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끔찍함에 기가 질려...
열왕기하 3;12-27
시 작 기 도
주님이 내 속에서 흐르도록 하신 그 생명이 샘물에서 시냇물 그리고 큰 강물처럼 흐르도록 나를 새롭게 하소서. 나에게 집중하여 나를 바라보지 말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오직 내 안에 계신 주님께 마음을 향하도록 생명을 부으소서. 그 생명이 자라서 풍성하게 하소서. 내 삶이 참 예배가 되고 주님의 얼굴을 구하며 그 뜻과 목적을 찾아 나서게 하소서.
본 문 요 약
엘리사는 물이 떨어져 더 이상 군대를 이끌 수 없는 세 왕에게 말하였습니다. “여호사밧왕을 봐서 그렇지 여호람 왕을 염두에 두지도 않고 얼굴을 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거문고로 음악을 타게 하니 주님의 권능이 엘리사에게 내렸고 예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와디(NRSV. 평소에 말라있는 강줄기)에 물이 가득차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바람도 비도 보지 못하고 그렇게 될 것이다. 너희와 가축과 짐승이 다 먹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은 주님 편에서 너무나 가벼운 일입니다. 주님이 모압을 임금님들의 손에 넘기셨고, 모든 주요 성읍들을 치시고 모든 좋은 나무들, 샘물들, 옥토를 망쳐 놓을 것입니다.”
그 다음 날 아침 제물을 드릴 때에 몰이 에돔 쪽에서 흘려서 그 땅을 물로 가득 채웠습니다. 다른 한 편, 모압 사람들은 여러 왕들의 전쟁에 대비해서 모든 싸울만한 사람을 다 동원해서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아침에 그 물을 보고 또 그 곳에 해가 비치니 그것이 온통 피바다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 왕들이 서로 싸우다가 피를 흘린 것이로 오판하고 모든 군대가 약탈하려고 달려들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연합군이 그들을 무찔렀고, 모압 땅의 한 복판 길라헤셋까지 진격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주요성읍, 좋은 나무들, 샘물들, 옥토를 다 망쳐 놓았습니다.
그러자 모압왕은 칼 잘쓰는 700명을 이용해 에돔 왕쪽으로 돌파하려 했으나 실패하였습니다. 결국은 그는 왕위를 이을 장자를 죽여 성벽위에서 번제로 (그모스)신에게 바쳤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것에 크게 당황하여 돌아가버렸습니다.
본 문 의 뜻
(-주요성읍과 나무와 샘과 옥토를 망칠 것이라는 예언은, 신명기 20.16-18에 보면 가나안 땅의 족속들을 진멸하여 바칠 때에는 숨쉬는 것을 모두 없애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목적은 그들의 우상숭배와 악행을 본받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아마도 모압도 단순히 복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진멸하는 수준까지 공격해서 그들의 우상숭배와 악행을 처리하는 것을 바라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와디’는 중동의 건조한 사막지역의 마른 강줄기 자국이자 계곡입니다. 평소에는 말라있으나 비가 오면 모든 물이 모여서 흐릅니다.
-왕이 될 장자, 자기 아들을 번제로 그모스 신에게 바쳐버린 그 행위는 정말 끔찍한 장면입니다. 그 행위에 하나님이 응답하여 이스라엘에 진노를 내린 것은 아닐테고, 아마도 이스라엘 연합군의 그 행위에 질려버렸고, 모압의 군대가 그 광경을 보고 크게 분노하며 괴력을 부리며 달려드는 것을 보고 전의를 상실하고 떠난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에게는 주님이 흘려 보내신 물이 생명을 살리는 물이지만, 모압에게는 그것은 살육의 피로 보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주님께 번제를 드리고 모압은 그모스신에게 번제를 드립니다. 이스라엘은 양이나 염소를 드렸지만 모압은 자기 아들을 잡아 바쳤습니다.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장면입니다.
엘리사는 여호람 왕이 주님 앞에 악한 것을 꾸짖고 있고(그가 주님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하니 주님도 그의 얼굴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엘리사가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 여호사밧왕도 큰 믿음으로 주님께 주도권을 드리고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물이 떨어진 곤란한 상황에 좌절하여 믿음을 잃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우상숭배와 그에 따르는 죄악을 몰아내고 가나안 땅을 비롯해서 모든 민족들이 주님께 돌아와서 ‘샬롬’을 누리기를 목적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연합군은 여기에서 성공한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극렬한 우상숭배에 기가 질려서 사명을 포기하고 돌아옵니다.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그 땅을 점령하는 듯 하였으나 그 강한 우상숭배자들의 ‘결기’에 질려버려서 그들에게 주님의 뜻을 행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땅과 그 안에 있는 것들만 손을 좀 대었을 뿐입니다.
주님의 자녀들에게는 생명이 마귀와 그를 따르는 세력에게는 죽음으로 다가옵니다. 마지막 그 날이 가까울수록 점점 더 거세게 저항하며 주님과 그 나라에 대적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제 본 것과 같이 이스라엘과 유다는 진정한 언약신앙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혼합신앙, 유사신앙으로 살며 주님의 뜻과 목적을 이룰 힘이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런 혼합신앙을 품고 마지막 때에 주님의 뜻과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참 예배와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는 그 생명이 흘려 넘쳐 죄와 사망의 세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생명의 물이 그들에게는 사망과 멸망은 신호이므로 끝까지 사력을 다해 저항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그 날을 기다리는 우리는 주님과 영원한 사랑의 언약관계 안에 깊이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신앙은 참된 예배로 나타나고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생명을 얻고 자라 풍성하게 열매 맺지 못하고 마귀와 죄악의 세력의 끔찍하고 참혹한 저항에 질려서 비겁하게 물러나고 말 것입니다.
말라버린 생명의 강도 큰 강물의 물결로 바꾸실 수 있는 원천인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 의 묵 상
(비참함) 주님과 온전한 언약관계 안에 머무르지 못했습니다. 주님을 영으로 예배하고 자신을 드리지 못햇습니다. 내 삶은 주님의 얼굴을 구하고 찾지 않았습니다. 그 원인은 혼합신앙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신 생명을 흐르지 못했고 흐른다 하더라도 악마와 그 세력의 저항에 물줄기가 멈추었습니다. 그 결과는 그 악마와 세력의 기에 질리고 눌려서 비굴하게 살았습니다.
(구원)그러나, 주님은 말라버린 강, 생명없는 인생에 큰 강물을 일으켰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죽음과 장자됨, 부활과 주님의 나타나심은 바로 나에게 임했습니다. 나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새생명을 받았고 주님이 나타나셔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내 속에 생명의 강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귀와 죄악의 세력에게는 큰 두려움과 멸망의 표입니다. 주님께는 이것이 쉽습니다. 나는 그 주님과 그 언약안에 머무릅니다.
(아버지품) 예수님 안에서 주님 품에 거합니다. 주님이 주신 생명의 샘이 흘려나와 강물처럼 흐릅니다. 그것이 우상숭배와 죄악의 세상을 덮어버립니다
기 도
생명을 부어시고 더 풍성하게 부어주소서. 목마른 영혼에, 와다에 큰 물이 흐르듯, 주님의 생수를 부으소서. 귀와 그 죄악의 세력을 이기는 생명의 풍성함을 부어주소서. 뒤로 물러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모든 교회들에게 주님의 생명수를 부어 흘러 넘치게 하소서. 우상과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그 생명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이 자식까지도 바치며 섬기던 우상을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소서.
생 명 일 기 (9월 5일 목)
운전하면서 듣던 라디오를 어느 새인가 끄고 있습니다. 그냥 앉아서 받아들이기만 하면 주님이 주신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자라도록 하는 일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시간에 주님이 이름을 한 번이라도 더 부르고,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찬송을 불러 봅니다. 학업과 성적에 큰 진보가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찾아서 공부하는 법을 터득하고 익혀야 합니다. 가만히 듣고 이해하고 넘어가면 실용할 수 있는 지식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심지어 신자들로부터도 죄악과 악행을 보니 나도 부정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회사에서 그들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서 참 괴롭습니다. 다 떠나서 지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지요. 오직 이 부정성을 주님의 십자가에 올려 드립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이 심판하심을 믿고 나는 내 길을 걸어가게 거기서 신경을 끄는 법을 배우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