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라고 하면 먼저 무엇이 떠오를까. 장마철에 벽지에 낀 까만 얼룩? 상한 빵과 음식을 뒤덮은 솜털? 발가락에 생기는 무좀? 머리에 생기는 비듬?
흔히 곰팡이를 혐오스러운 미생물로 생각한다. 특히 피부를 파고드는 무좀균은 곰팡이의 대표적인 악이다. 무좀균을 죽이기 위해 빙초산에 발을 담그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또 벼도열병은 1년 벼농사의 성패를 결정짓는 가장 무서운 병이다. 이 병도 곰팡이가 일으킨다. 그러나 곰팡이는 양면성, 즉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곰팡이는 최근 신약과 생물 농약 개발에 활발하게 이용되는 등 첨단과학에서도 활약이 대단하다. 필자는 곰팡이를 ‘신이 인류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말한다.
곰팡이가 맛내는 된장찌개 곰팡이의 하나인 버섯은 인류 역사상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맛있는 음식 중 하나다.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생산하는 푸른곰팡이(페니실리움)가 없었다면 현재 지구에 사람이 몇 명이나 살아남아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누룩곰팡이가 없었더라면 한국인이 좋아하는 된장찌개와 청국장의 심오한 맛을 즐길 수 있을까. 치즈 특유의 맛도 곰팡이가 만든다. 곰팡이가 없었다면 한 잔의 술을 마시면서 슬픔을 달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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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즐기는 버섯 요리를 비롯해 한국의 된장찌개와 유럽의 치즈는 모두 곰팡이를 이용한 음식이다. | 곰팡이란 무엇일까. ‘곰팡이는 교과서를 읽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종마다 워낙 변화무쌍하다. 굳이 곰팡이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나뭇 가지처럼 생긴 실 모양의 균사체로 이뤄져 있으며 균사체는 진핵세포로 이뤄져 있고 유성 또는 무성생식으로 포자(곰팡이 씨앗)를 만들어 번식한다. 몸 밖에서 유기물을 분해해 영양분을 흡수한다’가 될 것이다. 곰팡이는 지구상에 약 150만종이 있다고 추정되나 지금까지 약 7만종만 보고됐을 정도로 연구가 부족한 미생물이다.
곰팡이를 종류별로 나눈다면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곰팡이는 습도, 온도, 유기영양분만 있으면 아무데서나 자라는 사물기생성 곰팡이에 해당된다. 버섯도 여기에 속한다. 벼도열병과 같이 식물에 병을 유발하는 곰팡이를 식물병원성 곰팡이, 곤충에 병을 유발해 죽게 하는 곰팡이를 곤충병원성 곰팡이라고 한다.
사람이 곰팡이를 이용한 사례 중 가장 오래된 것 은 역시 먹거리다. 식용 버섯은 주로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특이한 곳에서 서식한다. 한국과 일본에서 최고의 버섯으로 손꼽히는 송이버섯은 소나무가 있는 깊은 산속에서만 찾을 수 있고, 약용 버섯인 석이버섯은 주로 사람 손이 잘 닿지 않는 높은 절벽에 산다. 유럽에서는 트러플(Truffle)이라는 버섯을 최고로 친다. 값이 1kg에 수십만원 할 정도다. 이 버섯을 찾기 위해서 돼지나 개를 이용한다. 이 버섯은 땅 속에서 자라 돼지나 개의 뛰어난 후각이 아니면 도저히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유럽 또는 남미의 식품가게에 가보면 식물에 병을 유발하는 병원성 곰팡이의 포자로 만든 캔 음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퓨사리움 (Fusarium) 과 스멋(Smut) 곰팡이 포자로 만든 음식이다.
인간이 지혜가 늘면서 곰팡이에서 특이한 물질을 찾기 시작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페니실린 항생제다. 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소중한 페니실린은 1929년에 영국 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처음 발견했다. 일반인들은 지금의 페니실린을 플레밍이 만들었다고 믿지만 페니실린이라는 항생제가 정식 의약품으로 나오기까지는 40여년이라는 기나긴 연구가 필요했다. 현재 페니실린을 만드는 푸른곰팡이는 자연에 존재하는 곰팡이의 돌연변이로 1만3000배나 페니실린을 더 많이 만든다. 그러나 페니실린이 모든 병원성 세균을 죽이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곰팡이로부터 더 좋은 물질을 찾아 나섰다.
마침내 1961년 아브라함과 뉴톤이 ‘세팔로스포리움 아크레모니움’(Cephalos porium acremonium)이라는 곰팡이에서 더 많은 세균을 죽일 수 있는 ‘세팔 로스포린C’라는 항생물질을 발견했다. 지금은 페니실린보다 더 많이 사용되는 항생제다. 이 물질은 세균이 세포벽을 만드는 것을 방해해 세균이 더 이상 자라거나 증식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후 카바페넘, 세파마이신, 모노박탐 등 다양한 항생제가 곰팡이에서 만들어졌다. 사실 항생제의 60%는 곰팡이에서 나온다. 곰팡이가 세균과의 치열한 전쟁 끝에 만들어낸 항생물질을 인간이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장기이식도 곰팡이가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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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곰팡이에서 처음으로 항생제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 그러나 페니실린이 실제로 상용화되기까지는 수십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 곰팡이가 만드는 약에는 항생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장기이식수술을 할 때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사람의 장기를 거부하는 면역반응이다. 이 때문에 수술을 받은 뒤 면역억제제를 계속 넣어줘야 하는데 대표적인 면역억제제 ‘사이클로스포린’이 곰팡이에서 나온 약이다. 장기이식을 받은 환자는 평생동안 ‘곰팡이’를 몸 안에 달고 산다고 말할 수 있다. 콜레스테롤이 너무 많아 생기는 고지혈증의 치료제인 로바스타틴, 심바스타틴, 프라바스타틴 등도 곰팡이에서 나온 약인데 시장 규모가 연 60억 달러(약 6조원)가 넘는다.
지금까지 곰팡이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곰팡이 부류에 국한돼 왔다. 최근 연구가 활발한 곤충병원성 곰팡이는 일상에서 거의 접할 수 없는 부류다. 곤충병원성 곰팡이는 약 5000종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불과 800여종만이 보고됐다. 동아시아에서 한약재로 쓰이 는 동충하초도 이 곰팡이의 한 종류다. 곤충병원성 곰팡이는 곤충만을 먹이로 번식할 뿐 사람과 척추동물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곤충병원성 곰팡이는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예로부터 훌륭한 한방제로 이용돼 왔다. 중국에서는 수천 년 동안 맹신적이라고 할 정도로 약효를 믿어왔고 현대 의학에서도 그 약효가 입증됐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 지도자 덩샤우핑이 먹었던 코디셉스 시넨시스(Cordyceps sinensis)라는 곤충병원성 곰팡이다.
이 곰팡이는 실험결과 항암효과, 콜레스트롤 저하, 당뇨병, 백혈병, 심장병, 고혈압 등에 신비할 정도로 약효가 뛰어나다고 입증됐다. 미국 병원에서는 이 곰팡이를 처방전에도 사용한다. 이 곰팡이는 해발 3000~ 4000m의 티벳 고원에 사는 박쥐나방의 애벌레에만 기생해 인공배양이 불가능하다. 곤충병원성 곰팡이로부터 발굴한 대표적인 의약품이 앞서 말한 면역억제제 싸이클로스포린이다. 이 약은 딱정벌레에 기생하는 곰팡이에서 처음 나왔다. 국내에서도 예로부터 곤충병원성 곰팡이를 민간요법으로 사용했다. 동의보감에 수록된 백강잠은 당뇨 등에 약효가 있다고 하는데 이 또한 백강균(Beauveria bassiana)이라는 곰팡이에 감 염돼 죽은 누에 애벌레를 말한다. 백강균은 외국 문헌에서도 혈전작용에 따른 뇌졸중에 탁월하다는 보고가 있다.
필자도 국내에서 채집한 곰팡이로부터 비듬 치료물질을 비롯해 무좀, 여드름, 아토피 피부염, 캔디다증 치료물질 등을 발굴해 현재 상품화를 앞두고 있다. 비듬균도 곰팡이니 곰팡이로 곰팡이를 제압하는 셈이다. 곰팡이에서 비듬 치료물질을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곰팡이에서 발견한 비듬치료물질의 강점은 약효가 기존 제품보다 무려 1만2000배 가량 높고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현재 비듬 치료제 니조랄에 들어 있는 케타코나졸이라는 물질이 가장 강력한 비듬균 항생제로 알려져 있다. 실험결과 비듬균을 죽일 수 있는 최소 농도가 케타코나졸이 0.5ppm(1ppm은 100만분의 1)인 반면 우리가 발견한 물질은 0.00004ppm으로 나타났다. 현재 외국 회사와 예비 계약을 맺었는데 우리는 이물질의 판매 가격으로 금보다 비싼 1kg당 35억원을 제시했다.
곰팡이로 해충 없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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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위에 곰팡이가 가득 자라난 모습. | 곤충병원성 곰팡이는 최근 무공해 미생물 농약으로도 각광받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사실 이 곰팡이는 19세기 중반까지 유럽의 주요 산업인 양잠업에서 누에에 병을 일으키는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그러나 프랑스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곰팡이를 이용해 해충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곰팡이를 이용한 생물 농약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연구는 한동안 성공하지 못했지만 20세기 후반 들어서 관련 기술의 발달로 실용화되기 시작했다. 곰팡이 농약은 사람에게 전혀 해가 없고, 지하수, 가축 등 생태계에도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친환경 농약이다. 대표적인 미생물 농약으로 버티실리움(Verticillium)이라는 곰팡이로 만든 진딧물용 농약과 온실가루이를 없애는 곰팡이 농약이 현재 외국에서 개발돼 팔리고 있다. 모두 네덜란드 코퍼트사 제품이다. 다국적 기업인 몬산토, 바스프 등도 곰팡이 농약을 연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필자가 국내 토착 백강균 및 버티실리움 곰팡이를 이용해 배추좀나방과 진딧물, 온실가루이 방제용 곰팡이 농약을 최근 개발했다. 현재 실용화를 앞두고 있다. 임상시험 결과 한국 곰팡이 농약은 외국 제품보다 2배 가까운 살충 효과를 보였다. 약하디 약해 보이는 곰팡이가 어떻게 살아 있는 해충을 죽일까. 곤충병원성 곰팡이의 씨앗인 포자가 숙주인 곤충을 만나면 포자에서 자란 곰팡이 몸(균사체) 끝에서 곤충의 딱딱한 표피를 녹일 수 있는 효소가 분비된다. 효소에 의해 분해돼 말랑말랑해지고 느슨해진 곤충의 표피층을 끝이 뾰족한 균사체가 송곳처럼 뚫고 들어간다. 효소의 종류에 따라 녹는 곤충의 표피가 다르다.
일단 곤충 안으로 들어간 곰팡이는 포자로 다시 변신한다. 포자의 번식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 곤충을 빨리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포자는 곤충 내부의 방어망을 쉽게 피할 수 있다. 포자에서 다시 곰팡이가 자라나고 이 곰팡이가 곤충 내부의 구조물을 공격하고 분해해 결국 곤충이 죽게 된다. 대부분의 곤충병원성 곰팡이는 이런 공격 기술을 이용한다. 곤충을 죽이는 곰팡이는 주로 깊은 산속처럼 사람의 손길이 잘 닿지 않은 곳에서 관찰된다. 이 때문에 필자는 20여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뜸한 전국 오지를 헤맸다. 곰팡이를 채집하다 깊은 산속에서 무수히 많은 뱀들과 상견례를 했고 절벽에서 떨어지고 산 속에서 길을 잃어 헤매기도 했다. 덕분에 지금까지 한국 토종 곰팡이 약 400여종의 균주를 확보했다.
필자는 아침에 연구소에 가면 제일 먼저 배양기에 있는 곰팡이에 문안 인사를 한다. 미생물은 말 그대로 미미한 생물체이기 때문에 하루라도 관심을 소홀히 하면 바로 표시가 난다. 한번은 산업적으로 중요한 곰팡이 균주에서 처음으로 자실체를 만든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곰팡이의 관리를 소홀히 해 곰팡이가 활성을 잃었고 다시는 자실체를 만들지 못했다. 이후 전국을 뒤졌지만 아직까지도 그 곰팡이의 균주를 찾지 못했다. 곤충병원성 곰팡이는 외국에서도 연구가 아주 미흡한 미생물이다. 그만큼 미개척지다. 필자는 언젠가 한국 토종 곰팡이에서 페니실린 버금가는 물질을 발굴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진핵세포 | DNA가 들어 있는 핵이 막으로 둘러싸인 세포. 현미경으로 보면 핵이 뚜렷이 보인다. 핵막이 없는 세포를 원핵세포라고 한다. 균주 | 한 종류의 균만을 순수하게 기른 것. 자실체 | 곰 팡이는 식물의 씨앗에 해당하는 포자를 만들어 번식한다. 곰팡이에서 포자를 만드는 기관이 자실체다.
윤철식 교수는 고려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미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벤처기업 마이코플러스를 창업해 곰팡이에서 페니실린처럼 세상을 바꿀 만한 신물질을 찾고 있다. 20여년 동안 한국의 곰팡이를 찾아 전국을 헤맸으며 외국에도 없는 곰팡이 전집을 만드는 꿈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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