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2일(연중 제15주일) 마르 6,7-13

홀가분하게 자유롭게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겪은 뒤, 그분 안에 하느님의 생명이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회상하면서 그것을 배워 실천하여, 그들도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이 그런 노력을 하면서 기록하여 문서로 남긴 것이 복음서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약 40년 뒤, 서기 70년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복음에서 초창기 신앙공동체의 상황도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면서 당부하신 말씀이라고 합니다. 초기 신앙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그들과 함께 살아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실제로 하신 말씀도 있고, 또한 초기 신앙인들의 활동 상황과 그들의 마음다짐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택하여 그들과 함께 계시면서 그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겪고, 실망하여 흩어져 각자 자기의 생업으로 돌아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여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각자 체험하면서 다시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르치고 실천하신 바를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유대교의 율사와 사제들은 하느님으로부터 권한과 신분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다른 사람들 앞에 우월감을 가지며, 응분의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조직과 제도를 하느님의 이름으로 절대화하여 경직시켰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런 우월감도, 그런 경직성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가 진정으로 원한 것, 자유롭고 겸손하게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그런 우월감이나, 경직성 없이, 하느님의 자녀로 자유로이 살 것을 원하셨습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는 서로를 소중히 생각하며, 서로의 의견을 듣고, 서로를 섬깁니다. 그 섬김은 서로의 발을 씻어 주기까지 하는 겸손한 것이기를 예수님은 원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이들이 갖지 못한, 신비스런 지배권을 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제자들의 역할이 인간을 지배하는 나쁜 힘, 곧 더러운 영들에서 사람을 해방시키는 데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신앙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합니다. |  | | ▲ 아레초에서 악령 쫓아내기, 조토 디본도네.(1297) |
인간 안에 어떤 무질서가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 시대 사람들은 쉽게 ‘더러운 영’ 혹은 ‘악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신체적, 정신적 질병과 사회적 무질서는 ‘더러운 영’의 조화라고 믿던 시대였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복음 선포는 그런 무질서의 해악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이 하신 첫 번째 기적이 회당에서 정신병자를 고친 일이었다고 말하면서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다. 저분이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시니 그들도 복종하는구나”(마르 1,27)라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셨다는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제자들도 지속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고.... 옷도 두 벌은 껴 입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가벼운 몸차림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라는 뜻입니다. 사실 그 시대 사람들은 여행을 떠날 때 많은 것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그들보다 더 가벼운 차림으로 다닐 것을 원하였습니다. 가지고 다니는 짐이나 옷차림이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시대에 남의 눈에 띄는 복장을 하고, 불편에 대비하여 많은 짐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권력과 재물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런 사람들의 흉내를 내지 않고, 섬기는 사람다운 옷차림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닌다는 말입니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라는 오늘 복음의 말씀은 얼마든지 민폐를 끼쳐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초기 신앙공동체는 가정집 공동체였습니다. 신자들 중 넓은 집을 소유한 사람이 자기 집을 공동체의 집회 장소로 제공하고, 그런 집을 중심으로 신앙 공동체가 발족하였습니다. 따라서 집 하나가 집회 장소로 정해지면, 모두 그 집을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 그 지역 신앙인들에게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이나 바오로 사도의 편지들을 보면, 제자들이 선교 여행 중 거점으로 정한 곳은 가정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 개인의 집이었습니다.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것이 복음 전파
오늘 복음은 신앙공동체의 특수 계층을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마르코 복음서가 기록될 당시 선교는 어느 신분과 관련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인은 복음을 충실히 살며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의 뒤를 따를 것을 권하였습니다. 그들은 가진 것과 옷차림에 구애받지 않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신체적 혹은 사회적 무질서의 해악에서 자유로워지도록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인류 사회는 조직에 있어서 유연함을 추구합니다. 제국주의, 봉건주의 혹은 공산주의 사회보다 더 유연한 것이 민주주의 사회입니다. 오늘 민주주의 사회는 자발적 시민운동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더 큰 유연함을 향한 행보입니다. 앞으로 세계는 인간의 창의력을 존중하고,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하는, 더 유연한 조직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진 통신 매체들은 사람들 모두가 정보를 쉽게 공유하게 해 줍니다. 세상은 상호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스스로를 개방하고 유연하게 현실에 대처하는 사람과 단체가 실효성을 지닙니다. 경직된 개인이나 집단은 고립되고, 실효성이 떨어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오늘 유럽 교회가 신앙인들로부터 외면당한 것은 성직자 중심의 경직된 중세적 조직을 교회가 고수한 데에 그 원인의 하나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는 예수님이 보여 주신 하느님의 일을 사람들의 삶 안에 되살려 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 갱신을 하자고 개최된 것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였습니다. 과거 유럽 중세 사회에서 얻은 언어와 옷차림과 제도적 경직성을 벗어 던지고, 가벼운 옷차림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늘의 사람들 안에 하느님이 사랑과 섬김으로 살아 계시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관을 쓰고, 거창하게 입고, 권위주의적 언어로 가르치는 교회가 아니라, 그 구성원들이 함께 토의하며 생각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서로 섬기는 유연한 교회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입니다. -서공석 신부님 (요한 세례자)
순례에 필요한 것
예수회 수련자 시절, 순례를 떠난 적이 있습니다. 수련 형제들 각자가 여행 계획을 세우고 혼자 떠나는 순례였는데, 저는 1주일 동안 솔뫼 성지와 주변을 돌아오는 여정이었습니다. 아침, 파견미사에서 수련장 신부님은 몇 가지 주의사항을 주셨습니다. 첫째, 절대 차를 타지 말고 걸어갈 것. 둘째, 위급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말 것. 두 번째 사항은 성당이나 수녀원에서 가서 예수회 수련자 신분을 밝히고 도움을 청하지 말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의 여정은 시작되었습니다.
|  | | ▲ 사진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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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첫날, 두 가지 문제를 직면해야만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배가 고팠습니다. 아침 일찍 수련원을 떠나 오후가 되자 허기가 졌지만 밥을 사 먹을 돈이 없었습니다. 무일푼으로 떠난 순례.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구걸할 수도 없었습니다. 너무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해서요. 저녁나절 즈음, 농가를 걸어가고 있을 때 밭에서 뒹구는 무가 보였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서 밭으로 가 무를 들고 시냇가에 가서 씻은 다음 무를 먹었습니다. 몇 개를 먹었더니 속이 좀 쓰렸습니다. 그래도 빈 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해가 지자 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11월 말. 누군가의 집에 가서 하루 재워 달라고 부탁할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길바닥에서 잘 수도 없어서 빈 농가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여기저기 문짝이 뜯겨 나갔지만 그래도 큰 바람을 막을 수 있었기에 그곳에서 자기로 했습니다. 잠을 자다가 몇 번을 깼는지 모릅니다. 폐가에 들어갈 때 신문지를 주워 가지고 갔는데, 하도 추워서 신문지를 이불 삼아 덮었습니다. 신문지가 온기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바람을 막아 주었기 때문에 그래도 나았습니다. 아니 그때 저는 신문지 한 장이 그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다음 날, 어스름한 새벽녘에 일어나 첫 번째 목적지인 솔뫼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추운 곳에서 잔 탓인지 몸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아침 햇살이 떠오를 때, 의식적으로 태양의 온기를 몸에 담으려고 했습니다. 내 안에 저 태양의 온기를 담자. 따뜻함의 기운들이 제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길을 가면서 시냇가에 가서 물을 마시고, 다시 무를 주워 먹었는데 다시 속이 쓰렸습니다. 하루를 꼬박 걸어 솔뫼에 도착했을 때는 한밤중이었고, 보름달이 떠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솔뫼 성지, 예수님 상 앞에 가서 도착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하고 부르자,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다른 기도를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일주일의 순례 기간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순례 마지막 날에 일어난 일화입니다. 수원으로 들어와 차들이 다니는 도로변을 걷고 있는데 어떤 남자 한분이 제 곁을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은 당당해 보였고, 어깨를 으쓱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진짜 거지(Homeless)였습니다. 물론 저도 거지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너나 나나 같은 거지이지만 그래도 자신이 좀 났다는.... 뭐 그런 거였습니다. 사실 그분은 조그마한 짐 보따리도 있었습니다. 저는 살짝 웃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는 당신보다 더 못한 거지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어디를 향해 걸어가는가? 그대가 향하는 곳이 어디인가? 당신이 무엇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 오늘 복음 중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당부하신 몇 말씀들에 저의 오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마르 6,8-9) 왜 그러셨을까? 이유는 단 하나, ‘오직 내가 너희들에게 준 힘과 권한에만 의지하라’고. 저의 순례여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직 하느님께만 의지하라는 것. 나의 생존을 온전히 그분께 내맡기라는 것. 우리는 여행하려면, 아니 이 땅에서 살아가려면 돈도 필요하고, 여행가방도 필요하고, 빵도 필요합니다. 살아가는데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내 삶의 가장 본질적인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입니다. 살아가는 데 빵이 필요 없다는 것도 아니고 돈이 필요 없다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무엇에 나의 삶을 의지하고 있는가? 하느님인가? 아니면 그 무엇인가? 나를 지탱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느님께 의탁한다고 해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내 삶을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고, 그 무엇을 할 때, 하느님께서 내게 온전히 그 일을 맡기셨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라고 합니다. 교회는 그리고 우리의 신앙은 우리 삶을 순례로 봅니다. 이 세상에 왔다가 얼마 동안 이 세상에 머물다가 다시 떠나가는 여정입니다. 우리가 이 순례 여정을 하느님께 의탁하고, 하느님을 향해 살아간다면 그렇게 삶에 바동바동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가장 본질적인 것, 그것은 바로 하느님입니다. -최성영 신부님(요셉)
[생활 속의 복음] 영웅이신 예수님
신문과 TV에 관심을 끄고 살아가기로 결심을 해봤습니다. 언론에서 거짓과 슬픈 소식만을 전달하고 있는 현실이 힘들었습니다. 차라리 눈과 귀를 막고 살자고 다짐했지만, 결국은 신문ㆍ방송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언론을 통해 많은 영웅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과 함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 메르스 때문에 고통받는 환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돌보는 의료진의 소식을 접하면서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지금 우리 사회에 있는 이들처럼 눈물 흘리고, 좌절하고,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회개와 자유를 통해 진정한 기쁨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주었다”(마르 6,12-13).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행동으로 하느님 나라를 실천한 것이며, 우리 그리스도인의 행동지침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두 가지 경험을 나누며 제 자랑을 할까 합니다. 용서를 부탁합니다. 16년 전 병자 영성체를 다닐 때 일입니다. 한 할머니께서 제가 방문할 때마다 점심을 주문해 주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간병인 제도가 보편화 돼 있지 않아서 환자 집에 방문하면 정결하지 못한 환경과 독특한 냄새 때문에 솔직한 심정으로 빨리 나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정성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식사를 했습니다. 방문이 이어지면서 서서히 아들과 어머니 같은 관계가 형성됐습니다. 페루 선교를 준비하면서 할머니와 만남은 중단됐습니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 본부에서 교육을 받던 어느 날, 수업 도중 전화가 와서 받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전화를 해보니 할머니의 가족이었습니다. 그는 “임종 전에 할머니께서 마지막으로 신부님과 통화를 원하셔서 전화를 드렸다”고 말했습니다. 순간 죄송한 마음과 함께 마음속으로부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할머니를 위한 미사와 기도를 봉헌했던 기억이 납니다.
페루 리마본당에서 사목하던 시절 매주 목요일에 미사를 봉헌하던 한 공동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미사 후에 눈에 확 띄는 미모의 여성이 다가오더니 “집에 계시는 할아버지에게 병자성사를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혹시 거짓말로 나를 납치하려는 것은 아닌가?’, ‘나를 유혹해 금품을 노리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교우들과 함께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유혹과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증인(신자)을 통해 제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여인의 이야기는 사실이었습니다. 80대 초반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한 달 사이에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정성을 다해 병자성사를 베풀고 가족들에게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할아버지와 자주 대화를 나누고 성경을 읽어드리고 기도를 해드리라”고 부탁했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난 후 그 여인이 미사에 나타났습니다. ‘이제는 장례미사를 청하러 왔나? 아니면 더 병세가 악화돼 따지러 왔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여인은 공지 시간에 발언권을 요청하더니 “빠드레(아빠, 신부) 토마스가 우리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고 가신 다음 날부터 할아버지가 걷기 시작했고, 말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한동안 동네에 ‘기적을 일으키는 신부’라는 소문이 돌아 미사 참례 신자도 많아지고 대접도 잘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은 플루타르크의 「영웅전」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테세우스전’에 보면 테세우스는 진실한 마음으로 마을과 가문들을 찾아다니며 “아테네를 왕이 없고 민중에 의해 다스려지며 모든 사람에게 완전한 자유와 평등을 주는 도시국가로 만들겠다”고 약속합니다. 우리에게서 편견과 이기심이라는 병, 명예와 성공이라는 우상, 거짓이라는 마귀를 퇴치하시는 예수님에게서 진정한 영웅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들의 영웅이신 예수님! -박재식 신부님(토마스)
[아! 어쩌나] 301. 교회와 안보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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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사석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왜 한국 가톨릭 교회는 안보 불감증인가 하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정부에 대해 비판만 하고 사람들을 선동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더 이상의 대화가 무의미하다 싶어서 침묵으로 응수하였는데 마음이 여전히 불편합니다.
답: 신부님의 곤혹스러움을 알 듯합니다. 우선 우리 교회가 국가 안보에 별 관심 없다는 말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사방이 강대국이고 더욱이 북한 정권과는 오랫동안 적대적 관계를 가져왔습니다. 안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 구성원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가진 안보 개념은 일반인들의 생각보다 더 범위가 넓고 미래지향적입니다. 대개 안보라고 하면 많은 분은 공산국가와의 대치국면만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안보 논쟁을 체제 논쟁으로 끌어가려고 하고, 체제 이념에 맞지 않는 생각에 대하여는 적대적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안보, 즉 나라 지키는 것은 그런 방법들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토록 싫어하는 일본의 경우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고, 어린아이 때부터 추위에 강해지도록 반바지를 입힌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도자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국민들은 참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소비를 줄이고 검소한 삶을 산다고 합니다. 이런 삶의 모습은 단편으로 보는 것과 전체적 관점으로 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단편적으로는 일본인들은 성실하다는 것인데 전체적 관점으로는 일본이라는 나라는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한 혹은 전시 체제에서 생존하기 위한 훈련을 일상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아이들은 자기 멋대로 살려고 하고, 부모들은 아이가 공부만 잘하면 싸가지가 없어도 성격이 지랄 같아도 다 눈감아줍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사회와 군대에서 온갖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요. 어른들 역시 작은 일에 감정이 폭발하고, 찌라시 수준의 지식으로 사회적 문제에 감정적 대응을 하는 등 사회를 정신 분열증적 상태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교회는 대안적 공동체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교육을 통하여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친밀감과 유대감을 형성하고, 특히 아이들의 경우 단체 활동을 통한 전인교육을 하고자 많은 시도를 하여왔습니다. 국가적으로 가장 기본적 건강성에 대하여 오랫동안 고민하고 노력하여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가져온 병적인 문제 중의 하나가 ‘매카시즘 콤플렉스’입니다. 북한과 연계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하여 국가적으로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부의 잘못에 대하여 비판적 태도를 보이는 것조차 국가 전복 행위로 몰아붙이는 매카시즘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는 정서적 문제입니다. 자신에게 이득을 주지 않는 상대방을 국가 전복 세력으로 몰아붙이면서 상대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들이야말로 국가안보에 해를 끼치는 병적인 세력입니다.
진정으로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나라를 지키려는 결의를 가지게 하려면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가장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반대 세력을 추려내고 털어내는 행위는 결국은 나라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역사 안에서 수많은 나라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기도하는 공동체가 하느님 나라임을 천명하셨음을 유념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홍성남 신부님(마태오) /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30> 모든 이를 위한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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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권고문은 ‘복음의 기쁨’이란 말로 시작하는데(incipit), 그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1항).
죄와 슬픔에 빠진 현대인
지난 5월 13일에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 사건이 발생했다. 많은 사람의 공분을 산 자살자의 수중에는 다음과 같은 유서가 있었다. 문장이 매끄럽지 않고 철자가 틀린 것도 있지만,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기에, 그대로 옮겨 보겠다.
“언제부터인가 모르겠지만 왜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수없이 내 머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무슨 목적으로 사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살아있으니깐 살아가는 것 같다. 하기 싫고 힘들고 그럴 때 잠이라는 수면을 하면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너무 편하다. 깨어 있는 게 모든 것들이 부정적으로 보인다. 내 자아감, 자존감, 나의 외적인 것들, 내적인 것들 모두 싫고 낮은 느낌이 밀려오고 그렇게 생각한다. 죽고 싶다. 영원히 잠들고 싶다. 사람들을 다 죽여 버리고 나도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박증으로 되어간다….”
왜 사는지, 존재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해 세상이 싫다고 했다. 깨어 있다는 것 자체를 고통스러워했다. 차라리 수면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편하다고 했다.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마냥 잠자고 싶다고, 그대로 지속적인 없음(無)으로 존재하고자 했다. 현대인의 내적 공허와 외로움 그리고 죄와 슬픔을 읽을 수 있다. 그렇게 현대인은 정신을 잃고 미쳐가고 있다. 그들에게 삶의 기쁨을 선물하고 인생의 절대적 의미와 존재의 가치를 알려주어야 한다. 우리는 확신한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답이다. 인류는 그분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그분이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복음 선포이다. 교회에 맡겨진 사명이다.
교회, 만민을 구원으로 이끌어야
하느님 백성으로 설명되는 교회는 만민을 위한 것이다. 어느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시대의 모든 이를 위한 하느님의 위대한 계획이다. 모든 인간을 구원하고자 당신의 아드님과 성령을 통해 교회를 설립하셨다. 따라서 교회를 구성하는 하느님 백성이 제구실을 다 하려면, 모든 이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하느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고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음을 알려야 한다. 하느님 백성의 사명은 신분과 지위, 남녀노소의 구분과 차이가 없다. 누구나 복음을 선포해야 할 사명을 받은 것이다. 때와 장소의 구분도 없다. 언제, 어느 때든지 기회 닿는 대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교황은 이렇게 설명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배타적인 엘리트 집단을 만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113항).
따라서 이제 교회는 ‘구원의 성사’로서 하느님의 은총을 모든 이에게 전달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바오로 사도의 로마서 말씀은 이를 웅변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마 8,19).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그 백성이 나타나기를 지금까지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느님 백성이 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탄식하며 고통 속에서 갈망하고”(로마 8,22) 있었다고 표현했다.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슬픔 가운데 울부짖고 있다는 것이다.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로마 8,21). 이는 구원의 도구로서 은총을 전달하는 교회를 통해 완성된다. 교회의 모든 백성이 그 책무를 완수할 때 가능한 것이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어둠으로 내려가야 하는 부담스러움도 있다. 그러나 그곳에 내려가 복음을 선포하고 예언의 말씀도 전해야 한다.
고난을 겪어도 희망이 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는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어서는 안 된다.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을 구하기 위해, 그곳으로 뛰어내려가 연대하고자 함은 교회의 참된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결코 길을 잃어서는 안 된다. 상처 입은 자들의 야전병원이 되어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그들을 밝은 빛이 머물고 있는 교회로 인도해야 한다. 세상의 죄악 때문에 깊은 내상을 입고 신음하며 악한 기운만 남은 그들의 참된 이웃이 되어 온전히 치유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아가 그와 같은 결과를 야기한 근원적 악을 뿌리 뽑기 위해, 큰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이 싸움은 십자가의 희생과 용서와 사랑의 싸움이다. 그들과 함께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온갖 독한 말로 적으로 규정된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그들의 눈에서 기어코 피눈물을 쏟게 만들겠다는 복수의 싸움이 아니다. 지루하고 긴 싸움이 될 것이다. 가해자의 회개와 피해자의 용서가 하나가 되는 날까지 계속될 싸움이다. 우리가 겪어야 할 고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홍기선 신부님(히지노)
[사도직 현장에서] 어느 할머니의 꿈
어느 날 할머니 한 분이 찾아와 “신부님, 저 무서워서 잠을 못 자겠어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라고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할머니, 뭐가 무서워요?” 하고 여쭸더니, “잠을 자려고 하면 큰 뱀이 입을 딱 벌리고,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본다”고 하셨습니다. 두려워서 잠자리에 들기가 무섭다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지금까지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재혼했는데 새어머니는 오빠 한 분을 데려왔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새어머니와 오빠 밑에서 모진 고생을 다 했습니다. 새어머니는 때로는 밤새 때리기도 했습니다.
말씀하시면서 옛날의 서러웠던 기억이 나셨는지 눈물을 주르륵 흘리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열심히 공부해 좋은 직장에 들어가셨고, 혼인도 하시고 구김 없이 잘 사셨습니다.
할머니 말씀을 들으며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루카 6,27-28)는 성경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할머니께 “그분들을 용서하셨느냐?”고 여쭸더니 “이미 잊은 지 오래야”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다시 “할머니, 혹시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적이 있나요?” 하고 여쭸습니다. “없다”고 하셨습니다.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할머니, 하느님께서 할머니를 무척 사랑하시나 봐요. 그런 모진 고생을 하셨으면서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신 할머니께 조그마한 연옥 벌도 받지 않게 하고 싶으신 것 같아요.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면 많은 은총을 받으실 것 같은데요.”
할머니는 기도하겠다고 약속하시며 죽은 이를 위한 미사를 신청하셨습니다. 다음 날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신부님, 어젯밤에 또 그 뱀이 나타났는데, 제가 목을 잡아 힘차게 던져버렸어요. 그런데 그 뱀이 무척 작더라고요. 뻗어버렸어요. 그리고 잠을 푹 잤어요. 감사합니다.”
할머니를 통해 원수를 용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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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재 신부님(수원교구 죽전 1동 하늘의 문 본당 주임)
평소에 해 보지 않았던 일에 도전해 봅시다. 저는 시골에서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시골에서는 농사만 짓고 살겠지.. 할 일이 많지 않고, 경제적으로 힘들 거야..’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섬에 들어와서,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일년 반 정도 살아보니 섬에도 할 게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농사 종류도 다양하고, 동물도 키울 수 있고, 바다에 나가 바지락도 캡니다. 또 산에는 장뇌삼이나 다른 작물들을 키우고, 면에서 하는 일이나 다른 부업들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며 살아가는 신자들이나 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시골에서도 욕심 부리지 않고 일하면 먹고 살만 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막연한 선입견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도 언젠가 또 깨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가 기회가 된다면 해외에 나가 현지인 선교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요. 지금 생각으로는 ‘무척 힘들겠다..’ 는 생각이 막연하게 있습니다. ‘먹는 것도 맞지 않고, 낯선 문화 때문에 힘들 거야.. 지금 시골에 있는 것보다 봉사하는 사람들이 더 없어서 고생할거야.. 지금은 신자들이 반찬이라도 가져다 주는데, 그곳에는 신부를 챙겨 주는 사람도 없을 거야..’ 하는 막연한 생각들인데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제자들을 보면 ‘그래도 그럭저럭 살만하지 않을까..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거 같습니다. 제자들은 파견 받아 떠날 때에 빵도 여행 보따리도 돈도 가져가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또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어땠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가다가 배고프면 어쩌지.. 추우면 어떻게 하나.. 어느 정도 대비를 하고 떠나야 하는 거 아닌가.. 괜찮을까...’ 그렇게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떠났을지도 모르겠는데요. 막상 파견 받아 떠난 그들은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어디를 가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 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마르 6,12-13) 아마도 파견 받아 활동하는 그곳에서 먹을 것을 얻기도 하고, 잠자리를 제공받기도 했던 거 같습니다. 많이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없어도 채워주시는구나.. 사람을 보내주시고, 일을 이루어주시는구나..’ 하는 체험과 함께 ‘할만하다. 살만하다.’는 생각을 했을 거 같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런 체험을 만들어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평일 미사 나가는 걸 감당할 수 있을까.. 말씀대로 살아볼 수 있을까... 지금 이 봉사를 하게 된다면 너무 빡빡한 일정이라 고단할 텐데.. 내가 가진 이걸 봉헌하면 경제적으로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고 한 발짝도 더 나아가기를 주저하기보다, 과감하게 용기를 내어 평소에 해 보지 않던 일에 도전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일을 이루어주시고 채워주시고 살 수 있게 해 주시는 하느님을 더 분명히 느끼게 될 겁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박원순씨의 책에서 본 글) 영어 단어 ‘Donation’을 ‘기부’라고 해석하면 재미가 없겠지요? 하지만 우리 말로 ‘돈 내시오.’ 하면 발음도 뜻도 얼추 맞아떨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내면 고수가 아닙니다. 영어 발음은 나라마다 조금씩 틀리지요. ‘Donation’을 영국식으로 하면 ‘돈 내시옹’이지만, 미국에서는 ‘더 내시옹’, 호주에서는 ‘다 내시옹’으로 변합니다.
-김기현 신부님(요한)
[금주의 성인] 7월 12일 : 성 요한 구알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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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2일 : 성 요한 구알베르토(St. John Gualbert)
985?~1073년,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사제, 수도원장.
성인이 활동하던 시기는 가톨릭 교회의 암흑기였습니다. 사제들이 혼인하거나, 사제직을 돈으로 사고파는 일이 버젓이 이뤄졌던 때입니다. 성인은 이처럼 혼탁한 시기에 교회 개혁에 앞장섰던 분입니다.
하지만 성인이 처음부터 교회 개혁에 나섰던 것은 아닙니다. 부잣집 아들이었던 성인은 종교에 전혀 관심 없는 청년이었습니다. 여자들과 놀기를 좋아하며 방탕한 생활을 즐겼습니다. 그러던 성인이 ‘바오로의 회심’처럼 180도 달라진 건 친형이 살해당한 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성인은 살인범을 찾는 데 혈안이 됐습니다. 복수의 화신이 된 성인을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인은 마을에서 살인범과 딱 마주쳤습니다. 성인은 앞뒤 가릴 것도 없이 즉시 칼을 뽑아들었습니다. 도망갈 줄 알았던 살인범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성인에게 용서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게다가 두 팔을 옆으로 뻗어 십자가 모습을 한 채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비를 청한다고 애원했습니다. 성인은 그 순간 살인범에게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환영을 봤습니다. 성인은 살인범을 용서했고 그 뒤로 집을 떠나 수도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성인은 여러 곳의 수도원을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자신이 원하던 수도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곳은 돈으로 수도원장 자리를 산 사람이 수도원을 이끌고 있었고, 어떤 곳은 수도자들이 기도 생활보다는 재산을 부풀리는 데만 관심을 보였습니다.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부패와 타락에 환멸을 느낀 성인은 교회를 어지럽히는 이들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주교 자리를 돈으로 산 피렌체의 한 주교를 공개적으로 비난해 그를 물러나게 했습니다.
성인은 이처럼 교회 안팎으로 교회 쇄신과 개혁을 위한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한편으론 사막의 은수자들처럼 오로지 기도와 묵상, 고행이 전부인 수도생활을 꿈꿨습니다. 베네딕토 「수도 규칙」을 따르는 엄격한 수도생활을 지향했던 성인은 자신을 따르던 이들과 함께 발롬브로사 지역에 수도 공동체를 설립했습니다. 성인은 봉쇄구역에서 은수생활을 하는 수도회원과 세상에 나가 가난한 이들을 돕고 하느님 말씀을 직접적으로 전하는 수도회원으로 나눠 수도자들을 양성했습니다. 교회 개혁을 이루기 위해선 실천과 기도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이끄는 공동체는 곧 다른 수도원들의 모범이 됐습니다.
성인은 1193년 첼레스티노 3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습니다. -평화신문(2015. 07. 12발행 [13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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