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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화 맑음
뿌리 깊은 나무는 비바람 폭풍우가 몰아쳐 와도 넘어지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만고풍상 이겨내고 꽃을 피우고 지며 거목이 되여 더운 여름 그늘이 되여 사람을 쉬게 하고 홍수 날 때 뿌리로 대지를 감싸고 지켜주고 가뭄을 막아주는 고마운 나무여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나? 돌이켜보자.
일어나서 하는 일은 똑같으며 오전에는 효순 조모 농협에 오셨다가 나를 보고 가신다고 잠깐 오셨다.
언제 서당골 오시렵니까? 아직 언제 갈지 모르겠습니다.하고 가신후 책을 보다가 아버지와 누웠다.
전화료 4500원 전기세 2500원 예산 용개아재 로타리 친 것 3천원 드리라고 만원을 받아서 동생주고 제수씨 오전에는 하루만 없으면 집이 엉망이란 소리 날 들으라고 하는 소린지 동생은 없는데 그런 소릴 한 후 점심 먹고는 애들이 휠체어를 가만두면 될텐데 온 사방 끌고 다닌다.
갈구체는 데 타도 안 하는 것 가지고 왔다고 장날 그러더니 오늘 또 아버지한테 창고에 갖다 넣으라고 한다.
시목이가 바람 넣는 펌프를 가지고 와서 바람을 넣어 노니 타이어는 탄탄하고 괜찮다.
이발소갈 때 하고 안동이라도 갈 볼일 있으면 차 타는데 까지 라도 타고 가면 업혀가는 것 보다 낫지 않을까 싶어 가지고 오라 했더니 가지고 왔다고 잔소리하는 것 한귀로 듣고 한귀로는 흘리고 내 마음이 오늘은 아무렇지도 않다.
아무소리 하셔도 타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어쩔텐데 동생은 보건소 가서 바둑 두다가 올때 감기약 타다 주었다.
오늘부터 조금 덜한 것 같더니 점심 먹고부터 약을 먹으니 좀 덜한 것 같은데 오후 반야심경을 쓴후 성전을 내어 십불선업과 십악업을 지은 죄보에 대하여 읽고 누웠더니 내일 안동병원에 가서 진단서 끊어와 면사무소 갖다 줘야 한다고 제수씨 그리고 어제 놀러 갔다 오실 때 맥주 1통 콜라한통 호도빵 등을 먹으라고 갖다 주어 잘 먹었다.
금화 내일 대구 간다고 전화왔다 하였다.
저녁먹고 TV보고 동생이 얘기하여 감기약을 내일까지 먹어보고 괜찮으면 모레 보건소만 같다오고 여전히 맹 기침나면 병원들려 사진을 찍어보고 와야 하니 장날이고 복잡하니 13일날 같다오자 버스로 삼촌도 함께 가시니 돈 만오천원 벌자하니 그렇게 하기로 결정이 된 셈이다.
이빨을 10시 넘어 닦고 일지를 쓰고 오후 한전에 농업용수 전주대 언제쯤 가설할는지 문하니 접수하고 한달 정도 시간이 걸려야 되니 이제 곧 될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고 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이 가정에 화목으로 행복을 주옵소서.
그 무슨일이 있어도 내가 참으면 만사형통 할 것이다.
꾹꾹 참을 수 있는 인내를 주옵소서.
4월 12일 수 맑음.
오늘은 7시에 기침을 하고 부 안골 비닐 걷으로 가신후 밖에 나가서 바람을 쏘이고보니 제수씨는 장을 담으신다.
방을 청소 매주 있던 곳 쓸어내고 닦고 TV 밑받침 족보책으로 했다가 벽돌 두장이 있어 주어다가 해놓고 방도 닦고 반야심경도 쓰고 이렇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점은 후 누웠다 일어나서 제수씨께 물을 좀 얹어 달라고 했다.
휠체어 창고에 갔다 꼭꼭 치워 둔 것을 내 힘으로 꺼내서 밖에 가지고 나와서 타고 이발하러 가려 했더니 권부장댁 오늘 노는날 이여서 안하더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내일 그냥 가야하겠구나 휠체어 손보고 있었더니 학생이 오길레 날 이발관까지 데려다 주려나 하니 그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우물우물 얘기하고 있으니 차시간이 되어서 가버리고 마침 신승필(장군)이가 와서 내가 도와 드릴까요 했다.
오냐 네가 좀 도와주려나하고 시장 바람을 좀 쏘이고 오고 싶다.
국제오토바이 집 앞 까지 가서 오늘은 조동환이 맥주 3병을 사서 잘 먹고 세환씨 박양동 어른이 또 맥주 3병을 사서 먹고 주기가 거나한데 날이 어두워 와서 헤어져 왔다.
안주로 오징어 한 마리 내가 사고 장군이가 고마워 천원을 준후 돌아와서 머리를 감고 방에 들어와서 닦은 후 아버지 오셔 석식을 한 후 일기를 쓰고 TV보고 이렇게 하루가 지나가는데 오후 김실이 전화가 왔다.
동생이 받아 다시 받아보라 하여 받으니 대구 가는 것을 포기했다고 했다.
한칸 방인데 오래 있을 수 있나 하여 그만 아니 가기로 했다고 한다.
잘했다 하고 이제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취침을 했다.
감사하옵니다.
4월 13일 목 맑음
기사년 세후 최초로 안동행은 장애자 등록용 진단서를 띠기 위함이였다.
남들은 관광을 돌아다니고 안동행이 내 화장실 드나드는 것 보다 더욱 쉬운데 삼촌과 부친 아우와 이 무슨 연고로 형제 형제 가슴 아프게 이런 볼일로 함께 가야하나?
아우는 심히 못 마땅해 하는 눈치더니 군 보건소에 가면 될 줄 알았더니 모두 안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아버지 부고환이 주먹만 하게 커져서 소견서를 끊어 안동병원으로 가는데 내 몸이 이렇게 말을 안 들어 휠체어 타고 정류장 가는데 삼촌이 끌고 집 앞 경사도에 잘못 옆으로 끌고 내려가시다 옆으로 넘어뜨려 자빠졌으나 다행히 다친데는 없다.
정류소에 가서 또 차에 업고 올라가는데 올라가지도 않고 계단에 내려놔서 국제오토바이 남병동이 끌어올려 좌석에 앉혀주어 고마웠다.
아버지 나 동생이 날 업을 수도 들어 올릴 수도 없으니 오늘은 삼촌과 함께 갈수 있어 갔으나 말을 못하시니 이렇게 서로 어려움이 뒤 따른다.
안동 가서도 업고 내려가서 그대로 땅바닥에 내려 놔버려 뒤로 함께 넘어 질 번 하고 보건소에 들렸다.
안동병원 갈 때 택시 타는데도 아버지 먼저타고 그다음 내가 타는데 삼촌과 두 분이 날 들어 태우는 요령을 몰라서 태우는 분들도 힘들고 나 또한 힘들었다.
그런데 작년 11월 달에 대구 같다 올 때 보다 몸이 휠씬 무겁고 둔해진 느낌이 든다.
안동 병원 가서 접수를 하고 있으니 진고종숙 강승창어른을 뵈올 수 있었다.
이사장을 만나려 오셨다고 했으며 어떻게 왔냐면서 내과과장 만나면 어떻게 말해주시려고 좀 빨리 보고 갈 수 있도록 해주시려 하는 것 같이 왔다 갔다 하시더니 그래 어떻게 볼일보고 차에 함께 다 못타니 택시타고 성소병원으로 가야겠구나 하시고 먼저 나가신 후 아버지 비뇨기과 진료를 하니까 수술 받아야 하는데 약 일주일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하여 그럼 갔다가 뒤우로 다시 날짜를 정하여 온다 하고 나와서 택시를 잡아타고 나오면서 아우 교통비 써가면서 이렇게 힘들게 등록하면 무슨 큰 혜택을 입는다고 하면서 투덜거린다.
성소병원으로 가보면 된다고 했다.
안동병원 수술중이며 기계고장이여서 오늘은 청각 장애 검사는 할 수 없다고 했다.
다행히 성소병원에 오니 담당의사 수술중이여서 오늘은 안 되고 기계는 있다고 했다.
성소병원에도 나와 아우는 정형외과 과장님 이동철 선생님께 소견서를 내서 본 면으로 직접 보내주신다고 했다.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잠깐 쪽지 한 장 쓰면 되는 것을 이렇게 고생시키고 아버지 삼촌은 여기서도 역시 안 된다.
내일쯤이면 안동병원 기계 수리하여 올테니 소견 받은 데로 가보라고 했다.
여기서 또 안 되어 동생은 또 한마디 한다.
그렇다. 무슨 일 한번 걸음으로 착착 되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해 안타까울 뿐.
나는 정부에서 하는 시책 협조를 해야만 복지시책을 계획 추진한다니까 협조할건 하고 내가 요구할건 요구하고 해야 한다는 뜻에서 힘들지만 찾아갔다.
오전까지 병원 볼일은 끝나고 앉아서 다녔다.
차에 오를 때만 부.숙 도움을 받았으며 역앞 부산식당에서 목이 말라 나는 국밥 아버지 국밥 삼촌 동생은 짜장 소주2홉 1병 4500원 아버지 내고 오고 갈 때 차비도 3820원 택시비 3번은 아우가 냈다.
1시40분차로 들어오고 동생은 뒤차로 떡볶기 한말 빼서 왔다.
내릴 때 휠체어 타고 돌아서 왔다.
무사히 와서 막걸리 한병 사와서 먹고 가신후 안호사형이 오셨다 가시고 석식후 일기를 쓰고 신영록 한의사께 상담을 부고환에 대하여 문의하니 육미나 뭐 몸 보호할 것을 잡수고 수술하는 것이 확실히 낫다고 하셨다.
한약은 4,5재 복용해도 확실히 낫는다는 보장이 안 되니 수술하는 것이 빠르다고 하였다. 이렇게 오늘 하루가 지나갔다.
감사합니다. 부처님이시여.
4월 14일 금 차차 흐려져 밤 비 5m
새로이 걸어가는 희미 한길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오늘은 내게 어떠한 일이 있었으며 무슨 일이 있었나? 살펴보기로 하자.
이상한 꿈을 날이 밝아온 후 꿨다.
아침상이 늦게 들어오는데 밥상 받는 기분이 이상야릇하더니 부께서 조반이 끝나고 9시 넘어서 들로 가시고 종형수 장에 오셔 내실에 들어가시며 하시는 말씀 이집 오늘은 장 안보나 하시면서 싸워나 하여 나갔더니 아우와 제수씨 애들 때문에 말다툼한 모양이다.
아무도 오지 않았으며 누웠다 마음이 풀리면 일어났을지 모르지만 용개 아지매 등이 오니 울먹이면서 도너스 문제로 재료든 것 빼면 물었다 하여 트집이 이문이 없다고 동생하고 의견이 충돌된 모양. 동생이 떡뽁기 장사에 대해 알려고 해서 생긴 모양이다.
떡뽁기 떡국은 어제 뽑아다 놓고 동생은 화난다고 전등 박 조각 밟아 버렸으며 제수씨 세수하고 기성이도 씻기고 내보고 나가세요 하여 나는 나왔다.
아마 옷 갈아입고 또 한판이구나 싶어 그냥 나와 집 앞에 있으니 강신일사형이 대순진리회보를 가지고 와서 조리 있는 포교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이치에 밝게 설파하여도 내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미륵불 용화세계 오만년 운이 온다.
1,2년 후 경오 신미 양년에 1만 2천 도인이 나고 중통 상통 하통 도인이 배출 관음 화신이 박한경 도전이시라고 했다.
역사와 타 종교는 배척하면서 유일신 천강신이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에 4백만 도반이 생왕 극락 오만년 운을 죽지 않고 30대 몸으로 영생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죽는데 나만이 영생하려고 어려운 기도 엄격한 규율 나는 행할 수 없으므로 남 죽을 때 차라리 죽는 일을 택하겠다.
정한 수 밤마다 5일마다 특별기도 날마다 정한시간에 기도 영원히 할 수 없다.
몇일하고 끝나는 것도 아니고 도저히 자신이 없다니까 다음에 또 온다면서 갔다.
말을 중단하고 점심 먹고 잤다.
반야심경을 쓰고 밖에 나가 쓰레기 쓸어 담고 저녁 먹고 일기를 쓰면서 TV를 보고 대충 대순진리 회보를 훑어봤다.
관세음보살님이 마음 헤아려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관세음보살.
아우는 온종일 집을 나가서 아침도 다른 곳에서 먹은 모양이다.
한시가 넘었는데도 오는 소리 들리지 않았다.
충북 청주 편지 보낸 것이 주소 잘못으로 다시 돌아왔다.
뜯어보고 주소를 적어 되돌아왔다 해도 또 돌아온 것이다.
인연 없으면 서신교환도 할 수 없다.
낮에는 제비소리가 들려왔다. 보지는 못했지만...
4월 15일 토 흐림 비 10m 정도
기침시간이 좀 늦었다.
조반을 하고 TV 화면을 시청하며 외숙한테서 온 편지를 모아둔 것 읽어봤다.
주식을 한 후 인천 족조님께 안부를 전하려고 펜을 들었으며 정부회장님께도 소식을 전하려고 석식 후 펜을 들었다.
이렇게 오늘은 반야심경을 필기 한후 편지두장 사연을 쓴 후 일지를 기록 후 오늘을 회고 한 결과 기분이 상쾌하지 못하다.
김실이 안부전화가 오후에 왔다.
불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4월 16일 일 비 20m
일어나니 비가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소리가 들린다.
가뭄이 해갈되었으리라.
TV를 보고 반야심경을 오늘도 쓴다.
오후 외숙한테 기숙이 한태 편지를 쓴 후 저녁 먹고도 계속 외숙께 쓰던 편지 석장이나 썼다.
점심때는 제수씨가 팔고 있는 오뎅 오백원어치 선례한테 가지고 오라고 먼저 장날 오백원 먹은 것과 천원을 주어서 가져오라 했다.
실컷 먹고 저녁에는 보리밥을 하여 비빔밥하여 잘 먹었다.
일기를 대강 적고 TV이 화면 잘 안 나와서 일찍 끄고 자정이 되어 취침을 한다.
4월 17일 월 맑음
오늘은 가친께서 숙부님과 청각검사를 하러 아우와 함께 병원을 가셨는데 부고환 낭종을 수술하고 오시려고 입원을 했다.
머리감고 편지는 제수씨가 부치고 우표 10장 사가지고 오셨다.
외숙 인천 족조 근이양증 협회 등 3통이였다.
저녁먹고 내실에서 애들은 잠자고 제수씨 옆집 가시고 11시반 까지 놀다 오셨으며 아우 전화가 왔다.
입원실로 5천원 특수검사 3만원 든다 하여 내일 출근하면 알아보고 하도록 하고 나와서 정사행출 1시 넘어 취침하였다.
4월 18일 화 맑음
기침을 하여 7시가 넘었다.
질녀조카와 제수씨랑 함께 조반을 한 후 안동병원 서무실에 전화를 하여 알아보는데 보호담당 과장님 자세한 설명을 하여 이해가 되었으며 부분마취 척추에 하게 되면 특수검사 없이 되는 모양이다.
내가 안동병원에 근무하는 아는 분이 없지만 얘기하려니까 좀 그렇고 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문의전화가 와서 친척 되는 사람으로 자세히 알아보는 것입니다.
잘 헤아려 처리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누구라고 얘기 밝히지는 않았으며 어제 입원을 했는데 고환 낭종 수술을 해야 하는데 목에도 낭종이 있으므로 특수검사 해야 한다는데 이야기를 했더니 비뇨기과 과장님과 상의했는지 제수씨 11시반차로 갔다오시더니 3만원짜리 특수검사 하지 않고 수술한다고 했다.
점심은 2시경 떠서 먹고 김실이 전화가 왔다.
매부 함께 바꿨으며 오늘은 갈 시간이 없고 내일쯤 들린다고 했다.
과수원 약은 치면 좋긴 하지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 안 치는 사람도 많고 안쳐도 된다고 했다. 아우한테 얘기한다고 했다.
그리고 애들이 시간 마치고 나와서 오락을 하기 시작하여 돈을 바꿔주며 반야심경을 쓰고 5시 반경 기성이가 먼저 쏙 들어온다.
제수씨 등받이 베개 좋은 것 사고 미자 박실이가 사주더라면서 빵 한통을 가지고 오셨는데 맛좋은 떡이 여러 가지 들어 있어 맛있게 먹고 얘기 자세히 듣고 딸기도 먹었다.
햇 딸기여서 맛있게 먹었다.
석식을 하고 TV를 좀 보다 내방에 나와서 일기를 쓰고 TV를 보다 자정이 가까워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이렇게 하루가 간다.
부디 아버지 수술이 잘되어 하루속히 쾌차하여 돌아오셔야만 다음에 또 목 수술을 할텐데 부처님 꼭 살펴 주시옵소서.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4월 19일 수 맑음.
오늘은 장날인데 장날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다.
그래도 밖에 나가니 큰아버지와 친구어른과 장에 오셔 아버지 입원한 얘기를 문의하고 가시고 삼촌도 오셨다 가신후 저녁때는 큰집 형수도 다녀가신 후 오늘 낮에는 보건소 근무하는 직원들이 모두 와서 오락을 하고 놀다 가셨으며 제수씨 오전 집안밖 청소를 해놓고 12시 반차로 선례 유치원 갔다 와서 데리고 기성이도 데리고 병원에 갔다 오셨다.
아버지 오늘 10시 반경 수술실에 들어가셔서 한시간정도 수술 받으시고 나오셨는데 수술은 잘 되었다 하셨다.
매부와 김실이 진아와 함께 왔다갔다고 했다.
마늘이 없다 하여 두접 갖다 주고 하였으며 오락실을 지키고 책을 읽고 반야심경을 쓰고 대구 오건이 한태 아버지 입원했다고 전화해 주고 오늘은 이렇게 하루를 보냈다.
부처님 보살펴 주시며 감사했습니다.
당구장 박영명 설날 도움 준 선물 라면 한박스를 갖다 준다.
4월 20일 목 맑음
오늘은 기온이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운 하루였다.
조반을 한 후 TV를 시청하고 좌하고 있으니 제수씨 편지 한통하고 MBC 방송국 여성시대란 비매품을 갖다 주신다.
반갑게 뜯어 읽어보니까 족조께서 임상실험 단계에 있는 약이 극비밀 약이여서 1년이 경과 되였으나 구입할 수 없어 안타깝다는 사연이였다.
반야심경을 필기 한후 주식을 하고 옆집 서종모 놀러오셨다 가시고 백부께서 안동병원 부친 입원하여 수술 받은데 다녀가시는 길에 들려서 얘기하시고 가셨으며 오후 누워 잤다.
너무 더워 이발이나 하러 갈까 하고 밖에 나갔다.
마침 신장군이 올라와서 휠체어 좀 밀어 줄래 하니 예 하면서 도와주어 이발을 하고는 성심상회 가서 신도회 부회장직을 좀 맡아달라고 상의를 전하니 반대하시지는 않았다.
저녁에 알아서 연락이 되도록 하고 이 태광상회 어른 인사하니 난 누군지 모른다.
당연한 말씀이였다.
영자한자 어른 족질 된다 하고 최병각 반장도 함께 있었다.
면장님이 담배집 앞에 계시므로 인사하니 존대 말을 해주시면서 인사를 잘 받아 주셨다.
새로 부임해 오셨다 해도 찾아뵙고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학교 앞 오락실에 와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는데 휠체어를 세우지 않고 밀고 가무로 성심상회에 찾아가서 전에 인사 있었으며 김점옥 노보살님 자식같이 생각하며 돌봐주신 은혜 잊지 않고 있으며 그때 저를 믿고 가정사를 예기하여 주셔서 잘 알고 있다고 한후 목이 말라 베지밀을 두병 달라하여 장군이와 함께 목을 축이고 올 때 돈을 드리니 안 받으시고 다음부터 돈을 받으시겠다고 했다.
와서 물을 얹어 놓으라고 제수씨께 부탁하고 돈을 바꿔주고 있다.
석식을 하고 정진성모 놀러 잠깐 오셨다 가시고 머리를 감고 해동사 김명환 회장님과 통화하려니 회의중인지 신호가 아니 가서 그냥 TV보며 일기쓰고 설영완 댁에 전화하니 상주가시고 없다하고 내일 오후에는 집에 계실거라고 했다.
자정이 되어 취침을 한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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