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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떠오르는 악몽의 시간들 "일본뇌염모기"
그 여름이 또 시작되었다 친구님들 모두 건강한 여름
나시고 일본뇌염모기도 조심하세요
양희경님이 휴가라서 김미연님이 서경석님과 함께 진행을,,,
그날을 기다리는 것들
일화/이순표 생활수기
어느 날에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떳는데도 캄캄하다 암흑이다.
눈을 떴는데도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는다 머리가 아프다. 말이 안 나온다.
정신이 혼돈 스럽고 몸도 나의 의지대로 말을듣지 않는다 무엇을 찾으려 했는지
얼마간을 어둠속에서 혼자 허우적거리다가 지쳐서 깊은 잠에 빠져든다.이후의
시간이 나에게 내 가족에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를 세상의 누구도 모르게 시작되고 있었다.
어디선가 웅성대는 알 수 없는 귀울림 소리에 눈을 뜬다. 희미한 물체들이 왔다.
갔다 한다 으~ 하는 심음 소리와 귀에익은누군가의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다솔
아빠 정신이 들어요 하며 나의 손을 잡는다 나의 아내였다 아내의 목소리는 다급
하게 의사를 부른다 그 소리를 들은 주위의 사람들이 한마디씩 한다 다솔 아빠가
깨어났네 하는 웅성거림 속에 또다시 잠이 든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38℃가 넘는 고열에 정신이 나갔다 들어왔다 하면서 두
달 가까이 산소호흡기에 의지한체 산송장이 되어 겨우 숨만쉬고 있었다 한다
이 상태로 눈만 떳다 감았다하며 죽을 고비를 몇 번이고 넘겼다고 한다 아마도
이때 잠시 아주 잠깐 동안 눈을 떴다 감았다했을 것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마후 눈을 뜨니 세상이 나를 반기는 듯 보이기 시작했지만 또 다른 고통의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쪽 손과발이 움직이지를 않는다.한쪽 손발을
침대의 난간대에 묶어 놓았다.다들 잠들은 밤늦은 시간에 침대를 발로 차고
흔들어서 다른 사람들이 잠을 못 잔다 하여 묶어놓았다 한다
아마도 내가 정신을 잃고 있을 때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표현을 그렇게 했던 것
같다 말을 하려 했으나 말도 나오지를 않는다 합병증으로 폐렴이 와서 목에
구멍을뚫고 호수를 끼워서 그곳으로 가래를 주기적으로 배출 시켜야 하기 때문에
석션이라는 것을 해야했다 말을할때 바람이 이 호수로 빠져나가서 말 소리가
나지를 않는다 답 답 하다 깨어있는 시간보다 많았던 무서운 악몽의 시간들
이승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무서운 악몽들을 그긴 시간 동안 매일같이 반복되고
두려움에 놀라 눈을뜬다 무엇인가의 따뜻한 느낌이 손끝에 전해 진다 아내의손이
나의 손을 꼭 잡고 앉은체로 침대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안스럽고 미안하다
나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저렇게 고생을 하는구나 길을 가다가 휴지조각 하나만
떨어저 있어도 담배 꽁초 하나만 보여도 서슴없이 허리굽혀 줍던 착한 아내가
나 때문에 이렇게 고생을 하는구나 생각하니 심장이 뛰고 가슴이 울컥 거린다
얼마나 힘들고 피곤했으면 저렇게 잠들까 생각하니 깨우지를 못한다
엉덩이가 축축한게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데 차마 깨우지를 못한다 이당시 나는
먹는것부터 뒷처리 까지 모든것을 아내의 손을 필요로 했기에 깨워야 했지만
아마도 내몸을 맘대로 할수없는 나 자신이 싫어서 일수도 있지만 잠을 청한다
어느날 암흙과 혼돈의 긴 터널을 빠저 나온듯 겨울의 하얀 눈을 보듯이 밝은
세상이 보이는것 처럼 보고 듣고 말하고 감각을 조금씩 느끼기시작 했다
처음으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 이었다 아내의 미소도 처음으로 보았다
누구보다도 직장까지 휴직하고 자기의 모든 시간을 포기하고 나에게만
온 힘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켜준 나의 아내가 없었더라면 세상의 밝은
빛은 다시는 보지를 못했을 것이다.처음에 실려 간곳 포천의료원에 삼일 입원
다시 일산인재대학백병원에서 일본뇌염 판정을 받고 치료 중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됬다.내가 의식이 없는 중에도 일가 친척들 멀리서 처가집 식구들
친구들까지 많이도 왔다가 갔다고 하는데 나는 기억이 하나도 나지를 않는다
이렇듯 썰물과 민물이 교차하듯이 한바탕 발길이 지나가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기억도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아주 조금 전의 일들만 기억이 날 뿐
그 이상은 기억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니면 잃어버리고 빈
껍데기만 남듯이 머릿속이 하햫게된다 어느날 빈 침대가 들어오더니 나를 옴겨
실고 병실 밖으로 나간다
나를 태운 구급차가 도착한 곳은 풍납동에 있는 아산병원이었다
재활치료를 위하여 이곳으로 온 것이다 이 당시 나의 몸은 몇 달씩 꼼짝 안고
누워 있던 탓에 온몸이 굳어서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라서 재활치료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전감기 한번 안 걸리던 사람이 이렇게 큰 병원이라니 재활이
먼지도 모르고 그저 시키는대로할 수밖에 없는 환자일뿐이다 재활치료를 하는데
유치원생 어린이처럼 큰 모니터에 앉아서 애니메이션 공놀이를 하고 숫자놀이를
한다 처음에는 이런 것을 왜 하는지 민망할 정도로 수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
했는데 막상 하고보니 점수가 15점 충격이다 내몸이 얼마나 안좋으면 아기들
장남감 놀이에 이점수 밖에 나오지않나 가슴이 울컥 거린다 내 몸이 이렇게 안
좋은 건가를 실감케 한다.
그 외에도 걷기운동 중심잡기 팔운동 다리운동 온몸운동 등 시간대마다 다른
운동 코스로 바뀌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한가지가 생각난다 다리
에 힘을 키우기 위해 곧바로 서서 20분 정도 서 있는데 그냥 서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 등에 기댈 수 있는 넓이의 기둥에 사람을 묶어서 세워 놓는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의아한 모습으로 웃기도 하고 지나가다 안면이 있는 사람은
먹을 것을 주기도 하는데 꽁꽁 묶여 서서 먹는 나를 내가 봐도 웃음이 난다
처음에 왔을때에는 무슨운동을 하던지 오분도 안되서 힘들다고 울고 원하는대로
몸이 따라주지않아 속이상해 울고 하다보니 울보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 한다
그렇게 울보가되어 버린 지금 잠시라도 웃을수있는 모습은 어느덧 조금씩 나의
몸이 나아지고 있음을 스스로 느낀다 바쁜병원 생활은 어느덧 한달이 다 되고
한달 이상은 있을수없다 하여 정들었던 선생님들 같은방 환우들을 뒤로하고
집에서 가까운 의정부 재활병원으로 갔는데 작고 왜 이렇게 낮설은지 또 훌쩍
이며 울보의 울음보가 터졋다 먼저있던 곳으로 가자하니 안된다고 달래준다
우여곡절 끝에 여기서 첮 재활이 시작 됬는데 첮날 첮시간부터 울음이 터졌다
이유인즉 먼저 있던 병원에서는 도구를 사용하여 의지하고 힘이 많이 들지
않게 했는데 여기서는 완전히 군대식 얼차래를 방불케 하는 두 손 뻗어
무릅굽히기 한발들고 오래 버티기 엎두려뻗쳐 등 이게무슨 병원에서 치료하는
방법인가 힘없는 환자가 하기에는 넘 힘들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지 눈물이
자꾸난다 그래서 여기서도 울보란 별명이 또 붙는다 이 모습을 본 아내도 나만
보면 울보 울보 하고 놀린다 아산병원에서 처럼 공놀이 숫자놀이로 치료를
하듯이 여기는 여기대로 이것이 힘을키우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웃으며 알게 된다 재활치료는 계속된다 그해 12월의 크리스머스는 슬펏다
크리스머스 이브날에 환자들을 위한 병원위로공연을 한다고 병원의 업무는
중단하고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유치부에서 학생부 일반부까지 단계별 공연을
하는데 노래며 춤이며 율동에 푹 빠질때 갑자기 집에있는 아이들 생각이 난다
특히 지금 앞에서 율동을 하는 딸아이의 같은 또래애들 모습에 점점 더 보고픈
마음이 가슴을 조이고 있다 우리 아이도 댄스 동아리 에서는 꽤나 알아준다고
했는데 눈 앞에 있는 아이들을 보는사이 가슴조이며 억누르고 있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흐느끼며 어깨를 들먹이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말없이 나의
어깨를 두드려준다 돌아 볼수가 없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나하고 비슷한
처지 이거나 아니면 내가 안스러워서 그랫는가 싶을뿐 그 공연이 다 끝날때
까지 눈물을 멈출수가 없었다 그해 크리스마스는 얼룩진 눈물로 그렇게 슬펏다
병이 발병한지 육개월이 지나고 완전하게 치료가 되지 않자 장애등급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받은 장애등급 결과는 뇌병변장애 4급으로 판정 받았다
나의 병변 상태는 이러했다 첮째로는 급한 일이 있어도 빠른 걸음 걸이는
되지만 뜀박질이 안된다 둘째로는 양팔을 높이 올리면 머리위로 쭉 올라가야
하는데 절반밖에 올라가지를 않는다 셋쩨는 새수하기 양치하기 젖가락집기 등
그리고 매리 셔츠처럼 작은 단추는 체울 수가 없고 바지도 단추가 달린 바지는
풀지를 못해서 입지를 못한다 이런 것을 못하는 원인은 양 손가락이 휘어지고
뒤틀려서 작은 물건을 잡을 수도 없고 다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눈물이 핑 돌았다 장애인이라니 이제는 정말 더는 나을 수가 없는 것인가 내가
장애인 이라니 이게 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고 일하는 특성상 새벽에 일찍
나가서 온종일 운전하다가 퇴근 후에는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러
다니고 밤을 홀딱새어 가면서 낚시를 즐겨하고
그러다 보니 피로가 누적되어 신체 저항력이 최하로 떨어진 상태에서
결정적으로 그놈의 모기 그 작은 일본 뇌염모기 한방에 사람을 장애의 나락
으로 떨어트렷구나 후회하지만 다 지난일 집에서 칩거하며 안정을 취하다
내가처음 입원했던 포천의료원에 재활병동이 생겼다는 말에 집에 있어 봐야
할일도 없고 조금이라도 치료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찾아갔다 담당은
최상숙재활 치료 선생님 집이 내가 사는 집에서도 가깝고 아프기 전에 가끔
다니던 산정호수 밑에 산다는 말에 거리감도 없고 금방 친해질 듯 싶었는데
나의 오산 인가 선생님은 치료중에 마시라며 박카스 한병을 주었다 나는
병마게를 따 달라고 했다 내가 아직은 저 병마게를 딸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것을 나는알고 있었기 대문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드시고 싶으면 직접 따셔서
드세요 하면서 퉁명스렇고 얄믿게 내던진다 그리고는 약을 올리듯 씩 웃는다
그래도 화를 낼수가 없었다 이것이 스스로 할수있는 의지와 힘을 키우기 위한
훈련의 방법이라는 것을 선생님도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얄미운 물리치료사 선생님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법칙을 여기서도 알려주는
물치사 쌤 물치사 쌤 치사해요 하면 씨익 웃고만 만다
여기서도 기간이 다 됐다고 이제는 그만 나오라 한다 그래서 다음 목표로 정한
것이 컴퓨터다 컴퓨터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자판을 두드리면 자연히 손가락
운동이 되고 그러다 보면 치료효과가 극대화 될것같은 예감도 좋았다 그래서
오전에는 손가락 운동도 하고 컴퓨터도 배우고 오후에는 수영이 전신운동
에 좋다하여 수영을 하기로 했다 아프기전에 아내가 당신도 시간날때 술좀
그만 드시고 컴맹탈출 하세요 라고 몇번을 말했지만 컴앞에 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에게는 집 탈출하여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좋았을뿐 아 지금생각
하니 여자말을 잘들어야 한다는 그말 하신분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아무튼 컴을
배우기 시작 하면서 그 재미에 푹 빠저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일년이 지나면서
안산시 장애인 컴퓨터대회 동상. 이천시 장애인 컴퓨터대회 최우수상
포천시 장애인 컴퓨터대회 대상 등 국가고시 ITQ 파워포인트 A등급 취득 등
내 나이 오십대에 이렇게 귀한 시간들 보물같은 많은 인연들을 맺으니 그동안
힘들고 눈물 많았던 시간들이 치료 되는듯 기뻣다
좋은 일들이 이어지고 이 모든 기쁨의 뒤에는 포천시 장애인연합회 박재훈회장
님 어릴때 사고로 한쪽발 한쪽팔을 잃고 불편하신 몸으로 트랙터 운전 까지
하시며 농사일에 토끼농장까지 힘들지만 성한 사람 보다 열심히 사시는 분
그리고 낡은 컴퓨터로 수업하다 고장나면 여기서 때어 저기다 붙이고 직접
수리조합하는 수리기사인지 강사인지모를 열악한 환경에서도 늘 웃음 잃지않고
열심히 가르쳐 주시는 장은영 선생님께 감사 드립니다 힘들어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 단 한사람 이라도 행복의 빛이 보인다면 손을 내어 주시는 생의 친구
같은, 언제라도 함께 할수있는 가족과 친구와 동료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배운게 있다면.
*사람의 얼굴은 늙어도 웃음은 늙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긍정적 사고는
좋은 결과를 가져 온다는것
*상대방의 얼굴에서 미소를 볼수 없는것은
내가 그 사람에게 기쁨과 미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사람 에게서 나의 것을 찾으려 하지말고
내가 먼저 배풀줄아는 미덕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
♡나는 오늘도 나의 시간을 배풀수있는 삶의 시간에
아깝다하지 않고 즐거움으로 달리고 또 달린다♡
첫댓글 방송 잘듣고 갑니다
멋진사연 감동 부디 재활 하셔서 재기를 꼭하세요,
감사합니다 박탁프님^^
후유증은 조금 남았지만 직장도 잘~ 다니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詩人/이 순 표 대단하십니다, 장애를 극복하고 직장에 다닌다시니
열정이 에박수를 보냅니다,
저도 올3월에 목디스크 5-6번 병원에서 판정받았는데
운동요법과 스트레칭(맥켄지운동) 으로 3개월만에 극복하고 지금은
판정받기전보다 더건강간리 잘하고 있어요
컴푸터보는 습관도 20cm 책을 놓고 올려다보는 습관을 바꿔고
핸드폰은 업무 때만 보고해서
지금은 건강한 상태로 업무를 잘보고 있어요, ~~
@박탁프 계획적으로 대처를 잘하셨군요
아파본 사람은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알지요
우리 몸 관리 잘해서 이제는 아프지 말고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