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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설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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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산과 자연 스크랩 호남정맥17구간 (유둔재 ~ 방아재)
야초 추천 0 조회 28 15.06.24 15:0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호남정맥17구간(유둔재~방아재)종주산행 

산행날짜 : 2006. 11. 25(토),                날씨 : 좋음
산행시작 : 06 ; 55,          산행마침 : 15 : 05 ,,        산행시간 : 08시간 10분
산행거리 : 26.7 km,         산 행  자 : 산아, 솔바람, 야초,  3명
 
산행경로
    유둔재   ~   어산이재   ~   새목이재   ~   노가리재   ~   활공장    ~ 국수봉   ~   선돌고개   ~   만덕산
     ~ 방아재
 
호남정맥17구간(유둔재~방아재)
06시50분 887번 지방도가 지나는 유둔재에 도착이다. 유둔재에는 광주 21km. 담양 26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서있고, 그 옆으로 유둔재 등산로 안내도가 설치되어있다. 곧 바로 산행 시작이다. 오늘 날씨는 무척이나 좋을 것만 같다. 바람도 별로이고, 산행 시작 전에는 찬 기운이 좀 있지만. 이내 땀이 나면, 그야 말로 산행하기에는 적합할 것만 같다. 임도를 따라 대나무 밭을 통과하고 소나무 지대로 들어선다. 정맥 길은 커다란 묘지를 가로 질러 좌측으로 약간 틀면서 진행이다.

07시 17분 정맥 너머로 붉은 태양이 솟아오른다. 참나무의 평탄한 능선 길을 이어간다. 07시39분 삼각점(독산 409, 1985 재설)이 나온다. 446봉이다. 북서쪽으로 내려섰다가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지고, 밋밋한 봉을 넘어서 내려선 곳이 어산재인가?>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선다.

07시 35분 삼각점이 있는 456.5봉이다. 정맥길을 서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소나무군락지 아래 잡목을 헤치며 평탄하게 내려선다. 옛 헬기장 터을 지난다.
 
07시 50분 한국가사문학관 5588m, 유둔재 3070m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아마 여기가 산행지도에 나오는 새목이재인 듯 하다. 우측으로 외동저수지가 보인다. 좌측으로는 광주에서 유둔재로 이어지는 887번 지방도도 눈에 들어온다.
08시 05분 410봉에 올라선다. 잡목과 소나무 사이로 완만한 내림과 오름을 반복하니 삿갓봉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08시 43분).
 
08시 55분 최고봉(493.0m)를 알리는 조그마한 이정표가 나무에 걸려있다. 정맥길을 계속하니. 해남터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는 한국가사문학관, 유둔재, 소쇄원주차장 갈림길 이정표이다. 이정표 옆에 한시(漢詩)표지판이 있어 디카로 찍은 것을 여기에 옮긴다.

위험한 돌길을 더위잡아 오르며(石逕攀危)
하서 김 인 후
(원문) (현대역)
一逕連三益 하나의 돌길에도 삼익우가 연이었고,
攀閒不見危 오르는 데 익숙해서 위험은 없어
塵?元自絶 속세의 발걸음 스스로 끊고 나니
笞色踐還滋 이끼 빛깔은 밟을수록 더더욱 풍선해.

(어휘의 이해)
* 석경(石逕) : 돌이 많은 좁은 길 * 반위(攀危) : 위험한 좁은 길을 더위잡아 오름
* 삼익(三益) : 매 梅, 죽 竹, 石의 세가지 * 진종(塵?) : 속세의 발자취

(주 석)
위험한 석경을 더위잡아 오르는 데에 구애됨이 없이 익히 다녔던 원림 행로의 즐거움을 누린 것 같다.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 오던 매화, 대, 돌, 등 삼익우를 연이어 갖춘 산길이다.
(소쇄원 48歌中에서)


더위잡아 오르는지, 추위 잡아 오르는지 아무 생각 없이 표지판을 뒤로 하고 산행길은 계속이다. 까치봉 갈림길을 지나서 솔밭길을 지난다. 언제 493봉을 지나쳤는지 모르겠다.  09시15분 삼각점(독산401, 1985재설)이 있는429.4봉이다. 고압철탑 밑을 통과하여 내려서니 1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인 노가리재다(09:35). 노가리??? 꽁치 새끼처럼 양미리도 아니고, 멸치 보다는 큰 게 노가리인가???? 왜 노가리재라고 명명?? 했는지???????????

09 50분 노가리재 포장도로를 가로질러 임도를 따라서 오름을 계속하니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이 활공장으로 이용되는 것을 군수가 선거 때 자기 줄에 안 섰는지. 마음에 안 들어서 방해 공작을 하는 것인지 헬기장으로 오르는 임도에다가, 소나무를 여기 저기 심어놓았다. 여기가 지도상에 나오는 활공장으로 착각을 한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창평면 소재지 논밭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정맥을 조망하니 추월산이 시원하게 바라보인다. 10여분을 더 계속하니. 지도상의 활공장이 나타난다(10:02). 여기는 산불 감시초소도 세워져 있고, 비행안전수칙 표지판도 붙어 있다. 패러글라이드 동호인은 아무도 보이지를 않는다. 조금 전의 헬기장까지는 4륜 구동 정도의 차량은 임도를 타고 올라 올수 있지만, 여기 활공장에 오려면, 어깨에 장비를 지고 올라와서 활공을 해야 할 것 같다.

정맥 길은 좌측 편으로 급사면을 이루고 있고, 북동쪽으로 이어간다. 고만 고만한 봉을 몇 개 넘어간다. 좌측으로 시원한 전망대가 있다. 여기서의 조망은 일품이다(10:14). 10시21분 좌측의 바위 모양이 예사스럽지 않다. 백두대간에 있는 대포바위와 다를 바 없다. 곧 이어서 목장 지대 철조망이 나타나고, 목장 관리사인자 허물어져가는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목장 내에 저수지도 나타난다. 목장 옆의 임도를 따라서 계속 진행이다.
 
10시55분 헬기장이 나타난다. 옆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의 조망도 일품이다. 지나온 정맥과 앞으로 나가야 할 정맥 능선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목장내의 임도를 따라서 계속 진행이다. 11시18분 “仁同張氏 世葬阡” 이라고 쓴 비석앞과 묘 가운데를 지난다. 묘를 아주 잘 가꾸어 놨다. 비문을 대충 읽어보니 윗대는 통정대부를 지냈다고 비문에 새겨 놓았다. 오름을 계속하니 산불무인감시안테나가 서있는 국수봉이다(11:25).삼각점은 있으나, 글자를 알아 볼 수가 없다.
 
11시33분 선돌고개에 내려선다. 시멘트 포장이 된 도로이다. 범죄없는 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고, 마을위로는 경지정리 되지 않은 논다랑이가 눈에 들어온다. 마을 보호수가 두 그루 있다. 보호수 두 그루 사이에서 잠시 다리쉼을 한다. 이 지방에는 묘 가꾸고, 비석세우는 것을 가문끼리 경쟁을 하는지, 돈 자랑을 하는 것인지, 심할 정도로 가는 곳 마다. 묘가 호화스럽다. 비슬(벼슬)도 하지 않았는데도, 비마다 학생 *&*******& 라고 새겨 놓은 것을 보면 어떨 때는 웃기고 있네?~ 하는 생각도 할 때가 있다.
 
선돌(입석)마을 입구에도 비석이 하나 있다. 이 비석은 그냥 ******** 선생 추모비라고 새겨져 있다. 선돌고개에서 허기를 채울까 하다가 여기서 허기를 채우고 나면, 오름이 계속 되므로 한 봉오리 오른 다음에 허기를 채우기로 하고 출발이다.
 
12시 15분 수양산 갈림길이다. 수양산 갈림길을 지나서 내림을 조금하니 지도상에 없는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는 차량과 사람통행이 없는지 억새풀이 가득하다. 여기서 허기를 채운다(12:30), 오늘 산행은 속도도 빠르고 해서 허기 채우는데 여유가 좀 있다.

13:00 호남정맥 중간지점 표지판이 나타난다. 표지판은 여수시 산악연맹에서 2004.9.26일 세웠는데 여기가 중간지점인가 하는 의아심이 든다. 아마 표지판을 세운 분들은 주줄산(주화산)에서 외망 포구가 아닌 백운산 사이까지의 중간지점으로 잡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마 무등산 오르기 전 서밧재 정도가 중간쯤이 아닐는지???

13시 20분 자갈이 깔린 임도가 나타난다. 지도상으로 봐서는 담양군 대덕면??과 담양군 창평면을 잇는 임도??인 것 같다. 임도를 잠시 지나니 좌우측으로 등산로라고 표기된 이정표가 나타난다. 표지판 지주에는 “바르게 살자” 라고 표기되어있다. 잡나무 숲길 터널을 오름한다.
 
13시 48분 지도상의 범바위?를 만난다. 범바위 위에 올라서니 대덕면 마을과 논밭들이 눈 아래 들어온다. 좌측으로는 급경사 사면이다. 혹시라도 떨어지는 날에는 천리 낭떠러지 길이다. 다시 한차례 오름을 하니 왕릉 같은 묘가 나타나고 이어서 만덕산 정상이다(14:05). 정상에는 문재고개입구 2k1250m(아마 표기 오기 인 듯 함), 정상할머니바위 50m, 등산로 입구3km,표지판이 나타난다.
 
정상할머니 바위 쪽으로 30미터 정도 가면, 정상 표지판(575m)이 그냥 나뒹군다. 여기서 할머니 바위까지는 1분도 채 안 걸린다. 가까이 갈 수는 없고, 낭떠러지라서 그 냥 멀리서 볼 수만 있다. 정상할머니 바위에서 되돌아 나오면, 헬기장이 나타나고, 헬기장에는 억새풀과, 찔레 넝쿨이 뒤 섞여 있다. 만덕산 정상에서 내림길이 이어지다가, 한차례 오름을 계속하면 500봉이고, 오름이 잠간 이어지고 내림길이 계속되면서, 임도가 나타나고(14:35), 390봉을 지나서 내림길이 이어지더니 방아재다(15:05).
 
방아재 포장도로를 가로질러 도로 위로 “공산초등학교 총동문회 정기총회 및 송년의 밤”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오늘 산행 끝점이다. 다음 정맥 들머리를 확인한다. 방아재에서 창평쪽으로 3분 정도 내려오면, 유명한??약수터가 나온다. 창평면에서 식당에서 왔는지 봉고차에다 물통 20L 짜리를 가득 싣고 와서 약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봐서 꽤나 유명한 것 같은데, 이름난 약수터라면. 수질검사 표지판도 걸어 놓고 하는데 여기는 뭘 하는지 먹어도 괜찮은지?? 약간의 걱정은 되지만((약수터라고 하는데 약수 나오는 게 수돗물처럼 콸콸 나오는데 이런 약수는 처음 봤음)여기서 약수 한 사발 마시고 집으로 향하다.
 

 호남정맥 일출 광경

 

 한국가사 문학관, 유둔재 이정표

정자와 가사문학의 중심지 증암천
887번 지방도가 지나는 유둔재는 호남정맥 분수령이다. 고갯마루에 떨어진 빗물이 동쪽으로 흐르면 김삿갓이 말년을 보낸 동복호로 흘러들고, 서쪽으로 흐르면 영산강의 지류인 담양 증암천(창계천)인데, 이곳이 바로 조선시대의 가사문학이 화려하게 꽃을 피운 곳이다.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서 호남정맥에 등 기대고 있는 독수정 원림,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명목원 원림, 송강정 등 실로 이름 높은 정자와 전통 정원으로 이름 높은 유적지들을 만나게 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민간 정원인 소쇄원(瀟灑園· 사적 제304호). 햇살도 거를 정도의 울창한 대숲, 자연석이 조화를 이룬 아담한 계류, 그리고 그 속에 절묘하게 자리잡은 정자가 어우러진 풍정은 잘 그려진 한 폭의 산수화다.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1530년(중종25)에 꾸민 조선시대 대표적 민간 정원의 하나로서 은사인 조광조(趙光祖·1482~1519)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뜻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살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제월당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 건물과 오곡문 사이에는 두 계단으로 된 매대(梅臺)가 있으며, 여기에는 매화, 동백, 산수유 같은 나무와 기타 꽃나무가 심어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가사문학의 대가로 꼽히는 송강 정철의 대표작인 “성산별곡”이 탄생한 식영정(息影亭)은 부근의 정자들 가운데 가장 전망이 좋다. 마루에 앉아 호수에 잠긴 무등산 그림자를 감상하는 맛이 좋다. 식영정에서 창계천 너머로 건너다보이는 환벽당(環碧堂)은 송시열이 쓴 현판이 남아 있어 유명하다. 이들은 송강정과 함께 “정송강 유적”으로 불린다. 또 환벽당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언덕엔 의병장 김덕령 장군을 기리기 위한 취가정(醉歌亭)이 있다.
 
한편, 소새원과 식영정 사이엔 2000년에 문을 연 가사문학관이 있어 가사문학에 관한 모든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여기엔 가사문학 자료를 비롯하여 송순의 면양집과 정철의 송강집과 친필 유묵 등 가사문학 관련 서화와 관계문헌 6.000여 점의 귀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삿갓봉 갈림길

 

교원연수원 갈림길 이정표
 

산행지도 한 번 확인 하고
 

최고봉 표지판

 

 

 소쇄원 주차장 갈림길

 

 노가리재

 

활  공  장

 

 창평면내가 바라다 보임

 

 활공장에 세워져 있는 비행안전 수칙

 

지나온 호남정맥

 

 대포바위???

 

창평면내의 평야

 

젊은 산친구, 솔바람

 

호남정맥 중간지점 표지판, ( 실제로는 맞지 않는 것 같음)


범   바   위

 

가운데 바위가 할머니 바위

 

만덕산 정상 표지판

만덕산
호남정맥 만덕산(575.1m)에서 서북쪽으로 내린 작은 지맥은 15~20km쯤 뻗어 내리며 봉산면 삼지리에서 세력을 다 하는데, 그 중간엔 미암일기를 보관한 모현관이 있다. 조선 선조 때 학자인 미암(眉岩) 유희춘(柳希春· 1513~1577)의 친필일기인 미암일기(眉岩日記 · 보물 제260호)는 조선시대 개인의 일기 중 가장 양이 많고 사료 가치도 높다.
 
지금 남아있는 일기는 1567년 (선조1) 10월1일부터 1577년(선조 10)5월 13일까지 대략 11년간에 걸쳐 쓴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 25년 이전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다 타고 없어져 선조실록을 편찬할 때 사료가 없으므로 이 책은 율곡 이이의 경연일기(經筵日記)와 더불어 선조실록 첫 10년의 사료가 되었다. 여기엔 본인의 일상생활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상세히 적었기 때문에 이를 통하여 당시 상류층 학자들의 생활상황을 엿볼 수 있다.

 

산행 끝점 위에 있는 병원 (노인병원, 치매병원)

 

산행 끝점인 방아재 

(공산초등학교 총동문회 정기총회 송년의 밤 현수막이 걸려있슴)

 

by 야초 | 2006/11/26 15:11 | 호남정맥종주산행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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