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어묵
김성대 (深溪 )
‘매퉁이’라는 물고기가 있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하여 어류도감에서 확인한 어느 물고기의 생물학적 학명이다. 색이 불그레하고,
어중간한 길이에 주둥이가 뭉툭하고 비늘이 넓었다. 크기가 비슷한 숭어의 미끈함에 비하자면 터무니없이 균형이 잡히지 않아서 척 보아도 하급의
물고기였다. 이 ‘매퉁이’라는 이름을 우리 가족들에게 말하면 처음에는 모두 어리둥절할 테다. 그러나 뒤의 두 자를 바꾸어 ‘매티미’라고 말하는
순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우리 가족 모두는 박장대소를 해야만 할 것이다. 곧 할아버지의 어묵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사십여 년 전 새벽이었다. ‘매티미’의 모습이 정확하게 떠올랐고 할아버지의 모습 또한 살아오신 듯 또렷하다. 삼베 잠방이에 하얀 고무신
차림으로 어장으로부터 돌아오셨다. 햇살이 돋자 거뭇거뭇 수염 옆으로 굵은 비늘 몇이 번뜩거렸다. 뒤를 따라오는 스무 살쯤의 총각의 지게 위에는
그날 잡은 잡어가 그득하였다. 우물가에 풀고는 재빨리 생선을 분류하셨는데, 이 일은 선도를 염두에 두고 빠른 손놀림으로 직접 하셨다. 팔 물건,
나누어줄 물건과 반찬으로 해 드실 물건을 구분하는 것에는 할아버지 나름으로 원칙이 있었으니, 아무나 할 일이 아니었다.
늘 ‘매티미’는 한통속으로 분류되지 못하는 물고기였다. 말하자면 제3세계의 물고기라 할까? 언제나 별도로 분류되었다. 이름의 어감처럼
투미하여 팔 수도, 줄 수도, 먹기에도 적합하지 않은 어중간잽이였던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분류된 이 물고기들은 어머니나 숙모님들에 의하여
마당 한켠의 솥에서 모조리 삶아지고 말았으며, 이어서 돌절구에서 밀가루와 함께 걸쭉한 반죽으로 화하였다. 여기까지가 아녀자들의 몫이었다. 그
다음은 또 할아버지의 차례였는데, 무쇠솥에서 기름에 튀겨져서 나오는 과정이 뒤따랐다.
근 반나절을 애쓴 끝에 드디어 식구들의 밥상에 올랐는데, 그 맛에 대하여 정확하게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없다. 맛나게 드시는
할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식구가 모두 먹기를 꺼렸던 것 같기도 하다. 입의 크기를 고려하지 않은 뭉툭한 크기이며, 제조의 과정에서 호통을 치던
할아버지의 독단에 식구들은 벌써 식욕이 달아나 버렸을까? 아무튼 그 맛에 대한 평가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한 것은 애석한 일이었다. 다만,
할아버지께서 그 맛없는 제3세계의 물고기를 처리하는 방법 하나만큼은 기가 막혔던 것이다.
이게 할아버지식의 어묵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어묵을 먹어본 것은 누구보다도 오래전의 일이며, 어디까지나 유능한 할아버지를 둔 덕이었다.
그 맛에 대하여는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큰 형의 혼사가 있었는데, 그때에 도시에서 주문하였던 도시락에 반찬으로 어묵이
한 조각씩 들어 있었다. 색깔이 희고 조직이 치밀하여 무척 쫄깃하였으며 가장자리에는 분홍 색깔의 띠마저 둘려 있어서 먹기에도 아까울 정도로
고급스러웠다. 공장 제품 어묵의 출현으로 할아버지의 수제 어묵이 여지없이 체면을 구기는 순간이었다. 할아버지께서 공장 제품의 어묵을 어떻게
평가하셨는지는 의문이다. 고집불통 할아버지....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우리 동네 목욕탕 앞에는 작은 어묵집이 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김이 올라오고 국물이 끓고 있다. 목욕을 마친 나의 주전부리는 여름 겨울의
구분이 없을뿐더러, 젊을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시커멓고 넓은 어묵 한 가지만 있던 시절로부터, 희고 고운 갖가지 등급의 다양한 어묵이
진열되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다만, 더운 여름에는 개수가 줄고 추운 겨울이면, 이 작은 배에 어찌 들어갈까 할 정도로 식탐을
부리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가히 지독한 어묵 사랑이다. 나만 그런가?
오래전에 형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내려오는 길에 형이 멈칫하고 섰다. 어묵가게 앞이었다. 나도 형 옆에
자동으로 서고 말았다. 우리는 두말하지 않고 어묵 먹기에 열중하였고 순식간에 각자 꼬지 서너 개를 전리품처럼 들고 있었다. “너도 어묵 좋아하는
가배...” 계면쩍은 중년의 신사 맞은편에서, 아내와 형수가 쳐다보고 있었다. “쯔쯔... ‘매티미’ 할배 손자 아니랄까 봐서....” 뒤 돌아
보지도 않고 형과 내가 쿡쿡거렸다. “체, 자기들은 ‘매티미’ 어묵 구경도 못했으면서...” 그새 새 꼬치가 또 우리 형제의 손에 들려있었다.
그날, 공원 앞 어묵장수는 ‘매티미’ 할배 손자 둘을 만나서 수지맞은 것이다.
다행히 아내는 어묵 요리를 자주 하는 편이다. 덕분에 아이들도 어묵을 좋아하여 우리 집안의 어묵사랑은 마침내 유전되었다. 찬바람이 불면,
내 어묵 사랑에 전염된 아내가 자신이 좋아하는 가래떡과 함께 한 솥 끓여내면, 우리는 소주 한 병을 거뜬히 나누어 마시고 마침내 어묵의 온기에
온몸이 녹아들어 그만 행복해진다. 이쯤 되면, 연예인들이 자주 찾는다는 해운대 G 호텔 뒤의 일본식 ‘미나미’ 어묵집이 하나도 안 부럽다.
그래서 나는 문득문득 ‘매티미’ 할아버지 생각이 떠오르는 겨울밤이 마냥 좋은 것이다.
* 매티미 / 매퉁어의 경상도식 사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