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25]가장 듣기 좋은 호칭 “선배”
언젠가 글로 쓴 적도 있지만, 후배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 중에 “최선배”를 가장 좋아한다. 나이나 성별도 아무 상관이 없다. 절대로 “선배님”이 아니다. ‘님’자를 붙이면 어쩐지 낯 간지럽고, 서로간에 간격이 느껴져 민감할 정도로 싫어한다. 조심스러워하는 후배들에겐 “나와 친해지기 싫으면 ‘님’자를 붙이든가”라며 제법 위압적으로 말하곤 한다. 몇 년만에 전전전 직장의 14살 아래의 여자후배(제주도 비바리)가 전화했는데, 대뜸 “최선배, 잘 계시죠?” 하는데, 무엇보다 선배라는 호칭이 너무 반가웠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나보다 14살이나 많은 선배(1943년생)에게 한번도 ‘선배님’이라고 ‘님’자를 붙인 적이 없다. 불경스럽게 보일지 모르나, 우리는 그게 아주 편하다. 술잔도 한 손으로 따른다. 어떤 친구는 술을 마시며 고개를 돌리는데 질색이다. 맞담배도 암시랑토 않다. 세대 차이는 개에게나 주라는 듯, 격의없이 어울리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닐 것이나, 워낙 긴 세월 습관이기에 자연스럽다. 또한 처음 만난 후배에게는 친해지기 전까지는 성씨에 ‘형’을 붙인다. 김형, 박형이라고 부르면 그들은 몸둘 바를 몰라하지만, 그들을 최대한 존중해주는 ‘나만의 방식’이다. 물론 여러 번 만나면 자연스레 이름도 부르지만, 처음 몇 번은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잉크밥생활(신문사 기자 역임)’의 아주 좋은 '유산'이다. 82년 입사했는데, 소속부장이 1930년생으로 아버지뻘인데, 나를 부를 때 꼭 ‘최형’이라고 해 민망했다. 아무리 그러지 말라해도 소용없었는데, 자기를 ‘이부장님’이라 하지 말고 ‘이부장’이라 하라하고, 사석에서는 ‘선배’라고 하라고 ‘강요’까지 했다. 그때 그 시절 배운 ‘미덕美德’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호칭을 비롯하여 직장문화가 다르기는 하겠지만, 나는 선후배를 돈독하게 만드는 ‘인간적인 호칭’이 바로 ‘선배’라고 생각한다. 학교나 직장선배만선배인가? 인생의 선배라 선배先輩라 부르거늘, 이상한 호칭이 아니다.
아무튼, 어제 몇 년만에 전전전 직장 8년 선배를 만나 흔쾌한 술자리를 가졌다. 굳이 '전 집'을 찾아 부추전(솔전)에 막걸리를 한 잔 나눴다. 그 선배하고는 언제 어디서든 만나도 격의가 없다. 그렇게 후배들을 잘 대해주는, 아주 좋은 선배는 나의 장형과 갑이다. 어려울 만도 한데, 농담도 잘 맞아주는 지혜를 갖고 있기에, 그 양반을 싫어하는 후배들은 거의 없었다. 어쩌면 친구같을 때도 있다. 그동안 밀린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예전 ‘꼴불견’ 직장동료들을 돌아가며 ‘씹는’ 맛이라니?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똑같고, 같이 겪었던 컨텐츠가 동일하니 말에 재미가 나고 속도가 붙었다.
이제 70년대 후반에 접어들었는데, 말투까지도 구수하다. 한 잔 마실 때마다 “인생 뭐 있나?”를 선창하면, 우리는 “알코올이지”라고 합창한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순국한 김천일 장군이 ‘언양 김씨’라는데,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때 의병으로 싸우다 엄청 죽어 ‘언김’들이 별로 없다는 말을 10번만 더 들으면 100번이 될 것이다. 게다가 양정고 50회의 애교심은 거룩한 종교보다도 더 강한 듯. 출신 고등학교에 대한 사랑은 중동고와 전라고 사람들보다 더할 것같다. 동기동창 한 분이 을지로입구 근처에 사무실 하나를 기원으로 만들어줘 바둑을 즐기는 동기들이 매주 화, 목요일 대회도 하며 나이가 익어가고 있다고 자랑이다. 정말 좋은 일이다. 코로나 시절, 그 사무실이 있어 무료함을 달랬다고 한다.
그 사무실로 찾아가 인터넷바둑 7단으로 사범역할을 하는 선배의 동기 형님과 수담을 나눴다. 둘 다 속기로 순식간에 네 판을 두고 승패가 가려지니 모두 놀라 재밌었다. 선배는 파주 운정, 나는 용인 고기리이니 서운하지만 일찍 파했다. 아침에 문자가 왔다. “나중에 흩어진 총생들 소집해 한잔하세. 이 더위 지나면 한번 조직해 보시게” 역쉬 한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다. 곧바로 “하하. 좋습니다. '흩어진 총생'들보다 '잊혀져가는 중생'들이 더 맞는 표현이겠지요. 선배, 건승하세요”라고 댓글을 보내니 “oㅋo" 세련된 답신이다. 부추전에 막걸리. 비 오는 날, 선배와 운치 있는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