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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의 창시자
예수 그리스도
BC 6경 유대~AD 30경 예루살렘.
20세기 세계 인구의 1/3 이상이 믿는 종교인 그리스도교의 창시자.
복음 전승
예수의 생애와 사역
탄생과 가족
예수의 생애와 그가 활동한 지리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단지 윤곽만 파악할 수 있다. 비성서적 자료들에 의하면 티베리우스 15년(루가 3:1), 즉 AD 28~29년 세례 요한이 등장하는 것을 근거로 상당히 정확하게 활동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 탄생 시기와 장소는 불확실하다. 〈마태오의 복음서〉 1·2장에서는 예수의 탄생과 초기시절이 헤로데 1세 때와 정권의 교체기(BC 4)였고, 〈루가의 복음서〉 2장에서는 예수의 탄생을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AD 6) 있었던 유대의 첫번째 인구조사와 연결시킨다. 또한 BC 8년경에 행해진 인구조사에 대한 역사적 증거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많은 자료는 탄생 연도를 BC 7~6년으로 추정한다(BC와 AD의 사용은 중세까지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음). 예수의 탄생 장소가 베들레헴이라는 전승은 다윗의 후손으로서의 메시아에 대한 〈구약성서〉 개념에 근거한 것이다.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신학적 주제는 그가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생각을 필연적으로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마태오의 복음서〉 2장에서 베들레헴은 부모가 본래 살던 곳이었으며 그들은 자녀들을 위협하는 위험 때문에 이집트를 갔다가 나자렛으로 옮긴다. 그에 반해 〈루가의 복음서〉 2장에서는 예수의 부모가 실제로 나자렛에 살았으나 예수를 다윗 가족 출생지의 호적에 올리기 위해 잠시 베들레헴에 머문 것으로 나타난다. 두 전승이 각각 고유한 방식대로 그가 탄생한 장소를 지정할지라도 예수의 메시아성이라는 신학적 주제의 전설적 변형으로 판단해야 한다.
〈마태오의 복음서〉 1장과 〈루가의 복음서〉 3장의 상당히 다른 계보들에서 메시아(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이라는 교리를 내포한다. 그것은 예수의 메시아성에 대한 계보적 사고를 위한 유일한 〈신약성서〉의 증거이다. 그러나 두 본문은 조화될 수 없다. 그들은 본래 예수의 선조들에 대한 일치된 전승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의 메시아성을 계보적으로 기술하려는 시도들이 〈구약성서〉의 70인역(그리스어 번역)을 사용하여 유대 그리스도인 집단에서 처음으로 행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본문들은 역사적인 자료들로서는 무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그리스도론(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교리)의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 왜냐하면 동정녀 탄생이라는 후기의 사상과,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계보적 증명을 조화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동정녀 탄생 전승도 역시 오직 두 자료(마태 1, 루가 1)에만 기록되었으며, 본래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주제와 연관된 것도 아니었다. 바울로, 요한 및 나머지 〈신약성서〉 저자들은 이 생각에 친숙하지 않다. 〈마태오의 복음서〉 1장에서 예수의 기적적 탄생이 언급되고 〈루가의 복음서〉 1장에서는 더 자세히 설명되는데, 이 전승은 하느님과 성령의 창조적 능력을 말해주며, 헬레니즘 시대의 유대교로부터 알려진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동기가 예수에게 적용되었고, 이차적으로 〈이사야〉 7장 14절(70인역에서 히브리 단어 alma, 즉 '젊은 여인'이 '처녀'로 번역됨)의 메시아 약속에 대한 그리스어 번역과 연합되었다. 매우 오래된 믿을 만한 전승에 따르면, 예수의 고향은 갈릴리 지방의 나자렛인데, 이곳은 그리스 도시의 영향을 받지 않은 유대인 거주지였다고 한다(마르 1:24, 10:47, 14:67, 16:6).
예수의 가족으로는 형제 4명과 몇 명의 누이가 〈마르코의 복음서〉 6장에서 언급된다(본문에는 교리적 동기를 드러내기 위해 그들을 이복형제나 사촌들로 만들 근거가 없음). 가족의 이름은 어머니 마리아(미리암), 아버지 요셉과 형제들은 야고보(야곱)·요셉·유다·시몬(구약 족장의 이름들)이다. 예수의 이름은 히브리 이름인 요수아, 즉 '여호와가 도우신다'의 그리스어 형태이다. 〈마르코의 복음서〉 6장에서 예수 혹은 그의 아버지는 목수였다고 언급한다.
가족의 이후 역사에 대한 몇 개의 단편적인 정보가 있는데, 아마 일찍 죽은 것 같은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 누이들은 처음에는 그의 운동에 참가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행동을 비난했다(마르 3:31~35). 그러나 마리아는 그의 죽음 이후에 그리스도교 교회의 일원으로 언급된다(사도 1:14). 그의 형제 야고보는 베드로 이후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다. 〈유다의 편지〉의 저자가 다른 형제의 이름을 존경하여 이름을 취했던 것처럼, 〈야고보의 편지〉 저자도 야고보의 이름을 취했다. 4세기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Ecclesiastical History〉에 따르면, 갈릴리에 살고 있었던 유다의 손자들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다윗의 자손들'이라는 이유로 소환되었으나 정치적인 위험이 없으므로 석방되었다.
예수는 가정과 회당에서 교육받았으며(성서 공부, 율법에 대한 순종, 기도, 메시아의 마지막 도래에 대한 기대 등) 예루살렘의 순례에 참가했다. 경건한 분위기에서 성장한 듯하며, 그가 신학적 교육을 받았음은 그의 가르침과 '랍비'(선생)라는 명예로운 이름에서 밝혀지는데, 그 시대에 랍비라는 칭호는 훈련되어 임명된 율법학자라는 직업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예수의 초기생활과 내적 발전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것이 없다. 알려진 것은 〈루가의 복음서〉 2장 40~52절(성전에서의 소년 예수)에 유일한 설화가 간직되어 있고, 위경들이 전설의 형식으로 예수의 어린시절을 밝히려고 노력했다.
사역
세례 요한의 등장과 행동, 그에게 예수가 세례받았다는 복음서의 내용은 예수의 생애와 사역을 알 수 있는 최초의 역사적 근거이다. 가장 오래된 복음서 저자는 이 사건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마르 1:1)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예수의 생애에 대한 동시대적 배경의 서술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지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묘사된다. 그리스도교 구원 역사에서 그의 위치는 선구자 혹은 개척자이거나 〈요한의 복음서〉에서처럼 예수의 증인이다. 요세푸스는 그를 단순히 도덕 교사로, 그의 세례를 단순한 의식적 씻음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예외없이 모든 사람을 회개하라고 하면서 임박한 마지막 심판의 예언자로 광야에 등장했고, 소멸시키는 진노(마태 3:7~, 루가 3:7~)로부터 그들을 지키기 위해, 하늘로부터 오는 더 전능하신 분의 불세례를 받을 준비를 하도록 회개하려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금욕적 유목민 같은 옷, 음식, 제도, 전통적 종교장소, 세속주의로부터 멀리 떨어진 그의 활동장소(유대 광야와 요르단 스텝 지역)는 종말론적 설교의 열정과 인습적 경건에 대한 그의 공격을 예시해준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이 마지막 날에 광야에서 그의 백성을 만난다는 오래된 예언자의 약속과 일치한다. 역사적으로 이 모든 모습은 메시아로서 예수에 초점을 맞추는 그리스도교인의 시각에서는 즉각 이해될 수는 없을 것이다. 복음서들의 전승은 세례 요한의 역사를 소급하여 해석했다. 예수가 요한에 의해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예수가 처음에는 요한의 운동에 속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예수가 세례받은 내용은 복음서에서 '에피파니(현현) 이야기'로 유형화되었고, 이것을 예수가 메시아로 임명되는 것으로 다룬다(마르 1:9~11). 요한에 의한 하느님의 나라의 선포와 회개에로의 부름은 예수에게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그는 요한을 예언자들 위에 놓았으며 그를 사람들 중에 가장 위대한 자라고 불렀다(마태 11:7~11). 그는 자신의 사역에서처럼 세례 요한의 사역에서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징조를 보았고, 요한의 권위가 하늘로부터 온 것임을 인식했다(마르 11:27~33). 여기에서 문맥의 경향은 예수를 메시아로 선언하며 세례 요한을 예수를 섬기는 더 낮은 자로 보려고 한다. 다가오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예언자적 선포와 회개에로의 부름(마태 3:2, 4:17 참조)에서 예수와 세례 요한의 밀접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또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세례 요한의 투옥 이후 바로, 예수는 성인(루가 3:23)으로서 광야보다는 갈릴리 고향 마을들에서(간헐적으로는 이웃 마을들에서) 독립적인 공적 사역을 시작했다. 그의 사역의 실제 영역은 겐네사렛 호수의 북서연안지역(베싸이다·코라진·가파르나움)이었다. 예수는 백성들을 광야로 부르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을 그들의 거주지에서 찾았고 그들의 일상적인 생활에 참여했으며, 요한처럼 금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마태 11:18). 그는 유랑하는 설교자로서 그들 가운데서 일했고(마태 8:22), 카리스마적인 기적을 행했으나 요한처럼 세례를 베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준 이미지는 상당히 특이하다. 그는 회당에서뿐만이 아니라 공개된 장소에서, 호숫가에서, 길에서 가르쳤다.
그를 둘러싼 무리에는 이상한 사람들(여인, 어린이, 불경건하거나 불결한 자로 여겨진 사람들)이 있었다. 더욱이 그의 가르치는 방식은 놀라웠다. 그는 성서를 잘 알고 존중했으며, 여기저기서 그것들에 호소했지만, 그의 가르침은 성서로부터 끌어낸 것이 아니다. 그대신 그는 하느님의 실재와 그의 뜻의 정당성을 직접적인 방식으로 항상 제시했고, 거룩한 본문과 전승들의 기존 구조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인습적이고 종교적인 관점의 전제없이 청중들을 이해시켰다. 그의 은유·비유·잠언은 성서신학의 전통적 가르침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대신 일상 경험과 청중의 이해에 직접 호소했고, 그러므로 그것들은 고유하고 명백하고 단순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 있어서 그의 행동 방식과 일치한다. 복음서들은 이것을 많은 분리된 장면에서 묘사한다. 경건한 자와 경건하지 않은 자, 부자와 가난한 자, 존경받는 자와 버려진 자, 건강한 자와 병든 자, 이 모든 만남에서 예수는 선입견에서 떠나 상황을 지배한다. 그는 논쟁에서 그를 어렵게 하려는 적대자들의 시도를 누그러뜨렸고, 그 주위에 모여든 귀신들린 자들과 병든 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알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자들과 함께했다.
공관복음서들의 일치된 증언에 따르면, 예수는 갈릴리에서 운동을 일으켰고, 물론 비난이 없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추종자들을 얻었다. 이 운동은 아직은 '교회'라고 불려질 수는 없다(이 개념은 후기 전승에서 처음으로 나타남). 그의 말씀과 운동을 확장하기 위해 그는 다가오는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가족과 생업의 모든 끈을 결연히 포기하고(마태 10:37~, 마르 8:34~, 루가 14:26~), 그를 따라 '사람을 낚는 어부'(마르 1:17, 루가 5:10)가 되려는 그의 제자들을 불렀다. 그의 말씀들은 극단적으로 날카로우며 제자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숨기지 않는다(루가 14:25~33). 그는 출신과 교육수준에 상관없이 부르며 임명하고, 특별한 사람들로 선택한다.
그들 중에는 어부들(안드레아·베드로·야고보·요한)·세리(마태오)·열심당원(시몬과 가리옷 유다)·농부들이 있었다. 처음부터 12명이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가 제자들을 임명하고 설교하며 귀신을 내쫓는(마르 3:14) 권위를 주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요한의 복음서〉에서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사람들을 포함하여 몇몇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의 제자훈련은 랍비들처럼 '훈련'과 함께 끝나는 과도적인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 특징이다. 그들 중 누구도 충분한 공부 후에 '스승'(마태 23:8)의 지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제자들을 부르는 내용들이 일반적으로 후기의 전승에서 그리스도교도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예로 유형화되었고, 개별적인 장면들이 이야기의 본 줄기에 첨가되었을지라도 갈릴리에서 예수가 사역하는 동안 일어난 사건들의 회상은 분명히 본문들에 보존되어 있다.
갈릴리 기간이 얼마 동안이나 지속되었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 공관복음서들은 예수가 유대와 예루살렘에 가서 수난을 당한 오직 1차례의 여행만을 언급하기 때문에, 그 기간이 1년을 넘지 않았다는 인상을 준다. 갈릴리에서의 예수의 활동과 예루살렘에서의 그의 수난으로 나누는 편집적 측면과 신학적인 의도는 어느 정도 연관이 있지만, 몇 가지 이유들로 학자들은 공관복음서의 구성이 〈요한의 복음서〉의 구성보다 더 선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한의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3번의 유월절 절기를 지냈으며(요한 2:13~23, 6:4, 11:55), 1번의 수코트(초막절, 요한 7:2)와 1번의 하누카(봉헌절, 요한 10:22)를 지냈다고 한다. 이것은 만 2년을 넘는 기간이다. 그러나 요한이 독립된 전승에 근거하여 기록했는지는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복음서 저자의 시간 지적은 예루살렘과 갈릴리 사이에서 예수의 사역 장면을 구분하는 수단으로 언급되었기 때문이다(여기서 중심지는 예루살렘임).
하느님 나라에 대한 뜨거운 기대는 조상들의 하느님,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으로 선택한 세상의 창조자, 주님에 대한 〈구약성서〉의 믿음에 기초하여 다양한 형태로 동시대의 유대교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 믿음에 현재 세상의 상태는 사탄의 권세가 통치하여 사악하다는 것과 하느님의 왕권은 단지 미래에 나타난다는 모순된 경험이 연합되었다. 많은 집단에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묵시적 사변 속에 우주적 기대로 확장되었지만, 다윗적 메시아, 즉 민족의 정치적 대망의 형태를 지니기도 했다. 각 경우에 그것은 마지막 날과 연관되었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말씀에서도 하느님 나라의 표현은 순수하게 종말론적, 즉 미래의 의미를 가지며, 현재 세상의 시대가 끝나고 극복되는, 외부로부터 이 세상에로 갑자기 침투하는 사건을 의미한다.
세상의 종말, 마지막 심판, 하느님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주제들은 복음서 전승에 보존된 예수의 말씀들에 꼭 들어 있다. 예수는 결코 하늘나라를 개인적 인간 영혼의 순수한 종교적인 체험으로 바꾸지 않았고, 유대적 종말론적 기대를 세계 내적인 진화적 과정이나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질 수 있는 목표로 보지 않았다. 그의 몇 비유들은 그러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예를 들어 씨앗과 추수, 누룩, 겨자씨의 비유). 그러한 경우에서 유기적 과정이라는 근대적 사고가 본문들에 잘못 도입되었다. 그러나 성서 시대 사람들은 그것을 놀라움과 기적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하느님의 나라는 아직 여기 없다. 그러므로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마태 6:10, 루가 11:2)라고 기도한다. 예수의 팔복과 재난 예언(루가 6:21~26) 사이에는 긴장이 있다. 가난한 자와 배고픈 자와 애통하는 자는 아직 하늘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은 하느님의 이름과 뜻이 악용되고, 그의 나라는 아직 오지 않고, 사람들은 파멸시키려는 시험에 의해 위협당하는 매우 곤궁한 상황을 전제한다.
예수의 설교에 따르면, 실현된 종말론(즉 "마지막 때가 지금 여기에 있다"라는 영국 성서학자 C.H. 도드의 견해)이라기보다 '실현되는 과정 속에 있는' 종말론(독일 성서학자 요아힘 예레미아스의 견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나라는 매우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현재 세계에 빛을 던지고 말씀과 행위를 통한 예수 자신의 사역에서 보여진다. 이 점에서 그의 말씀은 그 시대의 종말론과 다르다. 그는 민족적 메시아에 대한 희망을 공유하거나 장려하지 않았고, 스스로를 메시아로 선언한 것은 더욱 아니었으며,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촉진하려는 열심당의 노력을 지지하지도 않았다. 또한 하느님의 나라를 율법의 경건한 준수(바리사이파, 쿰란 분파)로 환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현재 세계의 종말과 새 '에온' 혹은 시대의 여명(루가 12:56)을 자세히 묘사하려는 그 시대의 묵시적 공상가들의 환상적 시도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묵시사상). 그는 세례 요한의 설교를 계속하지도 않았다.
예수의 설교 안에 있는 모든 이념과 이미지는 하느님 자신이 그의 통치를 이루기 위해 매우 가까이 있고 벌써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하나의 사상으로 집약된다. 예수는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이념을 소개하거나 세상의 종말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발전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느님 나라의 가까움은 실제로는 하느님 자신이 세상을 해방하고 세상에 노예된 자들을 구원하려고 가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오고 있으나, 지금 존재하는 세계의 중심에 이미 현존한다. 예수의 말씀에서 하느님은 더이상 신성한 영역 안에 존재하는 그 자신의 위엄의 포로가 아니다.
하느님이 가까이 계심에 대한 예수의 선포와 사탄에 대한 하느님의 승리의 징조를 세우기 위해 전쟁터로 나아가는 예수의 행동에서 계시된 것처럼, 하느님은 아버지, 돕는 자, 해방자이며 지금 벌써 일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가 11:20). 이러한 이유로 예수는 시대의 변화가 여기 있으며, 지금은 예언자들이 약속한 시간이라고 외쳤다(이사 35:5, 마태 11:5). '여기 그리고 지금'은 예수의 말씀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예수 설교의 중심적인 특성은 하느님이 자비와 사랑 가운데서 고통당하고 죄짓고 버려진 자들에게, 그리고 '경건한 자'의 선입견에 따르면 마지막 구원에서 가업을 받을 권리가 없는 자들에게로 향했다는 것이다. 수많은 비유가 어떻게 하느님이 그들에게 행하는지에 대해 썼고, 그를 주님과 왕으로 보여준다(마태 18:23~, 20:1~, 루가 15). 비유들은 일상생활에서 가져온 이미지들로 하느님의 행위를 말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명백히 예수 전승의 가장 오래된 줄기에 속한다. 그러나 예수는 단지 이것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실천했고, 그럼으로써 하늘나라는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 경건한 자들을 성나게 했다.
이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말씀 안에 예수가 회개하라고 권하는 이유가 있다. 그는 구원의 시간을 놓치지 말도록(루가 14:16~, 13:6~),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도록(마태 13:44~), 어린아이처럼 영접하도록(마르 10:15), 자신이 그것을 얻을 수 있다거나 자신의 공로로 실현할 수 있다는 자만을 가지지 않도록(마태 13:24~, 마르 4:26~) 모두에게 요청한다. 예수는 또한 지혜롭게 깨어 있고(마태 24:45~, 마르 13:33~, 루가 16:1~, 12:35~) '자기의' 허구를 포기하라고 요청한다. 예수의 설교에서 회개는 필수적인 것, 선결조건, 자기 자신에 대한 참회의 명상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가까움의 결과(마태 4:17)이고 자신을 그의 미래에로 개방하는 것, 뒤로의 운동이 아니라 앞으로의 운동이다. 이렇게 예수는 미래와 현재를 떨어질 수 없게 함께 묶는다. 따라서 하느님의 새로운 세상 이전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가야 하는지 묻는 묵시적인 질문은 의미 없는 것이 된다.
이것을 묻는 사람은 그가 미래도 현재(즉 이미 밝아오는 구원으로서의 하느님의 미래와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의 빛 안에 있는 자신의 현재)도 적절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구원의 때가 밝아오는 증거로서 '표적들'을 보여달라는 요구를 거절했다(마태 12:38~, 마르 8:11). 회개의 예언자 요나가 니느웨 백성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표적이었듯(루가 11:29~) 예수 자신이 '표적'으로 보여져야만 한다. 표적은 의미 있는 일과 동일시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에 대한 정당한 지시이다.
공관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그의 '메시아성'을 가르침의 주제로 삼지 않았고, 그것을 그의 말씀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리스도론의 특징을 가진 요한의 '나는……이다'라는 어투가 공관복음 전승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 사실은 예수가 결정적인 방식으로 종말론적 예언자와 카리스마적인 기적행위자로서 포함되었다는 사실에 결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예수의 요구들을 '중간 윤리', 즉 하느님 나라의 신속한 도래와 시대의 변화를 동반하는 우주적 파국 가운데 놓여 있는 세계 상황에서 예외적인 율법들로 규정짓는 것은 옳지 않다. 예수는 그의 윤리적 요구에 대한 논증을 소멸하는 질서로부터 끌어내지 않고, 오히려 현존하는 세계, 〈구약성서〉의 계명들, 창조, 모든 사람에게 알려진 경험들로부터 끌어내고 있다(→ 십계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가까이 있음에 대한 확신은 예수가 하느님의 뜻을 해석하는 공개된 혹은 숨겨진 근거가 되며, 〈구약성서〉의 율법에 대한 그의 태도를 말해준다. 〈구약성서〉의 율법 전통의 특성에 상응하여 그는 단일한 말씀과 개인적 명령에 연관된 해석에서 하느님의 뜻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는 이것들을 체계적인 '도덕적 가르침'으로 발전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매우 다른 종류의 계명들을 구체적인 예로, 즉 동료에 대한 행동(살인과 분노, 간음과 이혼, 맹세들, 보복,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에 관하여), 의식적 계명(안식일·기도·금식·모독에 관하여), 다른 예식 의무를 설명했다. 예수는 항상 이 계명들의 근원으로 나아갔고, 율법의 문자적인 의미에 만족하지 않고, 하느님의 진정한 뜻을 율법 안에서 밝혔다. 예수가 율법을 존중했지만, 율법은 더이상 하느님의 뜻을 아는 유일한 근원이 아니며, 하느님과 백성의 관계를 중재하는 절대적인 권위도 아니었다.
그래서 예수는 더이상 거룩한 문자와 전통에 위장되지 않는 하느님의 실재와 또한 유사하게 위장되지 않은 사람의 실재 사이에 대면하게 한다. 사람들은 더이상 경건한 일로 하느님 앞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과 바리사이파와 같이(루가 18:11~) 그것들을 계속 쌓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신들을 더이상 속일 수 없다. 하느님이 인간으로부터 원하는 것은 무조건적이며 분열되지 않은 인간 자체이다. 이러한 사상에 대한 고전적 구절은 산상수훈(마태 5:21~48)과는 정반대이다. 하느님의 요구는 단순한 법률적 행동에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의 주요사상은 '이것뿐 아니라 저것도……'이다. 제정된 율법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분노, 음탕한 눈, 법적 이혼, 보복, 원수를 배제하는 사랑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다.
이러한 극단적 요구들은 역설적으로 과도한 요구들이 결코 아니고 오히려 해방을 의미한다. 첫째로, 이러한 요구들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식화된다. 여기에는 일상생활에서 백성들의 자연적이고 왜곡되지 않은 실천이 포함된다. 둘째로, 그 요구들은 모든 인간의 행위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기술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는 하느님 아버지가 그의 자녀들에게 행했고 행하고 있고 행할 것과, 무제한적인 하느님의 가능성에 대해 거듭 지적한다. 믿음(마르 9:23~)·기도(마태 6:1~, 루가 11:1~)·염려(마태 6:25~)에 대한 예수의 말씀들은 이에 대한 예들이다. 백성들에게 스스로 결단하기를 요청하는 곳에서 예수는 하느님이 인간을 위해 벌써 결정했다는 사실을 논증한다. 그가 요구하는 무제한적인 용서의 동기는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죄인에게 보여준(마태 18:23~)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있다. 예수는 그의 요구들이 수행 가능한지에 대해 추상적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한다. 한편 예수는 '상급'에 대한 사상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급이 물질적인 상은 아니고(이런 종류의 이미지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느님과의 관계의 완성이다(마태 25:14~).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지불을 주장하고 청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예수에게는 전혀 없다(루가 17:10).
가까이 있는 하느님은 더이상 인간을 전통적 범주로 등급을 매기거나 분류하지 않고, 긴급하고 중요한 도래로 이끈다. 예수가 얼마나 인간에 대해 관심을 가졌는가는 그의 사랑의 계명에서 보여지는데, 그는 그것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모욕받으면서도 실천했다. 그가 제자들에게 요구한 '더 좋은 의'는 사랑이다(마태 5:20). 예수는 〈구약성서〉의 2가지 계명,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받아들였는데(레위 19:18, 신명 5), 이것은 유대교에서도 모든 율법의 요약이다. 그러나 예수의 설교의 특징은 일관되게 모든 다른 율법(안식일 계명)을 가장 중요한 기준(마르 2:27, 3:4)에 종속시켰다는 것, 이웃사랑을 원수사랑에로 확장하여 고양시켰다는 것(루가 6:27~), 계명을 추상적인 관념이나 일반적인 인류애가 아닌 항상 사건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에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근대 도덕철학의 개인윤리와 사회윤리의 구분은 예수의 가르침에서는 단지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확실히 예수는 세계와 민족의 새질서를 계획하지 않았고, 부의 공평한 분배를 요구하지도 않았으며, 주인과 노예, 고용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별에 대항해 싸우지도 않았고, 정의의 실행을 위해 어떤 지침도 주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팔레스타인 유대 시골 상황, 즉 마땅히 되어야 할 세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었다. 그의 말씀·비유·교훈은 얼마나 그가 일상생활을 날카롭게 평가했으며 , 얼마나 명백하게 그것을 사실적이며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주어진 세계에서 하느님 본래의 뜻과 그의 밝아오는 나라에 적합하게 행동할 것을 요청한다(마태 6:24, 루가 16:9~). 그러나 예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재산을 완전히 포기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법적으로 규정된 시설을 사용해서도 안 되었고, 세상의 관습적 행동양식을 따라서도 안 되었다. 그러므로 세상은 산상수훈에 의해 다스려질 수는 없다는 주장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보복에 대한 예수의 말씀과 사랑의 계명은 있는 그대로 법적으로 실행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누군가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나 다른 사람과 함께 그의 재산을 나누어야 되는 사람을 안내하는 데만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로지 다른 사람의 권리에 대해서만 결정해야 하며 일반적 사회질서를 위해 악을 억제해야만 한다. 그러나 산상수훈의 실천 불가능성은 예수의 가르침이 사회비평에 강한 추진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예수는 사랑의 계명에 따라 율법을 설명하고 그것을 구체적 상황에 적용하면서 표면적으로 정당한 기준을 속빈 관습이라고 폭로한다. 이런 이유로 그는 개인뿐만 아니라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특권집단의 자기중심성에 대항하고, 차별대우를 받는 자(이방인·사마리아인·세리·창녀)와 함께한다. 그의 계명의 정당성과 긴급성이 묵시적 근거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예수는 백성들에게 근접한 하느님 나라에 상응하는 삶을 살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그것들의 선포는 예수 자신의 선교와 밀접하다(루가 11:32~). 그가 그의 선교 사실을 그리스도론적 칭호들로써 표현했는지, 했다면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예수는 그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보내졌다는 것을 알았다(마태 9:36, 15:24). 전체적으로 그의 사역은 자신의 백성에게 한정되었다. 몇몇의 중요한 단어와 장면만이 하느님의 새로운 종말론적 백성 안에 비유대인을 포함시키려 한다(마태 8:11~). 그러나 예수는 이방인을 위한 선교를 조직하지 않았고(마태 10:5~), 보편적인 '교회'도 조직하지 않았다. 베드로가 고백한(마태 16:17~) 것은 후기 교회의 산물이며, 그 상황과 교리를 반영한다. 그러나 분명히 예수는 갈릴리에서 운동을 일으켰고, 그의 추종자들 모두는 아니지만 그의 방랑과 사역을 함께할 제자집단을 만들었다. 후기 전승은 소수의 제자집단만을 사도들과 동일시했다(Ⅰ 고린 15:5~). 12라는 숫자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한다. 만약 예수가 이 제자들을 스스로 임명했다면, 그는 그것으로 전(全)이스라엘에 그의 종말론적 주장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마태오의 복음서〉(19:28)·〈루가의 복음서〉(22:30)에 의하면(그것은 후기까지 형성되지는 않았던 것 같음), 그는 그들에게 새 시대의 완전한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재판하는 직임을 수여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수난과 죽음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예수의 결정은 그의 이야기에서 전환점을 이룬다. 이 사건은 그를 따르는 자들의 믿음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 복음서들의 많은 일치점에도 불구하고 수난 전승에는 상당한 모순이 있다. 따라서 수난 전승이 역사적으로 정확한 내용을 제공하는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교회의 관점과 교회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설화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적인 주제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천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메시아와 하느님의 아들로 선언하려는 것이며, 〈구약성서〉 예언자들과 〈시편〉의 말씀에 의거하여 하느님의 뜻을 성취하는 자로 표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다.
예수는 아마도 그의 제자들과 함께 밝아오는 하느님 나라를 위한 마지막 결단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기 위해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갔다. 그는 자신과 유대 통치자들과의 깊은 갈등을 인식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특히 성전정화 이야기는 예수가 이 갈등을 피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야기를 유형화한 후기 전승은 예루살렘에 올라간 예수의 유일한 동기로 거기서 죽어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다시 부활하려는 의도를 든다(마르 8:31, 9:31, 10:32∼).
예수 수난의 외면적 과정을 구성하는 가장 좋은 실마리는 그의 십자가 처형이다. 그것은 그가 형을 선고받았고 정치적 반란자로서 로마 법에 따라 처형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모든 기록은 그가 금요일에 죽었다는 데 일치한다(마태 27:62, 마르 15:42, 루가 23:54, 요한 19:31). 공관복음서에 따르면, 그날은 니산 월(3/4월) 15일(유월절 첫째날)이었다. 그러나 요한에 따르면, 그것은 전날(유월절 양이 도살되고 축제가 시작되는 저녁)이었으며, 예수와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는 유월절 식사가 아니었고 그 이전의 것이었다(→ 최후의 만찬). 이러한 날짜매김에는 각각 신학적 의도가 들어 있다. 즉 성만찬은 유월절 식사로 표현되어야 한다든지(공관복음서), 예수 자신은 양들이 도살되는 시간에 죽은 참 유월절 양으로 보여야 한다는(요한) 것 등이다. 역사적으로 요한의 날짜매김이 신빙성이 있으며, 니산 월 14일(4. 7)이 예수가 죽은 날로 간주되어야 한다.
복음서들이 사건의 사실들을 제시하는 방식에 따르면, 예수는 실제로 최고 유대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마르 14:55~). 한편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확신했고 그를 석방하려는 헛된 노력들을 했으나 결국 유대인들의 압력에 굴복했다(마르 15:22~). 이 내용에 대한 역사적인 신빙성은 의심스럽다.
첫째, 마르코와 마태오에 따르면 유대 최고법정은 예수가 성 목요일 밤에서 금요일 사이에 체포된 후 대제사장의 집에서 열렸으며 그에게 신성모독자로 사형선고를 내렸다(마르 14:64). 그후 그들은 또 한 차례 예수를 신문하여 빌라도에게 이른 아침 넘겨주기로 결정했다(마르 15:1). 루가는 오직 한 차례의 신문만 기록하면서 아침에 했다고 전한다(루가 22:66). 그러나 그는 예수의 형선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루가 22:71). 〈요한의 복음서〉에 따르면, 대제사장 가야파와 안나스가 예수의 신문에 관여한다(요한 18:13~).
둘째, 모든 복음서 내용에 대해서 어떤 증언이 제자들에게 정확한 보도를 주었는지 의문이 생긴다. 셋째, 유대 산헤드린의 사법권이 논쟁이 된다. 어떤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유대 정부는 사형을 선언해야 하는 경우와 심각한 종교적 모독(신성모독)의 경우에 돌로 치려면 로마 총독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또한 이런 종류의 재판은 축제기간 중에는 행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공관복음의 표현에 대한 가장 강한 반론은 그것이 유대적 방식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적 방식(즉 성서적 증거와 예수의 메시아성 및 하느님의 아들 됨에 대한 그리스도교도의 신앙고백의 근거)에서 유형화된다는 것이다. "네가 축복받은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마르 14:61)라는 대제사장의 질문은 유대적 관점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아들은 메시아에 대한 유대적 칭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내용은 유대주의를 지닌 후기 교회에 대한 논쟁을 반영한다.
또한 복음서들은 유대인들을 희생하여 빌라도를 면죄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비성서적 자료들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자료는 예수가 반란자로 체포되었고, 비공식적으로 신문당했으며, 그 당시에 예루살렘 사회에서 유력했던 산헤드린의 친로마 제사장들과 사두가이인들에 의해 정치적 반란의 지도자로 빌라도에게 넘겨졌다고 말한다. 성전정화와 성전파괴에 대한 예수의 예언적 묵시적 말씀(마르 14:58, 요한 2:19, 사도 6:14 참조)이 하나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 당시 정치적 영향력이 없었던 바리사이인들이 그 음모에 연관되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들은 수난 설화에서 제사장·장로·율법학자들과 같이 분리된 집단으로 언급되지도 않는다.
수난 이야기에서 다른 장면들을 여기서 분리하여 열거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예수 수난의 신학적인 의미와 관련이 있으며, 상당히 교화적이고 예배의식적인 방식으로 형성되었다. 예수 죽음에 대한 성서의 표현들은(특히 그의 마지막 말씀을 전하는 데서) 서로 다르다. 예수가 〈시편〉 22편의 기도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를 외치고 죽었다는 내용을 전하는 것은 오직 〈마태오의 복음서〉·〈마르코의 복음서〉뿐이다. 회개하는 도둑과 반항하는 도둑 사이의 구별은 오직 〈루가의 복음서〉에서만 나타난다. 예수의 마지막 말씀이 〈루가의 복음서〉에서는 "아버지, 당신의 손에 내 영혼을 부탁합니다!"로, 〈요한의 복음서〉에서는 "다 이루었다"로 다르게 나타난다. 각각의 이 내용들은 로마 백부장의 증언, 즉 "진정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마르 15:39)처럼 예수와 그의 이야기에 대한 중요한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