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이야기 (2)
6,25 전쟁이 터진 1950년, 나는 열여덟 소년이 되었으며, 6,25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4월에 철도학교를 졸업하고 철도국에 취직이 되어 기관조사로서의 승무실습의
수련을 받았습니다, 불과 3개월의 수련도 끝나기 전 전쟁이 터지고, 전쟁물자 수송에 전체 기관차가 동원되고, 이에 맞추어 그만치 승무원의 숫자도 부족하게 되어, 연수중이던 나도 기관차 승무원이 되어 전쟁 3년 동안 기관차 승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기관차는 석탄을 떼서 스팀의 힘으로 움직이던 시커먼 증기기관차였습니다.
6월 25일 인민군이 남침을 시작하여 불과 3일후에 서울이 점령당한 이후 3개월동안은 인민군에 끌려가지 않으려 집안 마루밑에 숨어살다가,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어 나는 다시 철도국에 나가게 되고,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나는 거의 기관차위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군대의 북진과 동시에 군수물자도 함께 북진하여야 했기 때문에 군수물자를 실은 열차를 끌고 가야 했던 기관차 승무원도 그만치 바빠졌습니다, 기관차 승무명령을 받고 한번 기관차에 올라타면 열흘 스무날은 보통이었습니다, 주로 인천항이 모든 군수물자의 시발역이었으니까, 인천을 출발
하여 서울을 지나 서부전선은 38선을 넘어 대동강 앞이 종착지였으며, 중부전선은 춘천, 연천, 신탄리쪽의 중부전선에 군수물자를 수송하였습니다,
한번 기관차에 올라 몇일이 지나면 준비했던 식량이 바닥이 나고, 어떤 때는 먹을거리가 없어 끼니를 굶어가며 달려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 때 요긴하게 허기를 면해주었던 것이 미군의 레이숀이었습니다,
그 때는 한국의 헌병이나 미군의 RTO 요원들의 지시에 의해서 열차가 운행되었
으며, 그들도 같이 기관차에 탔기 때문에 미군에게 식량을 부탁하면 미군이 곧잘
레이숀을 갖다 주기도 했습니다,
그 레이숀 박스를 뜯으면 통조림 세 개와 비스켓, 초코렡 커피가 들어있으며, 담배도 들어있었습니다, 통조림으로 허기를 메우고, 담배는 Lucky Strike 나 Camel 같은 미국담배였는데 이 담배를 함께 승무했던 승무원이 나누어 피었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었는데, 공짜로 양담배가 생기기 시작하고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몇일씩 잠을 자지 못하면서 기관차 위에서 석탄 삽질을 하고, 운전을 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몇일씩 잠을 못자고 기관차를 달리다 보면, 서서도 눈이 감기는 잠을 이기기 위해서 담배를 피워야 했고, 온 몸이 파김치가 되는 피로를 잊기 위해서 담배를 피워야 했으며, 그 담배를 태우면서 기운을 내기도 했습니다.
밤 새도록 어둠속을 달리다가 먼 동이 터오고 동쪽하늘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태우는 담배의 맛, 달리는 기관차에서 날리는 담배연기는 참 멋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나는 열 여덟살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여 거의 3년동안 기관차 위에서
담배연기 날리며 철길 위를 달렸습니다.
이런 기관차 승무생활이 3년이 채 않된 어느 날, 나는 군에 입대하라는 징집영장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 기관차승무원은 군 입대가 면제되었었는데, 전쟁으로 많은
병력손실이 있었으며, 후방에서도 병력보충이 어려워져, 기관차 승무원도 만 20세 징집년령이 되면 입대하라는 영장이 나온 것이었습니다,
거의 3년 동안 기관차 승무를 하며, 잠 못자고 굶기를 밥 먹듯하며 고생을 했었기에 군대 가라는 영장이 오히려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입대하고 보니 기관차 승무생활보다 군 생활이 훨씬 수월했습니다, 보리밥이던 된장국이던 하루 밥 세끼는 또박 또박 먹여주고, 밤 아홉시만 되면 자기 싫어도 자야 하니, 이건 기관차 승무보다 훨씬 편하고 좋은 생활이었습니다.
더구나 화랑 담배도 하루 한 갑 틀림없이 받게 되니, 양담배 맛만은 못해도 화랑
담배에 맛을 들여 4년 6개월의 군 생활을 마치고 스물다섯 살에 제대하여 오랜만에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
제대 후 집에 돌아와서 태우기 시작한 담배가 아리랑 담배였습니다, 아리랑 담배는 필터담배로 고급스럽고 화랑보다는 아리랑의 맛이 훨씬 좋았으며, 그 아리랑 담배의 연기 속에 나의 20대는 지나갔습니다.
1960년대 내 나이 30대에 태우던 담배는 재건과 새나라였습니다, 마침 그때가 5,16 혁명 이후 우리나라가 경제재건에 시동이 걸리고, 새마을 운동으로 새나라의 기틀을 잡고자 했던 때이니 새나라 담배를 태우며 새나라 재건에 앞장 서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청자와 신탄진 담배가 나왔습니다, 우아한 디자인의 청자는 담배맛도 좋았으며, 신탄진 또한 좋은 담배였습니다,
1980년대에 거북선이 나오고, 한라산 솔 그리고 88 담배가 등장하였습니다,
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20년동안, 대한민국은 엄청나게 변화하고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자랑스러운 국가적인 행사였습니다, 20년의 세월속에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하여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피땀 흘리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때
그렇게 국민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땀 흘려 일 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담배맛도 잃어버리고 일에만 미쳤던 20년, 나는 조금도 억울하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도 우리나라의 성장은 멈추지 않고 진행되었으나 지난 20년
보다는 발전 속도가 늦어지고, 내가 해왔던 사업도 부진해지기 시작하여 9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90년대는 나에게 좀 천천히 생각하며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며, 엑스포 담배를 피우며 대전 엑스포박람회를 구경하고, 디스를 피우며 이것이 This 로구나, 하며 사물을 바로 보게도 되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 내 나이 70대, 내뿜는 담배연기 속에 내 인생을 돌아보는 한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젊어서 하지 못 했던 공부를 하기 위하여 독서를 하였으며, 내 마음 의지할 종교도 찾게 되었으며, 가보고 싶던 곳 찾아 여행을 즐기기도 했습
니다,
평생을 함께 살아 온 아내를 떠나보낸 2008년, 외롭고 서러움을 삭이려 인터넷 카페 “침묵의 강가”와 "황혼의 낙원" 에 찾아든 이후, 지금까지 인터넷 카페와 친구되기도 하고 담배와도 여전히 친구로 살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영어 세상이 되어 담배도 모두 영어로 바뀌어, 요즘 담배는 Raison 이나
Esse가 되고, 2,000년대 초기에는 Raison을 피우다가 2010년 이후에는 Esse, 오늘도 Esse를 피우고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서 100살까지도 사는 세상이 되고, 사람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겠다는 욕심으로, 금연을 주장하고 담배를 배척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담배 태우기가 무척 거북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담배에 발암물질이 있어 담배를 태우면 암에 걸릴 수 있다는 겁나는 금연광고로 흡연자의 숫자가 줄어들고 담배연기 맡는 것조차 싫어하는 세상, 담배 태우는 사람을 마치 야만인 보듯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담배 태운다고 해서 담배 태우는 사람이 모두 60세도 못 살고 죽는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이제 와서 건강검진 받아 나쁘다고 해서 어쩔거냐고 요즘은 건강검진을 않 받는데,
2년 전, 마지막 건강검진을 받고 그 결과를 의사선생님께 설명을 들었는데
의사선생님 말씀이 “선생님 폐의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라고 하기에 나는
“아닙니다, 내 폐가 좋을 리가 없습니다, 담배를 60년 이상이나 피운 사람이 폐가
좋을 리가 없습니다” 라고 항변하니까
그 선생께서 “이 사진을 보세요, 폐가 맑고 깨끗하지 않습니까? 이 사진 선생님의
폐 사진 맞습니다,” 라고 하기에 그 사진 자세히 보니 정말 그 사진의 폐의 색깔이
발그스름하고 깨끗했었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폐의 색깔이 너무도 깨끗했습니다,
담배를 60년 이상 태웠지만 내 폐는 깨끗하고 건강했던 것입니다,
어째서 평생 담배를 피었는데, 폐가 깨끗할까 ? 대개 담배 오래 태운 사람들의 폐 사진 보면 시커멓고 더럽게 보이던데, , ,
내가 담배 태우던 습관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항상 뽀끔담배를 태웠습니다,
담배연기를 깊이 들이 마시지 않고 담배연기를 입과 코로만 순환시키고, 연기가
목구멍까지 들어가면 얼른 입으로 내뱉는 식의 담배를 피웠던 것입니다,
담배 연기가 폐까지 들어가지 않는 식으로 담배를 피었던 것입니다,
담배 맛은 입과 코에서 느껴지는 것이지, 목구멍이나 폐에서 맛을 아는 것이 아니니까 굳이 폐속까지 담배연기를 마실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냥 맑은 공기로 심호흡할 때는 폐속 깊이까지 맑은 공기가 들어가도록 깊이 호흡해야겠지만, 담배를 태울 때는 담배연기를 폐속 깊이까지 들이 마실 필요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것을 미리 알고 젊을 때부터 그렇게 담배를 태운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뽀끔담배를 피움으로서 나는 폐를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짐작하였습니다,
담배를 피우면서도 깨끗한 폐를 유지하는 방법이니까, 애연가들에게 권해보고 싶은 방법입니다.
또 한가지 애연가들에게 권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찌 되었던 담배 태우는 것을 싫어하는 세상이니까, 나 좋다고 담배 연기를 마구 뿜어대는 흡연은 삼가는 것이 세상 사는 예의일 것입니다,
남이 싫어하는 것은 남이 보는 앞에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종로 한복판 대로를 걸어가면서 유유히 담배연기를 뿜어대는 것은 현대인이 할 짓이 아닙니다, 담배를 태우는 자신은 좋을지 몰라도 그 담배냄새를 맡게 되는 타인에게는 폐가 되는 일입니다,
여러사람 앞에서 태워야 담배맛이 나는 것은 아니니까, 담배는 될 수 있으면 나 혼자의 자리를 찾아서 태우는 것이 오히려 담배맛이 나지 않겠습니까, , ,
또 한가지 담배를 깨끗이 피우기를 권합니다, 담배를 태운 다음 남는 꽁초를 길바닥에 마구 버리는 행위는 좋지 않은 행위입니다, 길바닥이나 공원 벤치 둘레에 버려진 담배꽁초는 정말 지저분하고 보기 않 좋습니다,
요즘 담배를 태우면 “아직 담배를 태우느냐고” 이상한 눈으로 보고 야만인 대하듯 하는 경우가 있는데, 담배꽁초를 마구 버리기 때문에 야만인 취급 받는 거 아닌가 걱정될 때가 있습니다,
특히 담배꽁초의 불도 끄지 않고 길바닥에 휙 내던지는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참으로 안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제발 담배 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마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