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부터 광주시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245 3층 시민갤러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9명의 인물화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문제인 것 같지만 돌아보면 정작 우리가 아는 게 그다지 없습니다. 한가지 예로 우리 지역 피해자 중에서 아는 사람 이름을 말해 보라고 하면, 얼른 이름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배경에는 피해자들의 사생활 보호의 문제도 중요하기 때문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알려지는 것을 삼가야 했던 사정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감성적 접근을 넘어 진실을 알기 위한 우리의 관심과 노력도 많이 부족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이번 <기억의 방, 일본군 ‘위안부’ 39인의 초상> 전시회는 매우 의미있는 전시회입니다. 지난 3월 서울 인사동에서 첫 전시회를 가진데 이어 국내에서는 두 번째 전시회입니다.
전시회 대상이 된 피해자는 39명인데 그중 5명은 외국 피해자들이고 이용수 할머니 등 생존자 3명을 포함해 34명이 국내 피해자들입니다. 특히 그중 7명은 광주전남, 전북에 연고를 갖고 있는 분들입니다. 시간 내 한번 둘러보시길 권합니다. 전시회는 오는 14일까지.
▲곽예남(담양. 1925~2019)
: 1944년 만 19세 때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일본 순사(순경) 지목을 받아 끌려가듯 친구 10여명과 함께 중국 헤이룽장성으로 건너가 해방이 될 때까지 고초를 겪었다. 중국말을 잘 모르던 할머니는 해방 뒤 고향을 묻는 중국 관리에게 ‘광주, 대명(담양)’을 말했으나, 관리가 이를 중국 광동성의 광주로 잘못 이해한 탓에 귀국하지 못하고 중국을 떠돌았다. 2004년 4월 MBC 느낌표! ‘아시아 아시아’ 통해 난징에 거주하고 있는 할머니와 광주 형제 상봉. 이후 귀국해 광주-담양에 거주하다 2019.3.2. 별세.
▲공정엽(무안. 1920~2016)
: 1920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16세 되던 1935년 일본군에 의해 끌려가 24세가 되던 1943년까지 중국 하얼빈에서 모질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1945년 귀국했다. 결혼후 해남에서 생활하다 남편이 사망하고 자식을 홀로 키우며 여생을 보냈다. 2016.5.17. 97세로 별세.
▲백넵데기(승주. 1922~2008)
: 1939년 18세 연행(만 17세) 연행. 중국 한커우(漢口) 위안소 동원. 해방 후에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중국의 한 시골 마을에서 한국어도 잊어버린 채 살아오다 2003년 3월 하상숙 할머니와 함께 귀국. 서울에서 생활하다 자녀들이 있는 중국으로 돌아가 생활하다 2008.4.22. 별세.
▲최갑순(구례. 1919~2015)
: 1919년 전라남도 구례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15살 때인 1933년 일본 순사가 아버지를 잡아가려고 집으로 찾아왔을 당시 할머니가 대신 끌려갔다고 한다. 아버지가 경찰에 잡혀가면 8명이나 되는 식구들이 먹고 살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이후 할머니는 전주를 거쳐 만주 목단강까지 끌려가 위안부로 생활했다.
할머니는 1945년 광복을 맞이한 후 3~4년간 행상과 걸인으로 생활했으며, 이후 고향 구례로 돌아가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2015년 12월 5일 별세.
▲이순덕(전북 익산. 1918~2017)
: 1934년 16세 나이에 국거리용 나물을 뜯으러 나갔다가 강제로 연행된 뒤 중국 상해 군 위안소에 동원됐다. 재혼 후 광주에 정착해 생활하다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이금주 회장의 주선으로 1993년 12월 관부재판 2차 원고로 소송 참여했다. 건강이 악화돼 서울 피해자 쉼터 ‘평화의우리집’에서 생활하다 2017년 4월 4일 99세로 별세.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 이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원고로 참여했다. 1심 법원은 2021년 “일본의 불법행위에 국가면제를 적용할수 없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일본정부가 무대응하면서 판결은 확정됐지만, 배상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옥련(전북 무주. 1920~2011)
: 전북 무주 출신인 박 할머니는 1941년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로 강제로 끌려가 3년간 위안부 생활을 했다. 박 할머니는 1996년 대전에서 나눔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 뒤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개최되는 수요집회에 참석했다.
▲최선순(전북 고창. 1930~2013)
: 1927년 고창에서 태어난 최 할머니는 16세에 아버지 약을 사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일본군에게 붙잡혀 일본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지옥 같던 3년 동안의 위안부 생활이 끝난 후 해방이 되어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해방 후 광주에서 자리를 잡고 전쟁 피해자였던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려 아들 2명과 딸 3명을 낳았다. 67세가 되던 1993년 정부에 피해자로 등록했다. 이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으로 옮긴 할머니는 불편한데도 매주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 빠지지 않고 실상을 알리고 기위해 일본 방문 활동도 하는 등 일본군의 만행을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