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한은 신불출이라는 사람을 만난이후 자신들이 우물한 개구리처럼 살아왔다고 생각하게 된다. 또한 신불출이 부탁대로 연극배우들을 혼내주기로 하는데 김영태가 큰 곤욕을 치룰 수 있다며 관두자고 두한을 설득한다. 이에 두한은 주먹을 휘두르는것이 아니라 연극을 못하게 하는 것이라며 영태를 안심시킨다.
두한과 그의 패거리들은 연극을 보기 위해 부민관으로 간다. 캄캄한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며 막이 오르고 관중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를 한다. 갑자기 두한이 김무옥에게 눈짓을 보내자 미리 준비한 가방을 연다. 그 가방에는 뱀이 가득 들어있었는데 순식간에 극장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공연은 무산이 되고 만다. 이 사건에 화가난 미와는 어떻게해서든 범인을 잡으라 하지만, 어디서부터 수사를 해야하는지 조차 몰라 난감해한다.
용식의 소개로 레슬링 선수 황병관을 만나게 된 두한은 메이지마찌로 가서 술을 먹게된다. 그곳에서 일본 헌병대 장교와 시비가 붙은 황병관은 장교가 꺼낸 니본도 앞에 겁을 먹게 되고 생명에 위협을 느끼게 된다. 결국 두한이 다서는데....
제목: 야인시대 대본 41회
# 1 밤길
두한과 부하들이 오고 있다. 두한은 여전히 생각이 많다.
김영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가?
두한 신불출이란 사람을 만나고 보니 지금까지 우리가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먹세계 바깥의 일을 너무 모르고 살았습니다.
김영태 하지만 너무 많이 아는 것도 그리 좋은 건 아니네.. 주먹은 어디까지나 주먹이어야 하는거니까..
두한 .............아무래도 혼을 좀 내줘야겠습니다.
김영태 혼을 내주다니...? (생각이 나) 아니 그럼 자네?
두한 그런 자들을 가만히 둬서는 안됩니다. 술자리에서 한 이야기라도 내가 한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지요.
김영태 하지만 두한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힘없는 연극배우들을 상대로 주먹을 쓴다는 건 좀 생각해 볼 문제일세.. 그리고 일이 잘못되면 큰 곤욕을 치를 수가 있어.
두한 염려마십쇼. 설마 이 김두한이가 그런 자들에게 주먹을 휘두르겠습님까? 어떻게든 연극을 못하게 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김영태 어떻게 말인가?
두한 저한테 생각이 있습니다. 형님은 그냥 지켜만 보십쇼.
김영태 .......................?
# 2 우미관 부근 길(낮)
삼수와 번개가 오고 있다. 삼수의 손에는 커다란 가방이 들려져 있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삼수는 몸에서 가방을 떨어뜨려 들고 있고, 번개도 가방을 피해 한두 발자국 떨어져 걷고 있다.
삼수 야 번개, 이제 니가 좀 들어. 팔 아파 죽겠어.
번개 (기겁을 하며) 야야야 저리 치워.. 이제 다 왔잖아?
삼수 하여간 뺀질거리는 데는 선수라니까.. (사이) 근데 왜 갑자기 이런 걸 구해오라고 하셨을까?
번개 낸들 아냐? 뭐 몸보신이라도 하실 모양이지... 흐흐...
그들 그렇게 우미관으로 향하면...
# 3 우미관 사무실
삼수와 번개가 와 있다. 두한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다.
삼수 다녀왔습니다, 형님..
두한 그래.. 내가 이야기 한 건 구해왔냐?
번개 에, 여기 잘 있습니다. 헤헤..
두한 (끄덕이며) 수고했다. 그럼 이제 가볼까?
김무옥 (시계를 힐끗 보고는) 그려... 서두르지 않으면 늦겄는디...
두한이 일어서면 김무옥, 문영철, 정진영이 따라 일어선다.
김영태 조심하게 두한이.. 그리고 저녁에 종로 유지분들과 자리가 있으니 늦지 않도록 하게..
두한 알겠습니다. 가자..
두한과 김무옥들이 밖으로 나간다. 가방은 김무옥이 들고 나간다. 김영태가 그 뒷모습을 보며 착잡해 한다.
와싱턴 어디들을... 가는 것인가?
김영태 별 일 아닐세.. 연극 구경을 가는 걸세.
와싱턴 연극....?
양코 뭣이요, 연극이라고라우? 아따 글면 우덜도 데리고 가제... 나도 연극 보고 잡은디..
와싱턴 그런데 조심하라는 말은 뭔가? 연극 보러가는데 뭐 조심할 일이라도 있단 말인가?
김영태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어..
번개 (갸우뚱하며) 이상하네... 연극을 보러가는데 왜 저걸 가져가시는 거지..?
삼수 그러게..
삼수 역시 갸우뚱하는데...........
# 4 종로 거리 전차 정류장
두한이 김무옥, 문영철, 정진영과 전차가 오길 기다리고 있다.
전차가 다가와 서고, 두한과 부하들이 전차에 오른다. 다시 전차가 출발을 하면....
# 5 부민관 외경
해방 후 국회의사당으로 쓰였고 현재는 서울시 의회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성장을 한 신사 숙녀들이 계속해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건물 전면에는 '등불'이라는 플랭카드가 걸려 있다. 고급 승용차가 도착하고 지위가 높은 듯한 중년의 사내들이 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간다. 이윽고 두한들도 그 곳에 도착을 했다. 검표를 하는 사내들이 두한을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사내1 큰형님 아니십니까? (꾸벅 절하며) 안녕하십니까, 형님..?
두한 여기서 일하고 있냐?
사내1 예, 형님
두한 표는 어디서 끊지?
사내1 아 아닙니다.. 그냥 들어가십쇼..
두한 고맙다.
두한은 어깨를 툭 치고 안으로 들어간다. 김무옥도 가방을 든 채 뒤따라 들어간다.
사내2 누구예요? 큰형님이라니요?
사내1 임마, 김두한 형님도 몰라? 종로에서 이거 말이야..
사내2 예? 그럼 저 분이...?
# 6 극장 안
캄캄한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며 막이 오른다. 관중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를 한다. 귀빈석의 친일고관들도 흐뭇하게 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관람석 한쪽에 앉아 있던 두한이 김무옥에게 눈짓을 보낸다. 그러자 김무옥이 씩 웃으며 가방을 연다. 문영철과 정진영은 오싹한 표정이다. 김무옥이 두한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인네들의 비명 소리가 극장을 울린다.
여자 악...!!
관객1 뭐야, 왜 그래?
여자 배, 뱀이에요. 뱀.
관객1 창피하게 왜 그래? 극장에 무슨 뱀이 있다구..
주위가 술렁거린다. 그 때 다른 자리에 앉은 관객이 또다시 비명을 지른다.
관객2 배, 뱀이다.. 뱀이야..!!
뱀 한 마리가 관람객 통로로 지나가고 있다. 모두들 그것을 보며 기절할 듯 비명를 지른다. 그리고 다른 쪽에서도 소란이 일어난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나오고 순식간에 공연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총독부 고관들은 영문을 몰라 당황해 하고, 무대의 배우들도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니 서 있다. 두한들만 그 와중에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 있다.
김무옥 아따 참말로 볼만들 하구만잉..흐흐흐...
문영철 왜 안 그렇겠냐? 캄캄한 곳에서 그 징그러운 것들이 발밑으로 지나다녀봐라.. 나도 다 소름이 돋는다.
정진영 더 볼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두한아..?
두한 그래.. 우리도 그만 일어서자..
출입구 쪽으로 뛰쳐나가는 관객들에 섞여 두한들도 밖으로 빠져나간다.
# 7 동 로비
쏟아져 나오는 관객들 사이로 유유히 두한들이 나오고 있다. 안내원 사내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당황해 한다.
사내1 진정들 하십쇼. 진정들 하세요. 하 이게 도대체 뭔 일이야? (다가오는 두한들을 보고) 형님들도 가시려구요?
문영철 임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극장에 뱀이라니....?
사내1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구 이거 큰일이네.
김무옥 느그들이 모르면 누가 안다냐? 느그들이 여그 경비를 맡은 거 아녀?
사내1 죄...죄송합니다.
김무옥 어찌 됐건 수고들 혀라잉..
사내1 예, 예 형님..
두한들이 미소를 지으며 극장을 빠져나온다. 관객들이 허둥대며 계속 빠져나온다. 그 혼란스러운 광경에서.........
# 8 종로서 고등계
미와가 날카롭게 되묻고 있다.
미와 뱀소동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문달영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공연을 방해하기 위해 극장에 뱀을 푼 것 같습니다.
미와 뭐야?
오무라 불령선인들의 짓이 틀림없습니다. 이번 공연은 총독부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올리게 된 연극이 아닙니까?
미와 그래서, 그래서 공연은 어찌 되었나?
문달영 관객들이 모두 빠져나가는 바람에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미와 뭐 무산돼? 어이구 뒷골이야..
문달영 괜찮으십니까, 경부님?
미와 이런... 이런 망신이 있는가? 총독부의 고위층 인사들이 상당수 참석하셨을 텐데.. 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형사들 ......................
미와 당장 잡아와. 종로서 고등계의 명예를 걸고 범인을 잡아오란 말이다.
오무라 하지만.... 이미 공연은 무산됐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사를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미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게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잡아오도록 해. 범인을 잡지 못하면 모두 사표 쓸 각오들 해.
형사들 ......................
미와 뭣들 하고 있나? 빨리 빨리들 움직여.
형사들 하이..
형사들, 각자 수갑 등을 챙겨 밖으로 사라진다.
미와 내가 너무 방심을 하고 있었어..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이런 일이 터지다니... 도대체 어떤 자들이란 말인가......?
# 9 우미관 앞
두한과 부하들이 오고 있다. 삼수와 번개가 그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두한들을 보고 놀란다.
번개 저기 형님들 아니냐? (달려가) 아니 형님들 어떻게 되신 겁니까? 연극 보시러 가신 거 아니었습니까?
김무옥 잉, 거그 가긴 갔는디, 벌써 끝나부렀다.
번개 예? 이렇게 빨리요?
문영철 그럴 일이 좀 있었다.
그들 그렇게 우미관으로 향하는데.......
삼수 저기 무옥이 형님?
김무옥 (돌아보며) 잉? 왜 그냐?
삼수 아까 전에 형님 아버님께서 찾아오셨댔습니다.
김무옥 뭐여, 우리 아부지가? 참말이냐?
삼수 예, 숙소를 알아보시고 다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김무옥 그려?
번개 형님, 좋으시겠습니다? 곧 장가가시게 될 것 같던데요.
김무옥 고것이 뭔 소리여?
번개 어떤 젊은 여자랑 함께 오셨더라구요. 헤헤헤 아주 참하게 생기셨던데요. 안 그러냐, 삼수야?
삼수 으, 응...
김무옥 젊은 여자라고?
의아한 김무옥의 모습에서...
# 10 다방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김무옥의 아버지와 치마저고리를 입은 다소 촌스럽지만 순박하게 생긴 젊은 처자(순이)가 마주해 있다.
무옥부 들어라잉..
순이 예, 아버님...
다소곳이 엽차를 드는데 김무옥이 안으로 들어온다. 주위를 한 번 휙 둘러보고 그 쪽으로 다가간다.
김무옥 아부지...? 아 연락도 없이 이 먼 곳까지 어떻게 오셨소잉?
김무옥이 다가오자 순이가 일어나 약간 외면하며 선다.
무옥부 니 놈이 통 내려올 생각을 안허니께 이 애비가 찾아왔제.. 아 급헌 사람이 샘을 파야지 어쩌겄냐?
김무옥 아따 뭣이 그렇게 급하신디요? 어쨌거나 우선 절부터 받으씨요.
김무옥이 바닥에 엎드려 넙죽 절을 한다.
무옥부 잉 그려 그려..
그 때 번개와 양코가 조용히 들어와 김무옥들의 뒷자리에 가 앉는다.
김무옥 (일어나) 근디 이 처자는.....?
무옥부 그새 순이 얼굴도 잊어부렀냐? 아 아랫마을 사는 순이 아니냐, 순이..
김무옥 (실망하며) 수, 순이요?
순이 그 동안 잘 지내셨어라우?
김무옥 이, 잉.. 오래간만이다잉.. (앉으며) 근디 순이 니가 여근 어쩐 일이냐?
무옥부 어쩐 일이긴 이 눔아. 야가 으디 넘의 집 사람이냐? 니 각시 될 애기가 아니여?
김무옥 예에?
양코 가, 각시?
번개 거봐.. 내 말이 맞지?
김무옥 아따 아부지도 참...고것이 언제쩍 이야기라고... 야 아부지랑 막걸리 자시면서 농으로 허신 말씀이 아니요?
무옥부 농이라니, 이 눔아? 이 애비는 그 때부터 야를 우리집 매느리로 여기고 있었는디..
김무옥 아부지...
무옥부 여러 소리 헐 것 읎어. 나가 이번 참에 하늘이 두 쪽나도 느그 두 사람 혼인을 시켜야겠응께 그렇게 알고 있더라고..
김무옥 아부지...?
김무옥은 난감한데...번개와 양코는 키득키득 웃고 있다.
# 11 길(밤)
두한과 김영태가 오고 있다.
김영태 허허허..그랬구만..공연장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겠구만 그래..
두한 .........................
김영태 어쨌든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일세.. 하루종일 마음을 졸였는데 말이야..
두한 .....그런데 무슨 일로 유지분들이 자리를 마련한 겁니까?
김영태 글쎄.. 자네에게 무슨 당부할 말씀들이 있는 거겠지. 가보세..
그들 그렇게 가면...
# 12 명월관 외경(밤)
# 13 동 어느 방안
설향이 손님 방에 앉아 가야금을 타고 있다. 모두들 넋이 나가 설향을 바라보고 있다. 연주가 끝나면 박수가 터져나온다.
손님1 이리 오너라... 자 자 내 옆으로...
설향이 곁에 가 앉으면... 손님1이 설향의 손을 잡는다.
손님1 아이구 곱기도 하지... 이 고운 손으로 가야금을 타니 더욱 듣기가 좋은 것 같구나... 허허허..
설향 ........................
손님2 이 사람 아주 이 아이에게 푹 빠져버렸구만 그래..
손님1 어떠냐? 오늘 밤 내 수청을 들겠느냐?
설향 한 잔 따라 올리겠습니다.
손님1 아 수청을 들겠느냐고 묻지 않는냐?
아이란 그만하세요, 손님.. 손님이 뭐 변사또라도 되는 줄 아세요? 수청을 들라니요? 호호호...
손님1 너에게 묻지 않았느니라.. 얘 설향아...
설향 ........................
아이란 그러시면 안되는데.. 저 아이 서방님이 누구신지나 알고 그러시는 거예요?
손님1 서방? 기둥 서방 말이냐? 아 어떤 작잔데...?
아이란 김두한이라고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손님1 뭐, 뭐, 김두한..?
손님1의 안색이 굳어진다. 설향에게 조금 떨어져 앉는다.
손님1 그, 그게 사실이냐?
아이란 어느 안전이라구요..
손님1 어흠.. 흠... 아 그러면 진작에 말할 것이지.. 에이 술맛 다 떨어져 버렸네.... 그만 일어들 나세...
설향 ....(마음이 좋지 않고)
# 14 명월관 마당
달이 휘영청 밝다. 설향이 처마에 기대어 쓸쓸하게 서 있다. 잠시 후 두한과 김영태가 마당으로 들어선다. 지배인이 달려가 그들을 맞는다.
지배인 어이구 어서들 오십쇼.. 유지분들께서 벌써부터 오셔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요.
김영태 안내하게..
지배인 예, 이 쪽으로...
두한과 김영태가 지배인을 따라 가다가 설향을 본다. 설향도 두한을 보고 고개를 숙인다.
두한 먼저 들어가십쇼. 전 잠시 후에 들어가겠습니다.
김영태 그러겠는가? 알았네.. 가세..
지배인과 김영태가 사라져가면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설향 오랜만에... 오셨네요?
두한 그 동안 잘 지냈어요?
설향 예..........
두한 얼마 전에 설향씨를 좋아한다는 그 사람이 우미관으로 날 찾아왔었습니다.
설향 .....................?
두한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란 건 알지만.. 좋은 사람인 것 같아 보이더군요.
설향 .......................
두한 그 동안 내가 설향씨에게 잘못한 게 너무 많았습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처음에는 설향씨가 부담스러웠어요. 난생 처음 만나는 여자였으니까..
설향 .......................
두한 나는 설향씨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말입니다.
설향 .......................
두한은 천천히 그곳에서 사라진다. 설향의 두 눈에서 눈물이 슬러내린다.
# 15 종로회관
와싱턴과 번개, 양코가 왁짜하게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와싱턴 하하하... 그러니까 무옥 아우한테 정혼자가 있었단 말이지...
양코 근디 무옥이 성님은 영 마음이 읎는 눈치 같더라구요.
와싱턴 아니 왜?
번개 인물이... 헤헤헤 좀 아니거든요.
와싱턴 ..............?
그 때 옥순이 다가온다.
옥순 어머나...일찍들 오셨네요?
와싱턴 오 옥순양이 아니신가?
옥순 어머... 제 이름을 기억하시네요?
와싱턴 당연하지.. 이름을 기억하는 건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아니겠소? 자 이쪽으로 앉으시오.
옥순 고맙습니다.
와싱턴의 옆자리에 앉자 양코와 번개는 아쉽기만 하다.
옥순 선생님은 정말 점잖으신 분 같으세요. 그리고 멋쟁이이시구요..
와싱턴 하하하.. 그렇소? 앞으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내게 다 이야기하시오. 이 종로 바닥에서 내 말이면 안되는 일이 없으니까.. 알겠소? 하하하하..
번개와 양코는 어이가 없다. 그러나 와싱턴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급에게 나긋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 16 여관 방안
무옥 부친과 김무옥이 마주 앉아 있다. 무옥 부친은 꼿꼿이 앉아 김무옥을 외면하고 있다.
김무옥 아부지.. 지는 참말로 아직 장개 갈 생각이 없구만이라우. 여그서 할 일도 많고... 아 글고 순이는.....
무옥부 순이가 어뗘서? 니놈한테는 과분한 애기여..
김무옥 어쨌든 지는 장개갈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응께 그렇게 알고 계시씨요.
무옥부 아무리 그려도 소용읎어, 이 눔아.. 애비가 헐일이 읎어서 여그까정 왔겄냐? 농사일 다 팽개치고...? 이 애비랑 내일 집으로 가서 혼례를 올리던지, 여그서 쟈를 그냥 데꼬 살든지 니 마음대로 혀.
김무옥 고것이 뭔 말씀이시다요? 여그서 데꼬 살다니요.....?
무옥부 니가 안 내려가면 순이 쟈도 내려가지 않을 것이여. 니 각신께 인자부터 니가 알아서 하란 말이여..
김무옥 예에?
어이없는 김무옥의 표정에서..
# 17 설향의 방안
설향이 외출복 차림으로 정운경이 준 여행증명서 봉투를 보고 있다. 생각이 많다.
정운경 (E)설향씨와 함께 가고 싶소. 일본으로 건너가면 아무도 그대를 기생으로 생각하지 않을 거요.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홀가분해질 수 있소. 여행증명서는 놓고 가겠소. 기차를 타는 마지막 순간까지 설향씨에 대한 희망을 접고 싶지 않소.
두한 (E)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란 건 알지만.. 좋은 사람인 것 같아 보이더군요. 나는 설향씨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말입니다.
설향이 여행증명서를 손가방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일어나 밖으로 나선다.
# 18 경성역 앞
정운경이 설향을 기다리고 서 있다. 비서가 초조한 듯 연신 시계를 보고 있다. 그러나 끝내 설향은 나타나지 않는다.
비서 사장님.... 기차 시간이 다 됐습니다.
정운경 ...................
비서 사장님..?
정운경 ......알았네... 가세..
비서 누구.....기다리시는 분이라도 있으십니까?
정운경 오지 않을 모양이야. 아니.....나오지 않을 줄 알고 있었지.
비서 아니 그런데 왜.....?
정운경 ............(씁쓸하게 웃고는) 글쎄...나도 잘 모르겠네...
정운경이 조금 더 그렇게 서 있다가 쓸쓸히 발걸음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설향이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설향의 그 모습에서......
# 19 잡지사 외경
최동열 (E)허허허..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 20 동 사무실 안
최동열이 직원들과 차를 마시고 있다.
최동열 그래서 그 등불이라는 연극이 무산됐단 말이지?
직원1 예, 사장님.. 누가 그런 일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속이 다 후련합니다. 하하하..
최동열 아직 이 나라가 살아 있다는 증거야.. 일제의 강력한 탄압으로 독립 운동이 무척 위축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식으로나마 저항 의식이 표출됐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일세..
사환 누가 그랬을까요? 정말 기발한 발상이 아닌가요?
최동열 그러게 말일세..
직원2 잠시나마 간담이 서늘했을 겁니다. 총독부의 고위 관료들이 많이 참석했다구 하던데요.. 그래서 종로서가 발칵 뒤집혔다고 하네요.
최동열 그럴 만도 하겠지... 그 쪽 치안을 담당하는 곳이 종로서니까.. 누르락푸르락할 미와의 얼굴이 눈에 선하구만. 허허허...
# 21 종로서 고등계
미와가 수화기를 들고 쩔쩔매고 있다.
미와 하이... 하이... 죄송합니다, 국장님. 모두가 저희들의 불찰이었습니다. 하이... 반드시 범인을 색출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하이..
미와가 긴 한숨을 쉬며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오무라가 곁에서 그런 미와의 눈치를 보고 있다.
미와 수사는 어떻게 되어가는가?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것도 없나?
오무라 그게.. 김형사와 문형사가 계속 부민관 관계자들을 만나보고는 있습니다만... 제가 돌아오기 전까지 별다른 진척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경부님.
미와 젠장...........
그 때 김태서와 문달영이 들어온다.
미와 어찌 되었나? 뭐 좀 나온 게 있어?
문달영 죄송합니다.
미와 그 놈에 죄송, 죄송... 그 소리 좀 그만할 수 없나?
형사들 ......................
미와 (김태서에게) 손에 든 건 뭐야?
김태서 어제 경비를 맡은 자들이 진술한 내용입니다.
미와 이리 줘봐.
오무라 저도 그자들의 진술을 들어봤지만 별다른 의문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미와 (한참을 읽다가) 긴또깡? 아니 긴또깡의 이름이 왜 여기에 적혀 있지?
김태서 긴또깡이 부하들 몇과 연극을 보러 왔었다고 합니다.
미와 긴또깡이 왔었다구?
문달영 예, 경부님.. 하지만 설마하니 긴또깡이 그런 짓을 저질렀겠습니까? 그 녀석이야 주먹이나 쓸 줄 알았지.. 연극이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을 겁니다.
김태서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요즘 한가해져서 구경삼아 왔을 겁니다.
미와 ............(생각) 긴또깡이 왔었다? 긴또깡이....?
# 22 국밥집
두한과 김무옥, 문영철, 정진영이 국밥을 먹고 있다.
두한 용식이 형님한테서 연락이 왔었다구?
정진영 응, 안부도 전해달라고 하셨구, 너한테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다고 하시더라.
두한 ....................?
정진영 혹시 황병관이라는 이름 들어본 적 있니?
두한 황병관?
무옥,영철 ...................?
두한 글쎄...처음 듣는 이름인데....
정진영 유명한 레슬링 선수야. 얼마 전에 동양챔피온이 됐다고 신문에 크게 난 적이 있었어. 용식이 형님이 소개시켜주겠다고 한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야.
두한 그래?
정진영 그리고.... 지난 번에 찾아왔던 그 일가 분들이 또 다녀가셨어.
두한 그 사람들이 또 왔다구?
정진영 (의문이다) 아니 왜? 일가분들이 아니었니?
두한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야.. 앞으로는 절대 들이지 말라고 애들한테 일러둬.
정진영 ................?
# 1 밤길
# 23 삼청동
그 일가사내들이 와 있다.
오씨 형편이 이래서 내올 것이 마땅치가 않네요. 미리 연통을 주셨으면 뭐라도 준비했을 텐데....
일가사내1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허허허...
조모 헌데 어쩐 일로 내 집엘 다 왔는가? 이야기를 해보게..
일가사내1 예... 실은 두한이 때문에 말입니다.
오씨 ..................?
조모 두한이? 그 아이 일이라면 잘못 찾아왔네.. 우리도 연을 끊고 지낸 지 오래되었네.
일가사내1 예? 그게 무슨........?
조모 연을 끊고 지낸다 하지 않았는가? 그 아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자네들도 알 것이 아닌가?
일가사내1 아 예.. 하긴 그러실 만도 합니다. 저희가 한 번 만나보았는데... 여간 버르장머리가 없는 녀석이 아니더군요. 감히 할아버지뻘 되는 저에게 두 눈을 부릅뜨고 당신이라고 소리를 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조모 ..................?
오씨 그럴 리가요? 우리 두한이라 그럴 리가....
일가사내2 저희가 직접 당한 일입니다. 왜 그런 거짓말을 꾸며내겠습니까?
조모 두한이가 정말 그랬단 말인가? 그래도 그럴 아이는 아닌데... 그래서, 그 일 때문에 온 것인가?
일가사내1 그런 건 아니구요. 실은 두한이를 설득해 주십사 부탁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조모 설득?
일가사내1 .........그 창씨개명 때문에 말입니다. 다 두한이를 위해서 말씀드리는 것이니까 미리 역정부터 내시지 마십쇼.
조모 뭐라.. 창씨개명? 그러니까 우리 두한이한테 창씨개명을 하라고 설득을 하란 말인가?
일가사내1 어쩔 수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라고 좋아서 이러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조모 닥치기 못하겠는가? 어디서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게야.
일가사내1 고정하시고 제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십쇼.
조모 나가거라. 썩 내 집에서 나가.
일가사내1 하 그것 참...
조모 나가라고 했느니라. 당장 일어나지 못할까?
일가사내2 가, 가시죠..
일가사내들이 한숨을 지으며 일어나 나간다.
조모 고연 것들.....감히 뉘집에 와서 그런 소리를 지껄인단 말인가? 저런 천하에 못된 것들 같으니라구.. 두한이가 참으로 잘못했구나... 저런 자들은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 놓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고연것들...
# 24 우미관 앞
두한들이 우미관 광장으로 들어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우미관 맞은편 가게에서 미와가 나오며 두한을 부른다.
미와 긴또깡!!
두한 ...(돌아보면)...?
미와 (다가와) 너 요즘 한가한 모양이구나? 어제는 부민관에 연극을 보러 갔었다면서....?
김무옥 .....(뜨끔하다)...
두한 ....................
미와 그럼 뱀소동도 알고 있겠구나...?
두한 그렇소.
미와 ........(두한들의 표정을 살피다가) 그 연극이 총독부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연극이라는 건 알고 있었나?
두한 .............그런 연극이었소?
미와 몰랐단 말이냐?
두한 그런 줄 알았으면 연극을 보러가지 않았을 거요.
미와 그래?
두한 당신도 한가한 모양이군. 그런 걸 물어보려고 여기까지 왔단 말이오?
미와 .....? 뭐, 뭐라?
두한 그럼 난 바빠서 이만 들어가보겠소.
두한이 돌아서 안으로 들어간다. 미와는 표정이 잔뜩 구겨져 있다.
오무라 아니 저, 저런.....
미와 .........내가 한방 먹었구만..
오무라 경부님답지 않으십니다. 그냥 데려다가 족치면 될 것을 가지고..
미와 그렇지가 않아.. 무작정 다루기에는 너무 커버렸어. 이제는 하야시도 인정하는 거물이 아닌가? 어쨌든 냄새가 나기는 한데....
# 25 그 안 사무실
두한과 김무옥들이 앉아 있다.
김무옥 저 쥐새끼 같은 놈이 눈치를 챈 거 아니여? 그러니께 여글 찾아온 거 아니냐고?
정진영 그런 거 같지는 않았어요. 제가 보기엔 한번 떠보려고 온 것 같습니다.
문영철 그랬을까?
두한 진영이 말이 맞을거야.. 어디 가서 떠들고 다니지만 않으면 걸려들 염려는 없어.
김무옥 그려도 어쩐지 껄쩍지근헌디........
두한 걱정말고 나가들 봐. 난 진영이와 둘이서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문영철 그래 알았다. 나가자, 무옥아.. 어디 가서 기분전환이나 하자.
그렇게 문영철과 김무옥이 나가면........
정진영 나한테 할 얘기가 있다구?
두한 응... 할 이야기라기 보다.. 신문을 좀 읽어달랠려고...
정진영 신문?
두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살아야지 않겠냐? 신불출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느낀 게 많아..
정진영 그랬구나.. 그러지 말고 두한아, 너두 글을 배우는 게 어때?
두한 내가 글을? (손사레를 치며) 됐다. 지금 와서 어떻게 글을 배우겠냐?
정진영 조금만 노력을 하면 돼. 니 머리라면 금방 익힐 수 있어.
두한 싫다.. 난 공부라면 질색이잖냐?
정진영 (피식 웃으며) 알았어...
정진영이 신문을 뒤적거린다. 그러나 오늘 신문은 보이지 않는다.
두한 뭘 그렇게 찾아?
정진영 응.. 오늘 신문이 보이지 않아서...
두한 그럼 어제 거라두 읽어줘..
정진영 이상하네... 영태 형님이 가져가셨나? (신문 하나를 가져와) 어느 면부터 읽어줄까?
두한 아무 데나. 내가 뭐 아는 게 있냐?
정진영 (웃고) .........총독부는 금일을 기해 국민징용령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특히 노동자에 대해서는 노무수급조정령과 중요 사업장 노무관리령에 의한 직접시책을 시행한다. 그리고...
# 26 우미관 앞
김무옥과 문영철이 건문에서 나와 어디론가 가려다가 김무옥이 화들짝 놀란다. 저쪽에는 번개, 양코, 와싱턴들이 순이와 함께 오는 것이 아닌가....
번개 어 마침 저기 나오시네요.
그들 사이가 가까워지면....
김무옥 야 번개, 어떻게 된 것이여?
번개 오는 길에 만났습니다. 형님을 만나러 오셨다기에........
김무옥 (순이에게) 우리 아부지는 으디 가시고 니 혼자여?
순이 아버님은 광주로 내려가셨구만이라우.
김무옥 뭣이여? 내려가셨다고? 근디 니는?
순이 .................
김무옥 아따 참말로 환장하겄구만잉... 니 쪼까 나 좀 보자..
김무옥 순이 니가 우리 아부지한테 무슨 야그를 듣고 이러는지 모르겄다만, 이래봤자 아무 소용읎은께 그만 니도 내려가라. 알겄냐?
순이 .................
김무옥 아 왜 대답이 읎어?
순이 안되여라우.
김무옥 뭐, 뭣이여?
순이 지한테는 무옥 오라버니밖에 읎구만이라우. 지는 무옥오라버니헌테 다 줬구만이라우.
김무옥 그게 뭔 소리여? 주긴 뭣을 줬단 말이여?
그 소리에 다방에 있던 사람들과 마담, 여종업원들의 눈초리가 모두 무옥에게로 쏠린다. 김무옥은 그 시선을 의식한 듯 난감해한다.
김무옥 니 왜 이러는 것이여? 나가 화나면 어떻다는 거 몰라서 이러는 것이여?
순이 (훌쩍이며) 참말로.... 야속하구만이라우...(소리내어 울면)
김무옥 (주위 눈치를 보며) 뚝 그치지 못혀? 아 언능..
순이 ...........(계속해 울면).........
마담 왜 여자를 울리고 그래요? 무옥씨 그렇게 안 봤는데 이제 다시 봐야겠네요.
여종업원 그러게 말이예요.
김무옥 아 고런 것이 아니라...
마담 (순이에게) 그만 울어요. 이럴수록 힘을 내야지 울기만 하면 되겠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내 뜨거운 차 좀 더 내올 테니까..
마담이 그렇게 사라지면...
김무옥 참말로 미치고 환장하겠구만..
김무옥의 난감한 표정 위로 전화벨소리가 들려온다.
# 28 우미관 사무실
전화벨이 울리고 있다. 정진영이 신문을 읽다말고 일어서려 하는데, 두한이 먼저 일어선다.
두한 아니야.. 내가 받을게.. (수화기를 들고) 우미관입니다. (사이) 제가 김두한입니다. (사이, 굳어지며) 아 예... (사이) 알겠습니다. 곧 나가도록 하지요.
정진영 무슨... 전화야?
두한 별 일 아니야..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두한이 외투를 집어들고 밖으로 나간다. 의아한 진영의 표정에서...
# 29 다방
미스터박이 편지를 두한에게 건넨다.
두한 이게 뭡니까?
미스터박 인애가 요양을 떠나면서 이걸 김두한씨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두한 떠나...다니요?
미스터박 그렇게 됐습니다. 아마 오랫동안 거기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구요.
두한 ......................
미스터박 하지만 떠날 때의 모습은 오랜만에 밝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두한 .......그랬군요.
두한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다. 한동안 그렇게 있다가 그 편지에 시선이 가면.....
# 30 기차안
박인애가 이제는 평온해진 모습으로 차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박인애 (E)이제 영원히 이별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제게 얼마나 많은 생의 날들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한씨와 함께 했던 그 시간들 만큼 아름답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가슴 속에 묻어야 할 것 같네요. 그래야 하는 거니까요.
박인애의 그 모습 위로 두한과의 추억이 스쳐지나간다. 첫만남에서 이별까지....그리고 다시 박인애의 얼굴로 돌아오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 31 인서트
기차는 그렇게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달려가고 있다.
# 32 잡지사
최동열이 신문을 보다가 접는다.
최동열 그예 동아와 조선도 폐간이 되었고 이제 조선어 신문이라고는 이 매일신보 밖에 남지 않았구만...
직원1 그게 어디 신문입니까? 총독부 기관지지요.
최동열 그야 그렇지... 이 매일신보도 사장이 바뀌었네.
직원1 최린이 퇴임을 했단 말씀입니까?
최동열 그런 모양이야. 후임으로 이성근이라는 사람이 사장이 되었네...
직원1 이성근이라면 악질 친일파가 아닙니까?
최동열 언론을 완전히 통제하겠다는 저의겠지..
직원2 이러다가 우리 잡지도 폐간이 되는 게 아닐까요?
직원1 왜, 실업자가 될까봐 두려워요?
직원2 에이.. 지금 농담할 때예요?
최동열 때가 되면 이 잡지사도 문을 닫으라고 하겠지.. 잡지라고 그냥 놔둘 리가 있겠나?
착잡한 최동열의 표정에서..
# 33 동아일보사 외경
만해 (E)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오?
# 34 동 사장실
만해와 김성수가 마주해 있다.
만해 이는 조선 민중들의 눈과 귀를 막겠다는 수작이 아니오. 내 얼마나 화가 뻗치던지 한 달음에 이곳으로 달려오지 않았겠소.
김성수 죄송합니다. 저희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보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만해 하지만 인촌, 신문은 절대 포기하지 마시오. 재정적으로 어렵겠지만 이 건물도, 윤전기도 절대 팔아서는 아니되오.
김성수 이번에는 다시 복간이 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절망적이에요. 윤전기만 해도 총독부에서 매일신보로 매각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만해 아니되오. 아니되오, 인촌.. 이 나라는 곧 독립이 됩니다. 내 나라에서 신문을 발행할 날이 올 거란 말이오..
김성수 그런 날이 오긴 오겠지요. 허허허..
만해 먼 훗날이 아니올시다. 독립은 곧 됩니다. 곧 말이예요.
김성수 .................
만해 이보시오, 인촌. 왜 이렇게 약해졌소? 윤전기를 팔아서는 아니 되오. 신문사를 지켜야 하오.
김성수 .........................
# 35 선술집(밤)
만해가 홀로 술을 마시고 있다.
만해 너무들 나약해졌어.. 이렇게 해서는 독립이 되어서도 새나라를 건설할 힘이 모자랄 것이야..
만해가 탄식을 하며 다시 술을 들이킨다. 그 때 최동열이 급히 안으로 들어온다.
최동열 어인 걸음이십니까, 스님..? 여기까지 오셨으면 안으로 잠시 들어오시지 않구요.
만해 네 놈 일하는 곳에는 뭣하러 가? 또 공짜 글이나 써달라고 덤빌텐데... 앉거라.. 한 잔 받아..
최동열이 술잔을 받는다.
만해 네 놈은 독립이 언제쯤 되리라고 보느냐?
최동열 .............?
만해 네 놈도 까마득한 먼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최동열 무슨 말씀이신지...?
만해 미련한 놈 같으니라구.. 독립이 코앞에 닥친 줄도 모르고.. 네 놈 역시 내심 절망을 하고 있겠지.
최동열 .................?
만해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까운 것이거늘.. 어찌 그 뻔한 이치를 모르고들 있는지...(술을 마시고는) 한 때 독립운동을 했던 자들이 왜 변절을 하고 친일로 돌아서는 줄 아느냐? 왜놈들의 총칼이 무서워서가 아니니라. 이 나라의 미래를 절망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니라.. 독립의 날이 내일이라면 그 잘난 머리로 그 따위 짓거리를 하고 다니지는 않겠지.
최동열 ...................
만해 하지만 내 눈에는 보이느니라. 삼천만 동포들이 얼싸 안고 해방의 큰춤을 추게 될 그 날을 말이다. 그 날은 결코 머지 않았느니라. 결코 머지 않았어..
최동열 ...................
# 36 우미관 외경(낮)
비가 내리고 있다. 우산을 쓴 행인들이 지나치고 있다.
# 37 동 사무실
두한이 창밖을 내다보며 서 있다. 그리고 부하들이 무료한 듯 앉아 있다.
김무옥 아따... 뭔 놈의 비가 이렇게 징하게 내린다냐? 하늘에 구멍이라도 났다냐?
양코 이럴 땐 거 뭐시냐 빈대떡에다 막걸리 한 사발이 딱인디 말이여..
와싱턴 뭐 빈대떡? 아니 이렇게 로맨틱하게 비가 오는데 자넨 고작 빈대떡이란 말인가?
번개 원래 입만 열었다 하면 먹는 타령이잖아요? 다 아시면서...
양코 뭣이여?
그들 또다시 투닥거리는데.. 두한이 다가오며
두한 그런데 참, 무옥이 너 결혼할 여자가 있다면서?
김무옥 잉? 아 아니여.. 그런 거 아니여..
두한 아니야?
김무옥 그려... 그렇다니께... (번개를 노려보며) 번개 너제? 니가 쓰잘데기 읎는 소리를 오야붕한테 혔제?
번개 (손사레를 치며) 아, 아니예요.. 전 아닙니다.
김무옥 아니긴 뭣이 아니여? (한 대 쥐어박으려 하는데)....
문영철 내가 그랬어. 내가 두한이한테 이야기했다.
김무옥 여, 영철이 니가.....?
문영철 제수씨가 참하고 괜찮아 보이던데,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냐?
김무옥 뭐, 뭣이여?
두한 그런 여자가 있긴 있는 모양이구나?
김무옥 아니여.. 그런 것이 아니랑께..
두한 예, 형님.. 두한입니다. (사이) 예, 형님도 잘 지내셨습니까? (사이) 종로에 오셨다구요? (사이) 예.. 곧 나가겠습니다. (전화를 내려놓는다)
김영태 용식이가 왔다구? 지금 말인가?
두한 예.. 그 황병관이라는 레슬링 선수와 함께 오셨답니다.
김영태 황병관?
# 38 종로 회관
용식과 황병관이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다. 레슬링 선수답게 황병관은 탄탄한 체격의 소유자다.
용식 하하하..난 병관이 자네가 언젠가는 크게 일을 낼 줄 알았네. 일본에서두 인기가 대단하다지?
황병관 (다소 거만하게) 뭐 그렇죠..
용식 자네가 레슬링으로 조선 사나이의 자존심을 세웠다면 조금 이따 올 두한 아우는 이 주먹으로 그렇게 한 사람일세.. 아마 둘이 만나면 통하는 게 아주 많을 거야.
잠시 후 두한이, 김영태, 정진영과 함께 그 곳으로 들어선다. 용식이 먼저 두한들을 보았다.
용식 여길세.
두한들이 반갑게 웃으며 그쪽으로 다가간다. 용식이 일어나 그들을 맞는다.
두한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형님?
용식 어서 오게.. 반갑네 두한 아우.. (두한을 가볍게 안고는) 영태 자네두 오랜만일세..
김영태 반갑네... (악수를 나눈다)
용식 일단 서로 소개부터 하지. 병관이 인사 하게.. 이 사람이 내가 말한 종로의 오야붕 김두한일세..
황병관 (일어나) 반갑소. 나 황병관이라고 하오.
두한 김두한입니다.
황병관 생각 외로 젊은 분이시구만.. 어쨌든 만나서 반갑소.
두한 ................
용식 자 그럼 자리에들 앉지.. (자리에 앉고는) 웨이터, 여기 술 좀 더 가져와라!
황병관 아 잠깐만.. 여긴 분위기가 좀 그런데... 다른 곳으로 옮기면 안되겠습니까?
용식 ......? 어디로 말인가?
황병관 명치정에 내가 잘다니던 빠가 있습니다. 여기서 얼마 멀지도 않습니다.
용식 명치정? 메이지마찌 말인가?
두한 그렇게 하십쇼. 가시고 싶은 곳이 있으면 그 쪽으로 가시죠.
김영태 ...............?
두한 진영아, 혼마찌에 전화 한 통 넣도록 해라.
정진영 예, 형님..
황병관 거 시원시원해서 좋구만.. 허허허...
두한 그럼 일어들 나시죠.
그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면...
# 39 우미관 사무실
김무옥, 문영철, 와싱턴, 양코, 번개, 삼수들이 여전히 모여 있다.
양코 성님들... 여그서 이럴 것이 아니라 우덜도 으디 가서 한 잔씩 허는 게 어떨까요?
문영철 .......그럴까?
김무옥 느그들끼리 다녀와라.. 난 술마시고 싶은 생각도 읎다. (소파에 더욱 몸을 깊숙이 묻는다)
와싱턴 그 여자 때문에 그러는가? 대체 어떻게 된 일이길래..?
김무옥 아따 그 야그는 왜 또 끄내고 그러시요?
와싱턴 아니 뭐... 내가 그 방면에는 일가견이 있지 않은가?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서 말이야..
문영철 그러지 말고 얘기 좀 해봐라. 혼자서 끙끙 앓지만 말고..
김무옥 ....(한숨) 미치고 환장하겄다. 여태 안 내려가고 종로여관에서 버티고 있는디 아 마누라가 따로 없다니께... 피해다니는 것도 한두 번이지 참말로 깝깝해 죽겄다.
문영철 그 여자가 그렇게 싫으냐?
번개 헤헤헤. 무옥이 형님 눈이 백두산 꼭대기에 붙어 있다는 거 모르세요? 매일 보는 여자들이 종로에서 한다하는 여급들이며 기생들이 아닙니까?
와싱턴 음.... 번개 말이 일리가 있어. 허긴 나도 소시적에 그런 여자들이 많이 따라 다녔네. 하지만 모두 다 슬기롭게 정리를 했지..
김무옥 어떻게 말이요?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소?
와싱턴 암 있고 말고..
김무옥 참말이요?
와싱턴 그럴 땐 눈에 띄지 않도록 멀리 도망가는 게 상책일세..
김무옥 도망이라고라.......? 아....나가 종로바닥을 놔두고 으딜 간단 말이요?
와싱턴 뭐 그럼 할 수 없지.. 같이 사는 수밖에....
모두들 .............(웃고)
김무옥 뭣이요?
번개 내가 저럴 줄 알았다니까... 하여간 와싱턴 형님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니까요.
와싱턴 ...................
# 40 명치정 거리
주위는 어느새 어둠이 깔리고 있다. 네온 싸인 불빛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비는 계속해 내리고 있다. 두한들이 그곳을 지나쳐 오고 있다. 그 중 김영태는 왠지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 41 어느 일본 술집
헌병대 대위 스즈끼와 중위 두 명이 비장한 표정으로 술을 마시고 있다.
중위 1 걱정하지 마십쇼. 대일본제국의 군인답게 불굴의 의지로 싸워서 반드시 승전보를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스즈끼 패기가 좋다.. 자 대일본제국의 전승을 위해 잔을 들도록 하자. 건배...!
그들 잔을 부딪친다. 그리고 절도 있게 술을 마신다. 주변 테이블의 다른 손님들은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 그 때 황병관을 필두로 두한들이 안으로 들어온다.
황병관 참으로 오랜만에 와보는구만.. 허허허.. 오 너는 처음 보는 얼굴이구나?
웨이터 하이..
우렁우렁한 황병관의 목소리가 신경에 거슬리는 듯 헌병대 장교들이 날카롭게 본다. 두한들이 자리에 앉는다.
황병관 어떻소? 조용하고 분위기도 괜찮지 않소?
용식 글쎄... 난 이런 곳은 체질에 안 맞아서 말이야..
두한 오늘은 황병관씨를 위한 자리니까 우리들은 신경쓰지 마십쇼. 앞으로도 우리 조선인의 기개를 만천하에 떨쳐 주십시오.
황병관 암... 여부가 있겠소? 하하하...
헌병대들이 다시 그런 황병관을 노려본다. 잠시후 어느 정도 술잔이 돌아간 상황으로 시간이 경과된다.
황병관 어 이거 술이 떨어졌구만.. 어이 웨이터..!
웨이터가 다가온다.
황병관 여기 술 좀 더 가져와. 그리고 안주가 이게 뭐야? 좀 그럴 듯한 걸로 가져와봐.
웨이터 알겠습니다. 저 그리고 손님... 소리를 조금만 낮춰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저 쪽에 중국 전선으로 떠나는 장교분들이 와 계십니다.
황병관 뭐, 장교?
황병관이 그 쪽을 바라보면 스즈끼가 눈빛을 빛내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두한도 비로소 스즈끼를 보았다. 얼마 전 종로 거리에서 인력거꾼을 채찍으로 때렸던 바로 그 헌병장교다. 황병관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다.
황병관이 헌병대 쪽으로 다가간다. 김영태가 불안하게 보고 있다. 그러나 황병관은 헌병대를 한 번 쓱 쳐다보고는 그들의 자리를 지나쳐 변소 쪽으로 간다. 김영태가 안도의 한숨을 쉰다.
용식 미안하네.. 원래 저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동양챔피온이 되더니 사람이 좀 이상해진 것 같구만..
두한 ..................
김영태 아무래도 조짐이 좋지 않은 것 같네.. 저 친구가 돌아오면 여기를 뜨도록 하세..
용식 그래... 그러는 게 좋겠어..
두한 ...................
그러나 그들의 우려는 현실로 드러나고 만다. 황병관이 변소에서 나와 헌병대 자리를 지나오다가 테이블 밖으로 빠져나온 장교의 발을 밟는다.
황병관 하 이거 미안하게 됐소. 실내가 좀 어두워서 말이오.
중위1 도대체 눈을 어디다 두고 다닌단 말인가?
황병관 그래서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소? 그럼 실례하겠소.
황병관이 그렇게 가려는데 스즈끼가 불러세운다.
스즈끼 서라!
황병관 ...(돌아보면)...?
스즈끼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와 중위1의 군화를 가리키며) 닦아라..
황병관 뭐요?
스즈끼 네 놈이 더럽힌 흔적을 지우란 말이다. 어서!
두한이 그 광경을 보고 일어나려하자 김영태가 만류한다.
황병관 (어이없어 하며) 이거 왜 이러시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지 않았소?
스즈끼 너는 일부러 발을 밟았다. 대일본제국의 황군을 모욕한 것이다. 어서 닦아라. 그렇지 않으면 황군모독죄로 네놈의 목을 벨 것이다.
황병관 발 좀 밟았다고 대일본제국의 명예를 드높힌 이 황병관이를 죽이겠다? (코웃음치며) 당신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해?
스즈끼 .....빠가야로!
스즈끼가 닙본도를 뽑아 황병관을 향해 휘두른다. 황병관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그 칼을 피한다. 계속되는 스즈끼의 공격... 관상수가 베어져 나가고 그 곳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그러자 두한이 나서며 소리친다.
두한 멈춰!
스즈끼 ...............?
두한 사소한 시비로 사람을 죽이려 한단 말인가?
스즈끼 너는 또 뭔가? 물러서라.. 물러서지 않으면 네 놈도 벨 것이다.
두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그러기 전에 당신이 먼저 다칠 것 같은데...
스즈끼 뭐라?
스즈끼가 두한에게 칼을 휘두르는데 두한이 피하면서 스즈끼의 복부를 걷어찬다. 그러자 중위 두 명도 칼을 뽑아 들고 한꺼번에 두한에게 덤벼든다. 그리고 스즈끼도 다시 그 싸움에 가세한다. 1대 3의 치열한 접전이다. 용식이 나서려 하지만 김영태가 만류하며 도리질을 친다. 다시 한 번 두한의 놀라운 솜씨가 펼쳐진다. 하나 둘 장교가 떨어져 나가고, 마지막으로 스즈끼가 두한의 발차기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고꾸라진다. 두한은 전에 없이 잔인할 정도로 헌병장교들을 다룬다. 숨을 몰아쉬는 두한에게 김영태들이 다가온다.
정진영 두한아...?
용식 괜찮은가, 두한 아우?
두한 ...................
김영태 (참담하다)....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지만 너무나 엄청난 일을 저질렀네.. 군인을 더구나 헌병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건....즉결처분감이야.
두한 ..................?
멀리서 순사들의 호르라기 소리가 들려온다.
김영태 어서 이 곳을 뜨게.. 잡히면 자넨 살아남지 못해...
두한 ...................
김영태 진영이, 자네가 함께 가게.. 뒷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뭐하고 있나, 두한이? 어서 이 곳을 뜨라니까... 이보게 두한이!
두한 ....................
그러나 두한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렇게 서 있다. 그 당황스러운 모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