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맞추기, 혹은 흔들리기
양복임
1997년 계간 <시와 산문>으로 등단, 수필집 <가지치기>, 제9회 한국녹색수필상 수상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도에 어그러지지 않는다는 나이.
그 종심(從心)의 고개를 넘어서면서 이제 유유자적 해찰하며 살리라. 그렇게 자신과 타인에게 너그러워지는 여유를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부쩍 귀는 당나귀 귀요, 마음은 갈지자걸음이다. 마치 걸음마 시작한 아이 앞에서처럼 여기저기서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야 한다고들 목소리가 높다. 하다못해 얼굴 없는 정보와 문자소리들까지 쟁쟁하다. 하긴 내리막길이 더 조심스럽다 했으니, 앞서간 이들의 길안내 격 충고를 무시해 버릴 만큼 단단하지 못하니 어쩌랴.
나이 들수록 기억력 저하와 함께 미각기관이 먼저 무뎌지는지 잘 해먹었던 음식도 어쩐지 제 맛이 아니다. 옛 어른들이 음식은 그저 간이 잘 맞아야 제 맛이라 했지만 간 맞추기가 전 같지 않은 것이다. 그런 속도 모르고 곁의 남편은 은근히 예전에 먹었던 맛을 요구하곤 했다. 시래기 국을 놓고는 예전의 맛이 아니라는 말에 난 괜히 된장 핑계를 댔다. 또 한겨울 아름드리 동치미단지를 땅에 묻어놓고 술 해독제인양 한 양푼씩 먹었던 그 톡 쏘고 알싸한 맛을 아쉬워할라치면, 아예 번거롭다고 손사래를 쳤다. 예전 같으면 눈을 모로 뜨고 한마디 했겠지만 별 말없이 눈길을 돌린다. 슬그머니 미안해진 마음에 우선 TV에서 날마다 시각과 미각을 유혹하는 전문 요리사들의 갖가지 요리작품들 앞에 메모지를 들고 앉아봤다. 동갑인 우린 이렇게 서로 노년임을 인정하며 마음의 간을 맞춰가는 중이다.
어디 미각뿐이겠는가. 위아래가 분명했던 시대를 뚝 때어낸 듯 매사에 계산적이고 몹시 당돌한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불편한 마음을 지그시 누르곤 한다. 저네들의 국적불문의 언행이며, 보는 이가 오히려 민망한 풍경들도 눈을 슬며시 돌리는 게 자연스런 현상이 되어간다. 가정적으로는 어떤 이유에서이든 독신을 고집하는 자녀들로 인해 가슴속에 불을 지니고 사는 이들도 주변에 상당하다. 그나마 성혼한 자식들마저도 그저 마음에서조차 저만치 떨쳐 내보내라 한다. ‘우리 때는 이랬고, 그때는 저랬는데...’ 라는 말도 하지 말란다. 돌아보면 민족적으로나 좁게는 개인적으로 온갖 지난한 세월을 건너온 우리 아닌가. 하지만 이 급변하는 세태와의 원만한 동행을 위해선, 가슴은 열고 눈은 반쯤만 뜨는 수용의 간을 맞추라 한다.
사실 난 아직 철이 덜 들었는지 노인이란 호칭이 속마음에선 버겁다. 그래서 몸 따로 마음 따로 잔바람에도 삶이 흔들리고 있는 때, 산책길에서 묵언의 스승을 만났다. 언덕에 홀로 선 억새. 모진 바람에 허연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전신이 땅에 닿을 듯 활처럼 휘어지고 일어서기를 쉴 새 없이 반복하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봤다. 자연에 순응하며 그 형벌 같은 상황을 견디고 견디며, 끝내 씨를 날려 보내려는 모습이 눈물겹도록 숭고해 보였다. 대나무처럼 속을 비웠기에 뚝, 꺾이지 않고 바람 앞에 다시 몸을 곧추 세우는 것이리라. 문득 단단한 삶을 위해 잠시 고난가운데 흔들리는 것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본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흔들린다.
그와 함께 백세를 앞에 둔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말씀이 움츠러들었던 가슴을 일으키며 다독인다. 그분은 더 늙기 전에 스스로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너무 일찍 성장을 포기 하고 늙어버리지 말라’하셨다. 살아보니 ‘인생의 황금기는 60세-75세였으며, 다시 산다 해도 그 중년의 시기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직 그 황금기에 서 있지 않은가.
그 빛나는 시기에 어떤 의식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상황을 넘어 삶의 관점과 질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 그 의식의 꼭대기에 어떤 깃발을 꽂고 살고 있는지 늘 점검하면서 살 일이다. 더불어 적당히 소통의 간을 맞추며, 때로 가벼이 흔들리면서 리듬을 타다 보면 설익은 노년의 길도 한숨 대신 노래가 흘러나오리라. 가파른 내리막길에서도 쉬엄쉬엄 주변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와 동행하면 삶이 더 넓고 깊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