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5
신문 이야기
프랑스는 신문과 문학이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프랑스 신문이 문학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프랑스의 유명소설은
신문의 연재소설로 발표됩니다.(레미제라블 보봐리 부인 등
낭만주의 소설, 자연주의 소설 등, 문학사조를 이끕니다.
프랑스에 첫 일간지가 태어난 것은 1777년, 파리 신문이다.
신문 기사는 정치와 문학이 중요한 내용이다.
(프랑스 첫 신문은 가제트 지 이다.)
프랑스 대중매체의 역사
1) 제 1 기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가 먼저 나타났고, 대표적인 것이 신문이다.
다음이 대중잡지 이다.
샤를 10세(제2왕정 – 나폴레옹 몰락 뒤에 온 왕정)가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자 대중들이 저항하면서 일으킨 봉기기 1830년의 7월 혁명이다.
2) 2기는 1860년 대의 대중잡지가 나타난 시기이고
3) 3기는 1930년 대의 영화와 텔레비전이 나타난 시기이다.
*프랑스 저널리즘은 영-미와는 차이가 있다.
1) 문학과 정치를 주로 다루었다.(문학을 다룬 것이)
2) 제 2왕정(나폴레옹 몰락 이후) 시대부터 전문분야의 소식지가 유행한다. 전문적인 저널리스트(기자)가
활동하였다. 이들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꾀했다.
--> 이때 영-미의 저널리즘은 뉴스와 보도 중심이었다.
(발행부수가 엄청났다.)
특히 미국의 뉴스와 보도는 비평중심으로 펼쳤다.
(뉴욕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 지)
(정치계가 신문의 위력을 알고부터 신문의 과장, 가짜 뉴스가 등장)
3) 프랑스 신문은 발행 부수가 많지 않다.(보통 10만 부 정도)
그러나 문학이 중요한 역할을 했고, 문학의 흐름을 이끌었다.
19세기 후반의 자연주의 문학으로
문학기사 — 비평기사와 논쟁기사 쪽으로 흘러갔다.
프랑스 신문은 전체 논조가 그 방향(비평)으로 흘러갔다.
1850년 대 이후에
저널리스트(기자)가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를 잡는다. 기자는 주로 작가 내지 문학인이었다.
-->작가에게 신문은 성공의 수단이다. 신문에 실리는 글을 통하여 인기를 얻는다.
이때의 신문은 기자가 쓴 기사로 꾸미기 보다는 기고문(원교료주고)으로 꾸몄다.
작가의 글은 신문이 구독자 확보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연재 소설이 인기가 있으면 구독자가 확 늘었다고 한다.(레미제라블)
===>이후에 보도 기사와 문학적 요소가 혼합하여 독자를 유혹했고
-->사건기사를 전문으로 다루는 기자라는 사람이 태어났다.
(뉴스 중심의 보도 기사는 영-미 신문의 경향이다.)
연재소설 -- 대중의 심리를 잘 읽어야 연재소설이 성공했다.
신문 연재소설
신문 연재소설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부유하고 수준 높은 독자층을 위한 배려도 필요했다. 지식층을 위한 고급 산문을 사용하는 신문도 있었다. 르 피가로 지는 지식층을 독자로 하는 대표적인 신문이다.
신문소설을 시작한 작가로는 발자크를 꼽는다. 1829년에 신문에 소설을 연재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이때 작가는 원고지 글 1행(行) 당 1.25프랑을 받았고, 약 5000행의 글을 썼다. 대중의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연재소설은 주로 멜로드라마라는 비평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멜로물이지만 산업사회를 겪으면서 변화하고 있는 프랑스 사회를 나타낸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신문 연재소설에 삽화를 그려 넣으므로 미술에 ‘삽화’라는 장르가 탄생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인기 있는 작가의 원고료도 하늘 높이 치솟았다. 빅톨 위고는 레미제라블로 30만 프랑을 받았다고 한다.(레미제라블도 원고료를 더 받으러 쓸데 없는 이야기를 삽입하여 전체의 길이를 질질 끌었다고 한다.)
외젠 쉬(1804 –1857)
초기의 신문 연재 소설가로 인가가 높았다. 해군의 의사로 근무하여, 자기의 경험을 살린 글, 그리고 역사 소설로 인가를 끌었다. 멜로드라마로 인기가 높았던, 대표적인 신문연재소설 작가이다. 저급한 멜로드라마라는 평도 들었지만, 산업혁명을 겪고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을 잘 나타냈다는 평도 들었다.
지식인을 독자로 둔 르 피가로 지는 정기적인 문학비평을 실어서 작품을 해설하고, 독자에게 안내도 했다. 이로서 연재소설에 문학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예술의 셰계를 보여주었다.
연재소설이 사교계에 잡담용 자료를 제공했다. 사교계에 잡담의 대상이 되려면 사교계 취향과도 맞아야 했다. 잡당 용이라면 이야기꺼리을 많이 제공해는 사건이 단연 인기가 많았다.(요즘의 우리나라라면 김은경의 노인 폄하 발언에서 가정사로 이어지는) 실제의 사건은 소설이기보다는 다큐적인 형식에 가깝다. 신문의 보도 내용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연재 소설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 이야기가 들어옴으로, 연재소설과 잡보(雜報-보도된 시시한 사건)가 유사하게 되었다. 이로서 신문의 머리 기사와 연재소설이 서로 연관성을 가지게 되었다.
(신문기사의 머리글은 독자의 관심을 끌려는 문구를 선택한다.)
연재소설이 독자의 의식에 영합하다 보니 항상, 악한 자와 선한 자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악한 사업가도 있고 선한 사업가도 있다. 악한 노동자도 있고, 선한 노동자도 있다. 일반적인 대립구도는 악한 사업가와 선한 노동자가 많았다.
여성들이 연애소설을 잡담의 화제로 삼았고, 남성 독자는 정치 이야기를 더 많이 하였다.
신문에 기자라는 직업이 생겨나면서 문학인이 기자가 되었다. 이들은 르포와 소설을 뒤섞었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범죄가 탐정소설의 소재로 결합시키므로 저널리즘과 문학적인 사고방식을 연결시켰다.
1880년대가 되어서 —르포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신문도 약간의 위법은 처벌을 면해 주었다.(언론은 정치적 문제로 탄압이 들어왔으므로)
이때부터 신문기자라는 확고한 직업인이 나타났다.
----> 이렇게 하여 오늘의 신문으로 바뀌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