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옥
저는 이 시간에 영유아기 부모의 진솔한 심정을 고백하며
장애아동의 영유아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특히 통합보육의 협력적 접근의 효과성을
장애를 가진 제 아들의 사례를 들어 강조하고자합니다.
자폐성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제 아들은 중학교3학년입니다.
장애아동의 영유아기 시절에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을 잘 만난다는 것은
성인이 되었을 때 지난 삶을 억울해하지 않게 해 줄 수 있다고
현재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아들을 통해 미래의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절절히 실감하고 있습니다.
제 아들은 장애통합을 하고 있는 일반 중학교에서 온종일 통합으로 학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 아들의 장애특성이 문자나 숫자에 집착하고 지식이 많은 선생님들이 곧 하늘이라고
신봉하는 기이한 성향의 도움을 받아 수업에 아니, 자신이 무한 신뢰하는
선생님들에게 집중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상태입니다.
선생님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늘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를 전환하는 기쁨으로
충실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장애진단을 받고 장애등록을 하던 40개월 때에는
검사 자체가 불가한 상태였기에 저와의 면담만이 주체가 될 수밖에 없었고
그로인해 잠시의 고민도 없이 장애1급이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재진단(자폐성장애3급)을 받은 지난해까지 그렇게 유지해왔습니다.
당시 아들을 진단했던 모든 전문가들은 현재 제 아들의 상태를
긍정적으로 상상하려하지 않았습니다. 조금의 여지도 없었습니다.
당시의 모습 그대로 신변처리도 계속 못하고, 지 멋대로 날뛰고 괴성을 지르며
주변인들을 괴롭히며 평생을 살게 될 거라고 부정적으로 단언했었답니다.
하지만 현재 제 아들은 모두의 예견에 반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물론 자폐의 깊은 성향(중얼거림, 손가락 장난, 제자리 뺑뺑 돌기, 혀 내밀고 빨기 등)을
제 방에 혼자 있거나 무엇인가에 집중할 때는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그런 행동을 해야 할 때와 장소를 구분할 수 있기에 남들에게 큰 민폐가 되지 않는답니다.
이런 인지의 수준으로 향상될 수 있기까지는
제 가족의 남다른 치료와 교육 방식도 있었지만
매해마다 적기에 우리를 지원해주시고
이끌어 주셨던 많은 선생님들의 수고를 가장 먼저 자랑하게 된답니다.
제 아들이 다름을 확인하기 위해 처음 갔던 어린이집에서
원장님과 담임선생님과 어린이집에 계신 모든 선생님들의 세심한 배려와 협력은
말도 못하고 신변처리도 안 되었던 제 아들을
아주 작지만, 아주 느리지만 매일 변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셨습니다.
제 아들에게서 관찰된 행동들을 저와 선생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오해가 없이
직접 소통하고 의논하고 발전적인 의견을 모으는 자리를 수시로 마련해서
아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서로 숙지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통합을 하는 경우 어느 한 두 교사가 전적으로 통합에 대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기관에 소속된 모든 교사가 협력할 때 통합 보육이 가능해 진다.]는 발표자 김수진 교수님의 기조원고에서 주장된 내용 중 하나와 합치되는 결과라고 지지하는 바입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제 아들의 전문 치료실 선생님의 부탁대로 아이의 일상을 확인할 수 있도록 사소한 것들을 기록해 전달해 주셨고 그것을 참고로 치료전문가는 저와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특별히 해야 할 일들을 당부해 주셨고, 그것들을 잘 수행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들을 보태었기에 당시 모두의 목표인 통합학교에의 순조롭게 입학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서로를 신뢰하고 의심 없는 솔직한 소통으로 제 아들에게 속도를 맞출 수 있었고
서로 다른 시각에서 모아지는 제 아들의 다양한 특이한 행동을 오히려
제 아들의 강점으로 끌어내어 현재의 상태로 승화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영유아기에 자녀의 특이상황을 눈치 채고 이런저런 병원들을 눈물뿌리며 가슴 치며
전전하는 부모님들은 세상 그 누구보다 큰 어려움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 그 과정을 겪은 사람이기에 그 고통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가정을 이루고 10달 동안 소중하게 간직했던 내 분신을 세상에 꺼내 놓고
젖 물리고 이유식 끝내고. 한껏 부푼 꿈을 그리며 이제 막 `엄마‘`아빠’로써의 걸음마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당신의 아이가 이상합니다.“ 라는 상대의 아무렇지도 않은 멘트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땅이 꺼지는, 숨통을 조이는, 아니 어처구니없는
그 어느 표현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공포가 됩니다.
위로 받을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곳들에 대해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와 경험이 없는 각박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사지로
몰고 가는 상황까지 연출하게 되는 가장 예민한 시기가 바로 그 때라고 생각됩니다.
죽을 것 같은 절박한 마음으로 검증되지 않은 식이요법이나 약물치료,
비상식적인 도구나 설비를 이용하는 이런저런 사설치료들을 찾아 돌아다니며
시간적, 경제적 손실로 가장 크게 상처를 받게 되는 시기도 바로 이 때입니다.
이 때 바른 정보, 착한 정보를 만들어 주는 유일한 통로가 영유아기 교사들과 전문치료사분들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선의적인 의도로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선생님들의 조심스런 조언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반감을 표현하는 부모님들이 간혹 있습니다.
아이들의 성향이 각양각색이듯이 부모의 성품 또한 마찬가지임을 충분히 이해해 주시고 따뜻하게 안타깝게 맞이해 주셔야 함과 혹시라도 섭섭함으로 아이에 대한 마음까지 닫아버리는 일이 없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 아들이 보냈던 10여 년 전의 영유아기 시절은 특수교육에 대해 상식이 많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과 선생님들이 좌충우돌하며 치료와 교육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특수교육지원을 법적으로 강화하였고
그 중 하나로 개별화 교육위원회를 철저히 진행하고 개별화 교육 프로그램을 바르게 수행하도록 관리하는
제도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고, 치료나 교육바우처 제도 등을 통해 경제적으로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영유아기에 대한 치료와 교육에 대한 전문가들도 다양하게 세분화되어 배출되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인식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체계화된 이런 노력들이 지속되고 있기에 10년 전보다 훨씬 더 세련된 삼박자(교사, 부모, 치료사)의 활동이 가능하리라 확신합니다.
우리 아이들 모두는 다르며 우리 아이들은 모두 소중합니다.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매일 매일의 변화에 대해 모두가 기뻐할 수 있기를 늘 소망합니다.
끝으로
우리아이들의 특성을 우리아이들의 마음으로 하나하나 세심하게 표현해 준 책 한권이 있어 그 내용을 옮기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합니다.
자폐 어린이가 알려주는 열 가지 이야기 엘런 노트봄
하나, 나는 무엇보다 먼저 어린이에요.
둘, 난 감각인지에 장애가 있어요.
매일 벌어지는 평범한 광경, 소리, 냄새, 맛, 감촉 등에 여러분은 별다른 느낌이 없을지 몰라요. 그런데 이런 것들이 나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줄 수 있어요. 내가 살면서 접할 수밖에 없는 주위환경이 나에게 큰 부담이 되거나 내 특성과 맞지 않아 부딪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셋,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꼭 구별하세요.
어른들 말을 일부러 듣지 않으려는 게 아니에요. 난 단지 말을 이해하지 못할 뿐이에요.
“빌리, 이제는 책을 네 책상에 올려놔. 점심 먹을 시간이야.” 이렇게 말해주면, 여러분이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음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그러면 훨씬 더 쉽게 어른들의 지시에 따를 수가 있게 되지요.
넷, 난 구체적으로 생각해요.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는 뜻이지요.
“눈 좀 붙여!” 이렇게 말하지 마세요. 잠을 자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겠지만, 난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할 거예요.
다섯, 나는 어휘력이 부족해요. 그러니 인내심을 가져주세요.
나한테 지금 필요한 게 뭔지 말하는 게 쉽지 않아요. 나는 내 감정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는 때가 많거든요.
여섯, 내겐 말이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난 시각에 의존해요.
어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냥 말로 시키기보다는 하는 방법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좋아요. 여러 번 반복해서 보여주면 더욱 좋지요. 반복해서 보면 내가 배우기가 훨씬 쉽거든요.
일곱, 내가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세요.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아이구나’ 또는 ‘고쳐야 할 점이 많은 아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어요. 이럴 때 난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어요.
나에게서 장점을 찾으려고 노력해보세요. 그러면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어떤 일을 하는 데, 오로지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이 그렇지 않나요?
여덟, 다른 사람들과 사귈 수 있게 도와주세요.
어른들의 눈에는 내가 다른 아이들과 놀고 싶지 않아 운동장에서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요. 아니에요. 그건 내가 말을 걸거나 놀이에 끼어드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나는 얼굴표정이나 신체언어, 또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 법을 몰라요.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적절하게 행동하는 방법을 필요할 때마다 가르쳐주는 사람에게 나는 고마움을 느껴요.
아홉, 내가 자제력을 잃는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하세요.
열, 나를 무조건 사랑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