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wing Me Knowing You - ABBA No more carefree laughter 활착핀 웃을을 짓는 사람이 더이상 없군요 Silence ever after 오랜 침묵 이후에 Walking through an empty house tears in my eyes 빈 집을 걸어들어 가면서 내 눈엔 눈물이 고여있어요 Here is where the story ends this is goodbye 이곳에서 이렇게 끝나는군요 이게 이별인가봐요 Knowing me knowing you 날 찾아보세요 난 당신을 찾을 테니까 There is nothing we can do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Knowing me knowing you 날 찾아보세요 난 당신을 찾을 테니까 We just have to face it this time we're through 우리 그냥 부딪겨야해요 이젠 우린 끝이에요 Breaking up is never easy I know but I have to go 헤어진다는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그치만 가야한다는 것을 잘 알아요 Knowing me knowing you it's the best I can do 날 찾아봐요 난 당신을 찾고 그게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에요 Mem'ries, good days, bad days 추억들, 좋은 날들, 힘든 날들 They'll be with me always 그것들은 항상 나와 함께 할겁니다 In these old familiar rooms children would play 이 오랜 가족들이 살던 방 어린이들이 뛰어 놀던 방 Now there's only emptiness nothing to say 이젠 빈 공간만 남아 있어요 아무말도 없이 Knowing me knowing you 날 찾아보세요 난 당신을 찾을 테니까 There is nothing we can do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Knowing me knowing you 날 찾아보세요 난 당신을 찾을 테니까 We just have to face it this time we're through 우리 그냥 부딪겨야해요 이젠 우린 끝이에요 Breaking up is never easy I know but I have to go 헤어진다는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그치만 가야한다는 것을 잘 알아요 Knowing me knowing you it's the best I can do 날 찾아봐요 난 당신을 찾고 그게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에요 Knowing me knowing you 날 찾아보세요 난 당신을 찾을 테니까 There is nothing we can do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Knowing me knowing you 날 찾아보세요 난 당신을 찾을 테니까 We just have to face it this time we're through 우리 그냥 부딪겨야해요 이젠 우린 끝이에요 Breaking up is never easy I know but I have to go 헤어진다는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그치만 가야한다는 것을 잘 알아요 Knowing me knowing you it's the best I can do 날 찾아봐요 난 당신을 찾고 그게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에요 멤버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만든 [ABBA(아바)] 스웨덴의 생선 통조림회사 이름과 같았으나 그들이 허락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ABBA]의 네 구성원은 하나로 뭉치기 전부터 스웨덴에서는 알아주는 스타들이기도 했다. 우선 기타리스트 [Björn Ulvaeus(비요른 울배우스)]는 포크 밴드인 [West Bay Singers(웨스트 베이 싱어스)]를 거쳐 [Hootenanny Singers (후트내니 싱어스)]의 멤버였었고 같은 1945년생인 [Benny Andersson(베니 앤더슨)]은 스웨덴의 [Beatles(비틀스)]로 불린 그룹 [Hep Stars(헵 스타즈)]의 베이스 주자로 활약했다. 1966년 우연히 파티장에서 만난 두사람은 이후 간헐적으로 함께 일하기 시작했고 1969년 각각 [Agnetha Fältskog(아그네사 펠츠콕)]과 [Anni-Frid Lyngstad(애니 프리드 링스태드)]를 만나게 되면서 공동전선을 펴기에 이른다. 유일하게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2살때 스웨덴으로 이주해 온 [Anni-Frid Lyngstad]는 13살 때 이미 댄스 그룹의 리드 싱어로 나서 장래의 남편인 [Benny Andersson]을 만나기 전까지 일본, 베네수엘라등 국제 무대에 출전, 명성을 쌓았다. 탁월한 각선미의 [Agnetha Fältskog]은 스웨덴판 록 오페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마리아 막달레나 역을 맡아 [I Don't Know How To Love Him(주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를 부른 인기 가수였다. 1971년 [Björn Ulvaeus]와 결혼한 [Agnetha Fältskog]의 첫 아이 출산 예정일은 하필 1973년 2월 23일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출전 티켓을 따기위한 스웨덴 본선 당일이었다. 팀 동료 [Benny Andersson]의 약혼녀인 [Anni-Frid Lyngstad]가 부랴부랴 [Agnetha Fältskog]의 노래 파트까지 연습해 만일을 대비해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 출산이 늦어져 무사히 [Agnetha Fältskog]은 무대에 올라 [Ring Ring]을 부를수 있었다. 이 네사람의 그룹 [ABBA]는 이날 3위에 그쳐 스웨덴 대표가 되지못하는 고배를 마시지만 온전히 출산할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일이 잘 풀려나갈 것임을 암시하는 징조였다. 그같은 길조는 당장 이듬해에 현실로 나타났다. 마침내 [Waterloo]라는 노래로 1974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출전하여 32개국의 5억 TV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20대 1의 경쟁을 뚫고 당당하게 그랑프리를 차지한 것이었다. [Waterloo]는 순식간에 영국 및 유럽에서 밀리언셀링 싱글이 되었다. 이후 [ABBA]는 마치 천운을 타고난 그룹인듯 발표하는 싱글마다 차트 상위권으로 치솟아 영국 차트에서는 18주 연속 톱 10싱글을 기록했고 그중 9곡이 1위에 등극하는 눈부신 히트 퍼레이드를 펼쳤다. 이 9곡의 넘버원 기록은 역사상으로 [Beatles], [Elvis Presley(엘비스 프레슬리)], [Cliff Richard(크리프 리챠드)] 셋만이 장식한 대단한 기록이었으며 이로써 [ABBA]는 70년대에 가장 레코드를 많이 판 그룹이라는 타이틀을 안게 됐다. 1978년까지 4년간 [ABBA]의 레코드 판매량은 세계적으로 무려 5천 3백만장에 달했다. 1977년 연간 소득이 110억원을 기록, 스웨덴의 자랑 볼보자동차 회사의 총판매고 90억원을 제치고 1위 기업으로 부상할 정도였다. 그들의 인기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을 넘어 지구촌을 덮었다. 터키, 이스라엘에서도 음반 판매량 1위였고 호주 사람 4명 가운데 하나가 1976년 앨범인 [ABBA] 히트곡집을 갖고 있었으며 심지어 소련의 암시장에서도 그들의 LP가 130달러의 고가(당시 LP 한장 가격은 8달러)로 거래되었다. 극동지역에서도 인기는 막강해 우리나라의 경우만 하더라도 한 앨범에서 보통 4곡 이상이 방송과 다운타운가를 뒤덮었다. 1978년 앨범 [The Album]의 미국 히트 싱글은 [The Name Of The Game], [Take A Chance On Me] 두 곡이었지만 국내에서는 [Eagle], [Move On], [Thank You For The Music]도 덩달아 팝송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ABBA]는 결코 운으로 먹고산 팀은 아니었다. 그들은 대중의 환호를 독점할 만한 충분한 재능이 있었다. [ABBA]의 모든 곡들은 출중한 작곡 실력을 보유한 남성 멤버 [Benny Andersson]과 [Björn Ulvaeus]가 매니저이자 폴라 레코드사 사장인 [Stig Anderson(스틱 앤더슨)]과 함께 썼다. 그들의 음악이 이윤의 지상 명령에 따라 팝 시장을 요리하기 위해 혈안이 된 음악업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체 생산 이라는 점은 주목할만 했다. [Benny Andersson]과 [Björn Ulvaeus]가 제조해 낸 [ABBA]의 경쾌한 [Bubble Gum] 음악은 당시로 볼 때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자랑하며 누구나 듣기에 좋고 춤추기에도 안성맞춤인 곡들을 뽑아내 70년대 초,중반에 세력을 떨친 헤비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록의 시끄럽고 복잡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단순한 음악을 바라는 수요층이 폭넓게 존재하고 있음을 입증하였다. 1978년에 뉴스 위크지는 [ABBA]의 [Antiseptic(부패되지 않은)] 이지 리스닝 사운드는 틴에이저에서 부터 할머니까지 포괄하는 전 수요층에 어필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ABBA]가 인기를 얻는데는 여성 멤버인 [Agnetha Fältskog]과 [Anni-Frid Lyngstad]의 리드미컬한 보컬이 크게 작용하였다. 그들 목소리는 매끄럽게 곡조를 타면서도 강렬했고 듣기좋은 하모니를 일궈냈다. 이와 함께 북유럽형의 늘씬한 신체와 미모도 빼놓을 수 없는 인기 창출의 밑거름이었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1978년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ABBA The Movie]의 재미는 순전 두 여인의 환상적인 엉덩이로 초점이 맞춰질 지경이었다. 눈에 띄는 불협 화음없이 순탄하게 70년대 중반을 질주하는데 성공했지만 역시 그들도 베이비 붐 세대의 자유분방한 가치와 결별한 별종의 연예스타는 못 되었다. 남다른 부부애를 과시했던 [Björn Ulvaeus]와 [Agnetha Fältskog]이 1978년 12월 이혼수속을 밟기 시작했다. 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랜 동거 끝에 [Benny Andersson]과 [Anni-Frid Lyngstad]가 1978년 10월에 웨딩마치를 올린지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터진 일이었다. 여기에 영향을 받았어일까 [Benny Andersson] 부부마저 2년 반만인 1981년 2월 갈라서고 말았다. 이혼과 그에 따른 팀 결속력 와해로 [ABBA]는 1981년 이후 급속히 인기 차트로 부터 멀어져 갔고 1982년에 [Anni-Frid Lyngstad(이 때부터 [Frida(프리다)]로 불림)]가 1983년에 [Agnetha Fältskog]이 솔로 싱글을 내놓으면서 부터 공식 해산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Benny Andersson]과 [Björn Ulvaeus]는 1984년에 [Time Rice(팀 라이스)]와 연대해 뮤지컬 [Chess(체스)] 레퍼토리를 써 그 중 [Muray Head(머레이 헤드)]의 [One Night In Bangkok(방콕에서의 하룻밤)]을 히트시키는 저력을 발휘하였다.
첫댓글 아바 노래는 언제나 들어도 질리지 않는 혼성 그룹의 음악인듯~~~~ ㄱㅇㄱㄴ ㄱㅇㅂ ㅇㄴㅂㅇ ㄸㄲㅎ ㅂㅌ ㅇㅅㅇㅇ ㄷㅈㅇㅅㄱ ㅎㄲ ㅎㅁ ㄷㅈㅇㅌㄷ~~~~~~~~~~ㅂㅂㅂㅂㄹㄹㄹ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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