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상어 / 김기준
내 나이 마흔에
아름다운 땅
필리핀 세부
거북이 알을 뜻하는
모알보알 그곳으로
고래상어를 만나러 갔다
불혹不惑의 나이가 뭔지를 몰라 허둥지둥하던 차
사진으로만 만나던 그 신비로운 현자를 찾아갔다
동터오는 아침
카사이 절벽
바다 밑 수심 10미터
나 홀로 기다린 지 한 시간 남짓
그 크고 순한 눈동자
순박한 모습
우아한 자태
잠깐 스쳐 갔지만 영원한 각인
필리핀 세부
거북이 알 같은
모알보알 그곳의
열 살 남짓
아리따운 소녀, 실비아
개들이 뛰어노는
산호로 만들어진 파낙사마 해변으로
그 가는 손으로 만들었을 목걸이와 팔찌를 팔러
나에게로 왔다
그 순한 눈동자
순박한 모습
여리고 가여운 자태
잠깐 스쳐 갔지만 영원한 각인
애처로운 저녁
바다제비 날고 있는 석양의 물결 위엔
소금쟁이 마냥 방카들만 떠 있는데
이 무슨 간절함들인가
나는 이제 지천명知天命
실비아는 아마 꽃다운 묘령妙齡
뉘엿뉘엿 해가 지듯
스멀스멀 나이가 든
지금의 우리는
무엇을 찾았을까
또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고래상어는 아직도 카사이 절벽을 지나다니고 있을 터
모알보알은 거북이 알을 품듯 실비아를 품고 있을 터
그런데
이순耳順으로 향하고 있는
나는 아직도
불혹不惑을 혹惑하며 회유하고 있는데
무거운 공기통을 짊어진 채
엄마의 자궁 같은 어두운 바닷속을 헤매고 있는데
바다는 아무런 말이 없이
다만
그 깊고 푸른 침묵만 보여주고 있다
― 시집 『푸른 고요에 우뚝 서다』(지혜,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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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준 시인
1963년 경남 김해 출생, 연세대 의과대학 졸업
2016년 <월간 시see> 등단
시집『착하고 아름다운』『사람과 사물에 대한 예의』『푸른 고요에 우뚝 서다』
사진 에세이 집 『그 바닷속 고래상어는 어디로 갔을까』
산문집 『나를 깨워줘』
현재 연세대 마취통증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