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하나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 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시 읽기> 새/천상병
시월의 마지막 날, 조금쯤 쓸쓸하고 까마득한 하늘은 깊어 오늘은 「새」를 읽습니다. 이 시는 연두가 어여쁜 봄날에 쓰였을 것 같은데, 한 사람의 독자로 이 시를 떠올릴 때는 주로 가을입니다. 왜일까요. 태어난 모든 인간의 운명인 죽음이 그려져 있기 때문일까요. 한 마리 새가 노래하는 깨끗한 소멸의 이미지 때문일까요. 적당히 낙엽 구르는 가을날의 낭송이 좋습니다. 너무 낭랑하게도 아니고 아주 소리 없게도 아니고 입술과 혀를 조금씩만 달싹여 보일듯 말듯하게 시를 읽습니다. 천천히 세 번쯤 읽습니다. 그러면 음악이 들립니다. 으응, 뭐 그렇지,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고 살아서 나쁜 일도 있었어. 아무튼 이제는 나 하늘로 돌아가… 새가 돌아가는 곳은 하늘이니 자연스럽게 시인의 대표시 ‘귀천’과 오버랩 됩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 하리라”라고 말이지요. 욕심 없는 한 마리 작은 새 같던 천상병 시인은 1967년 동백림 사건이라는 조작된 간첩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고 풀려난 적이 있습니다. 지독했던 고문의 후유증과 영양실조로 거리에서 쓰러져 행려병자로 서울시립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하였지요. 그렇게 유신 독재가 짓밟아놓은 문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정신병원에 있는 사이에 유고시집 『새』가 발간되었답니다. 지인들은 사라진 그가 죽은 줄 알았던 거지요. 그렇게 천상병 시인은 살아서 유고시집이 발표된 희한한 이력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포악한 정치가 짓밟아 놓은 시인이었으나, 시인이었으므로 그는 결국 새장을 열고 날아오르며 노래합니다. 응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어. 그래 생은 아름다운 소풍이었어.
―김선우, 『어느 하루 구름극장에서』, 단비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