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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육의 『그림, 불교에 빠지다』10. 정선, <파교설후>/ 조희룡, <홍백매8곡병>
“한겨울 매화꽃 찾아 나선 선비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앙코르와트에 갔을 때였다. 해외여행은 항상 단체로 가는 답사팀에 합류해서 다니다 혼자 나간 것은 처음이었다.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겁 많은 사람이 홀로 해외여행을 감행한 것은 그만큼 앙코르와트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글거리는 열대우림의 돌 속에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종교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소문이 이명처럼 머릿속에서 윙윙거렸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여행사에 전화해서 단체관광으로 가자니 강제 쇼핑에 끌려 다닐 일이 끔찍했다. 한 장소에 눌러앉아 진득하게 감상할 수 없는 것도 선뜻 따라나서지 못한 이유였다.
그러던 참에 남편이 업무 때문에 앙코르와트에 가게 되었다. 휴가를 내면 업무가 끝난 후 며칠 눌러 앉아 구경할 수도 있는 일정이었다. 문제는 남편이 회사일행과 함께 떠나기 때문에 나와 함께 출국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영어회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혼자 해외여행을 갈 수 없는 이유다.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국제미아가 되면 어쩌나 겁이 났다. 한 가지 믿는 구석이 있다면, 비행기에서 내리기만 하면 남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별 거 아니라고,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남편은 거듭거듭 나를 안심시켰다. 이전에도 몇 차례 앙코르와트를 다녀온 적이 있었던 남편은 씨엠립공항 구조까지 그려가며 내리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줬다. 결국 나는 혼자 뒤따라가기로 결정했다. 도착하고 보니 정말 별 것 아니었다. 그냥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 하니 남편이 입구에 서 있었다.
마흔 하고도 여덟 해나 살고 난 사람의 고민으로는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한심하지만 웃을 일이 아니다. 새로운 시도를 감행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렵다. 어린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마찬가지 감정일 것이다. 비록 두려움의 두께에 차이는 있겠지만 겁나기는 마찬가지다. 대범하고 국제 감각이 발달된 그런 사람들 말고 나같이 소심하고 겁 많은 보통 사람들이 그렇다는 얘기다.
정선, <파교설후>, 종이에 먹, 52.2×35.9cm, 국립중앙박물관
한겨울에 매화꽃을 찾아 길을 나선 선비
삼라만상이 눈에 푹 절었다. 쌓인 눈 위로 또 눈이 쌓이니 흰 눈은 켜를 이루며 굳어진다. 아무래도 겨울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눈이 쌓였다 하여 꽃이 피지 않으면 설중매가 아니다. 동지섣달 엄동설한이라지만 겨울의 끝자락이 아닌가. 분명히 찬란한 개화를 시작했을 것이다. 가봐야겠다.
방안을 나서자 찬 기운이 훅 끼쳐온다. 생각보다 추위가 매섭다. 다시 들어갈까. 괜히 헛수고만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이런 추위에 매화는 무슨. 관둘까 보다. 투레질을 하는 나귀를 타고 파교를 건널 때까지 망설임은 계속된다. 아니다. 분명히 피었을 것이다. 설중매가 피는 것은 겨울 뒤에 봄이 오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자연의 순리가 아닌가. 선비는 주저하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간다. 설령 꽃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가봐야 한다. 시작이 없으면 결론도 없다. 피었건 안피었건 직접 확인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진리는 추측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계절을 배우지 않는 자는 자연의 순환을 말할 자격이 없다. 설령 날강목치더라도 행동에 옮겨야 한다. 이제 편안한 일상과 결별이다.
나중에야 알았다. 남편이 나와 함께 같은 비행기로 떠날 수 있었는데도 굳이 나 혼자 따로 오라고 한 이유를. 공포나 두려움은 그 실체와 직면하지 않으면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 예상은 적중했다. 나는 어려운 비행기타기를 혼자 해냈다. 영어가 조금 딸려도 혼자 출국하고 입국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천해보고서야 알았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정선, <파교설후>(부분)
정선(鄭敾:1676-1759)이 그린 <파교설후(灞橋雪後)>는 매화를 찾아 파교를 건너는 선비를 그린 작품이다. 만상이 눈 속에 자취를 감춘 겨울에 나귀 탄 선비가 파교를 건넜다. 그림은 전혀 채색을 쓰지 않고 오직 먹으로만 마무리했다. 흰 눈을 드러내야하니 먹을 많이 묻혀 낭비할 이유가 없다. 먹을 금처럼 아끼는 ‘석묵여금(惜墨如金)’이 제대로 발현되었다. 굵은 붓질 몇 번을 긋자 빈 여백이 설산(雪山)이 됐다. 설산 뒤 하늘은 연한 먹빛으로 물들였다. 흰 옷 입은 선비는 붓질 몇 번으로 간략하게 끝냈다. 검은빛 나귀는 먹의 농담이 드러나도록 세심하게 그렸다. 선비가 흰색이라면 나귀는 검은 색이다. 선비가 선이 강조된 백묘(白描)라면 나귀는 면이 강조된 몰골(沒骨)이다. 선과 면, 흰색과 검은색이 조화롭다. 안정감은 영원할 수 없는가. 그를 향해 고개를 쑥 내민 언덕이 금새라도 쏟아져 내릴 듯 위태롭다. 기우뚱한 언덕은 보는 사람마저 불안하게 만든다. 탐매행에서 선비가 만나게 될 어려움의 복선일 수도 있겠다.
정선이 그린 나귀 탄 인물은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689-740)이다. 맹호연은 평생을 벼슬 하지 않고 은거하며 살았는데 매화를 무척 좋아했다. 그가 매화를 찾아 나설 때면 장안 동쪽에 있는 파교(灞橋)라는 다리를 건너 산으로 향했다. 설중매는 따뜻한 봄볕이 아니라 겨울 눈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여린 꽃잎으로 죽음 같은 추위를 뚫고 피어나는 강인함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문인사대부들은 설중매에 매료됐다. 여기에 고고한 품성을 지닌 은둔 처사의 사연이 가미되자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맹호연을 칭송했다. 맹호연의 행동을 흉내내 ‘맹호연 따라잡기’프로젝트에 돌입한 문인들도 속출했다.
직접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화가들은 그림을 그려 풍류를 감상했다. 맹호연이 나귀를 타고 설중매를 찾아가는 장면은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탐매도(探梅圖)’,‘기려도(騎驢圖)’라는 화제(畵題)로 수없이 많이 그려졌다. 신잠(申潛:1491-1554), 김명국(金命國:1600-?) 정선(鄭敾), 심사정(沈師正:1707~1769) 같은 여러 화가들이 맹호연의 이야기에 붓을 들었다. 특히 심사정의 <파교심매도>는 산뜻한 색채로 완연한 봄빛을 녹여낸 수작이다. 이들이 그린 <파교심매도>는 붓질은 달라도 구도는 한결같다. 나귀 탄 맹호연, 추위에 떨고 있는 시동, 눈 속에 핀 매화가 기본 구성요소다. 나귀 탄 맹호연 대신 매화 앞에 선 인물을 그릴 때도 있다. 간략한 필치로 선미(禪味)가 느껴지는 작품을 남긴 김명국이 대표적이다. 어느 경우든 맹호연, 시동, 매화는 ‘파교심매도’를 구성하는 중요한 삼 대 요소다.
그런데 정선이 그린 <파교설후>는 ‘파교심매도’ 계열화의 규격화된 내부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 이색적인 작품이다. 일단 시동이 보이지 않는다. 나귀 탄 시인은 찬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느긋하게 탐매의 설레임을 즐기는 반면 시동은 눈에 젖은 신발을 신고 추위에 떨며 나귀를 뒤따라간다. 그 전형이 사라졌다. 자칫 신분 때문에 품위가 생긴다고 착각할 수 있는 요소가 제거된 것이다. 점잖은 시인과 동동거리는 시동이 등장할 때 감상자는 무심하게 시인의 참을성을 칭찬한다. 반대급부로 시동은 자발없어 보인다. 가끔씩 불쌍한 시동을 동정한 감상자도 없지 않아 있다. 붓을 든 사람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시인의 여유였다는 뜻이다.
품위는 결코 신분에서 나오지 않는다. 환경과 조건에서 나온다. 선비가 추위에 품위를 잃지 않는 비결은 선비의 발이 젖지 않기 때문이다. 선비는 나귀를 타고 있다. 시동처럼 눈을 밟으며 동상과 싸워야 하는 직접적인 어려움이 없다. 정선은 등장인물을 시인 한 사람으로 제한함으로써 시동과의 비교에서 오는 감상자의 불편함을 해소해주었다. 참 착한 작가다. 정선은 시동과 더불어 매화도 배제시켜버렸다. ‘파교설후’라는 제목이 아니었더라면 주인공이 어디로 향하는 지 알 수 없다. 똑같이 나귀타고 가는 사람이지만 누군가는 단순히 여행중이고 누군가는 매화를 찾아갈 수도 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는 속내가 가늠되지 않는 것이 ‘기려도’다.
<석가출가> 간다라 불전도
태자 싯다르타, 출가 사문이 되다
싯다르타 태자가 성문을 나설 때도 그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평상시의 모습 그대로였다. 태자가 출가한 날 밤 성문은 부왕 슛도다나의 명령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무장한 병사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궁성을 지켰다. 그러나 태자는 천신(天神)과 지신(地神)의 도움으로 마부 찬다카가 이끈 말 칸타카를 타고 무사히 성문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인도 간다라에서 제작된 <석가출가>는 지신이 말발굽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말의 발을 받쳐 든 모습을 새긴 것이다. 천신들은 도솔천에서 호명보살로 있던 석가모니가 지상에 내려올 때부터 열반할 때까지 한시도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 이런 사실을 믿지 못한다 해도 한 사람이 간절한 바램으로 노력한다면 온 우주가 그를 도와준다는 진리는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싯다르타는 성문을 나선 후 굳게 맹세했다. ‘더없이 큰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싯다르타는 동쪽을 향해 계속 걸어 새벽녘에는 마이네야라는 곳에 도착했다. 옛날 선인이 살았다는 장소였다. 찬타카와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싯다르타는 몸에 지니고 있던 보석을 벗어 찬타카에게 주었다. 그런 다음 칼을 뽑아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비단옷은 벗어 지나가던 사냥꾼에게 주었다. 대신 사냥꾼이 걸친 남루한 가사를 입었다. 태자는 찬타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다음 그를 궁으로 돌려보냈다. 비로소 혼자가 됐다. 그는 이제 태자 싯다르타가 아닌 출가 사문 고타마였다.
옷을 걸쳤다 해서 앞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이 아니다. 출가사문이 되었다 해서 깨달음이 순순히 찾아와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누구에게나 시작은 막막하다. 당당하게 확신을 갖고 시작한 사람이라도 홀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은 두렵고 아득하다. 단참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동쪽 하늘 위로 아침 해가 밝아오는데 출가 사문 고타마의 마음은 결코 밝아지지 않았다. 생로병사를 해결하겠다는 거대한 꿈을 품고 나왔는데 두려움은 그보다 더 거대하게 사문 고타마를 압도했다. 사문 고타마는 일단 자리에 앉았다. 다시 한 번 계획을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출가하기 전 수백 번도 넘게 세웠던 계획이지만 지금은 머릿속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다. 두려움이 잦아들고 묵적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들여다보고 인정해주는 것. 그것이 긍정의 시작이다. 사문 고타마의 망설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해가 머리 위로 옮기기 전에 남상거리던 마음이 정리됐다. 사문 고타마는 너볏한 얼굴로 일어나 바이샬리로 향했다.
조희룡, <홍백매8곡병>(부분)
정말 그 곳에 꽃이 있었다
조희룡의 <홍백매8곡병>은 8폭 병풍 전체 화면에 붉은 매화와 흰 매화 두 그루만을 그린 대작이다. ‘매화도’의 대가답게 조희룡의 재주가 충분히 드러난 작품이다. 고목의 늠름함이 눈부시다. 세월의 장대함이 응축돼 있다. 붉은 매화와 흰 매화는 넓은 화면 위에서 서로가 마치 한 몸인 듯 의지해 서 있다. 붉은 매화와 흰 매화는 오랜 세월 함께 살면서 그들이 수놓아야 할 시간과 공간을 고민했다. 그들의 고민은 개별성과 조화로움이었다. 각자의 줄기가 뻗어 나갈 허공에서 자신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 곁에 있는 꽃과 어울리는 것이다. 흰 꽃은 붉은 꽃의 화사함을 살려주고 붉은 꽃은 흰 꽃의 그윽함을 돋보이게 한다. 내가 있어 너를 살린다. 네가 있어 내가 행복하다. 구속하지 않기 때문에 따로 또 같이 어울려 매혹당한다. 붉은 꽃이 동쪽을 물들이면 흰 꽃은 서쪽을 수놓았다. 흰 꽃이 하늘을 향해 힘차게 팔을 뻗으면 붉은 꽃은 땅을 향해 다소곳이 손을 내렸다. 남녀가 결혼하여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살다보면 나중에는 한 몸처럼 자연스러워진다. 고목도 그러하다. 함께 있음으로 해서 더욱 아름다운 노목(老木)이다.
조희룡의 <홍백매8곡병>은 노목에 대한 예찬이다. 늙을수록 더욱 깊은 향을 피워낼 줄 아는 탁월함에 대한 경의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노목의 껍질은 농투성이의 손바닥처럼 거칠거칠하다. 조희룡은 용비늘처럼 거친 노목의 질감을 드러내기 위해 나무속을 비웠다. 대신 거친 껍질 쪽에 농담이 다른 선을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칠함으로써 세월을 표현했다. 그 위에 진한 먹으로 찍은 점은 세월에서 얻은 상처다. 사람이 상처 속에서 성숙해지듯 고목은 분방한 농묵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한 몸에서 핀 꽃이지만 성격은 제각각이다. 활짝 핀 꽃, 반쯤 핀 꽃, 오므린 채 토라져있는 꽃들이 늙은 몸에 악착같이 붙어 있다. 아름다운 집착이다. 조희룡은 집착의 흔적마다 붓을 들고 걸어가 농묵을 찍으며 간섭한다. 붉은 꽃이든 흰 꽃이든 농묵으로 찍은 꽃받침과 꽃술이 있어 생기가 돈다. 그의 간섭으로 홍백매는 ‘은하수에서 쏟아져 내린 별무늬’처럼 찬란하고 ‘오색 빛깔 나부산의 나비를 풀어 놓은 것’처럼 격렬하다.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를 강조한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제자였으면서도 손재주를 중요시했던 조희룡의 예술의지를 확인하는 것 같다.
그나저나 확신을 갖고 조금만 더 가면 나비가 훨훨 날아다니는 것 같은 매화를 만날 수 있는데 나귀 탄 선비는 산속까지 무사히 도달했을까. 행여 중간에 눈사태를 만나 되돌아가지는 않았을까. 설령 산사태가 나서 눈 속에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비는 탐매행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분명히 경이로운 매화가 피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번에 가다 실패하면 내일 다시 나서리라. 죽음을 열고 생명을 꽃피운 매화는 그만큼 고생을 해서라도 찾아봐야 할 가치가 있는 꽃이기 때문이다.
조희룡, <홍백매8곡병>, 종이에 색, 124.8×46.4cm, 국립중앙박물관
*이 글은 '법보신문 1196호(http://www.beopbo.com/news/view.html?section=93&category=99&item=383&no=75707)에 실렸습니다.
*조정육의 행복한 그림읽기(http://blog.daum.net/sixgardn/15770607)에서 가져옴
첫댓글 감사합니다 ,南 無 阿 彌 陀 佛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마하살._()_
관세음보살~~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