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21, 산뜻한 이륙 부드러운 착륙… 우수성 실감”
첫 시험비행 조종사 안준현 소령
“부양 순간 뭉클 심적 부담 사라져
끝이 아닌 시작…향후 임무 더 중요”
2026년까지 2200회 출격 검증 참여
공군 제52시험평가전대 소속 안준현 소령이 19일 경남 사천에서 진행된 국산 전투기 KF-21(보라매)의 첫 시험비행을 위해 조종석에 탑승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긴장 속에서 조종간을 당겨 기체가 부양한 순간 가슴 뭉클함과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공군 제52시험평가전대 소속 안준현 소령(40·공사 54기)은 19일 경남 사천에서 진행된 국산 전투기 KF-21(보라매) 시제 1호기의 첫 시험비행에 성공한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안 소령은 20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내색은 안 했지만 이륙 직전까지 심적 부담이 컸다”면서도 “막상 이륙 후 사천 상공에 떠오른 뒤부터는 편안하고 순조롭게 정해진 경로대로 비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30여 분간 비행을 마치고 착륙한 후 너무도 많은 분의 축하를 받았다”며 “KF-21의 개발과 시험비행을 위해 노력한 모든 분께 영광을 돌린다”고도 했다.
KF-21 시제기 조종사로는 안 소령을 포함해 공군 소속 2명과 개발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소속 2명 등 총 4명이 선발됐다. 이 가운데 안 소령이 첫 시험비행 조종간을 잡은 것이다.
국산 기본훈련기 KT-1 비행교관을 거쳐 2016년부터 52전대 시험비행조종사로 근무 중인 그는 지난해 2월부터 KF-21의 시험비행을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1년여간 비행계통 교육, 조종 절차 숙달 훈련 및 시뮬레이터 탑승, 비상처치 절차, 각종 절차·교범 검토 등을 수없이 반복했다고 한다. 그는 “KF-21 시제 1호기는 이륙 시 가속력이 우수했고 부양 조작 시에 어려움 없이 원하는 조작으로 이륙이 가능했다”며 “무거운 기체에 비해 착륙 충격도 매우 적어 부드럽게 착륙했다”고 말했다. 첫 시험비행에서 KF-21의 우수성과 비행 안전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안 소령은 2026년까지 2200여 소티(출격횟수)의 시험비행을 통해 KF-21을 개발 검증하는 과정에도 참여하게 된다. 그는 “수많은 기술의 집약체인 전투기를 검증하려면 2200여 소티도 많은 게 아니다”라며 “최초 시험비행 조종사라는 타이틀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으며 향후 시험비행과 해야 할 임무들이 더 중요하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러면서 “최초 시험비행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인 만큼 KF-21이 최적의 상태를 갖춰 모두가 만족할 항공기로 완성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국산 초음속 전투기
‘22 대 198.’
6·25전쟁 당시 한국과 북한이 보유했던 전투기 숫자다. 북한 전투기는 우리의 9배였다. 모두 소련에서 지원받은 실제 전투기였다. 반면 우리는 연락기와 훈련기여서 전투기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참전한 유엔군의 전투기 투입으로 제공권을 되찾으면서 불리한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공군력이 현대전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실증 사례였다. 제대로 된 전투기 한 대도 없었던 한국이 19일 자체 생산한 초음속 전투기 KF-21(보라매)의 첫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6·25전쟁 발발 72년 만에 이룬 쾌거다.
▷우리나라는 첨단 초음속 전투기를 개발한 세계 8번째 국가가 됐다. 그러나 개발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2001년 3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국산 전투기 개발을 선언했지만 시작부터 “무모한 도전 아니냐”는 회의적인 평가도 만만찮았다. 개발 선언부터 사업 타당성 결론까지 무려 9년이 걸렸다.
▷내부 논의가 정리되고 나니 외부에서 문제가 터졌다.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기로 했던 25개 핵심 기술 중 가장 중요한 AESA(능동형 전자주사식 위상배열) 레이더 등 4개의 기술 이전을 거부한 것. 아무리 동맹이라도 최첨단 기술 이전만큼은 꺼리는 냉엄한 현실이었다. 결국 정부는 독자 개발에 나섰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중심으로 한화시스템, LIG넥스원 등 방산업체와 700여 개 중소 협력업체가 힘을 합쳤다.
▷특히 AESA 레이더는 전투기의 ‘눈’에 해당하는 최첨단 기술이다. 지금까지 개발에 성공한 나라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 5개국뿐이다. 우리 기술로 만든 AESA 레이더는 미국 F-35A 전투기에 탑재된 AESA 레이더와 비슷한 수준이고, 중국이나 러시아제보다 성능이 우수하다고 한다. KF-21은 북한 전투기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 전투기보다 먼저 보고, 먼저 미사일을 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동아시아 패권을 노리는 중국이 KF-21 개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KF-21의 주요 장비 등 전체 국산화율은 90%에 육박한다. KF-21 개발을 자주국방의 상징으로 볼 만한 대목이다. 그동안 국산 미사일을 개발해도 해외에서 들여온 전투기에 장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해외 제조사의 까다로운 허가가 필요해서다. 그러나 국산 전투기 개발로 국산 미사일 개발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방산 수출이 확대되면 일자리 창출 등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KF-21 개발은 무려 8조8000억 원이 투입되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방위력 증강 사업이다. KF-21이 사회 각 부문에 미칠 연관 효과가 기대된다.
정연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