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짝이 밤고구마, 오른짝이 물고구마인데
삼천만의 국민간식 중 어느쪽이 더 땡기시는지..
어릴때 울어무이 개념으로는 볼거읍씨 왼짝이다.
밤고구마는 아들같은 존재이므로 아들꺼,
물고구마는 옜따, 느이덜 먹어치라며 누이들 차지였다.
허나, 그것은 아들딸의 편견만큼이나 잘못된 선택이었다.
밤맛이 난다는 밤고구마는 당도도 떨어질뿐 아니라
목이 뻑뻑해지기 일쑤라 난 영 아닌걸루 친다..
먹을게 귀하던 시절, 끼니 대용에는 적합했을지 몰라도
물고구마야말로 질척이는 느낌에 당도도 높다.
요즘은 호박과 교접시킨 호박고구마도 있던데
우측 고구마의 디테일한 이름이, 해남산 호박물고구마 되시겠다.. ^^
고구마에 대한 유년시절의 단상이 있다.
내 코흘리게 시절은 제기동 골목이었다.
그 골목에 언제부턴지 달고나 할배가 자리를 잡았다.
사과궤짝을 뉘인 좌판에 연탄 한장이 밑천의 전부인 이 할배는
지금 생각에, 계급장만 떼버린 완벽한 중공군 밀리터리 룩이었다.
중공군 모자를 귀밑까지 덮고서도 할배는 늘 콧물을 훌쩍였다.
추위에 피부가 갈라져 피가 더러 보이기도 하는 손등이었지만
그 손으로 달고나를 참 잘도 휘휘져서 엎어대고 찍어댔다.
울집 앞에서 오전에 영업 개시하여 해질 때쯤 퇴근했는데
점심 무렵엔 다 찌그러진 양은 벤또에서 고구마 2개를 꺼내 구었다.
달고나 전용 에너지인 연탄불은 고구마 굽는데도 요긴하게 쓰였다.
이 할배가 다 구운 고구마를 어찌나 알뜰하게 드시는지
껍질채 통채루 먹는게 나을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들은 하도 맛있게 드시는 할배를 보며, 군침을 삼켰다.
그러자 옹기종기 모여 쳐다보는 우리에게 할배가 말했다.
- 느이덜은 집에 가서 밥 먹거라, 난 이게 점심이란다.
할배는 언제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점심을 드셨다.
그날 저녁 밥상에서 엄니한테 할배의 점심 얘기를 했더니
- 그 영감 오구나서 애들 떠드는 소리에 시끄러 죽겠구먼.
매몰찬 서북아지매는 할배 쫒아낼 궁리만 했다..
나는 그 아지매가 울엄니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싫었다.
설빔 주머니에 세배 돈이 가득한 날, 할배는 대목이었다.
한참을 뛰노는데, 날 찾는 엄니의 목소리.
- 그 할아부지한테 가서 그래.
집에 들어와서 점심 드시라구, 너두 같이 먹거라..
얘기를 전해 들은 할배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물끄러미 나를 보며 항시 흐르는 콧물을 훌쩍이기만 했다.
우리는 마주 선채 차례를 바꿔가며 교대로 콧물을 훌쩍였다.
한참을 그렇게 훌쩍이던 할배가 더듬더듬 내게 말했다.
집 앞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구,
봄되면 안 올꺼라고 엄니한테 전해 달라고 했다.
그 설날 점심에도 할배는 벤또에서 고구마 2개를 꺼냈다.
유치원 입학한다고 엄니 손을 잡고 나선 그 해 봄날.
할배 앉아있던 자리로 휑하니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첫댓글 올 설연휴는 주말이 낀,
봉급쟁이에겐 암 영양가 없는 알토란 3일 되심.. ^^
몰러난 어릴 적부텀 물고구미가 더 였어.
고나가 언제 생긴 이름인지 굳힌 거이 고나고..거기에 소다 살짝 풀면 색도 뿌얘지면서 뽑기
일조차..반납하심..여느 주말이나 똑 같심..으음
그
난 그게 궁금햐..
그 설탕 녹인 거
모양 찍어주신대로 흉 없이 가져가면 다시 하나 더 줬는데..
어찌 바늘에 침발라가며 조심 또 조심해도 모가지가 댕강 부러지는 지..
우린 그렇게 서로 침 발라가며 하루에 한번 손발 닦고..그 디러운 손꾸락 빨고 살았어도 탈 한번 안 났당게..
난 알토란
본좌의 기억으로 할배의 비지니스 명은 '또뽑기'가 맞고, 할배의 공식 직함두 '뽑기할배'였심.
근래 보니께 매스컴에서 '달고나'라 하길래 내키지않는 표기는 했지만 미심쩍은 마음이 강함.
나가 아는 달고나는 새끼 인절미를 꼬치로 엮어 개당 1원에 팔던건디 말이지.. 으음
년초부터를 괴롭힌 우라질 사건은 비교적 잘 해결됐심.. ^^
맑고
아름답고
순수한 것은
동심의
경험과 기억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시절의 기억이 많이 남아 있는게 좋은건지 불편한건지..
제 경우, 어무이나 누이들한테 그런 얘기들을 하면 만날 구박만 받아유
→ 잰 씰데읍는 건 무지 잘 기억한담서.. ^^ 오련만 이시지요
아즈녁이 옛날을 생각나게 하는 글입니다.
가슴속 깊이 그 할베의 삶이 와 닿는듯합니다.
가족은 있었는지......
저도 가끔 그 회상을 해봅니다만간 , ^^
그때 인근에 홍릉산이라구 야산에 무허가 판자집들이 많았는데
아마, 그 동네에서 혼자 지내시는 분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더군요..
선희님은 제가 첨 뵙는군요..
앗! 고수님이...
새해 복 많이 받으슈~~~~
설날 새해 복많이 받을께유,
주사랑님과 같이 복받으세유.. ^^
누군가와 같은시절의 추억을 함께 한다는건 참...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입니다....*^^*
누군가 지난 시절을 얘기할때 ^^
그 장면이 떠오르는 기억이 살아있다면 같이 공감이 되겠지요
다지님께서도 제가 첨 뵙는듯.. 자주 뵙으면 합니다.
눈물, 콧물, 훌쩍~~~~~~~
그리고, 감동.
오호 감동을..어쩜좋아 ^^.....
초딩땐 전 고구마 하면 머리만한것인지 알았었죠 .소똥을 함껏 머금고있는 그밭엔 어떤 고구마를 심어도 큰 물고구마가 될수 밖에 없는것을 그때 부보님이 모르실리 없으실텐데...그후로 고등때부터 작은고구마가 나오기 시작하고 손주가 생기면서 밤고구마 호박고구마 나눠지고 이고랑은 밤고구마 이고랑은 호박고구마 요고랑은 머리만한 고구마....
임상님 부모님께서는 시방도 밭농사를 짓고 계신가요
그렇담 차말로 부럽다는.. 나두 어디 농사지을 땅만 있다면 당장 가고픈 1인.. ^^
전 밤고구마요. 물고구마는 어릴때 워낙 많이 먹어서 질렸어요. 해남출신이라.... 이런걸 하셔도 될만큼
그래도 구워먹는건 물고구마
아래글은 자유기고가
그리고 그 시절에 유치원이면 있는집 자식인거 티나요.
아님 서울 사람들은 다 다녔나
세대차이가 엄청 나는데도 전 촌에서 그런거 구경도 못해봤어요.
고수님은 서울에서 나고 자라셨나봐요.
단비님 해남 출신이란건 익히.. ^^
유치원 댕긴다구 있는 집이랄수는 없구, 울집은 간신히 면피하는 정도였심 → 아들이란 이유.
실은 유치원을 언급한 이유도 할래한게 아니라.. 그 꼬마의 연령대를, 보는 이가 바로 알게되므로..
네, 저는 서울서 나구 자랐어요..
'고나'라는 말은 서울 올라와서 첨 듣는 말이고..제 어릴적에는 '오리떼기'라고들 했었는데류불문하고 마이 무웃심미다만 맛이야 물고구마가
즉 오려서 떼어낸다는 말이었던 거 같네요..
고구마는 겨울철 양식이라
근데 혹 빼때기를 아시는지요
'달고나'가 아니라 '또뽑기'라니께.. 오리떼기란 말은 금시초문..
매스컴에서 지랄덜 해싸킬래 당최 안내키는 표기를.
빼때기는 또 무얼꼬.. 영남 사투리, 그것두 코골사투리는 더 헷갈리.. ^^
고구마도 오래 보관하기 쉽지않은 관계로 일명 밤고구마는 날것을 얇게 썰어서 빠싹 말렸다가 솥에 넣고 물 붓고 끓여서 먹어요..
맛은 꿀맛이지요..이걸 빼때기라 하고..또 물고구마는 삶아서 약간 도톰하게 썰어 말립니다..꼬들꼬들 해지면 먹습니다..맛은 곶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쫄깃쫄깃 지기삐립니다..이건 쫄때기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