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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왕이 세 번째로 또 다른 오십부장에게 부하 쉰 명을 딸려서 보냈다. 그 세 번째 오십부장은 올라가서, 엘리야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며 말하였다. "하나님의 사람께서는 우리의 청을 물리치지 말아 주십시오. 나의 목숨과 어른의 종들인, 이 쉰 명의 목숨을 귀하게 여겨 주십시오.
1:14 보십시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이미 오십부장 두 명과 그들의 부하 백 명을 모두 태워 죽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의 목숨을 귀하게 여겨 주십시오."
1:15 그 때에 주님의 천사가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그와 함께 내려가거라. 그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리하여 엘리야가 일어나서, 그와 함께 왕에게 내려갔다.
1:16 엘리야가 왕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네 병에 관하여 물어 보려고 사절들을 보내다니, 이스라엘에 네가 말씀을 여쭈어 볼 하나님이 계시지 않더란 말이냐? 그러므로 너는, 네가 올라가 누운 그 병상에서 일어나 내려오지 못하고, 죽고 말 것이다' 하셨습니다."
1:17 엘리야가 전한 주님의 말씀대로, 북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아하시야 왕이 죽었다. 그에게 아들이 없었으므로, 그의 동생 여호람이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때는 남왕국 유다에서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즉위하여 다스린 지 이년이 되던 해였다.
1:18 아하시야가 한 나머지 일들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다.
◈ 주해
1. 열왕기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에게 왕들과 백성들이 400년 동안 어떻게 우상숭배와 죄악을 범하여 심판을 받았는지를 알리고자 기록되었다.
1) 포로지의 백성들이 조상들과 같은 그들의 죄를 인정하고, 주님의 크신 인자를 깨달아 말씀으로 살게 하려 함이다.
2. 이스라엘 왕들은 하나님 통치의 대행자다. 그러므로 그들의 치적으로 평가되지 않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했는지(언약 안에 거했는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했는지)로 평가된다.
1)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워졌으므로, 우리의 삶도 하나님 보시기에로 평가된다.
2) 그래서 세상적으로 가장 많은 부와 권력, 즐거움을 누리고, 가장 탁월한 지혜를 가지고 수많은 문학작품을 낸 솔로몬은 해 아래의 수고가 헛되다고 하면서, 창조주를 기억함이 참되다고 고백하였다.
3. 하나님은 아하시야에게 5번이나 징계하심으로 깨닫고 돌이키는 인자를 베푸셨다.
1) 모압의 배반과 난간에서 떨어져 중병이 드는 환경으로 경고하시며 깨닫기를 원하시다가, 엘리야를 보내 그의 죄와 죄로 인한 심판을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면서 돌이킬 기회를 주시다가, 하늘의 불로 군사들을 사르면서 경고하신다.
2) 이는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이면서 동시에 이렇게까지 악인이 깨닫고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크신 인자다.
4. 아하시야는 엘리야가 전하는 심판의 말씀 앞에 회개하기보다는 그를 체포하고자 하였다.
1)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를 거역하면서 엘리야를 통제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통제하려고 한 것이다.
2)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오십부장과 50명의 군인을 불살랐음에도 불구하고, 아하시야는 다시 체포자들을 보냈고, 오십부장도 왕의 명령에 순응하라고 명령하다가 다시 하늘의 불에 살라진다.
5. 동일하게 아하시야로부터 체포해 오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세 번째 오십부장은 엘리야 앞에 무릎을 꿇어 간구함으로 자신과 부하들의 생명을 구한다.
1:13 왕이 세 번째로 또 다른 오십부장에게 부하 쉰 명을 딸려서 보냈다. 그 세 번째 오십부장은 올라가서, 엘리야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며 말하였다. "하나님의 사람께서는 우리의 청을 물리치지 말아 주십시오. 나의 목숨과 어른의 종들인, 이 쉰 명의 목숨을 귀하게 여겨 주십시오.
1) 그는 왕의 체포명령에 따르라고 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사람께서는 우리의 청을 물리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다. 게다가 이 군사들은 엘리야의 종이라고 말하면서 함께 동행하여 줄 것을 겸손하게 부탁한다.
6. 세 번째 오십부장은 악한 권위자 아래에 있는 자가 어떻게 지혜와 겸손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1) 만약 오십부장이 아하시야 왕에게 2번이나 하늘의 불이 내려와 군사들을 살랐다고 하면서 “정신을 차리라”고 충고 하거나, “죽으라고 보내는 명령을 복종할 수 없다”고 했다면 아하시야에 의해서 죽었을 것이다.
2) 그렇다고 아하시야의 의도대도 교만한 태도로 위압적으로 체포하지도 않는다.
3) 그는 아하시야의 명령을 따르지만, 그의 지혜와 겸손으로 엘리야를 대함으로 그와 부하들의 생명을 살린다.
4) 세 번째 오십부장은 아하시야보다는 자신들의 죄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게 집행되는지, 엘리야가 전하는 말씀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를 잘 알았다.
7.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아하시야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에게 가라”고 한다.
1) 엘리야는 오십부장과 함께 내려와 아하시야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한다.
1:16 엘리야가 왕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네 병에 관하여 물어 보려고 사절들을 보내다니, 이스라엘에 네가 말씀을 여쭈어 볼 하나님이 계시지 않더란 말이냐? 그러므로 너는, 네가 올라가 누운 그 병상에서 일어나 내려오지 못하고, 죽고 말 것이다' 하셨습니다."
2) 엘리야는 새로운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선포했던 심판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고, 그 말씀은 그대로 성취된다.
3)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서 심판을 전하시고 그 집행을 미루신 것은 아하시야가 자신의 죄와 그로 인한 심판을 깨닫고 세 번째 오십부장처럼 겸손하게 되기를 원해서다.
8.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군사들을 살랐을 때, 아하시야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1) 그가 3번이나 군사들을 보낸 것을 보면 “어쭈, 감히 엘리야가 나의 체포명령을 거부해”라고 하면서, “모든 군대를 다 보내서라도 끝까지 체포하고 말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2)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군사들을 살랐을 때라도 회개하거나, 엘리야를 찾아가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간청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3) 하나님이 악한 그에게 ‘말씀하시고 기회를 주신 것’은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겔 18:23). 그가 죄악에서 돌이켜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9. 심판을 통하여 살 길을 제시하시는 하나님의 인자를 끝까지 외면한 아하시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고 아들이 없으므로 동생 여호람이 왕이 된다.
1) 아하시야의 남은 사적은 모두 이스라엘 왕의 연대기에 기록되었다.
2) 왕의 연대기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2가지 메시지를 준다. 하나는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각 인생은 이렇게 하나님의 책에 기록이 되어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10. 하나님이 직접 책망하신 말씀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묻지 않고, 이방신에게 신탁을 받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1) 이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이나 우리에게도 훈계가 된다.
2)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목숨의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는 누구를 찾는가? 누구를 의지하는가?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가?
3) 블레셋 사람들이 바알세붑에게 묻는다고 신자도 그들처럼 행하는 것은 심판을 초래한다.
4) 다윗은 사울과 달리 하나님께 묻는 왕이 되기 위하여 언약궤를 모셔오며 기뻐하였다.
11.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는 대상은 심판을 받아 바벨론의 포로가 된 백성들이다.
1)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들이 아하시야를 판단하고 한심해 하는 것이 아니다.
- 또한 단순히 깨달음을 얻고 훈계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2) 하나님은 그들이 아하시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말씀하셔도 거역하고 항거하였음을 알기를 원하셔서 열왕기를 기록하여 전하게 하셨다.
시 106:6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12. 만약 바벨론의 포로된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아하시야의 교만과 죽음을 보았다면 마음을 낮추었을 것이다.
1) 세 번째 오십부장처럼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종의 목숨을 귀히 여겨 주시고, 종의 청을 들어달라고 간청했을 것이다.
2) 이 세 번째 오십부장의 겸손과 지혜가 우리의 모습이길 원한다.
◈ 나의 묵상
바벨론의 포로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왕기와 아하시야의 말씀을 어떻게 들었을까? 궁금하다. 아하시야와 똑같은 놈들, 하늘의 불에 살라진 두 오십부장과 100명의 군사들과 같이 어리석은 사람들, 그리고 소수가 세 번째 오십부장처럼 자신들의 죄가 아하시야와 하늘의 불에 살라진 오십부장과 같음을 알고 애통하며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남을 평가하고, 남의 훈수를 두기는 쉽지만, 내 영혼을 하나님 앞에 두고, 그 말씀으로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두기는 힘들다. 오십부장은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나는 과연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을까? 체포 영장과 하늘의 불 사이에서 나는 타협을 했을 것 같다. 아니면 아하시야를 욕하면서 투덜거리며 불안해 했을 것이다.
동일한 상황을 보면서 누구는 고자세로 체포해 오라고 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누구는 하늘의 불에 불사름으로 죽임을 당하고, 누구는 그 가운데서도 살아난다. 인간의 마음이 왜 이렇게 작동하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하나님은 아하시야와 오십부장들과 군사들에게 모두 하나님의 뜻을 보이셨다는 것이다. 그들이 돌이켜 살 기회를 주셨다. 공의를 집행하시되 크신 인자로 함께하여 주셨다. 나는 달콤한 사랑, 복음의 감격, 믿음의 역사와 승리, 하나님의 공급과 채움으로만 하나님의 인자와 신실함을 보고자 했던 어리석은 자다. 하나님의 인자와 신실하심은 심판 중에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고난을 주시고,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하시고,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실 때에 나타나는 주의 인자와 신실함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고난과 심판의 말씀을 벗어나려고만 할 뿐, 무덤을 비추는 주의 인자와 신실함을 찬양하고 감사하지 못했다.
기쁨을 땅을 악평하고 광야에서 엎드러져야 할 백성들,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하늘의 만나를 주시고, 옷이 헤어지지 않고 발이 부러트지 않게 하셨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돌보셨고, 성막에서 예배를 드리게 하셨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들만 돌보시고 공급하신 것이 아니라, 거역으로 광야를 헤매야 할 자들도 돌보시고 공급해 주셨다. 죽여 마땅한 자에게 베푸신 그 인자와 신실함을 광야의 백성들은 알지 못했다. 모세만이 그 악한 백성들을 향한 주의 인자와 신실하심을 보았다.
그러므로 광야를 헤매다가 엎드려 죽어야 할 자들이 해야할 것은 찬양과 감사다. 바로 죽이지 않으시고, 광야에서 굶주리다가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광야의 더위와 추위에 방치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날마다 찬양함이 마땅하다. 물론 광야의 삶이 불편하다. 아름다운 시냇물과 나무들도 없고, 안락한 집도 없고, 놀이문화도 없다. 매일 반복되게 주어지는 만나와 체바퀴 도는 듯한 일상이 반복된다.
광야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범죄와 악에 비하여 하나님이 베푸시는 인자와 신실함이 너무 크다. 그 인자와 신실함은 광야에서도 넘쳤고, 바벨론 포로지에서도 넘치고 있다. 그러므로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 하나님의 인자와 신실함을 찬양한다. 무릎 꿇고 겸손과 지혜로 행하지 못하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의 용서와 용납, 그리고 사랑의 의지하여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찬양한다.
◈ 묵상 기도
사랑하는 주님, 광야의 불편함,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들, 후회되는 선택들에만 주목함으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평하고 불안해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순종하는 백성들이 아니라, 거역함으로 광야의 길을 걷는 자들의 영적 필요, 육적 필요를 모두 돌보시는 주님의 인자와 신실함을 찬양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믿음으로 순종할 때도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시지만, 제가 거역하고 완악하며 광야를 헤매는 그 때에도 주님은 돌보시고, 말씀으로 살게 하십니다. 형통할 때 찬양함이 마땅하지만, 고난당할 때에,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여전히 찬양받기 합당하신 주님을 봅니다. 그리고 주님을 찬양합니다. 감정이 없어도, 때로는 의지가 없어도, 내 마음과 영으로 주를 찬양합니다. 세 번째 오십부장처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긍휼을 구하는 겸손과 지혜의 마음을 부어 주십시오. 열왕기에 나오는 그들의 악과 교만이 나의 악과 교만임을 깊이 깨닫고 통회하며 주 앞에 서게 하여 주십시오. 새롭게 시작되는 9월에도 열왕기를 통하여 깊은 회개와 주의 인자를 맛보는 묵상이 되게 하옵소서. 신정아 전도사님의 수술과 온전한 치유, 주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게 하시고, 주님이 징계를 받음으로 평안을 주셨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생명주신 그 은혜가 전도사님에게 그대로 실제가 되게 하옵소서.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이 품속에 안고 돌보아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