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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하시의 욕심
왕하 5:15-27
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16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19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
20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21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맞이하여 이르되 평안이냐 하니
22 그가 이르되 평안하나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제자 중에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로 왔으니 청하건대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23 나아만이 이르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그를 강권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그들이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24 언덕에 이르러서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받아 집에 감추고 그들을 보내 가게 한 후
25 들어가 그의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26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
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왕하 5:15-27 / 그가 수행원들을 모두 거느리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로 돌아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외에는 온 세상에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내가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러니 감사해서 드리는 나의 선물을 받아 주십시오!' 16) 그러나 엘리사는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걸고 맹세하지만 나는 아무 것도 받지 않겠습니다' 하고 거절하였다. 나아만은 그의 마음을 돌이켜 놓으려고 여러 번 애를 썼으나 엘리사는 여전히 어떤 선물도 받지 않았다. 17) 마침내 나아만이 이렇게 말하였다. `선생님이 이렇게 나의 선물을 받지 않으신다면 나귀 두 마리가 싣고 갈 수 있을 만큼만 여기서 흙을 파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나는 이제 돌아가서 그 흙으로 제단을 만들어 놓고 여호와께만 번제와 제물을 바치고, 다른 어떤 신도 섬기지 않겠습니다. 18) 그러나 한가지 여호와께서 묵인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왕이 우리 나라의 민족신인 림몬을 섬기러 신전으로 들어갈 때에 내가 그의 오른팔을 붙잡고 함께 들어가서 절을 해야 되는데, 여호와께서 이것만은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19) 이때 엘리사가 `걱정하지 말고 편안히 가십시오' 하고 말하자 그는 그곳을 떠났다. [문둥병에 걸린 게하시] 나아만이 엘리사에게서 떠난 뒤 얼마쯤 지나서였다. 20) 엘리사의 시종 게하시는 문득 다른 생각을 품게 되었다. `저 부유한 아람 장군이 싣고 온 선물들을 하나도 받지 않고 모조리 돌려보내시다니 스승께서 잘못하신 게야! 그 가운데서 몇 가지만이라도 받아 놓으셨으면 좋았을 것을! 이제라도 내가 뒤쫓아가서 무엇이든지 좀 받아와야지!' 21) 게하시는 나아만의 일행을 급히 뒤쫓아갔다. 나아만은 멀리서 달려오는 그를 보고 수레에서 내려와 맞으며 `무슨 일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22) 게하시가 대답하였다. `별일은 없습니다만 방금 에브라임 산지에서 예언자 공동체에 소속된 학생 두 명이 찾아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필요한 은 ㄱ) 한 달란트와 예복 두 벌을 가져오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ㄱ. 35킬로그램) 23) 그러나 나아만이 오히려 두 달란트나 내놓았으니 게하시는 거절할 수도 없게 되었다. 나아만은 은 두 달란트를 두 자루에 담고 그 위에 예복 두 벌을 올려놓은 다음, 자기의 부하 두 사람에게 지고 가게 하였다. 그리고 짐을 진 그들이 24) 엘리사가 사는 마을의 언덕에 이르자 게하시는 두 짐꾼을 되돌려 보낸 뒤 그 물건들을 엘리사의 집안에 감추었다. 25) 그러고 나서 그가 스승의 방으로 들어가 그 앞에 서자 `게하시야, 네가 어디 갔다오느냐?' 하고 스승이 물었다. `저는 아무 데도 다녀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시종이 대답하였다. 26) 엘리사가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마차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그곳으로 가 있지 않은 줄 아느냐? 지금이 돈이나 예복을 받고 올리브 동산이나 포도원을 만들어 양 떼나 소 떼를 소유하며 남종이나 여종들을 거느리고 살 때냐? 그것은 거짓 예언자들이나 하는 일이다! 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너와 네 후손들에게 모두 옮겨 붙어서 영영 떠나지 않을 것이다.' 게하시가 엘리사 앞에서 물러나자, 문둥병에 걸려 온몸이 눈처럼 희어졌다.
나아만은 감사로 가득한 마음으로 아람으로부터 가져왔던 선물을 전하기 위하여 요단에서부터 약 25마일(약 40km) 떨어진 사마리아에 있는 엘리사의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나아만의 감사(15-18) 병 고침을 받은 나아만은 그가 준비했던 모든 선물을 강권적으로 엘리사에게 드렸지만, 그는 단호하게 선물을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나아만을 치료하시는 분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모든 영광은 하나님이 받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이스라엘 백성이나 이방인이나 누구에게든지 값없이 주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엘리사의 단호함에 그가 준비한 선물은 그냥 되돌아가져가지만, 대신에 평생을 하나님을 섬기겠다며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나아만은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로 알았기 때문입니다(15). 그래서 이곳의 흙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제단을 만드는 일에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많은 다신교들은 그 자신의 땅이나 그 땅의 흙으로 지어진 제단이 아니고서는 그들의 신이 숭배 받을 수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게하시의 욕심(20-24) 이방인인 나아만의 종들은 주인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엘리사의 말을 듣고 요단 강으로 가서 몸을 씻을 수 있도록 했는데, 게하시는 위대한 선지자의 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탐욕에 이끌리어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챙겨 가져갑니다. 왜냐하면 게하시는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주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며, 선지자가 거절하는 것을 보며 개인적으로 욕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욕심은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약 1:15)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게하시의 거짓말(25-27)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질문합니다. 이는 엘리사 선지자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양심을 향해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하나님의 눈길을 피해있는 아담을 향해 “네가 어디있느냐”라고 부르신 하나님(창 3:9), 베드로가 삽비라에게 “그 땅 판값이 이것뿐이냐”고 질문했을 때(행 5:8)처럼 분명하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게하시의 탐욕은 거짓말로 이어지며 남의 재물을 부당하게 취하는 ‘도적질’로 발전되었으며, 결국 스스로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후손까지도 ‘영적 사망’을 의미하는 ‘문둥병’에 걸리는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적용: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혹여나 우리의 삶 가운데 그런 기회를 잃어버린 적이 없었는지요.
배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마라[李下不整冠 이하부정관]. 남에게 의심을 사는 행동은 하지마라.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은 주의 깊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최근에는 돈벌이만 된다면 의심을 받든 말든 법률을 파헤쳐 죄만 면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는 것 같습니다. 돈을 버는 데도 피해야 할 일이 있는 법입니다. 또 비록 자신은 나쁜 뜻을 품지 않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남에게 의심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것은 치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 설 교 >
게하시를 통한 교훈
오늘 본문 말씀은 문둥병에 걸린 게하시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교훈 되어지기를 소원합니다. 나아만은 아람왕의 군대장관입니다. 그러나 문둥병자 였습니다. 그는 자기 병을 고치기 위해서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미리서 은 10만 달란트와 금 6천개와 의복10벌의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나아만은 기대했던 대로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그 예물을 엘리사에게 바쳤습니다. 그런데도 엘리사는 극구 예물 받는 것을 사양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 능력으로 병을 고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병을 고치셨다고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거니 받거니가 아닙니다. '받으세요. 받으세요'가 있고 '아니요. 아니요'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한자로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는 게하시 마음가운데 욕심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야고보서 1장 15절이 무엇입니까?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게하시는 아마 여기 이 말씀을 전혀 기억조차 못했을 것입니다. 결국 게하시는 불행하게도 물질 욕심 그것 때문에 나아만의 문둥병을 물려받았다는 불행스러운 내용이 본문 말씀입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는 이 말씀 중심해서 게하시의 죄가 무엇인가 배울 수 있고 또 세 가지 교훈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어떤 교훈들입니까?
1.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는 것.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인데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거절한 예물을 대로 가지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게하시가 엘리사를 원망했습니다. '그런 귀한 것들을 물리치다니 자기만 싫으면 되는가 아랫사람도 좀 생각해야지'그러면서 게하시가 어찌했습니까? 본문 20절에 보면 "내가 저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취하리라"
마음에 작정을 했습니다. 여기 "무엇이든지"라는 말은 '닥치는 대로'혹은 '아무 것이나' 뜻일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탕하리라 생각하고 게하시는 엘리사 몰래 빠져나가 가고 있는 나아만을 쫓아갔습니다. 23절을 보면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저희가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그것을 몰래 집에다 감추어 두었습니다. 시치미를 뗀 게하시는 엘리사 앞에 섰습니다.
그 때 엘리사의 말이 무엇입니까? 25절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무슨 뜻입니까? '네가 무엇을 했느냐? 네가 어쩌자고 이러느냐'의미 일 것입니다. 게하시가 돌이킬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회개할 수 있는 그리고 제기할 수 있는 좋은 찬스입니다. 그런데도 게하시는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는 구약의 가룟 유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의 탐심이 부른 대가가 무엇입니까? 그 무섭고도 더러운 문둥병이었습니다. 본문27절에 그 내용이 있습니다.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엘리사의 말대로 게하시는 문둥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사 랑하는 성도여! 인생을 살아갈 때 어느 정도 욕심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람선 한 척이 유유히 섬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배의 엔진 고장으로 선체가 흔들리고 폭파가 되고 승객들이 사람 살려 사경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스피커를 통해서 선장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승객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배의 이상이 생겨 빨리 대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명보트가 많지 않으니 수영할 수 있는 사람들은 수영을 해서 저기 강 둑에 오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수영할 수 없는 사람들은 구명보트에 질서 있게 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수영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옷을 벗고 물에 뛰어 내려 헤엄을 쳐 강둑에 올랐습니다. 그리고는 나머지는 구명보트에 오른 것입니다. 얼마후 배는 가라 앉아 버렸습니다. 강둑에는 살아남은 사람들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원을 확인한 바 한 사람이 모자랐습니다. 왠일인가? 그리고는 잠수부들이 물 속을 뒤졌습니다. 잠시 후에 시체 한 구를 끌어올린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지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마다 혀를 차면서 '저럴 수가 있는가'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습니다. 목숨보다 재물이 중한 것인가? 목숨 잃고 돈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 이담. 저마다 한마디씩 했습니다. 죽은 사람은 알고 보니 헤엄을 치려고 사람들이 벗어놓고 옷을 샅샅이 뒤져서 돈과 보석과 시계들을 자기 주머니에 가득 채웠습니다. 무거운지라 물 속에 가라앉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고 "돈을 사랑하는 자는 돈과 함께 망하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예배드리는 귀한 시간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다짐하실 수 있기를 원합니다. 모든 탐심을 물리치는 믿음 생활을 영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용한 양식에 자족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라면 내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리라 믿고 믿음으로 감사하고 찬송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꼭 그렇게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무근한 말로 속이지 말라는 것.
나아만은 뒤따라오는 게하시를 수레에서 내려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21절에 "평안이냐"왜 평안을 물었습니까? 게하시 얼굴에 평안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속이는 자의 눈빛은 다르고 그 마음은 갈등일 것 아닙니까? 그런데 무슨 평안이겠습니까? 게하시는 나아만에게 새 빨간 거짓말을 했습니다. 본문22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생도 중에 두 소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 왔으니 청컨대 당신은 저희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게하시는 엘리사가 하지도, 시키지도 않은 말을 이렇게 무근한 것으로 나아만을 속였습니다. 나아만 만 속였습니까? 하나님의 종 엘리사에게도 거짓말을 했습니다. "네가 어디서 오느냐?"물었을 때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시말 하면 나아만을 쫓아간 일이 없습니다. 돈 한 푼 받은 적이 전혀 없는데요. 시치미를 떼었다는 말입니다. 게하시는 무근한 거짓말로 엘리사, 두 사환, 자기 양친도 속였습니다. 하나의 거짓말을 만들려면 열 개의 거짓말을 동원해야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나 거짓말이라는 말을 타고 땅 끝까지 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되돌아 올 수는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한 번 두 번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번을 속아 줄 사람은 없습니다. 게하시가 나아만에게서 취한 것을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 집에다 감추었습니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 깊숙한 곳에다 감추었을 것입니다. 본 사람이 없고 눈치 챈 사람도 없습니다. 나아만은 벌써 멀리 가버렸습니다. 두 사환도 내용을 잘 모릅니다. 아마 자기 아내에게도 이것을 속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게하시는 손을 털털 털면서 '이제는 되었다' 안도의 숨을 쉬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말이 무엇입니까?
본문26절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을 때냐"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네가 어디서 오느냐" 무슨 뜻입니까? '네가 집에 감추고 온 것이 무엇이냐'이러한 의미일 것입니다. 어떻게 엘리사가 이렇게 알았습니까? 본문26절입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무슨 말입니까? 그 때 내가 거기 있었느니라 라는 원문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종에게는 영감이 있습니다. 그 영감이 없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지도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도 게하시 인생이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영리한 성도는 사람을 거짓말로 속입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입니다.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벙어리 종교가 아닙니다. 성도들 저마다 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입을 가지고 어떻게 사용해야 합니까? 우리는 다 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입을 어떻게 사용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주신 그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야고보서 3장2절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입을 가지고 말을 많이 합니다. 하룻 동안에 얼마나 말을 많이 합니까? 그 사람 앞에서도 말하고 그 사람이 없어도 말을 합니다. 그래서 내 입 가지고 사람을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합니다. 그 입 가지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는 시장통이 아닙니다. 부도수표를 난발해서도 안 되고 저울을 속여서도 안될 것입니다.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니까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부흥을 막고, 은혜를 깨고, 마귀가 춤을 추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은혜스러운 말, 사랑하는 말,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말, 이웃을 축복하고 칭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잠언16장 24절이 말합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내 입 가지고 고운말쓰기 운동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라는 것.
게하시는 어찌했습니까? 20절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그랬습니다. 얼마나 가증합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는커녕 얼마나 배반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본문25절입니다. "게하시야"불렀습니다. 물론 게하시를 부르는 하나님의 종 엘리사의 음성입니다. 그러나 이는 엘리사를 통해서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종종 회개시키려고 죄인을 부르신 적이 많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하셨고 , 가인아? 네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문책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도 부르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물으셨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욕심쟁이 게하시 인생들을 부르십니다. 김집사야? 박집사야? 게하시야? 게하시야? 부르신다는 말입니다. 나아만의 문둥병이 언제 깨끗하여 졌습니까? 나아만도 처음에는 '내 생각에는'열 번을 되새겼습니다. 내 생각을 앞장 세웠을 때는 문둥병이 낳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을 곧 포기하고 하나님의 생각을 앞장 세웠을 때 나아만의 문둥병이 깨끗하여 졌습니다. 나아만이 깨끗하여 진 것은 요단강 물 자체가 약효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몸을 다섯 번 씻고 여섯 번 씻었을 때에 문둥병이 고쳐진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여 일곱번 몸을 씻었을 때에 이적이 일어났던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본문26절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엘리사가 게하시를 문책하면서 주신 말입니다. 지금이 어찌 그러고 있을 때냐? 우리의 삶에 적용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지금이 어느 때 입니까? 우리 모두가 성전 건축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몸부림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때문에 기도할 때입니다. 이 시간에도 우리 모두에게 주님께서 당부하십니다. 누가복음22장 46절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누구에게 주신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김집사님, 박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이 답합니다. 성경은 기도의 교과서이고 지침서입니다. 빌립보서 4장 7절이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6장18절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6장 24절을 보십시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이러고 보면 내게 기쁨이 충만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까? 기도는 성도의 무기입니다. 짐을 덜어주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쌓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기도는 우리의 힘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큰 능력을 가져다줍니다. 이사야 41장 10절의 뜻을 묵상해보십시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기도가 무엇입니까? 성도의 자본이고 밑천입니다. 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성도는 기도를 떠나 살 수가 없습니다. ♬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어느 교회 주일 학교 입구에 사탕을 담아둔 단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예배 후에 나가면서 사탕 하나씩을 꺼내 먹으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한 어린이가 사탕단지에 손을 넣었는데 도무지 손이 빠져나오지를 않은 것입니다. 소동이 났습니다. 아무리 빼도 나오지 않습니다. 별 수 없이 사탕단지를 조심스럽게 깨기로 하고 깼습니다. 깨고 보았습니다. 왜 어린이 손이 사탕단지 속에서 나오지 않았겠습니까? 욕심껏 사탕을 주먹 안에 꽉 쥐고 그것을 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 욕심꾸러기 성도들만 있다면 주일마다 사탕단지 몇 개씩이 깨어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게하시를 통한 교훈을 삶에다가 적용 해야 됩니다. 모든 탐심을 물리쳐보십시오. 탐심은 죄입니다. 끝내는 사망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무근한 말로 속이지 마십시오. 거짓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야합니다. 잠언 21장 6절입니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십시오. 시편 119편 105절은 말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우리 모두는 복된 삶을 염원합니다. 그런데 그 비밀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옳은 길 가기를 원하고 옳은 일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그 길이요 그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시는 게하시의 길을 걷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게하시의 길에서 돌이키는 그래서 나의 더러운 것이 깨끗하여지는 축복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