큼 충분한 이유가 있지만 현재로서는 이를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북한군의 참전을 계속 주장하고, 미국은 사실상 이를 부인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느낌이다.
지난 두달 가까이 북한군의 파병과 관련된 소식이 쏟아져나왔지만, 제대로 확인된 것은 사실상 거의 없다. 러시아와 북한도 파병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북한군의 파병에 대한 외신 기사를 그대로 전달해온 일부 국내 매체가 '북한군은 유령이냐'고 의문을 제기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북한군의 파병, 나아가 참전 기사를 생산하도록 부추기는 주체는 과연 누구일까? 북한군 참전 사실을 합리적 의심없이 믿을 수 있는 순간이 과연 오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