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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3일(화)
* 시작 기도
주님...
주님은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만민을 판결하십니다.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는데 주께서 그들의 요새가 되시기 때문입니다(시 9:1, 3).
주님을 아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주를 아는 것이 바로 주님의 뜻인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미련한 자는 주님의 뜻을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힘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이 땅에서의 삶에 천착하며 그 삶만 잘 되면 최고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렇게 이 세상 곧 만물 안에 있는 것에 마음을 쏟을 때 나의 삶은 혼란스러웠고 혼탁해졌습니다.
어느 것 하나 정돈 된 것 없이 뒤죽박죽이었습니다.
내 뜻대로 잘 되어 가면 기분이 좋았으나 삶이 흔들리면 온갖 상념에 빠져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임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때 주님께서는 복음을 듣게 하셨고 이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만물 안에 있는 것 아니라 영생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창세전 언약인 영생으로 인하여 주님과의 교제를 이어갑니다.
오늘도 이런 나의 옛 사람과 나의 의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렇게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사는 이 하루가 되게 하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길 원합니다.
인기에 영합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하시고 진정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주의 종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느 2:11-20
제목 : 오직 너희에게는 기업도 권리도 기억되는 바도 없다.
11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12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13 그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용정으로 분문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탔더라.
14 앞으로 나아가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서는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15 그 밤에 시내를 따라 올라가서 성벽을 살펴본 후에 돌아서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 돌아왔으나
16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알리지 아니하다가
17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18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19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20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 나의 묵상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장으로 있었다.
하루는 2차 포로귀환 때 예루살렘으로 귀환했던 동생 하나니가 자기에게 와서 들려주는 예루살렘의 상황을 듣고 기가 막혔다.
그 이유는 자기의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은 환난과 능욕을 당하고 성은 무너졌으며 성문은 불에 다 타서 엉망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슬프고 괴로워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가만히 앉아서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그때부터 하늘의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다.
때로는 금식을 하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긍휼히 여겨달라고 간구하였다.
그로부터 4-5개월이 지났을 무렵 느헤미야는 그 일로 인하여 자기도 모르게 왕 앞에서 수심이 가득한 얼굴을 비치게 되었다.
왕은 수심이 가득한 그의 얼굴을 보고, 그가 아프지 않은 것을 아는데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이유를 묻는다.
왕 앞에서 얼굴에 근심어린 빛을 띤다는 것은 당시 분위기로는 죽임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왕이 그가 근심하는 이유를 묻는 것은 평소에 왕과의 관계가 어떠함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고 계심을 확인할 수 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왕에게 모두 이야기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돌아가 성벽을 세우는 일과 그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공급해 줄 것,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일에 지방 총독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조서를 써 주실 것을 요청한다.
이에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의 말대로 조서를 써주고 물심양면으로 그를 돕는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3일 만에 현재 예루살렘 성의 상황이 어떠한 지에 대하여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자 측근 몇 사람만 데리고 아무도 모르게 한 밤 중에 시찰을 나간다.
예루살렘 성의 형편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시찰을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행하는 것은 이를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며, 이미 귀환해서 사는 백성들의 동요를 막기 위함이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점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몇 가지를 요구한다.
너희가 엿새 동안 이 성을 돌되,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엿새째 되는 날은 일곱 바퀴를 돌도록 하였다.
성을 돌 때 제사장 7명은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불되 마지막 날 제사장들이 나팔을 길게 불면 백성들은 큰 소리로 외치도록 하였다.
백성들도 여리고성을 돌 때, 외치지 말고, 자신의 음성이 들리게 하지 말아야 하며, 입에서 아무 소리도 내서는 안 되었다.
그러다가 외치라는 신호가 있을 때 동시에 함성을 질러 외쳐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항상 언약궤를 중심으로 이 일을 진행하도록 하였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도록 입단속을 시킨 이유가 무엇일까?
이스라엘이 점령해야 할 여리고성은 크고 거대한 성이다.
이 성을 점령해서 무너뜨리려면 이런 저런 무기를 들고 무장해서 공격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백성들의 상식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지시하고 있다.
아무런 무기를 들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성 주위를 돌라는 것이다.
이것은 성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날 잡아 잡수’ 라고 자신들을 적에게 내주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입단속을 철저하게 시키지 않으면 백성들은 성을 돌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것이고, 그 이야기 속에는 이해할 수 없는 점령 방식에 대한 불만이 섞일 것이 분명하다.
작은 불만과 불평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가장 흉악한 독이다.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여리고성을 점령하여 무너뜨리기 전에 그들이 먼저 여리고 사람들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입을 철저히 단속하고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게 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조치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일은 여호수아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방법이요, 무엇보다 그들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인 언약궤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말도 안 되는 전략을, 믿음으로 성을 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지만, 여리고성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비밀이다.
그래서 아마도 여리고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어리둥절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비밀이다.
(눅 8:10)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마 13: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밝히 드러나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베일에 감추어진 것처럼 알 수 없다.
아무리 비밀이라도 아는 사람이 있다.
바로 비밀 당사자들이다.
“이것은 우리 둘 만의 비밀이야.”라고 할 때,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그 두 사람은 알고 있다.
이 비밀이 중요하면 할수록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어깨가 으쓱거리고 기분이 좋다.
느헤미야도 예루살렘 성을 시찰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에 부치고 몇몇 사람들만 데리고 나갔다.
그것도 한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그 이유는 성을 시찰하는 일이 알려지게 되면 대적자들이 방해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며,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도 성벽을 세우는 일보다 지금 자기 자신들의 먹고 사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 반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비밀에 부칠 수는 없다.
성을 시찰하는 일은 아주 측근인 몇몇 사람과만 행하였지만, 이제 성벽을 세우는 일은 몇몇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백성들 모두가 힘을 합하여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D-day를 정해서 예루살렘의 상황을 설명하고 성벽을 세워 더 이상 이방인들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하자고 한 것이다.
(16b-18) .....알리지 아니하다가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편을 가르는 일은 입에서 나오는 작은 불평으로부터 시작된다.
커다란 저수지를 무너뜨리는 것은 작은 구멍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일은 비밀에 부쳐질 때가 많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비밀을 아느냐에 있다.
지금 당장 그 비밀을 모른다 할지라도 언젠가 그 비밀이 드러날 때가 있다.
그렇다면 그 비밀이 드러날 때 그 안에 완전히 녹아들 수 있도록 항상 그 일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 비밀을 공개할 때 그것을 대적하는 자들이 등장한다.
특히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항상 그 일을 방해하는 원수가 있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일을 그들은 배 아파하기 때문이다.
바로 산발랏과 도비야 게셈이 그들이다.
그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도 영원히 감추어져 있고, 또 그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도 없다.
느헤미야가 세우려고 하는 예루살렘 성벽은 단순한 이민족이나 이방 잡족들의 침략을 막기 위한 성벽,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곳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느헤미야나 그와 함께 했던 몇몇 측근들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자들이다.
또한 후에 그 비밀을 드러낼 때 그 비밀에 자신을 녹아들어가도록 하는 자들은 그 나라에 속한 자들이다.
그러나 이 비밀이 감추어진 자들에게는 그것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산발랏 도비야 게셈과 같은 자는 그 비밀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왜냐하면 아닥사스다 왕은 이미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에서 성벽 세우는 일을 허락했으며 그와 관련된 모든 물자도 공급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런데 이들은 왕을 배반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19절).
이런 자들은 결국 유업을 얻지 못한다.
(20)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나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모르는 외인이었다.
모태 신앙인이요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었지만, 나의 눈을 덮고 있는 비늘로 인하여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눈 뜬 소경이었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기독교의 분위기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잘 맞는 옷처럼 편했다.
나는 학생 때부터 찬양하는 것을 좋아했고, 부르짖으며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교회에서 하는 모임을 좋아하였으며, 그룹으로 모여서 성경을 공부하는 일에 열심이었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알지 못하였다.
나는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이 땅에서 열심히 주를 섬기면 죽어서 천국을 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이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핵심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원론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땅에서 살면서 끊임없이 만물 안에 있는 존재물들을 향유하고 그것들을 얻으려고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등 나의 종교성은 하늘을 찔렀다.
찬양하는 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천사였다.
그러나 그 안에는 나의 목소리를 드러내고자 하는 나의 의로 가득찼던 것이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깨닫는 것들에 대한 희열은 느꼈지만, 그것이 나의 삶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앞에서는 깨달으면서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는 죄의 자리에 들어가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 나라는 비밀이었다.
정말이지 나는 영생도, 하나님 나라도, 구원도 바르게 알지 못하는 자였다.
그리고 예수 믿어 이 땅에서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이요 또한 하나님의 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탓에 목회는 끊임없이 헤매고 혼미하며 영적으로 혼돈스러웠고 성도들을 어디로 이끌어야할지 도무지 알지 못했다.
나 자신부터 갈지(之)자를 걷고 있으니 어떻게 성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었겠는가?
교회 안에는 불평과 불만이 끊이지 않았고, 성도들은 영적 만족을 누릴 수가 없었으며, 그들이 원하는 땅에서의 축복은 요원하기만 하였다.
그렇게 헤매고 있을 때 복음을 듣게 되었다.
그동안 듣도 보도 못한 복음이었다.
나는 정말 복음을 몰랐다.
복음은 비밀이다.
하나님 나라도 비밀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가 곧 복음이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를 알아야만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데, 하나님 나라를 알지 못하니 신앙생활은커녕 연목구어(緣木求魚)처럼 나무에 올라가서 생선을 구하는 종교생활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비밀이다.
그러나 그 비밀이 드러나는 때가 있다.
그것은 내가 완전히 망하는 때이다.
내가 망할 때 하나님 나라가 드러난다.
(마 13: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그렇기 때문에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언제까지 이런 일이 있느냐고 하나님께 여쭌다.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완전히 망할 때까지라고 말씀하신다.
(사 6:11-12)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나의 종교성이 망하고, 나의 헛된 꿈이 망하고, 이 땅에서 얻기 원하는 나의 욕심과 정욕이 망할 때 비로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되고, 참된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다.
그래야만 든든한 반석 위에 다시 집을 지을 수 있다.
나는 무너졌으나, 아직도 더 무너져야 할 것들이 많다.
나의 정욕과 나의 의 등.....
이런 것들로 인하여 나는 허황된 꿈을 좇아 왔으나 결국 그것은 영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를 무너뜨리시고 망하게 하신 주님으로 인하여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를 뵙고 이를 통하여 함께 교제와 사귐을 갖는다.
그런데 순간순간 내 안에 차오르는 정욕이나 세상을 향한 헛된 꿈들, 그리고 나의 의가 그것을 막는다.
그리고 또 넘어지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그런 나를 보면서 좌절하고 절망하며 낙심하여 한 동안 일어서지 못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부끄럽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고 다시 일어나 아버지께로 담대하게 나간다.
그것이 바로 파레시아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품에서 쉬는 쉼이야말로 나를 온전케 한다.
그곳만이 나의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 아버지 품에서 주의 영광을 보며 안식을 누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모르던 소경이었나이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눈 뜬 소경말입니다.
육신의 눈은 멀쩡하지만 영적인 눈은 비늘에 가려져 도무지 볼 줄 모르는 자였습니다.
그러니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고 얼마나 헤매었는지 모릅니다.
목회는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고 숫자적 부흥이 되지 않는 것에 붙들려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습니다.
성도들에게 닥치는 환난은 나를 고통스럽게 했나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만지시는 것이며, 모래 위에 지은 집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공의였는데,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소경이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나에게 복음을 듣게 하셨고, 조금이나마 눈이 열리고 깨달으면서 영생이 무엇인지, 언약이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의 유업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순간순간 넘어지지만 이제는 더 이상 혼미하거나 헷갈리지 않는 것은 내 눈자락이 만물 안에 매몰되지 않고 넉넉히 만물 위를 향하여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가 가야할 곳은 이 세상의 영화와 사라질 복이 아니라 만물 위에 있는 아버지 집이요, 아버지 품속임을 아오니 오늘도 그곳에서 아들이 보았던 그 영광을 보게 하소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노래가 좋아서 불렀던 이전의 내가 아니라 이제는 주의 성호를 높이는 영광을 보기에 나의 온 몸과 마음으로 찬양하나이다.
높임을 받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