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9년에 여러가지 사건들이 터지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경제상황이 왜 안좋았냐면 바로 1년전인 1978년에 제 2차 석유파동때문입니다
석유파동이라는건 석유 가격이 갑자기 올라가게 되니까 석유를 많이 수입해서 쓰는 유럽이나 미국같은 경우는
경기가 침체되는거고 석유를 판매하는 아랍, 중동은 어마어마한 돈을 벌게 되니까
1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던 1973년에는 아랍 중동권에 돈이 모여들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중동에서 고속도로가 만들어지게 되고
건물이 올라가는 과정에서 우리 기업들이 중동으로 진출해서 엄청나게 돈을 벌어오지 않았습니까
그 1차 석유파동때 우리는 중동특수를 누렸습니다


그 1차 석유파동때 현대건설, 말단 사원으로 가가지고 나름의 신화를 쓰고 도둑들로 부터 금고를 지켰고
젠장 이걸 드라마로 만들어낸게 야망의 세월이었고 저 어렸을때 기억납니다 야망의 세월 진짜 재밌게 봤습니다
유인촌이 주인공이었는데 '야 이런 기업인이 있단말이야'하고 진짜 그 기업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굉장히 존경했더랬습니다
근데 그 기업인이 이명박이라는걸 알게되고 이명박의 실제 인물을 알고 굉장히 실망했구요
하여간 유인촌이 이명박 역할을 하게 되고 그러니까 유인촌과 이명박이 친하게 지내면서
이명박이 대통령 되자마자 유인촌을 문화관광부 장관에 앉히잖아 정말 멋진 우정이죠 시발

1차 석유파동은 대한민국이 돈을 벌었다구요
근데 2차 석유파동이 1978년에 빵하고 터지니까 다시 우리나라 기업들이 전부다 중동으로 러쉬한겁니다
그런데 1차 석유파동에 놀랐던 선진국들이 2차 석유파동땐 에너지 절약에 들어가버렸고
문제는 1차 석유파동때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은 원유를 많이 수입해서 쓰는나라가 아니었는데
1970년대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겠다는 박정희의 의지와 더불어 우리가 원유 수입국이 되어있는 상태에서
마침 또 중동특수가 안일어나니까 중동으로 달려간 기업들이 도산하게 되면서 우리 경제가 작살 나버린겁니다
그러다보니까 대한민국에 상당히 많은 기업들이 도산을 하게 되는데
그중에 우리 정치사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기업이 YH 무역회사라고 합니다

이 YH 무역회사가 도산을 하고 문을 닫게 되는데 여공들에게 월급을 주지 않은 상태로 문을 닫은거야
그러니까 여공들이 데모를 하죠 여러분 근데 이때 여공들은 자신들의 학업을 포기하고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또 오라버니와 남동생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서 그렇게 고생하셨던 분들입니다
아니 월급을 몇달치 못받았으니까 밀린 월급을 달라고 시위할수 있는건데
YH 무역회사에서 그 여공들의 기숙사에 전기와 수도를 끊어버리니까 화나죠
그런데 그 YH 무역회사에 전투경찰, 전경들이 투입돼서 그 여공들을 군화발로 밟아버리니
여공들이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나겠습니까 그게 YH 무역회사 사건이구요

그 여공들이 믿을만한 곳은 당시 야당, 신민당이죠
신민당 당사에 몰려가서 당사 안에서 농성을 계속하게 됩니다
그 시절이 참 이야 무슨 야당 당사에까지 전투 경찰들이 투입돼가지구요 군화발로 국회의원들 쪼인트 까버리고
방패로 내리 찍어버리고 여공들을 전투 경찰들이 머리 질질끌고
그 과정에서 김경숙이라는 여공이 신민당 당사의 창문에 떨어져서 돌아가시게 됩니다
이걸 우리가 신민당 당사 농성 사건이라고 하죠

당시 신민당의 총재는 김영삼이었습니다
김대중은 1971년 대선에서 국민적 스타로 확 떠올랐습니다만 이제 유신독재가 시작되니까 일본에서 유신독재에 저항을 했던거고
박정희가 중앙정보부 요원들을 일본에 급파해서 김대중을 잡아다가 부산 앞바다에 빠뜨려 죽이려 했는데
미국이 이래저래해서 김대중을 살려냈고 김대중은 동교동에 가택되어가지고 그게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이거든요
그리고 지금 6년지나서 6년째 동교동에 가택당해 있는거고 그래서 신민당의 총재는 김영삼이었던거고
당시 김영삼도요 유신독재에 저항 정말 막 단식운동하고 어마어마 했습니다
지금의 황교안급의 단식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김대중과 김영삼은 민주화 투사로는 정말 대단했던거 인정해야 됩니다

그 김영삼이 신민당 당사사건에 경찰들까지 당사에 들어와서 국회의원들 때리고 여공들 끌고가고
그런 부분에 분노해서 외신 기자들 불러 모아다가 박정희 시발! 이라고 해버린거죠

박정희도 꼬라지가 있잖아 감히 일개 국회의원이 일국의 대통령을 모독한단 말이냐 하면서 김영삼을 국회의원에서 제명해 버립니다
이게 우리 국회 역사상 제명 1호 김영삼입니다
물론 대통령이 저 국회의원을 국회에서 제명해 이건 불가능하죠
근데 당시 유신때에는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임명하잖습니까 이걸 유신정우회라고 합니다
혹시나 할아버님중에 유신정우회 출신 국회의원이다 그러면 이건 좀 쪽팔린거예요

그런데 김영삼은 경상남도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있잖아
그 김영삼을 박정희가 제명하니까 경상남도 부산과 마산에서 박정희 니가 뭔데 김영삼을 제명하고 지랄이야하고
박정희 시발!하고 들고 일어나니 그게 바로 부마항쟁입니다
여러분들 이 부마항쟁은 규모가 상당히 컸구요 또 경상남도는 부산, 마산만 있는게 아니라 창원, 울산, 포항, 진해하고 도시가
가까운곳에 뭉쳐있기 때문에 시위규모가 충분히 다른 도시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었고
그래서 당시 유신정권에서는 부마항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대 투입까지 준비하고 있었죠

근데 부마항쟁이 한창일때 박정희가 궁정동 안가에서 시바쓰리갈 먹다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총을 맞고 죽었죠
그때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최후 진술에 입각하면 당시 그자리에 경호실장 차지철도 있었고
박정희가 술을 마시면서 '지금 부마항쟁 시위규모가 저렇게 큰데 걱정이야'라고 하니까
경호실장 차지철이 '각하 걱정마십시오 캄보디아에서 300만명 죽이니까 조용해졌지 않습니까'
캄보디아 킬링필드를 얘기 한거죠
'캄보디아에서는 300만명 죽이니까 모든게 해결됐는데 부산, 마산에서는 200만명만 죽이면 조용해질 것입니다'
이말을 들은 김재규가 '내 어찌 이런 사람들을 죽이지 않을수가 있겠느냐'라고 하면서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라고 했죠

그렇게 박정희가 죽었습니다 10.26사건 입니다
여러분들 유신시대때 박정희에 대한 저항, 유신에 대한 항쟁
뭐 3.1 민주구국선언,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 민청학련사건, 인혁당사건 그리고 여러 학생들의 시위
유신 헌법 철회해라, 긴급조치 철회해라 이런 시위들이 있었죠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과 학생들 입장에선 마음속으로는 좋아했고 드디어 우리에게 민주화 시대가 오는구나
박정희 시해를 기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이 죽었는데 만세를 외칠수는 없는거 아닙니까
굉장히 엄숙하게 박정희 국장이 치뤄집니다
그리고 박정희에게 가택연금 당했던 김대중도 이제 동교동 집밖으로 나오게 되고
새로운 시대를 꿈꾸고 있었죠
이럴때에 1979년 12월달에 서울에서 탱크가 움직였고 군인들끼리 총격전이 있었고
이게바로 12.12 사태예요
그러니까 10.26사건으로 인해서 이제 우리 대한민국에도 그리고 서울에도 민주화가 오겠구나 희망에 부풀어 있었는데
갑자기 서울에 민주화가 오는게 아니라 이상한 빛이 반짝반짝 거렸는데 그 빛은 사람 머리에서 나오는 빛이었던겁니다
빡빡이가 등장한 거예요 이게 바로 12.12사건 입니다
첫댓글 이걸 다 타이핑을 .. 대단하십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빡빡이의 등장... 하
그새끼를 막았어야한다...
잘 읽었습니다.
ㄷㄱ
황현필선생님은 강의할때 혼이있음
요즘 10/26 12/12 글 영상 찾아보는데 겁나 재밌음
이걸 타이핑하셨네 ㄷㄷㄷ
https://youtu.be/KHExgLkOfQ4
영상 링크입니다
PLAY
완전 재밌게 읽었습니다!! 요즘 근대사 너무 재밌게 보고있어요!
나이 들어서 보니까 근현대사 재미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