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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한씨세보"에 따르면 馬韓 8대 元王의 세 아들인 우평(友平), 우량(友諒), 우성(友誠)이 각각 태원 선우씨(太原 鮮于氏), 청주 한씨(淸州 韓氏), 행주 기씨(幸州 奇氏)가 되었다고 합니다. 선우씨와 청주 한씨 그리고 행주기씨는 한 집안이 라는 말입니다. 족보에서는 箕子朝鮮을 건국한 箕子의 후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며 한씨 족보를 고증할 문헌이 전하지 않아 세계가 명확하지 못하여 고려 개국공신 한란(韓蘭)을 시조로 삼고 있는 현실 입니다. 그렇다면 이들 집안의 족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 까요? 우리 국사는 기자조선을 부정하는 입장 입니다. 왜냐하면 고조선의 위치가 지금의 만주 일대라는 생각으로 고정돼 있기 때문이며 기자조선의 유물과 같은 것이 발견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남대문을 인천에서 차으려는 것과 다름 아닙니다. 그러나 중국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尙書大全(상서대전)과 史記 그리고 前四史에는 기자조선이 또렷하게 기록 되어 있지요. 이제 부터 태원 선우씨와 청주한씨 그리고 행주기씨가 분명하게 기자조선에서 나온 성씨이며 이들 성씨로 기자조선의 위치가 지금의 산서성임을 밝혀 보도록 하겠습니다. 태원 선우의 太原이라는 지명은 한반도에는 없는 지명이지만 산서성 태원은 중국의 유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 부터 등장하는 유명한 지명 입니다. 산서성 태원의 위치 산서성은 기자 조선이 잇엇던 지역이며 태원선우씨의 조보에 등장하는 기자조선에서 유래 햇다는 이들의 족보가 왜 사실인지 지금 부터 기자 조선을 추적해 보도록 하지요. 箕子朝鮮과 孤竹國의 위치는 동일한 지역이라는 기록이 잇습니다. 고구리 영양왕 시절에 수(隋)나라가 고구리를 침공하려 하자 배구(裴矩)가 수양제에게 올린 글에서 “고리(고구리)의 땅은 본래 고죽국이었으며 주(周)나라 때에는 箕子를 봉한 곳이었다.” 라고 隋書 권67의 기록 때문 입니다.
이러한 기록은 <舊唐書>와 <新唐書>의 <배구열전>에도 기록되어 있고, 이를 인용한 일연(一然)의 <삼국유사> 고조선 편에도 똑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孤竹國은 遼西의 영지(令支)에 있으며, <정의 괄지지>에 이르기를 고죽의 옛 성이 平州 盧龍縣 남쪽 10리에 있는데 은나라 때 제후국이었던 고죽국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서는 산서성 서쪽을 말하는 것이며 평주 역시 산서성 서남쪽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가문들의 족보는 기원전 12세기 까지 거슬러 올라야 하며 이들은 箕子의 후예인 것이며 왕성임을 알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