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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 사도 요한의 죽음에 대하여
https://youtu.be/WlBQczV1uxU?si=8y99-qzSPeSAfApp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 사도 요한의 죽음에 대하여
요한복음21:20~25
부 르 심:요한복음4:23~24
교 독 문:85번, 요한1서 4장
찬 송:10(34),93(93),304(404),563(411)
기 도: 1)예수님의 사랑하심이 되게 하옵소서
2)머물게 하심으로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소서
3)부르심과 소명으로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게 하소서
4)예수한국, 복음통일(자유통일), 주사파척결, 총선200석, 성령충만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는 베드로가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 대하여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요한복음21:21)”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는 어떻게 될 것을 예수님께 들었습니다.
“젊어서 스스로 띠 띠우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으나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고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떻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 자 중에서도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은
어떠한 죽음을 당할지 궁금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가 요한에 대하여 궁금해 하는 대답은
“너와 상관하지 말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요한복음21:22)”
1.예수께서 갈릴리 해변에서 요한을 부르심
예수께서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그물을 던지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보셨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마태복음4:19)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아갔습니다.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아갔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예수님의 12제자 중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은
선두에 서는 예수님의 제자 4인방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예수께서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음으로 사
람을 낚는 어부되는 던지는 사역을 맡는 것이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께서 그물 깁는 것을 보셨음으로
그물 깁는 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르심에 자신의 소명을 가지고
사명을 다하는 충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 이사야의 소명과 사명(이사야6:1~8)
1> 이사야가 부르심으로 본 하늘 세계
이사야 선지자는 남유다의 웃시야왕이 죽던해에 부르심으로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사야는 이 땅 위의 저 하늘세계를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사야서의 이사야 선지장의 부르심을 봄으로
알수있는 것은 땅의 이세상 뿐만 아니라
저 세상의 하늘세계가 분명하게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이사야는 하늘 세계의 예수께서 보좌에 앉으신 모습과 주님께 가장 가까이 있는
스랍 천사들을 보게 되어 천국간증할 수 있었습니다.
2> 삼위하나님을 찬양하는 스랍천사들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이사야6:1~2)”
예수님의 보좌 가장 가까이 있는 스랍 천사들은 여섯 날개를 가졌습니다.
두 날개로 얼굴을 가린 것은 예수님의 빛이 눈부신 영광에
감히 볼 수 없어 얼굴을 가리었습니다.
두 날개로 발을 가린 것은 예수님에게 감히 수치스런 발을 보일 수 없어 가리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광에 압도되면 치부를 가리어
거룩함에 최대한의 예의를 갖출 줄 알아야겠습니다.
두 날개로 나는 데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항상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부르심에 스랍들의 찬양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이사야6:3)”
거룩하다는 찬양소리가 세 번 들렸습니다.“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는
찬양은 삼위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되어 있으나
그 본질은 하나로 한 분 하나님이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스랍천사들이 삼위하나님을 찬양하듯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기독교의 핵심교리 삼위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가 되어야 할줄을 믿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예수님의 영광이 하늘 성전에 가득한 것처럼
또한 땅에서 충만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기를 바랍니다.
3> 이사야의 회개와 죄사함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이사야6:5)”
사랑하는 여러분, 진짜 주님을 만나게 되는 역사하심은 회개와 죄사함이 일어납니다.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아 하늘세계의 실제 존재함을 보고나서
그 양심이 찔려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나서 한번더 태어나는 거듭남이 있어야겠습니다.
사람이 거듭나는데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에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3:3)”
이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3:5)”
물은 더러운 떼를 씻듯 죄를 씻는 회개함입니다.
성령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율법의 정죄가 아닌
죄사함의 은혜로 생명의 성령의 법을 가지는 자유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8:1~2)”
로마서에는 세 가지의 법이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세가지의 법을 삼위일체 법인데 율법의 성부의 법, 은혜의 성자의 법,
죄사함으로 생명을 얻는 성령의 법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 회개와 죄사함으로
생명의 성령의 법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음을 믿습니다.
이사야가 부르심에 예수님을 영접함에 그 양심이 찔려 회개하니까
때에 스랍 하나가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날아와서 그것을 이사야의 입에 대어 말하였습니다.
“그것을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 하더라(이사야6:7)”
사랑하는 여러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회개와 죄사함을 얻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물로만 아니라 성령을 받아 성령으로 난 영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4>이사야의 사명
이사야는 부르심에 이 땅의 세계가 아닌 저 하늘의 세계를 체험하였습니다.
이사야는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하는 변론을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흥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이사야1:18)“
이사야가 회개와 죄사함을 통하여 주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이사야6:8)”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의 말씀에서 우리는 삼위하나님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누가 삼위하나님을 위하여 사명을 가지고 가는가”입니다.
구약에서 삼위하나님을 가르킬 때에 “우리”라고 말씀하심으로
단수동사를 받아 삼위하나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1:26)”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의 말씀에서도
우리는 삼위하나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종교에도 없는 기독교의 핵심교리
삼위하나님이 한 분 하나님으로 역사하심을
믿는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신령한 체험을 하고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았을 때에
말씀을 들은 이사야는 반응하였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부르심의 소명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란
사명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요한을 머물게 하시는 부르심의 사명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요한복음21:23)”
예수님의 12제자들의 죽음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10명은 주를 위하여 순교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마음이 괴로워 견디다 못해 자살한 가룟유다입니다.
세 번째 오늘 본문 말씀대로 예수께서 머물게 하시어 이 일을 기록한 요한입니다.
1> 순교한 예수님의 제자들 10명의 행적(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빌립, 바돌로매, 도마,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대표적으로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꺼꾸러 메달려 처형당하였습니다.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는 엑스자형 십자가에 묶이는 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가장 먼저 순교하였습니다.
야고보는 주후 40년경 헤롯(헤롯대왕의 손자 아그립바 1세)에게
참수형을 당하였습니다.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사도행전12:1~2)”
예수님의 제자 빌립은 십자가에 달려 돌에 맞아 순교하였습니다.
빌립의 행적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친구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인도하였습니다.
바돌로매라는 나다나엘과 함께 예수님의 제자 중 2순위에 속하였습니다.
1순위는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입니다.
그 다음 2순위는 빌립, 나다나엘, 도마, 마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바돌로매라는 나다나엘은 가죽이 벗겨진 채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빌립이 데려온 나다나엘을 보고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께서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말씀하심으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는 이란과 인도에 교회를 설립하고
복음을 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참수형을 당하는 순교를 하였습니다.
도마의 다른 이름으로 디두모라 불렀습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두 번째 나타내실 때에 다른 제자들과 함께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게 되어 예수님에게 말하였습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
예수님의 제자 마태는 복음을 전하다가 이디오피아에서
참수형을 당하여 순교하였습니다.마태는 세리 출신으로 마태복음의 저자입니다.
3순위에 속하는 제자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판 자 가룟유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다고 하고 톱질을 당해 순교했다고도 합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열심당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다대오은 십자가형에 순교했다고도 하고 활에 맞아 순교했다고도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나안인 시몬은 복음을 전하다가 원주민들에게 잡혀
거꾸러 매달려 톱질당하여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가나안 시몬은 열심당원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 중 순교한 제자들은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어떠한 죽음으로 영광을 돌릴 것인가”입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을 따라 주를 위하여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음으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 되기를 예수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가룟유다의 죽음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예수님을 배신하고 나서
유일하게 마음이 괴워로하다가 견디다 못해 자살하여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가룟유다란 가룟 출신의 유다란 이름을 가진 자입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과 생각이 다른 제자였습니다.
가룟유다는 돈궤를 맡은 회계를 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룟 출신의 유다는 돈궤에 훔쳐가는 놈이었습니다.
가룟유다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척하지만 겉과 속이 다른 놈이었습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흄쳐감이러라
(요한복음12:5~6)”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으면 가르침을 받는 자로 말씀을 가르치시는
모든 좋은 것과 함께 해야 하는데 가룟유다는 그렇치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본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종함이 되어야 할줄을 믿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1:10)”
3.예수께서 요한을 머물게 하심으로 예수님이 누구신지 증거하게 하심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 줄을 아노라(요한복음21:24)”
예수님의 제자들 중 대부분은 주를 위하여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요한만은 예수께서 머물게 하심으로
100살까지 살다가 그 연수를 다하였습니다.
요한은 요한복음, 요한 1,2,3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맡은 일에 충성하였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데 “참”을 붙여 증거하였습니다.
참이란 사전적 의미는 사실이나 이치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것임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참빛, 참하나님이라 하였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참빛이라 하였습니다.
“참빛 곡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1:9)”
요한은 하나님은 빛이라 증거하였습니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요한일서1:5)”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 것인데 빛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빛의 자녀가 되어
세상의 빛이 되고 빛의 열매로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참하나님이라 증거하였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신성의 하나님이라 증거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일서 5장 20절에는 “예수님은 참하나님이시다“고
증거의 기록으로 남기었습니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 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요한일서5장20절)”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요한을 죽일려고
펄펄끓는 기름가마 속에 집어넣게 하였으나
요한은 죽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처럼 죽음으로 상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오실 때까지 요한을 밧모섬에 머물게 하심으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요한계시록1:9)”
사랑하는 여러분,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의 질문이
나에 대한 질문으로 생각하여 보십시다. “주여 저는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예수님은 참빛이시오 참하나님이심을 믿어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기도드립니다. 아멘.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요한계시록1:3)”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