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여러 가지 분주한 일을 맞이하지만
주님 안의 평강으로 행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저의 부정성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긍휼히 여기며, 관용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느헤미야의 기도와 그에 대해 응답하시는 주님을 부지런히 좇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말씀을 조명하여 주실 성령님을 기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1.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12.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13. 그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용정으로 분문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탔더라
14. 앞으로 나아가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서는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15. 그 밤에 시내를 따라 올라가서 성벽을 살펴본 후에 돌아서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 돌아왔으나
16.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알리지 아니하다가
17.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18.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19.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20.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본문 주해)
11~12절 :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고 사흘 뒤 은밀하게 성벽을 순찰한다.
그는 신중하게 선발한 소수의 사람과 당나귀로 추정되는 짐승 한 마리를 타고 임무에 착수한 것이다.
12절의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는 유다 사람들의 마음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성벽 재건의 소문이 먼저 날 경우 불평과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였다.
둘째는 대적자들이 손을 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성벽이 재건되고 유대인들이 강성해지면 그들을 다스렸던 지도자들은 마땅히 권위를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13~16절 : 느헤미야 일행은 골짜기 문에서 출발하여 분문과 샘문을 지나며 성문 들과 성벽을 둘러본다. 느헤미야가 수산성에서 예루살렘의 형편을 들은 그대로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타 있었다.
느헤미야 일행의 야간 시찰은 어떤 관리도 눈치채지 못하게 이루어졌다.
그것은 그가 유다 사람들이나 제사장들이나 귀족들이나 방백들이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아직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7~18절 : “이렇게 돌아보고 난 다음에, 나는 비로소 관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우리는 지금 어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고, 성문들은 불탔습니다. 이제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읍시다. 남에게 이런 수모를 받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또한 나의 하나님이 선하신 손길로 나를 잘 보살펴 주신 일과, 왕이 나에게 한 말을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랬더니 그들은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나에게 다짐하였고, 힘을 내어, 기꺼이 그 보람있는 일을 시작하였다.”(새번역)
때가 되자 느헤미야가 동족들에게 입을 연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한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유다 사람들이 성벽 공사에 마음을 열고 힘을 내기 시작한다.
19~20절 : 유대인의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 소식이 느헤미야의 대적자들에게 알려졌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와서 느헤미야와 유대인들을 업신여기고 비웃었다. 또 그들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페르시아 왕에 대한 반역이라고 하며 유대인들을 위협하였다.
이에 느헤미야가 나서서 단호히 말한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하는 일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과 하나님의 종인 그들이 성벽 쌓는 일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방인 너희들은 예루살렘과 아무 상관이 없으니 예루살렘에서 차지할 몫도 없고, 요구할 권한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나의 묵상)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에 대해 잠잠히 기도로 준비한다.
야단스럽거나 떠들썩하지 않았다.
느헤미야가 밤에 소수의 사람만을 데리고 무너진 성벽과 성문을 순찰한다.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어쩌면 수산성에서 처음 참담한 예루살렘 소식을 들을 때보다 더 간절히 기도하며 현장을 돌아보았을 것 같다. 그 시간은 무너진 성벽과 불탄 성문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경험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그 마음에 뜻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12절) 즉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마음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느헤미야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고, 아닥사스다 왕에게서 순적한 도움을 받도록 인도하신 것이다.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로 하여금 그 일을 하게 하신 것일까?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 공동체에 흘러들어오는 세상 것을 차단하는 성벽을 재건하라는 말씀이 아닐까?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17절)
당시 무너진 성벽은, 이방인들이 그들을 깔보고 모욕하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곧 그것은 하나님만을 섬긴다는 유대인들의 수치였다.
오직 복음과 생명으로 충만해야 할 성도들에게 세상 것이 넘치도록 흘러 들어오니 감당이 안된다. 이름만 그리스도인이요, 삶의 모습은 믿지 않는 자와 구별이 없는 것이다. 교회 덩치가 아무리 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지 않는 곳,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말하지 않는 곳은 교회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세상으로 오염되어 버린 곳이다.
그렇지만 자기들끼리는 믿음이 있다고 서로 응응 하지만, 세상은 그런 그들에 대해 코웃음치는 것이다. 도대체가 구별이 되지 않는데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니 얼마나 웃기는 존재들일까? 무너진 성벽으로 인해 모욕을 당하고 있는데도 자기들끼리는 좋다.
이제 진리의 생명의 샘에 울타리가 쳐져 세상 것들이 흘러들어와 성도의 영혼을 오염시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구원받은 성도의 생명샘이 되어 주셨건만,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그 생명샘 우물이 막힌 줄도 모른다. 교회 출석과 어느 정도의 선한 일들로 마음에 만족하고, 그보다 조금 더 열심인 자들은 자신들의 그 열심으로 주님과 거래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느헤미야로 하여금 성벽 재건의 뜻을 주셨다.
주님은 느헤미야의 이 사명을 내게도 주셨다.
느헤미야처럼 깊이 기도하거나 지혜롭게 처신하지 못하여 덤벙대는 것이 나의 특기지만, 그런 중에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시니 나는 기쁨의 박수만을 친다.
만나는 모든 영혼들에게 창세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예수님을 통해 영생을 주시는 것임과 그 영생이란 주님을 알아가는 것이니,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감으로 이루어지는 주님과의 이 친밀한 교제를 전하고 또 전하는 것이다.
함께 일하자고 일어서는 유대인들과 느헤미야 앞에 대적자들이 나선다.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사탄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자신의 뜻대로 잘 조종되던 자가 말씀 안에 있겠다고 하니 절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겠다.
‘굳이 그렇게 심각하게 믿을 필요가 뭐 있느냐? (그러나 심각하게 믿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믿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목사님 말씀만 잘 듣고 열심히 봉사하면 아무 문제 없다. (그러나 목회자도 완전하지 않다. ’과연 그러한가‘ 하고 말씀으로 점검해 보아야 한다. 오직 말씀만이 의롭다.)
말씀 묵상? 왜 굳이 그것만 고집하냐? 찬양도 있고, 기도도 있고....주님께 나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아니냐? (그러나 말씀 없는 기도와 찬양과 봉사 등은 다 자기의를 자랑할 뿐이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 우르르 몰려와 ‘ 지금까지 잘 살아오게 한 페르시아 왕을 배반하려는 거냐’(왜 안 하던 짓을 하느냐? 왜 분탕질이냐?) 하며 겁을 주고 협박하고 반항한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단호하다.
‘너희(세상)와는 상관없는 일이다.’라고.
무너진 성벽을 세워야 한다.
성도와 세상 사람들의 구별이 있도록 하는 성벽, 그 허물어진 성벽을 세워야 한다.
바로 말씀 묵상이다.
내 안에 영적 생수가 가득 차 흘러넘치기까지, 더러운 것으로 오염되지 않도록, 또는 세상 세력에 막히지 않도록 매일 말씀 앞으로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가득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말씀이 없어 허덕이며 죽어가는 그 누군가에게 전하고 선포함으로 또 그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저로 이 성벽을 세우는 일에 사용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한결같이 묵상을 하게 하시는 이유를 오늘도 확인합니다.
세상 속에서 구별된, 주님의 백성을 만들기 위하심입니다.
이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은밀한 기도와 성령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