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6일(금)
* 시작 기도
주님...
사울이 왕이 되고난 후에 암몬의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침공하였습니다.
이 때 그들을 구해줄 사람이 없을 때 사울이 그들을 구원해 주었습니다(삼상 11장).
이 은혜를 기억했던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블레셋에 의해서 죽임 당함을 알고 밤새도록 가서 벧산 성벽에 못 박혀 있던 사울을 내려다가 장사해 주었습니다(삼상 31장).
40년 전에 사울에게 받았던 은혜를 그들은 이렇게 갚았습니다.
주님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받은 나는 우리 주님께 어떻게 그 은혜를 갚을 수 있는지요?
물론 내가 무엇으로 주님께 그 은혜를 갚을 수 있으리요마는 오늘 이 시간 주님 앞에서 나 자신의 의로 행하려는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주의 보혈로 나를 씻는 것이 가장 기본임을 믿습니다.
이 종을 불쌍히 여기사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이 하루도 주님 때문에 살게 하시며 주님의 주신 그 생명의 복음을 널리 전하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주님께 받은 은혜를 눈에 보이는 형제에게 행하는 것이 주님께 하는 것임을 믿고 이웃의 형제에게 사랑을 행하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요일 4:20-21).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느 4:1-14
제목 : 말씀묵상은 영적 예루살렘 성벽을 쌓는 일과 같다.
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5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8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11 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육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12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13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 나의 묵상
3장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데 함께했던 공로자들의 명단을 대제사장 엘리아십을 필두로 해서 기록했다면 4장부터는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에피소드를 기록하고 있다.
산발랏은 유대인들이 성벽을 건축한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화를 내며 아래와 같이 그들을 비웃고 조롱하였다.
그리고 자기 친구들이나 사마리아 군대에게 말하기를 “이 힘없는 유다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이러는 거야?, 스스로 강하게 하려고 성벽을 쌓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초자연적인 힘으로 성벽을 쌓으려고 하는가? 이들이 무모하게 이 큰 공사를 하루 만에 완공할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저들이 성벽을 쌓을 돌도 없으면서 이미 불에 타서 쓸 수 없는 돌을 흙무더기 속에서 끄집어내어 쓰려고 하는가?”
또 암몬 사람 도비야는 이들을 조롱하기를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질 것 같다”고 하였다.
산발랏과 도비야의 이러한 조롱과 방해작업에 대하여 느헤미야는 위축되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한다.
“우리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우리는 지금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욕하는 것이 오히려 그들 머리로 돌아가서 이방에 사로잡혀 노략거리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들의 허물을 가리지 마시고, 그들의 죄를 없애지 말아 주십시오. 내가 이렇게 기도하는 이유는 그들이 성벽을 건축하는 우리 앞에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도 후에 유대인들은 성벽을 건축하는 일에 매진하여 성이 처음부터 끝까지 절반 정도의 높이로 모두 연결되었다.
한편 산발랏 도비야 그리고 아라비아 사람들 암몬 사람들 아스돗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벽이 세워져 간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작당을 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곳을 공격하고 혼란에 빠트리자고 하였다.
느헤미야는 그들의 계획을 알고 또 하나님께 기도하였으며 유대인들로 하여금 파수꾼을 세워 밤낮으로 경비를 섰다.
그런데 유대인들 사이에 불평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아무리 일을 해도 흙더미가 태산과 같이 많은데 이제 우리는 지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다 사방에 있는 대적들은 유대인들 모르게 쳐들어와서 우리를 죽이고 성벽 공사를 못하게 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유다 변방, 즉 대적들과 가까이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성벽을 쌓고 있는 사람들에게 열 번씩이나 와서 자기들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였다.
그 때 느헤미야는 종족별로 몇 사람씩 뽑아서 그들에게 칼과 활과 창을 주어 성벽 뒤에 있는 낮고 평평한 곳에서 지키도록 하였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그 주변을 살펴보고 난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귀족들과 관리와 백성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주님은 지극히 크고 위대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고 여러분의 형제와 자녀와 가정을 위하여 싸우십시오.”
느헤미야와 유대인들이 하는 성벽 재건 공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며, 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하나님의 일이다.
이런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도 원수들의 대적은 끊임이 없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도,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대적하는 원수와 싸우는 일도,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매일 주의 일을 한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일은 영생이다.
창세전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 아들과 하신 약속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을 만들어 그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이었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바로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고, 육신을 입고 오신 아들은 자나 깨나 아버지의 명령을 이루기 위하여 일하셨다.
그것이 바로 영생이다.
(요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이제 아버지와 아들의 뜻이며 명령하신 그 영생을 나는 이 땅에서 맛보고 누려야 한다.
그 영생은 다름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것이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또한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전제된 것이요, 그리고 이 만남이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격적인 만남과 만남의 지속, 이것은 매일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매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만나도 만나도 또 만나고 싶은 것이 연인이라면, 이 세상에서 최고의 연인은 주님과의 관계이리라.
이처럼 내 최고의 연인인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다름 아닌 말씀을 통한 만남이다.
말씀 묵상은 주님과 교제와 사귐을 갖는 것이며 또한 그 만남을 매일 지속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쌓는 일과 다름 아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벽을 쌓다보니 생각도 못한 복병들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성벽 재건 공사를 처음부터 방해했던 산발랏 도비야 게셈과 같은 사람들이야 차치하고라도, 유대인들 중에서 대적들의 방해로 인하여 손에 힘이 풀려 낙심하는 자들이 나오는가 하면, 파고 또 파도 줄어들지 않는 태산과 같은 흙더미를 보면서 또한 절망하는 자들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영적 예루살렘 성벽을 쌓는 말씀 묵상은 주님과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사귐과 교제이며 이는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이 바로 영생의 삶이요 또한 주님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만남을 지속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게으름과 나태함, 분주하여 시간에 쫓기는 바쁜 일들, 쉬고 싶은 마음, 고단하고 피곤함, 다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
이런 것은 사탄이 주는 마음일 수도 있고, 거기에 마음이 녹아 힘이 빠져서 오늘 하루는 쉬자고 할 수도 있다.
어찌됐든 주님의 뜻인 영생의 삶을 사는 것은 영적 전쟁이다.
물론 말씀 묵상을 하지 않아도 하루를 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힘과 은혜가 아닌 나의 의로 살게 되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주님과 말씀으로 교제하니 내 심령이 평안과 기쁨이 솟아난다.
이것은 의무가 아니라 기쁨으로 하는 것이다.
물론 때로는 의무감에서 시작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묵상을 마칠 때는 항상 하늘의 기쁨으로 샘솟는다.
신실하신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하늘의 기쁨은 곡식이 풍성할 때보다 더 하다.
돈이 넉넉하게 있으면 뿌듯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기쁨은 아니다.
언젠가 사라질 기쁨은 하늘의 기쁨(Joy)이 아니라 땅의 즐거움(fun)에 불과한 것이다.
오늘 나에게 이 하늘의 기쁨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감사하고 또 사랑합니다.
게으름과 나태함이 나를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려하지만, 정신을 차려 말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심도 주님이 주신 은혜임을 믿습니다.
말씀 묵상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 은혜와 기쁨을 맛볼 수 있겠습니까?
하루라도 주의 영광을 보지 않는 것은 곧 내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며 영생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나이다.
대적이 끊임없이 나를 두르고 진을 치려고 할지라도 거기에 항복하지 않고 손을 들어 대적하며 싸워 승리할 수 있도록 날마다 힘을 더하여 주소서.
원수 대적과 싸우는 영적 전쟁은 총칼로 싸우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하나님 앞에서 빈 손 들고 나아갈 때 그 빈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려주십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어느새 하나님의 지팡이로 바뀌어 있는 것을 봅니다.
이는 나의 뜻과 의를 내려놓을 때 가능하오니 이 하루도 주님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오늘도 주의 크신 은혜를 기대하고 소망하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