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기행 –3
제목 : 숙제를 끝낼라 카는데…
누군 소천하고
누군 아프고
산에 영 누워있어도 섧지 않을 나이에
아직 숙제가 남았네
코로나와 김여정도 설쳐대는 판이라
망설이다 주저하다 올리나이다
# 7월 5일(일) 2시, 아무개 아들 아무개 서울서 결혼합니다.
형편 되는 사람 서울 구경하러 갑시다.
통상적인 청첩이 우선 쑥스럽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괴질로 혼란스러워 할 시점이라 몇몇 카페에 올린 글이다. 자신와의 싸움이 가장 힘들다고 하니 우선 내 마음을 정리해야 했다. 어떤 여인은 신사임당과 황진이를 같이 품고 산다더라만 내 맘도 늘 둘쯤은 된다.
‘가족들만 모여서 하는 게 맞지 않나.’
‘적이 겁난다고 백기 투항하는 것도 이상하지럴.’
‘몇 푼 축의금이 그리 탐나냐.’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랴.’
무증상 감염자가 많아진다는 뉴스에 더해 권위 있다는 매체들의 정보도 끝이 없다. 비말 감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침방울이 ‘말’만 해도 수만 개가 튀어나와 공기 중에 20분 이상 떠다닌다. 결론은 언제나 어느 공간에나 사람들이 모이거나 모였거나 하는 장소에는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걸 다 믿으면 꼼짝 않고 ‘집콕’이란 걸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세상사 음모론도 있기 마련이다. 그즈음 현 정권이 축소 발표해서 그렇지 서울의 감염자가 엄청난 규모라는 얘기도 떠돌았다. 다중집합의 예식장, 그것도 고위험시설로 분류된 뷔페식당을 운영한다면 한마디로 모골이 송연한 얘기인데,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나무보다 숲을 보기로 했다. 나에겐 ‘확률’이란 냉정하고 확실한 우군이 있으니까. 당시 확진자 수는 매일 서울이 10명, 대구는 1명 정도. 그러니까 서울은 100만분의 1이요 대구는 250만분의 1의 위험성이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방면에서 어느덧 지구촌의 우등생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실력을 믿고 싶은 것이다. 그 수도의 심장부가 뚫리는 날이 쉽게 올 것인가? 내가 ‘망설이다 주저하다’ 글을 올린 전말이기도 하다.
대구 어린이회관의 아침 공기가 유난히 싱그럽게 느껴진다. 확인하지도 못하고 확인할 수도 없는 승객들이 하나둘 모인다. 서울까지 왕복 여덟 시간, 신뢰의 끈이 이처럼 단단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상경 길의 산뜻한 풍경이 낯설게도 새롭게도 다가온다.
정원 28명의 버스 두 대에 나눠 탄 28명. 차내 거리두기에 적당한 숫자인 데다 근래에 드문 ‘많은’ 손님이라며 기사들의 기분이 무척 좋다. 요즘 특히 고단한 직군이 아닌가. 가며오며 남은 음식들은 이날 저녁 회식 자리에서 그네들의 시름을 달래줄 모양이다.
왔다, 강남구의 예식장 더채플앳청담.
출입구는 봉쇄되어 있고 주차장이 자못 삼엄하다. 컴컴한 곳에서 사람 소리 요란한데, 발열체크는 그렇다 치고 처음 보는 QR코드 전자출입명부란 것이 얼떨떨하게 만든다. 카카오 앱을 깔고 어떻고, 전자에 어두운 세대를 당혹스럽게 한다. 혼주고 뭐고 있을 리 없다. 경황이 없는 가운데서도 모종의 안도감을 느껴야 하는 묘한 상황이다.
숙제가 풀려간다. 홀가분하다, 다른 숙제는 없어야 할 텐데….
신부 친구의 축가가 끝났다. 한마디로 프로페셔널 소프라노에 누가 봐도 특급 비주얼이다. 이제 내가 사고를 칠 순간이 왔다, 각본에 없는. 오늘을 위해 몇 년을 기다렸던가. 나이 들며 무사무료(無事無聊)와의 전쟁에 돌입하면서, 이 방면에서 전의를 불태웠다 할까. 각본에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사고를 몇 차례 목격한 마누라에게 비밀을 흘리면 안 되니까.
사회자가 바로 옆이다. 쪽지를 건넬 필요도 없다. 누가 혼주의 명을 거역할 것인가. 퍼포먼스가 좀 걱정은 되지만.
‘여보게 사회자, 내 축가 한 곡 하겠네.’
그러나 어쩌랴, 입가에서 맴돌기만 하니. 슬쩍 마누라 얼굴을 보니 엄숙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그 얼굴 너머로 보이는 또 하나의 얼굴. 불꽃이 이글거린다. 수많은 사람에게 마스크를 씌운 바로 그 동그라미 얼굴이다.
생각이 길어진다. 뒷자리 분위기는 안 돌아봐도 감으로 느낀다. 이미 자리를 뜬 사람도 많다는 것을. 내가 나설 여유가 없는, 말하자면 사고 칠 상황이 아니다. 이 엄혹한 상황에서 나의 전의는 무너지고 만다. 아쉬움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끼면서.
밤 여덟시, 다시 대구 어린이회관. 어둠살이 깔리는 허공에다 대고 나는 절부터 하고본다. 하느님 신령님 나무관세음보살….
이제 7월의 끝자락이다.
나라밖은 계속 난리 통이다. 그러나 서울의 확진자는 내리막이고, 대구는 0의 행진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확률의 영험이 통하는 것인지 하느님이 배달민족을 보우하는지 모를 일이다. 어느덧 2주 잠복기도 훌쩍 지나가버렸고, 나의 숙제와 관련된 수백 명의 안전도 공인된 셈이다. 많은 사람들의 이런저런 총화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겼다는 얘기가 아닌가.
바이러스 감염을 호모 사피엔스의 동물 사육과 자연 파괴 그리고 인구 증가에서 근본 원인을 찾는 전문가의 입장이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지 않는 이상 지난날의 평화는 없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따른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코로나 이후’는 아마도 세기의 분기점이 될 공산이 크다. 기존의 가치와 질서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2020년의 초반전에서 한국식 응전은 괜찮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그동안 부쩍 커버린 몸집에 우리 스스로 놀랄 때도 있었지만.
초여름의 망상을 달리게 해본다. 몽고족 거란족 만주족에 왜적까지도 스케일 크게 놀아본 적이 있는데, 좁아터진 반도강산에서 갇혀 살기 수천 년. 중국과 미국 하면, 우선 그 넓은 땅에 압도 당하던 트라우마. 이제 새로운 경쟁의 시대가 열린다면? 땅만 넓으면 뭘 하나 부질없는 노릇이야! 새로운 힘, 가치, 상상의 질서라면 붙어보자꾸나. 그 신나는 대로에선 안에서의 힘자랑이나 몇몇의 분탕질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야 하리라. 아차, 이러다가 ‘국뽕’이란 소릴 들을라.
하여튼 이제야 나의 서울 여행이 제대로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앞으로의 여행은 더 여유 있고 흥미로울 것이라 기대해 본다.
첫댓글 축하한다.
그 마음 수고... 우째 말로 다 하겠노.
무사히 다 잘 마쳐서 우리 마음이 다 시워어-언 하다.
'코로나 이후'관련 글, 역시 수산이야!
너무 겁내도 곤란하다. 나중에 집콕했단 말밖에 할 말이 없을테니...
확률을 믿고 방역수칙을 잘 지키면 되지 않을까.
사람사는 일을 우야겠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