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혁명의 핵심 세력(2)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던 유대인 知識人들은 소련 공산당 요직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니콜라이 예조프 비밀경찰대장은 1,710,000명(대전+춘천 인구)을 구속했으며, 이중 724,000명(부천시 인구)을 총살시켰다. 예조프는 유대인이었다.
AD70년 8월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파괴된 이후 유대인들은 유럽 각국을 떠돌았다. 13세기에는 영국에서, 14세기에는 프랑스에서, 15세기에는 스페인에서, 16세기에는 이탈리아에서 추방당했다.
특히 솔로몬 왕 시대부터 교역이 있었던 스페인으로 많이 이주했다. 유대인들은 글을 읽고 쓸 줄 알았기 때문에 스페인의 국가 요직을 차지하기 시작했으며, 유통과 무역을 통해 시장경제도 장악하기 시작했다.
1492년 8월 스페인 세비야 항구에서는 콜럼버스 선단이 신대륙 항해를 위한 출항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러나 옆 항구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배에 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었다.
이슬람을 쫓아내고 스페인을 통일한 이사벨 여왕이 유대인들에게 “가톨릭으로 개종”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거부하는 자들은 화형이나 교수형이나 투옥을 당했다. 명분은 종교문제였지만 속셈은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하는 데 있었으며 17만명의 유대인들이 스페인을 떠났다.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들여온 막대한 자원으로 富國을 이루었지만, 속으론 골병이 들어가고 있었다. 유대인들이 쥐고 있었던 금융과 유통망이 붕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유대인들이 떠난 지 반세기 만에 스페인은 국가부도(1557년)를 맞으며 최 강국에서 2류 국가로 전락되고 말았다.
각국에서 심한 박해를 받았던 유대인들은 우호적인 러시아로 많이 흘러 들어갔다. 그러나 땅이 없었던 그들은 러시아 지주들에게 억압당했다.
그 정점기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카를 마르크스였다. 그는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며 고민했다. 할아버지가 랍비였기 때문에 그는 토라(모세오경)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다”(신10:14)를 “땅의 주인은 국가다”로 바꾸면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를 통해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세상”... 이거야말로 파라다이스가 아닌가? 이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열광했으며 너도나도 볼셰비키 혁명에 가담했다.
공산혁명의 3인방인 마르크스, 레닌, 트로츠키는 모두 유대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공산혁명의 주체세력 대부분은 유대인이었다. 그들은 차별 없는 세상에 열광했으며 지주들을 처형하는 데 앞장섰다.
p.s.
現 이스라엘의 키부츠 농장(공동생산과 공동분배)은 소련에서 이주해온 유대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