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1102] - 둘째미사
지혜서 3,1-9 로마 5,17-21 마태오 11,26-30
2022. 11. 2. (화). <세상을 떠난 가족을 둔 위로미사>/ 이태원의 압사사고 사망자들
<시작.......고백기도.......자비송.... 위령기도........본기도>
주제 :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사람을 기억함.
오늘은 위령(慰靈/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함)의 날입니다. 한자로 쓴 글자의 의미를 풀이하자면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삶을 마치고 하느님의 자비를 기다리는 사람/영혼을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우리가 오늘 생각하는 일이 말 그대로 세상의 일이라면 아무것도 영향을 줄 수 없는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이 나보다 먼저 삶을 마친 사람이나 영혼을 위해서 해줄 일은 아무것도 없고, 영향을 줄 일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앙에서는 같은 일에 관한 사정을 다르게 봅니다.
살아있는 우리가 신앙에 따라서 세상의 삶을 마친 분들을 기억하는 일은 특별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자신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세상에 살아있거나 살았던 사람들은 한계가 분명한 존재이기에, 개인이 충실하게 노력했다면 그다음 순간에는 하느님의 자비만이 필요한 상황을 만납니다. 지금은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나도 언젠가는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고, 다른 사람이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삶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들은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안식과 평안인데, 그것은 사람이 세상에서 산 노력에 결과나 당연히 받을 수 있다고 요구할 내용은 아니라는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재산이나 명성에 관한 일이 아니기에, 사람의 능력이 왜 닿지 않는 일이냐고 물으면 어떤 대답이 가능하겠습니까?
무거운 짐을 진자는 모두 당신께 오라고 예수님은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었지만, 우리가 그 말씀을 언제 기억하겠습니까? 세상은 사람의 것이니까, 잘 움직일 때는 내 마음과 생각대로 살다가, 마지막 죽는 때이거나 더는 우리의 몸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때가 되어서야 그 말씀을 기억해도 충분할까요?
세상에 사는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정확하게 구별하고 따르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지혜서의 말씀에서 들은 것처럼, 의인과 악인의 삶을 제대로 구별해야만 조금이라도 가능할 내용입니다. 사람의 삶은 그저 먹고 즐기는 현실의 것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뿐입니다. 세상에서 보이는 생을 마치면,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의 축복에도 참여하는 시간은 과연 없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 생각과 판단에 따라서 우리에게 만들어질 미래의 모습은 달라질 것입니다. 올바른 신앙인은 현실을 넘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고 믿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