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뜨거운 시 / 김승희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 위에서 달걀의 흰자위와 노른자위가 익어가고 있다는 것이 시가 될까 펄펄 끓는 프라이팬에 달걀을 깼을 때 갑자기 털이 몇 가닥 붙은 병아리 한 마리가 앗 뜨거워 앗 뜨거워 가녀린 두 발을 번갈아 밟으며 지글거리는 프라이팬을 뛰쳐나왔다고 해야 시가 되겠지 많이 무서웠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런 시 그 뜨거운 무쇠 프라이팬에서 두 발을 번갈아 밟으며 간신히 도망쳐 나온 눈도 못 뜬 노란 병아리 반투명한 양막을 뒤집어쓰고 앗 뜨거워 앗 뜨거워 인생을 알기 전에 화상부터 입었네 온통 불붙은 세계의 스크린이 얼떨떨한 그런 시 양막은 포유류의 태아를 싼 반투명의 얇은 막 그럼 병아리가 포유류야? 포유류였어? 닭이 젖을 먹였어? 뜨거운 프라이팬 위에서 병아리가 젖을 먹었나? 닭이 젖꼭지를 물렸나? 그림은 자비롭지만 닭이 포유류가 아니니까 시가 되지 시는 그런 거지 그런 시 이 액체의 정체성 금방이라도 머리카락 줄줄 흐르는 물에서 소복 입고 머리 푼 여인이 나올 것만 같은 그런 시, 지글거리는 프라이팬에 물이 뚝뚝 떨어지고 하얀 수증기에 살이 익어가는 고통 시인은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웃고 있어 맥락이 끊어진 뼈의 고통 전신 화상으로 수포가 벌떼처럼 일어나 두개골 속에 하얀 찔레꽃이 무더기무더기로 피어나네 그렇게 도발적인 것이 있어 그저 어안이 벙벙한 우연 돌발성의 황홀이라는 것 거대한 윤회의 바퀴가 돌아가다 끊어져 전복되고 굴러가니 그런 것이 시인 그런 시
- 시집 『빵점 같은 힘찬 자유』 (창비, 2026.01) -------------------------------
* 김승희 시인 1952년 光州 출생. 서강대 영문과 졸업 및 동 대학원 국문과 박사. 1973년 〈경향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희망이 외롭다』『도미는 도마 위에서』『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빵점 같은 힘찬 자유』등. 소설집 『산타페로 가는 사람』 산문집 『33세의 팡세』『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등 소월시문학상, 올해의 예술상, 한국서정시문학상 등 수상 현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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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어진 프라이팬 위”에서 익어가는 달걀에는 극적인 격정도, 환상적인 풍경도 없으므로, 이 정황을 미사여구나 기교를 통해 강조하는 석은 작위적인 시도일 뿐이리라. 하여 시인은, 그저 일상과 바짝 맞닿은 풍경을 응시한다. 응시하면서 되묻는다. 이것이 “시가 될까”.
이와 같은 물음으로부터 우리가 추출할 수 있는 것은, 시가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태어난다는 오래된 믿음이다. 자폐적인 독백과 장난스러운 유머, 기이한 환상의 탈을 쓴 고통이 시의 기저에 흐르고 있었음을 독자는 부정할 수 없다. 시는 줄곧 고통을 견디는 인간의 동료였으므로, 다시 말하자면, “고통과 아픔 속에서 누런 보리밭 속에서 나의 시는 무르익”(「너와 나의 보리밭」), 하여 시인은 부엌의 평화를 다만 평화로 둘 수 없다. 이 세계에 너무나 많은 슬픔과 죽음이 있거니와, 그것들을 절제한 후 평화만을 남긴 것을 ‘일상’이라고 칭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여 “갑자기 털이 몇 가닥 붙은 병아리 한 마리”가 “지글거리는 프라이팬”에서 뛰쳐나오는 광경으로 인해 시는 함의의 층위를 넓힌다. “인생을 알기 전에 화상부터 입”어버린 병아리의 당혹스러움이 반복되는 참사와 전쟁, 죽음의 소식을 받아 보는 우리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음이다. - 신은조 (문학평론가). 2025년 〈서울신문〉신춘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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