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일,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까지 들려오면 나는 춤을 추고 만세를 부를 것이다.
2월 14일 하면 여러분은 뭐가 떠오르시나요?
발렌타인데이와 초콜릿이 제일 많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ㅎㅎ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적 지식 한가지!
2월 14일은 발렌타인데이가 아닌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입니다.
발렌타이데이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2.14일에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는 것은 어떨까요?👍🏻
안중근 의사는 사형선고를 받기 전까지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안중근 의사는
가슴과 배에 7개의 점이 있어 북두칠성의 기운에 응하여 태어났다는 뜻으로
아명을 응칠이라 지었으며, 자라서는 자(字)로 사용하였습니다.
청년 때는 말타기와 사냥에 능했으며
포수들 사이에서도 명사수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동학운동이 일어나자 아버지를 따라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데 가담했고,
1895년 아버지를 따라 가톨릭교에 입교하여 신식 학문을 접하고 가톨릭 신부에게 프랑스어를 배웠으며,
도마[Thomas, 多默]라는 세례명을 얻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1907년 연해주로 가서 의병활동에 참가했으며,
1909년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의단지회!
동지 11명과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하고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하였습니다.
그해 10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상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하여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처단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안중근 의사를 떠올리면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이 가장 먼저 떠오르죠!!)
역 플랫폼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를 사살하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타이지로, 만철 이사 다나카 세이타로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이후, 일본 관헌에게 넘겨져 뤼순의 일본 감옥에 수감되었고 이듬해 2월 14일,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3월 26일 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안중근 연보>
*출생 1879.9.2~ 사망 1910.3.26
*1879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
*1895
아버지를 따라 가톨릭교에 입교.
*1904
홀로 평양으로 건너가 석탄상을 운영.
*1906
을사조약 체결 후 상점을 팔아 삼흥학교(후에 오학교로 개칭)를 설립.
*1907
연해주에서 의병운동에 참가.
*1909
동지 11명과 손가락을 절단하며 맹세하고 동의단지회를 결성.
10월, 일본인으로 가장해 하얼빈에 잠입,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
*1910
3월 26일 뤼순감옥에서 사형 집행으로 순국.
*1962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
*1970
서울 중구에 기념관 건립.
[출처] 2.14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작성자 휘휘
첫댓글 오늘이 2.14일,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 이군요
안타까운 일이지요
안타까운 날이네요.
꼭 기억해야겟습니다.
아 오늘이 안중근 의사님의 사형을 선고받은 날이였군요
이제야 알고갑니다 ~
가슴이 많이 아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