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눈이 있어 만물을 볼 수 있어도
자신만은 거울을 통해서야 만 본다.
자신을 직접 볼 수 없는 사람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듯 상대방을 통하여
자신의 행위를 비추고 판단한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 또한 느낀다.
그래서 타인은 나의 거울이라 한다.
사람은 타인의 관심과 인정과 사랑을 바라며
타인 속에 자신을 비추며 산다.
사람은 비추어진 타인에게서
기대와 실망, 분노와 열등감을 느낀다.
우월감 또는 승리감과 그리고 애증마저 느끼며 산다.
때로는 열광하며 때로는 비난하며
때로는 무덤덤하고 무관심하고 무표정하게 산다.
타인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며 사는 인간은
혼자 살기에는 너무 심심하기에
외롭고 나약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존재 확인의 욕망이 정도에 지나치게 심해질수록
사람과 만남을 추하게 변화시킨다.
한 개인만이 아니라 때로는 집단적으로도 변화시킨다.
자기 영역을 지키고자,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고자......
때로는 자신의 신념마저 바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때로는 그 애착과 집념이 처절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나는 그 행위를 과시욕이고 교만이라 부르고 싶다.
때로는 권력 중독이고 이기심의 발로라고 칭하고 싶다.
그리고 자기도취이고 기만이고 착각이라 말하고 싶다.
말과 행동에 자신의 기준이 없다.
언제나 듣는 이의 기준으로
듣기 좋고 보기 좋은 행동만 하려 한다.
때로는 말과 행동이 모순되어 보인다.
모순된 말과 행동에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비추어진 멋있는 자신만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다.
고통을 피하고 갈등을 숨기려는 비겁한 자신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결과는 언제나 비참한 자신만이 남을 뿐이다.
나는 그 행위가 한여름 밤의 꿈마냥 얼마나 헛된 일이고
결과가 없는 부질없는 일이라 느낀다.
그리고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때로는 불행하게 만든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겸손이 지나치면 비굴해 보이고
지나친 사양은 교만해 보인다 생각한다.
칭찬이 지나치면 아부로 느껴진다.
지나친 절약은 인색을 낳고 인색은 고립을 불러드린다.
하지만 자신은 단지 인정머리없다 주위를 탓할 뿐이다.
자신은 단지 자신의 고고함에 도취해 있을 뿐이다.
지나친 자기표현은 유치한 아이처럼 느껴진다.
지나친 성취욕은 이기적으로 비추인다.
지나친 욕망의 추구는 눈을 멀게 한다.
그는 먼산을 보면서 발 앞의 돌 뿌리는 보지를 못한다.
거울을 통한 나는 언제나 앞모습만 보여주되
오른팔을 들면 왼팔을 드는 반대된 모습만 보여주고
뒷모습은 보여 주지 않는다.
어쩌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자신이 아닌
반대의 모습일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착각을 하며 도취하고 기만하며
비추어진 모습에 울고 웃으며
한평생 자신에게 속으며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의 추구라 한다.
그러나 행복의 기준과 척도가
너와 내가 느끼고 만족하는 행복이 아닌
타인의 눈에 비추어진 나의 잘나고
행복한 모습에 맞추며 살아갈 때,
그것이 불행의 씨앗이라 한다.
위선과 거짓은 더 많은 위선과 거짓을 요구한다.
그것은 악순환의 연속이며 비극일 뿐이다.
가면과 가식으로 자신를 포장하고 위선할 때
나는 그가 속으로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고도 생각된다.
때로는 세상이 자신의 생각대로 안 된다
상심하고 분노하고 있을지 모른다 생각된다.
행복의 기준이 만족에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아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세월이 갈수록 느껴만 간다.
자신의 기분과 생각에 의해 세상이 달라 보인다.
기쁘고 행복한 날에는 세상은 분홍빛으로 보인다.
자신감이 넘치는 날은 세상은 나를 위해 있다.
우울하고 슬픈 날에는 세상은 잿빛 색의 우울함으로 비친다.
힘들고 서러운 날은 세상은 어느새 자신을 왜소하게 만든다.
네가 크게 보일 때 나는 작아 보인다.
네가 많아 보일 때 나는 없어 보인다.
네가 잘나 보일 때 나는 못나 보인다.
때로는 불안과 걱정과 상대적인 빈곤감과 경쟁심에
오늘 하루조차 편안하고 행복하고 만족하게 살지도 못한다.
어두운 밤이 끝나면 동트는 새벽이 찾아온다.
추운 겨울이 끝나면 따듯한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씨를 뿌리면 결실을 맺는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
언제나 뜨는 해와 달은 변하지 않는다.
물은 언제나 아래로 흐르고
햇빛과 공기는 언제나 세상에 충만해 있다.
소리 없는 만물과 그 이치는 언제나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생각해보면 세상의 이치는 언제나 단순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도 있다.
어쩌면 진리라는 것도 단순한 것인지 모른다.
그저 나의 생각과 기분이 세상을 변하게 만들뿐이다.
그저 나의 생각과 기분이 진리를 어렵게 만들뿐이다.
앞은 보되 자신의 뒤통수를 거울을 통해서도 볼 수 없는
나의 눈과 내 자신은 세상의 중심일수도
세상에서 가장 먼 곳 일수도 있다.
나를 안다는 것이 거울 속의 나를 보듯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운 일 일수도,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먼 곳을 찾아가는
힘들고 끝없는 여정일수도 있다.
안다는 것이 세월과 나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닌 것도 싶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지만
사람은 나이 먹을수록 더욱더 편협해지고
고집스러워지고 옹졸해질 수 있음을 배운다.
나는 인생이란 99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듯
자신의 모습을 찾아 떠나는 고독한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눈에 비추인 모든 것을 자신의 생각과 잣대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이세상에 정의가 실현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정의가 일방적이며 실현 가능한 일이라면
신은 구태여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스럽게 죽을 이유가 없다.
때로는 내가 느낀 진리와 내가 요구하는 정의가
상대방에게는 거짓과 불의로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위대한 진리가
왜 평범한 침묵과 겸손을 요구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다.
내가 웃으면 거울 속의 나도 웃는다.
내가 울면 거울 속의 나도 운다.
거울 속의 나는 언제나 상대적이다.
나는 인간관계도 상대적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관계는 조건적인 것이라고 생각도 한다.
내가 호의로 대할 때 상대방도 호의로 대한다.
악의로 대하면 악의로 돌아온다.
네가 겸손하면 나도 겸손할 수 있고
네가 희생하면 나도 희생할 수 있다.
내가 겸손하고 희생하면
너도 겸손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생각과 남의 생각이 같은 줄로 알고
실없는 소리에 말실수마저 하는 경솔함이 보인다.
그저 유치하고 이기적인 속마음만 내 비친다.
내 처지와 내 생각과 같다 동지로 착각하고
내 생각과 틀린다고 적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한다.
단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이해타산에 얽히고 설킨 변덕스러운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아버리는 이기적인 자신만이 있을뿐이다.
뜻이 같다 느껴진다면 그것은 그저 ‘동상이몽’일 뿐이다.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만남를 통해 인생을 배우고 지혜와 용기를 얻는다.
타인의 모습에서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의 차이와
그 차이를 통해 선과 악을 구별한다.
인간관계란 서로가 서로를 물들이기를 바라며
서로에게서 영향을 주고 받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이상적인 인간관계가 오래 지속되기 위하여
같이 있는 시간을 인위적으로 많이
만들어서는 안 좋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심은 바래지고 환멸만이 느껴질 뿐이다.
불만과 불평과 불협화음만이 들릴 뿐이다.
서로 넘지 않는 절도 있는 선을 그어야 생각한다.
친할수록 예의를 지키고
서로의 존재를 존중해주어야 한다.
자신의 큰 목소리를 줄이고
타인의 작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어야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한번에 다 보여주어서는 안 되고
헤어짐이 아쉬워야 하고 진실되어야 한다.
타인에게 그리고 먼저 자기 자신에게 진실되어야 한다.
그리고 응보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생각한다.
나는 아무도 자신을 확실히 모른다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자신을 알기보다는
타인을 판단하고 추측하기를 좋아한다.
자신의 모습조차 모르면서
자신은 자신보다 타인을 더 잘 아는 것 같이 말한다.
자신을 똑 바로 볼 수 없는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추측할 뿐이다.
나의 일은 언제나 표현 할 수 없는 수 많은
이유와 동기가 느껴지는 미스터리이고
너의 일은 언제나 단순하고 무식하고
말초적인 단세포의 행동에 불과할 뿐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네가 하면 불륜 일뿐이다.
그러기에 자신에게는 수많은 이유와 핑계로 관대할 수 밖에 없다.
잘 보이는 타인에게는 이해하기 싫은 편협함만 남을 수 밖에 없다.
자신의 관점으로, 자신의 잣대로 타인을 평가한다.
때로는 소설을 쓰듯, 비행기를 태우다, 낭떠러지로 밀다,
멋대로 이야기하며 난도질 마저 해댄다.
그 잣대에 자신은 위로도 받으며
때로는 자신의 생각과 뜻대로 안 된다 분개할 뿐이다......
대중은 언제나 피 흘리는 희생양을 원한다.
자신의 부조리와 죄를 감추어줄 악인이 필요하다.
자신은 그저 군중 속에 숨어 따라 할 뿐이다.
책임은 자신에게는 없다.
단지 자신이 숨어있는 무리에게 있을 뿐이다.
내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애매모호한 정의가 내려진 군중에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끝내 진리마저 십자가에 못박았다.
나는 그 모습에 언제나 하이에나가 생각난다.
때로 몰려다니며 피 흘리고, 상처받은 먹이를
사정없이 공격하는 잔인한 하이에나가 생각난다.
진리는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 이야기한다.
내가 숨어있는 군중과 내가 속해 있는 우리가 아닌
나 한 사람, 나라는 한 존재에게 이야기하며 요구할 뿐이다.
군중 속에 숨어 자신의 득과 실을 계산하며
어느 편에 줄을 설까, 누가 힘이 셀까, 무엇이 나에게 득이 될까……
어찌하면 나를 우아하고 고상하고......
놈보다 몇 차원 높은 고 품격의 인간으로 비추게 만들까……
갈등하고 망설이고 고민하며 숨어있는
비겁하고 독선적인 한 사람의 양심에게 외칠 뿐이다.
나는 판단 당함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판단하는 자의 입장과 잣대에 분노하지 않으려 한다.
언제 가는 변하고 잊혀질 판단과 기준에 연연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나의 모습이 아닌 판단하는 자의 입장과 생각일 뿐이다.
어쩌면 판단하는 자의 이기심 일뿐이다.
나는 그저 기준과 판단 속에 숨어있는,
기대와 실망 그리고 그 동기와 의도가 궁금해질 뿐이다.
인간의 삶은 고독할 수밖에 없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줄 수 없고 대신할 수 없다.
단지 혼자됨이 두려워 함께 있을 뿐이다.
소외 당하지 않으려 편을 가를 뿐이다.
그 편가름 속의 다수에게서 인간은 위안을 얻고
숨어 있으려 하거나 위장을 할 뿐이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그저 비추어진 모습과 숨겨진 모양에 안도의 숨을 내 쉬며
잘 하는 처세라 위안을 하며 척하며 자위를 할 뿐이다.
그저 비추어진 모습에 안도의 숨을 내 쉬며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잃었거나 아니면
보기가 두렵고 알려질까 무서워할 뿐이다.
아니 환상이 깨어지고 자신과 마주할까 서러울 뿐이다.
거짓된 웃음과 허풍에 찬 큰 목소리......
선한 척, 아는 척, 있는 척, 힘있는 척하는 과장된 행위……
대중과 유행 속에 휩쓸려 시대에 맞추어가려는 노력......
주색과 잡기에 시간과 운명을 거는 무모함......
중독의 유혹에 무너지는 나약함......
그 모든 것이 현실을 망각하기 위한 방편 일뿐이다.
적나라한 현실 앞에 자신 없어 숨으려 하는
가면이고 위장이고 위선 일뿐이다.
세월에 바래지고 타성에 젖어버린 모순된 자신 일뿐이다.
나는 인격이 나이와 연륜에 절대적으로
비례하지 않는다 생각한다.
그러기에 진리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라 한다.
자신의 고통을 똑바로 지켜보라 가르친다.
자신이 처한 현실과 자신이 뿌린 씨의 결과를
냉정히 판단하라 할 뿐이다.
구차한 변명과 이유와 자기연민으로
자신을 합리화 시키지 말고
그저 자신을 똑바로 지켜보라 이야기 할 뿐이다.
나는 한 사람의 삶이 궁금하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고
인생의 역경과 수많은 갈등을
어떻게 헤쳐 나왔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무엇을 느끼고 깨우쳤는지 궁금하고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궁금하다.
사회의 기준인 천편일률적이고 자랑스러운 성공한 이야기와
때로는 자기연민에 빠진 슬프고 서러운 실패담을 듣기보다는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후회 없이 살았노라 는
눈물겹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
나눔을 생각할 때 사람은
보통 물질과 재물과 돈의 나눔 만을 생각한다.
그러기에 나눔에는 돈이 필요하다.
사람은 돈을 쫓아다닌다.
나는 돈의 기원이 자급자족의 원시시대에 서로의 만남과
필요한 물건을 나누기에 편리하고자 만들어졌다 생각한다.
그럼으로 원래 돈은 사람을 쫓아 다녀야 한다.
나는 오늘날 부에 대한 축척과 성공의 척도로 인식되어있는
돈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만남을 용이하게 하고 만남의 폭을 넓히는 촉매제로
이해하려 노력할 뿐이다.
물질의 평등이란 좋은 것이지만
나는 평등이란 존재 할 수 없다 생각한다.
긴 것이 있을 때 짧은 것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고,
많은 것이 있어야 없는 것의 기준이 생겨난다.
차이가 있음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역사에는 오직 빈곤의 평등만이 존재한다.
부의 평등이란 존재 하지 않는다.
누구나 다 부자가 될 때 역사는
자급자족의 원시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나눔을 생각한다.
서로의 존재의 나눔을 생각한다.
그저 같이 있음으로써
내가 있고 네가 있고 우리가 서로 같이 있는,
그런 평범한 존재의 나눔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나는 그 나눔이 자비와 연민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있는 자, 없는 자, 잘난 자, 못난 자, 젊은 자, 늙은 자,
배운 자나 무식한 자, 인종이나 민족의 차이나 구분할 것 없이
나는 그저 소박하고 평범한 존재의 나눔과 존재의 평등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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