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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갈 곳을 잃어 - 최백호(1977) 작사 최백호, 작곡 최종혁, 노래 최백호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 최백호는 1950년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4월생이니 6.25 전쟁이 발생하기 약 두 달 전입니다. 최백호의 부친은 28세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최원봉입니다. 그런데 6.25 발발후 얼마되지 않아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됩니다. 최원봉의원이 타고 있던 짚차와 터키군의 트럭이 충돌하여 현장에서 즉사합니다. 최백호가 태어난 지 5개월만에 발생한 일입니다. 최원봉의원이 이승만대통령이 아닌 김구선생님 편에서 활동했기에 교통사고가 고의적인 행동이 아니냐는 말이 많았다고 합니다. 홀로 되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두 딸과 아들 하나를 키우셨습니다. 당시 할아버지는 엄청난 토지를 가진 부농(富農)이었는데, 최백호를 '아비를 잡아먹은 자식'이라며, 경제적인 도움을 전혀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가난으로 매우 어렵게 보냈다고 합니다. 스무살 되던 해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최백호는 고교시절 하도 공부를 안해 예비고사를 중도에 포기하고 나왔답니다. 그래도 모 대학 연극영화과에 합격 했으나, 모친의 박봉(薄俸)으로 세 명을 대학에 보낼 수 없어 재수(再修)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 가족을 지탱하던 어머니께서 췌장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어머니를 여읜 슬픔에 적어둔 글이 훗날 그를 알리게 하는 노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의 가사가 됩니다. 그에게 "가을에 떠나지 말아요~"의 대상은 연인이 아니라 어머니인 것입니다. 학업과 직장으로 두 누나도 뿔뿔히 흩어져 살고 있었기에 의지할 곳 없던 최백호는 군에 입대합니다. 입대 후 6개월만에 결핵에 걸려 의가사 전역을 하게 됩니다. 제대 당시 치료비로 받았던 돈이 떨어지자 그는 중고기타 하나를 사들고 산에 들어가 움막을 짓고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이 시절은 그에게 수많은 습작들을 만드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고,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그의 삶에 많은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후, 친구의 매형이 부산 서면에 음악살롱을 만들자 그곳에서 노래를 하게 됩니다. 이름이 어느정도 알려지자 '가수 하수영'의 도움을 받아 서울로 진출합니다. 그는 훗 날 '하수영'에게서 악보 보는 법 등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최백호의 가수로서의 삶은 노래가 좋아서 가수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먹고 할 돈을 마련하는 수단으로 출발하였기에 스스로 천직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980년 그는 '배우 김자옥'과 떠들썩한 결혼을 합니다. 그렇지만 결혼후 얼마 되지 않아 잘못된 결혼이라 판단되었다고 합니다. 둘은 성격차로 1983년 이혼하고, 공교롭게도 1년 후 재혼하여 평생의 반려를 만났습니다. 이혼 후 그는 독신(獨身)을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우연히 10살 연하의 친구 부인의 친구인 현재의 아내를 만난 후 마음을 빼앗겨, 그 만의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대시하였습니다. 그러나, 변변한 수입도 없는 10살 연상의 이혼남 과의 결혼을 처가에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격렬한 반대에도 부인이 적극적으르 나서 장인어른이 안계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후에 딸이 태어나자 "술 담아 놓았으니 딸 데리고 한번 오게"라는 말로 모든걸 훌훌 털었고, 어려울 때마다 처가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며, 처가와도 아주 사이 좋게 지냈답니다. 결혼 후에도 일이 잘 안풀리자 지인이 미국 LA에 라디오방송국을 만들어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 시절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했더니 너무나 행복했고, 처음으로 노래는 천직이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합니다. 결국 2년만에 귀국을 하였고, 그의 인생을 바꾼 노래 "낭만에 대하여"를 발표합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은 부인의 반응은 "아직 첫 사랑을 못잊어 이제는 노래까지 하는구나."였다는데, 부인의 반응도 참으로 독특하게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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