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days to see(사흘만 볼수 있다면)'
- Helen Keller
I have often thought it would be a blessing
if each human being were stricken blind
and deaf for a few days at some time during
his early adult life.
Darkness would make him more appreciative
of sight; silence
would teach him the joys of sound.
종종 사람이 일찍부터 몇일 동안
눈이 멀거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면
얼마나 축복이 될 수 있을까
생각을 하곤 했왔습니다.
어둠은 볼 수 있는 것에 더욱 감사하게 느끼고,
들을 수 없을 때에
소리가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으니까요.
Now and then I have tested my seeing friends
to discover what they see.
Recently I asked a friend
who had just returned from a long walk
in the woods, what she had observed.
"Nothing in particular," she replied.
How was it possible, I asked myself,
to walk for an hour through
the woods and see nothing worthy of note?
종종 난 볼 수 있는 친구들에게 그들이 본것들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 질문을 하고 합니다.
최근 긴 시간을 숲을 산책을 하고 온 친구에게
무엇을 발견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아무 것도 특별한 것은 없어!"라고 대답을 하더군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어떻게 숲을 한 시간 동안이나 산책을 하고도
특별히 주목 할 만한 가치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 했을까요?
I who cannot see find hundreds of things to interest me
through mere touch.
I feel the delicate symmetry of a leaf.
I pass my hands lovingly about the smooth skin of
a silver birch or the rough, shaggy bark of a pine.
볼 수 없는 나는 단순한 손길만으로도
흥미 있는 것들을 수 백가지를 찾는답니다.
잎새 하나에서도 섬세한 좌우대칭의 미를 느낄 수 있죠.
은빛 박달나무의 매끈한 껍질,
소나무의 거칠은 껍데기의 느낌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In spring I touch the branches
of trees hopefully in search of a bud,
the first sign of awakening nature
after her winter's sleep.
Occasionally, if I am fortunate,
I place my hand gently on a small tree
and feel the happy quiver of a bird in song.
봄엔 긴 겨울 잠에서 깨어난 것을 알리는 자연의 첫 징조,
새싹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 속에 나무 가지들을 더덤죠.
행운이 있다면,
우연히 작은 나무 가지게 가볍게 손을 올렸을 때에
노래 부르는 새들의 행복한 움직임을 느낄 수도 있죠.
At times my heart cries out with longing
to see all these things.
If I can get so much pleasure from mere touch,
how much more beauty must be revealed by sight.
And I have imagined which I should most like to see
if I were given the use of my eyes, say,
for just three days.
I should divide the period into three parts.
이 때에 제 마음은 이들을 모두를 볼 수 있다면 하는
소망이 솟구칩니다.
만약 제가 단순한 터치로도 이렇게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데,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더욱 아름다운 모습들이 드러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전 단 삼일 만이라도 제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어떤 것을 볼 것인가를 상상하곤 합니다.
세 부분으로 시기를 나누어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On the first day,
I should want to see the people whose kindness
and companionship have made my life worth living.
I do not know what it is to see into the heart
of a friend through that "window of the soul," the eye.
I can only "see" through my finger tips the outline of a face.
첫날 전 친절과 동료심으로 나의 삶을 가치있게 만들어준
사람들을 볼 것입니다.
전 영혼의 창 눈을 통해서 친구의 마음을 보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다만, 얼굴의 윤곽을 손으로 드덤어서 알 수 있을 뿐이죠.
I can detect laughter, sorrow,
and many other obvious emotions.
I know my friends from the feel of their faces.
How much easier, how much more satisfying
it is for you who can see to grasp quickly
the essential qualities of another person
by watching the subtleties of expression!,
the quiver of a muscle, the flutter of a hand.
But does it ever occur to you to use your sight
to see into the inner nature of a friend?
Do not most of you grasp casually
the outward features of a face and let it go at that?
For instance, can you describe accurately
the faces of five good friends?
전 웃음과 슬픔 그외 수 많은 확연한 감정을 드덤어서 알 수 있죠.
나의 친구들의 얼굴의 느낌으로 친구를 알아보죠.( 주석:
헨렌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으니....)
볼 수 있는 당신들은 감정의 미묘한 표현들, 근육육의 떨림과
손 흔듬을 봄으로 다른 사람들의 꼭 필요한 특징들을 빨리
파악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더 쉽고,
얼마나 더 많이 만족스럽겠습니까?
그런데, 볼 수 있는 것으로 친구의 내면 모습을 본적도 있나요?
여러분, 대부분은 얼굴의 겉 모습만 형식적으로 보고,
그렇게 아무런 생각을 더하지 않고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나요?
당신의 친한 친구의 다섯명의 얼굴을 바로 세세하게 묘사 할 수 있나요?
As an experiment, I have questioned husbands about
the color of their wives' eyes and often
they express confusion and admit that they do not know.
Oh, the things that I should see
if I had the power of sight for just three days!
경험으로 보자면,
전 남편들에게 와이프의 눈동자 색상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종종 그들은 혼란스러워하고, 모른다고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 내가 3일 동안 볼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면 보고 싶은 것들!
The first day would be a busy one.
I should call to me all my dear friends
and look long into their faces,
imprinting upon my mind the outward evidences
of the beauty that is within them.
I should let my eye rest, too, on the face of a baby,
so that I could catch a vision of the eager,
innocent beauty which precedes the individual's
consciousness of the conflicts which life develops.
I should like to see the books which have been read to me,
and which have revealed to me the deepest channels
of human life.
And I should like to look into the loyal trusting eyes
of my dogs, the little Scottie and the stalwart Great Dane.
첫날에 바쁜 한 가지가 있죠.
전 사랑하는 친구들을 불럴거고,
그들의 얼굴을 오래 오래 볼겁니다.
그래서 그들 속에 있는 아름다움의 들어난
증거 하나 하나를 마음속에 새길 겁니다.
전 또 나의 눈을 아기의 얼굴 바라보면서 쉬게 할겁니다.
(그 속에서) 열정적이고,
순수한 미의 모습을 바라 볼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은 생명이 개발한 투쟁의 의식에 앞서는 있는 것이죠.
(헬렌 캘러가 이 말이 무슨 뜻으로 했는지????
아마도 아기 얼굴은 투쟁 의식이 생기기 전의
순수한 것이라고 본 것 같다.)
전 내게 읽혀진 책들을 보고 싶습니다.
그것들은 인간 삶의 깊은 모습들을 내게 드러내 주었읍니다.
그리고, 난 충성스러운 개들( 작은 스카티와
충실한 그레이트 단)의 눈망울을 보고 싶습니다.
In the afternoon I should take a long walk
in the cool woods
and fill my eyes on the beauties of the world of Nature.
And I should pray for the glory of a colorful sunset.
That night, I think, I should not be able to sleep.
오후에는 산산한 숲을 쭉 산책을 하고,
자연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눈에 담을 겁니다.
그리고, 화려한 노을의 영광 속에 기도할 겁니다.
그 날 밤 참으로 잠들기 힘들 것 같습니다.
The next day I should arise with the dawn
and see the thrilling miracle by which night is
transformed into day.
I should behold with awe the magnificent panorama
of light with which the sun awakens the sleeping world.
This day I should devote to a hasty glimpse
of the world, past and present.
I should want to see the pageant of man's progress,
and so I should go to the museums.
There my eyes would see the condensed history of the earth -
animals and the races of man pictured
in the native environment:
dinosaurs
and mastodons which roamed the earth before man appeared,
with his tiny stature and powerful brain,
to conquer the animal kingdom.
My next stop would be the Museum of Art,
I know well through my hands the sculptured gods
and goddesses of the ancient Nileland.
다음 날 전 여명과 함께 일어나 밤이 낮으로 변하는
쓰릴 넘치는 기적을 목도 할 겁니다.
태양이 잠자는 세상을 깨우는
거대한 빛의 파노라마를 감탄할 겁니다.
이 날은 세계의 역사를 서둘러 둘러 보는데
집중을 할겁니다.
인간 진화의 모습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전 박물관에 가고 싶습니다.
거기서 제 눈은 지구의 압축된 역사- 야생에
그려진 동물과 인류를 볼 수 있겠죠.
I have felt copies of Parthenon friezes,
and I have sensed the rhythmic beauty of charging
Athenian warriors.
The gnarled,
bearded features of Homer are dear to me,
for he, too, knew blindness.
So on this, my second day,
I should try to probe into the soul of man through his art.
전 판테온 모형을 느껴봤었고,
아테네 전쟁꾼들의 율동감있는
아름다움을 느껴봤습니다.
호머의 울퉁불퉁하고 수염텁수룩한 모습은 제게는 참 소중한 것이죠.
왜냐면 그 역시 눈먼 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니까요.
이날 나의 셋 째날, 전 그의 예술을 통해서
인강의 영혼 속을 탐구해 갈 수 있을 겁니다.
The thing I knew through touch I should now see.
More splendid still,
the whole magnificent world
of painting would be opened to me.
I should be able to get only a superficial impression.
Artists tell me that for a deep
and true appreciation of art one must educate the eye.
One must learn through experience to weigh the merits of line,
of composition, of form and color.
If I had eyes, how happily would I do so.
손으로 더덤어 알았던 것들을 이제는 볼 수 있습니다.
미술의 더욱 화려하고, 어마 어마한 전체 세계가
내게 열려질 겁니다.
나는 엄청난 감동에 사로 잡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예술가들은 깊고 진정한 감상을 위해서는 보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제게 말합니다.
경험을 통해서 선과 구성 모형과 칼라에서
중점을 두는 것(곳)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제가 눈을 가졌다면,
얼마나 행복하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The evening of my second day
I should spend at a theater or at the movies.
How I should like to see the fascinating figure of Hamlet,
or gusty Falstaff amid colorful Elizabethan trappings!
I cannot enjoy the beauty of rhythmic movement except
in a sphere restricted to the touch of my hands.
I can envision only dimly the grace of a Pavlova,
although I know something of the delight of rhythm,
for often I can sense the beat
of music as it vibrates through the floor.
I can well imagine that cadenced motion must be
one of the most pleasing sights in the world.
I have been able to gather something
of this by tracing with my fingers the lines
in sculptured marble;
if this static grace can be so lovely, how much more acute
must be the thrill of seeing grace in motion.
둘째날 저녁엔 전 극장이나 영화관에 가고 싶습니다.
헴릿의 환상적인 모습이나 온갖 색상의 엘리자베스 장식구들
가운데 머리 날리는 팔스태프를 보고 싶습니다.
전 손의 터치에서 저항으로 나타나는 세계를 벗어나서
율동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습니다.
바닥의 진동을 할 때에 음악의 율동을 종종 느낄 수 있기에
리듬의 경케함이 뭔지 좀 알지만 전 파블로바의
우아함을 희미하게 저는 짐작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전 율동적인 모션이 세상에서 즐거움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 중에 하나라는 것이
틀림이 없다는 것을 잘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제가 대리석 조각의 라인을 손가락으로 더덤으로
이것의 무엇인가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데, 이 고정된 것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다면,
모션속에서 세련미를 본다는
쓰릴감은 얼마나 생생 할까요?
The following morning, I should again greet the dawn,
anxious to discover new delights, new revelations of beauty.
Today, this third day, I shall spend in the workaday
beauty of men going about the business of life.
The city becomes my destination.
다음날 아침엔 난 다시 여명을 맞을 것이고,
미의 새로이 찬란함과 드러남을 갈망하게 될겁니다.
오늘은 이 세번째 날, 전 일상 일을 하러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에 하루를 보낼 겁니다.
First, I stand at a busy corner, merely looking at people,
trying by sight of them to understand something of
what makes up their daily lives.
I see smile and I am happy.
I see serious determination, and I am proud.
I see suffering, and I am compassionate.
첫째, 바쁜 코너에 서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을 일상의 삶을 만들어가는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모습 몹습을 살필겁니다.
전 미소를 볼 수있고, 행복합니다.
전 중요한 방향 볼 수 있고, 전 자랑스럽습니다.(???)
전 고통을 볼 수 있고, 전 안타까워 할겁니다.
I stroll down Fifth Avenue.
I throw my eyes out of focus,
so that I see no particular object
but only something kaleidoscope of color.
I am certain that the colors of women's dresses
moving in a throng must be a gorgeous spectacle of which
I would never tire.
But perhaps if I had sight I should be like most women -
too interested in styles to give much attention
to the splendor of color in the mass.
From Fifth Avenue I make a tour of the city
- to the slums, to factories,
to parks where children play.
I take a stay-at-home trip abroad by visiting
the foreign quarters.
Always my eyes are open wide to all the sights
of both happiness
and misery so that I may probe deep
and add to my understanding of how people work and live.
전 오번가를 가로질러 갑니다.
전 눈을 흐릿하게 뜨고 특별한 사물에 구에 받지 않고,
변화무쌍한 변화를 볼 겁니다.
군중들 속에서 움직이는 여성의 옷의 색체가
제가 한번도 실증을 낼 수 없는
고상한 모습일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아마도 제가 시력을 가졌다면,
저도 대부분 여성들 처럼 될겁니다.
대중 속에서 색채의 화려함에,
많은 주의를 주는 스타일에 관심을 많이 가질 겁니다.
오번가에서 슬럼가, 공장들,
아이들이 노는 공원으로 관광을 합니다.
전 외국 지방을 방문함으로 홈스테이 여행을 합니다.
항상 제 눈은 행복과 비극의 광경에 주의를 기울이고,
전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살아가를 이해하는가를
탐구 할 겁니니다.
My third day of sight is drawing to an end.
Perhaps there are many serious pursuits to which
I should devote the few remaining hours,
but I am afraid that on the evening of that last day
I should again run away to the theatre,
to a hilariously funny play, so that I might appreciate
the overtones of comedy in the human spirit.
At midnight permanent night would close in on me again.
Naturally in those three short days
I should not have seen all I wanted to see.
제 세째 날은 끝나 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남아 있는 얼마의 시간에 집중할
중대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날 저녁에 희극의 재미있는 연극,
극장에 다시 달려갈 겁니다.
그래서 인간 영혼의 과장된 코메디를 감상 할 수 있을 겁니다.
자정이 되어 영원한 밤이 나에게 다시 시작 되겠죠.
자연히 이 삼일의 짧은 날 속에 전 보고 싶은
모든 것을 볼 수는 없었을 겁니다.
Only when darkness again descended
upon me should I realize how much I had left unseen.
Perhaps this short outline does not agree with
the programme you might set for yourself
if you knew that you were about to be stricken blind.
I am, however,
sure that if you faced that fate your would use
your eyes as never before.
Everything you saw would become dear to you.
겨우 어둠이 다시 내게 덮쳤을 때에
얼마나 많은 볼 것들이 남았는지 깨닫겠죠.
아마도 이 짧은 글이
당신이 눈먼 사람이 되었을지 모른 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가정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러한 운명을 만났다면,
당신은 전에는 해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당신의
눈을 사용 할 겁니다.
당신이 본 모든 것이 당신에 소중한 것이 될 겁니다.
Your eyes would touch and embrace every person
and object that came within your range of vision.
Then, at last, you would really see,
and a new world of beauty would open itself before you.
I who am blind can give one hint to those who see:
use your eyes as if tomorrow you would be stricken blind.
And the same method can be applied to the other senses.
당신의 눈들은 당신의 시야에 있는 모든 사람,
사물들과 부딪히고, 포옹 할 겁니다.
그때 마침내 당신은 정말 볼 수 있고, 정말 아름다운
미의 세계가 당신 앞에 열릴 겁니다.
볼 수 없는 저는 볼 수 있는 이들에게 힌트를 드립니다.
내일 당신이 봉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속에서
당신의 눈을 사용하세요.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다른 감각들에 대해서도
적용이 될 수 있습니다.
Hear the music of voices,
the song of a bird, the mighty strains of an orchestra,
as if you would be stricken deaf tomorrow.
Touch each object as if tomorrow your tactile sense would fail.
Smell the perfume of flowers,
taste with relish each morsel,
as if tomorrow you could never smell and taste again,
make the most of every sense;
glory in all the facets of pleasure and beauty which
the world reveals to you through the several means
of contact which Nature provides.
But of all the senses,
I am sure that sight must be the most delightful.
보컬을, 새의 노래를,
오케스트라의 엄숙한 연주에 내일이면
귀가 먹을 수 있다는 생각속에 귀기울이 십시요.
내일이면 감각을 잃을 버릴 수 있다는 생각속에
사물들을 만져 보십시요.
다시는 맛고 냄새 맡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꽃의 향기 맡고, 모젤을 맛보십시요.
최선을 다해 감각을 느끼도록 하십시요.
자연이 제공하는 여러가지 접촉 수단을 통해서 세상에 드러내는
미와 즐거움의 면면에 영화 돌리십시요.
그러나 모든 감각 중에 보는 것이
가장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전 확신 합니다.
Only when darkness again descended upon me should
I realize how much I had left unseen.
Perhaps this short outline does not agree with
the programme you might set for yourself
if you knew that you were about to be stricken blind.
I am, however,
sure that if you faced that fate your would use
your eyes as never before.
Everything you saw would become dear to you.
겨우 어둠이 다시 내게 덮쳤을 때에
얼마나 많은 볼 것들이 남았는지 깨닫겠죠.
아마도 이 짧은 글이 당신이 눈먼 사람이 되었을지
모른 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가정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러한 운명을 만났다면,
당신은 전에는 해본적이 없는 방식으로 당신의 눈을 사용 할 겁니다.
당신이 본 모든 것은 당신에 소중한 것이 될 겁니다.
* 어쩌다가 이 글을 번역을 했는데,
태어난지 1년 8개월 밖에 되지 않아서 귀먹고 눈멀고,
말도 못하게 된 사람이 썼다고 생각을 하면
이해가 되는 부분도 많지만,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글이네요.
감동이 되는 부분도 있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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