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마에서 게걸음 걷다
안윤하
전시실에 세면기 하나 높이 걸려 있고
벽을 뚫고 나온 다리 하나가
구두를 신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설명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평론,
나는 무식한 관객이라고 속으로 말한다
아니, 저들이 수군거리며 혼돈으로 내몬다
현대를 대표하는 예술품이라
모마에 전시돼 있는 걸까
모마에 전시되어 있어 유명해진 걸까
나를 무식하다며 내려보다가
구둣발로 보이지 않게 차고 있는 것일까
쓴 사람도 모르고 읽는 사람도 모르는
시를 앞에 두고 시인이라고 적힌
종이비행기가 허공을 맴돈다
궤도에서 불규칙하게 날다가 곤두박질한다
현대인이 현대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옷을 바라보는
나는 어정쩡한 관객일까
누군가가 푸른 비단결 감촉 같고
창의적인 디자인이라고 평을 하면
대각선으로 끄덕이라고 귀엣말을 한다
눈치 살피다가 엉거주춤
현대라는 테두리 안에 왼발을 슬쩍 밀어넣는다
구태여 벌거벗었다고 말할 필요는 없지
게걸음으로 슬금슬금 빠져 나가야겠다
-『모마에서 게걸음 걷다』(시학, 2016)
출처 : 대구일보(https://www.idaegu.com)
카페 게시글
시 감상
모마에서 게걸음 걷다 / 안윤하
김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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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1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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