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4일(수)
* 시작 기도
주님...
주께서는 이스라엘에 재앙을 내려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셨습니다(겔 7장).
그 재앙이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재앙으로 그쳤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회복의 기회가 되어 복의 통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내리신 재앙의 날에는 금과 은이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오직 죄악의 걸림돌이 될 것임을 천명하셨습니다.
이 종 역시 이 말씀 앞에서 두렵고 떨리오니 주님이 휘두르시는 진노의 칼 앞에서 나를 더 잘 살피며 돌아보게 하옵소서.
나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께서 회개케 하시는 은혜를 온전히 덧입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하여 주님의 은혜만 먹고 사는 자 되게 하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이 하루도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기 원하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푸소서.
나의 칼이나 나의 힘으로 땅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주의 오른손과 주의 얼굴빛으로 하심은 그 안에 주의 기뻐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는 나의 왕이시요 모든 것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느 3:1-14
제목 :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양문(羊門)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1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2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3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4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중수하였고
5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6 옛 문은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드야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7 그 다음은 기브온 사람 믈라댜와 메로놋 사람 야돈이 강 서쪽 총독의 관할에 속한 기브온 사람들 및 미스바 사람들과 더불어 중수하였고
8 그 다음은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 등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향품 장사 하나냐 등이 중수하되 그들이 예루살렘의 넓은 성벽까지 하였고
9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의 절반을 다스리는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중수하였고
10 그 다음은 하루맙의 아들 여다야가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하삽느야의 아들 핫두스가 중수하였고
11 하림의 아들 말기야와 바핫모압의 아들 핫숩이 한 부분과 화덕 망대를 중수하였고
12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의 딸들이 중수하였고
13 골짜기 문은 하눈과 사노아 주민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분문까지 성벽 1,000규빗을 중수하였고
14 분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 나의 묵상
느헤미야와 몇몇 사람이 한 밤에 아무도 모르게 예루살렘 성을 시찰하고 와서 어느 날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하였다.
페르시아에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신 일과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에게 했던 말을 전하면서 예루살렘 성벽을 세우자고 하니까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힘을 내어 성벽을 세우는 선한 일을 하자고 하였다.
이 성벽은 예루살렘 북쪽 성벽부터 시작하여 서쪽으로 세워나갔다.
그 일에 제일 먼저 앞장 선 사람은 다름 아니라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그의 형제 제사장들이었다.
그들이 건축한 부분은 양문(羊門)이었다.
엘리아십은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하여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대제사장 예수아의 손자이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회복하심’인데 이는 아마도 황폐한 예루살렘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그의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서 이렇게 지은 것 같다.
무엇보다 결코 쉽지 않은 성벽 재건공사에 앞장서서 솔선수범한 사람이 대제사장이었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최고의 영적 지도자로써 존경받는 사람이요 또한 섬김을 받는 사람이다.
사실 그는, 몸으로 하는 이런 궂은일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격려만 해도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 듣지 않고 얼마든지 존경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직접 그 아래 있는 제사장들과 함께 공사 현장에 나와서 일을 하였고 그것도 제일 먼저 공사를 시작하였다는 것은 그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게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로써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이는 이 땅에서 무슨 영화를 누리기 위함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아담의 범죄 이후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셨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적 행위로써의 복음을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짊어지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또한 엘리아십이 건축한 성문이 다름 아닌 양문(羊門)이었다.
이 성문을 양문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이 문을 통해서 하나님께 바칠 양들을 성안으로 들여왔기 때문이다.
이 양문은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베데스다 연못 가까이에 있는 성문이기도 한데 이는 양의 문으로써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나는 양의 문’이라고 선포하셨다.
(요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예수님께서는 자기 사람들을 양으로, 자신을 목자 또는 양의 문으로 말씀하시면서 당신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라고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만 양의 문이기에 누구든지 그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구원을 받고 꼴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요 10:8-9)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자칭 예수라고 하는 자들이 예수님보다 먼저 와서 하는 일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고 빼앗아 결국 그들을 지옥 자식 만들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것은 양인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다.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영생을 위한 유일한 문이요 통로이다.
그래서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요 선지자요 그리고 왕으로써 기름부음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런 분, 즉 하나님이 낮고 천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오신 것은, 내가 땅에 기어다니는 벌레가 되는 것보다 더 낮아지신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오신 것은 양의 문 되신 당신이 아니고서는 어느 구두도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면서 제일 먼저 건축된 양문은 제물된 양을 가지고 드나드는 문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양의 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정결해진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온전한 산 제물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무슨 일에나 솔선수범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예수님의 마음이 아닌 다른 마음이 숨겨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을 받으려는 마음이다.
화명중앙교회 부목사로 있을 때의 일이다.
교회가 한창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었다.
어느 토요일 성도들이 함께 나와서 1층에 있는 흙을 3층 옥상으로 지어 나르는 일을 하였다.
성도들이 토요일날 자기들의 시간을 포기하고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는 것이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함께 날랐다.
그런데 다른 교역자들은 아무도 그 일에 함께하지 않았다.
당연히 성도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다른 부교역자들은 아무도 일을 안 하는데 김종수목사만 나와서 일을 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겉으로 아니라고 하면서도 내심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의를 드러내는 자기주장의지로 행한 것임을 나는 나중에, 아주 나중에 복음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 것이 죄, 그것도 아주 큰 죄라는 사실은 까마득히 모른 채 그동안 얼마나 그것을 즐겼는지 모른다.
그것이야 말로 내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따먹은 제2의 아담이었음을 알고 나서 나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였다.
나를 주장하여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던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였다.
예수님처럼 살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모습은 정말 좋지만 그 속에 탐심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안 될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죄인 줄도 모르고 행했으니 이 얼마나 무식하고 답답한 자였는지.....
담임목사가 되고 성도들 앞에서 과연 나는 지금도 솔선수범을 하고 있는가?
나는 성도들과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인가?
이를 떠나서 지금 베트남에 와서도 과연 양의 문이신 예수님을 따라 진짜 솔선수범을 하고 있는지 내 자신에게 질문해 본다.
설교단에서 설교는 번지르르하게 하면서 과연 나의 삶속에서 예수의 향기를 나타내고 있는가?
그 답은 ‘아니올씨다’이다.
지금도 여전히 나를 주장하는 마음이 많다.
사람들에게 듣는 칭찬의 한 마디가 나를 춤추게 하는 것 같지만, 결국 그것은 내 마음에 환난과 곤고를 가져오는 사망의 증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알고 복음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중이다.
복음이 아니었던들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
지금 나의 육신, 즉 선한 일을 하여 나를 주장하려는 의지는 매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다.
그리고 나를 통하여 일하시는 주님을 찬양할 뿐이다.
내가 이 복음을 몰랐다고 하면 지금 나는 어찌됐을까를 생각하면 끔찍하다.
나에게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역사하신 성령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복음 그 자체가 되셔서 나를 찾아오신 주님께 모든 영광을 드린다.
나는 연약하지만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은 강하시다.
그렇기에 오늘도 파레시아로 주님의 보혈 의지해서 담대하게 나아간다.
주의 은혜가 나를 살리셨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의 은혜는 무궁하십니다.
그 크신 은혜로 나를 살리셨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내 영혼이 주의 은총을 입어 중한 죄짐을 벗고 보니 비록 슬픔과 환난이 많은 이 세상일지라도 그곳이 바로 천국이요 하나님 나라이며 영생의 자리임을 고백합니다.
솔선수범하면서도 주의 영광을 가로챘던 이 종을 불쌍히 여기시고 오직 주의 이름만 나타나게 하소서.
이 종이 주의 말씀 앞에서 주님과 교제하는 이 시간, 나는 없어지고 오직 주님만 드러나기 원하오니 이 종을 긍휼히 여기사 하늘의 기쁨으로 가득한 영생의 자리가 되게 하소서.
주님을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나아가오니 오늘도 아버지 집, 아버지 품에 안겨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