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우 올림픽을 끝내고 - 한국과 일본 (제18화)
지난 일요일, 한 친구가 미군 영내 출입증이 있다고 해서 동두천의 Camp Casey로 싼 골프를 갔습니다.
아침 7시에 모여 같이 이동하는 순간부터 화제는 온통 새벽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박인비였는데, 놀랍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4명 모두 새벽 2시가 넘도록 올림픽 골프 생중계를 다 보고 몇시간 자지도 못하고 모인 것입니다.
영내 레스토랑에서 치킨 시저스 샐러드와 팬케이크 그리고 커피를 시켰는데 가격이 너무 저렴하다고 한 마디 하고는 다시 화제는 박인비로 돌아왔습니다.
마지막 날 그녀가 시커먼 모자를 쪽두리 처럼 머리에 덩그러니 얹고 나왔을 땐 어찌 그리도 안 어울리는지.. ㅋㅋ,
「솔직히 인물은 너무 없다」라고 생각햇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줄 버디를 잡으며 치고 나간 그녀는 마지막홀에서
두번이나 벙커에 볼을 빠뜨려도 안심하고 지켜볼 수 있을 만큼의 기량을 보이며 독주한 끝에 금메달을 확정했습니다.
애국가가 울려퍼진 시상식 때 모자 벗고 머리를 곱게 빚은 그녀는 이제 오히려 이뻐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방송 진행자의 공감가는 표현처럼, 박인비는 어떤 역경과 공격에도 끄떡도 없을 두꺼운 갑옷으로 무장하고 자기 페이스로 느릿느릿 전진하는 커다란 바다 거북이를 연상시키며 골든슬램을 이루어 모든 이를 환호하게 했습니다.
스포츠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순간이었습니다.
메스컴에서는 어려울 때 국민에게 감동을 준 박세리를 따라 많은 세리킷즈가 생겨나 오늘의 박인비가 있었듯이,
오늘의 박인비를 보고 또 많은 어린아이들이 골프연습장으로 달려갈 거라고 야단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에게 가혹하리만큼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박인비의 성장스토리는 잘 모르겠으나, 박세리는 아버지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중간에
골프 밖에 모르고 보낸 자기 인생에 회의를 토로한 적도 있습니다.
스포츠 영재야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대부분의 부모들도 자식에게 하루라도 빨리 글을 깨우치게 하고 영어도 술술
말하게 하고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가르치고, 누구나 영재인줄 알고 학원에 보내고 선생님을 붙여주려 합니다.
일본에서는 아이들에게 취학하기 전에 글을 깨우치고 영어를 가르치는 것에 우선하여,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고,
꼭 수영은 배우게 하고, 체조와 달리기 같은 걸 시킵니다.
물론 야구나 축구나 검도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그런 것도 하지만, 평생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기초 체력을 기르게 합니다.
우리 큰 딸도 이웃 일본 아이들이 다 하길래 수영을 배우게 했는데, 그렇게 수영교실 가기 싫어 울고 했지만 지금은
정말 배우길 잘했다고 고마워합니다. 그리고 학교에 대부분 수영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 일본의 비지니스맨들과 대화하다 보면 꼭 학교 다닐 때 무슨 운동 했느냐고 묻습니다. 우리 같으면 무슨 정식 선수로 제대로 해야 운동했다고 하는데, 일본인들은 물어보면 자기가 무슨 운동이던 했다고 대답힙니다.
직업으로 할 운동이 아니더러도 생활체육으로 뭔가를 했다는 뜻입니다.
제가 다닐 때의 대구 K高는 전국 고교야구를 여러번 석권해 우승할 때미다 가두 퍼레이드에 지겹도록 동원되었던 걸 기억합니다.
그러니 만큼 각 반에 야구선수가 한두명 있었는데, 이 친구들 오전에만 수업에 들어오고 오후엔 아예 운동만 합니다.
오전시간도 수업을 들어오긴 하지만, 맨 뒷줄에 앉아 저학년 선수는 터진 볼 꿰메는 일이 전부고, 학년이 높아지면
삼국지나 읽으면서 시간을 떼웁니다.
일본은 선수라도 수업은 똑같이 전부 시킨다고 합니다.
그래서 프로로 못가더라도 다른 분야에서 적응할 능력을 키웁니다. 요즈음 우리 나라에서 중도 탈락한 전직 운동선수들의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데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입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영어보다도, 자전거 수영 체조 달리기도 있지만 질서나 법규를 지키는 교육도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일본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들어가 배우는 건 철저하고 반복되는 질서교육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교통질서를 배우는데, 처음엔 교실에서, 다음엔 운동장에서 금을 그어 놓고, 그리고 교통공원에 가서 실습교육 하고, 또 경찰서에 가서 경찰관에게 현장교육 받으면서 몇번이고 반복하여 몸에 배이도록 배우게 했습니다.
지진대피 같은 재난 훈련도 마찬가지 입니다.
또 한가지 일본인들은 재미없는 육상을 많이 좋아합니다.
한 예로, 동경 오테마치와 하코네를 왕복하는 200km 거리를 10구간으로 나누어 각팀 10명의 선수가 릴레이로 달리는 이 대회는 1920년부터 추운 정초 1월 2-3일에 열리는데 전구간 TV로 생중계되고 그렇게 변치않는 엄청난 인기를 이어오고 있는데, 신년식의 최대 화제가 됩니다.
프로대회가 아닌 것으로 전국민의 한결같은 사랑을 이어오고 있는 스포츠로, 널리 알려진 고시엔 고교야구대회도
있습니다.
우리의 고교야구가 한 때 청룡기 봉황기 황금사자기 대회 등 공전의 인기를 누렸으나 지금은 너무나 깨끗이 잊혀져
버린데 반해, 고시엔 대회는 봄 여름 1년에 두번 개최되는데 NHK가 전 시합을 생중계하고 전국민이 아직도 열렬히
자기 지방 출신 팀을 응원하는 절대적 인기를 잃지 않는 국민대회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리오올림픽의 상위 순위 국가들의 면면은 그야말로 전통의 일류 강국 선진국들입니다.
한국 앞에 있는 나라는,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독일 일본 프랑스입니다.
이전에 한국은 금메달 13개로 런던 올림픽에서 5위, 북경올림픽에서 7위를 차지해 스포츠 강국으로 자부하기도 했는데 나름 의미가 크지만, 국가가 선수들을 선수촌에 가둬 맹훈련 시키고 병역특혜와 포상금으로 동기를 부여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특히, 88올림픽 이후 2004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순위에서 일본을 앞질러 국민들을 기쁘게 하였으나, 이번 리우에서 일본은 금13 총메달수 41개로 우리의 금9 총메달 21개를 크게 상회하였습니다.
또 일본은 4년후 도쿄올림픽에선 금메달 30개가 목표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우린 인구로도 일본의 절반도 안 되고, 체육 예산도 일본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데 솔직히 늘 일본보다 앞서는 건 무리입니다. 순위가 일본에 못미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한국 같은 자그만한 나라가 세계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탑텐에 들었다는 것 만으로 너무나 대단한 일입니다.
일본이 베드민턴에서 박주봉감독을 데려다 금메달을 땄는데 우리가 금메달 도둑 맞은 느낌이 든다면 이것도 잘못입니다. 오히려 열세종목에서 필요하다면 우리도 일본인 감독 마다않고 데려올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선진국은 자기들에게 유리한 종목은 쪼개고 쪼개서 수영에 금메달이 46개, 육상에 금메달이 47개나 걸려 있습니다.
우리가 양궁을 석권해 특정 종목에 치우쳐 있다고 평가절하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 봐야 4개 밖에 안되니까요.
이번 올림픽의 결과를 보고, 저는 한국과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숫자와 환경을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평화상 1명에 비해, 아이러니컬하게도 경제동물이라는 일본은 유일하게 경제학상을 제외한 전부문에서 24명의 수상자를 냈습니다. 특히 과학분야가 강합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꼭 큰 돈 벌겠다는 것 보다는 가치있는 기초과학을 지원해 담백하게 꾸준히 연구에 매진하는 사람이 있고, 또 이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해 주는 환경이 정비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포츠도 일시적으로 예산 늘린다고 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꾸준한 관심과 시설과 기회 제공이 필요할 것입니다. 일본은 거의 모든 소학교에 수영장을 갖추고 어릴 때 모두가 수영을 배우므로 수영종목에 강해지고, 모두가 육상에
관심이 많으니 좋은 성적을 내게 되고, 학교에서 운동선수는 모든 수업을 다 듣고, 선수아닌 학생은 방과 후에 특별활동으로 무슨 운동이든 해서 몸과 머리를 같이 성장시킵니다.
저는 두 아이를 일본에서 낳아 거기서 유치원과 각각 초등학교 5학년과 2학년까지 보냈습니다.
그 시기에 우리 아이들과 또래의 일본 아이들은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즘 서울에서 처럼 영어를 가르치고 심지어 제2외국어까지 가르치는 고급유치원이나 학원 같은데 보내는 일은 물론 없었습니다. 평일엔 친구들하고 방과 후에 열심히 놀고, 주말엔 제가 가끔 차에 태워 근교 공원이나 유원지에 데려가곤 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딸은 얘기합니다.
「아빠, 일본에 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 있고 좋았어요! 꼭 다시 가 보고 싶어요.」
한국에 돌아온 뒤로는 밤늦게까지 휴일도 없이 학원만 다녔으니 아름다운 기억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나중에 우리 손주들에겐 그놈의 영어는 천천히 가르치고 자전거나 타게하고 수영이나 태권도나 보내라고 하면
아마도 지 에미 애비가 그렇게는 못 한다고 하겠지만요. ㅎ
HJ
첫댓글 일상의 단면을 편하고 부드럽게 얘기한 단상이지만 느끼고 새겨 들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기초 교육 입니다. 늦다고 말고 그 추종의 세월이 몇십년이 되더라도 지금부터 시작 이어야 합니다. 공감되는 표현 입니다.
금년 여름엔 손주들하고 힘은 들어도 즐거운 시간 많이 가지셨으리라 생긱됩니다.
그게 낙이라면 낙인데 저는 경험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저의 집사람은 나중에 애들 안봐준다고 지금부터 에방주사를 놓고 있습니다.
사실 따져보기도 전에 호재씨의 글이 다 맞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실천이 않된다는 것은 뭔가 쫒기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달리기도 좋고 수영도 좋고 자전거 타는 것 배우는 것도 좋지만 언급한 질서지키기가 더 우선되야 할것 같네요.
골프로 시작해 아주 머리에 분명하게 넣어주는 우리들의 삶에 대한 호재씨의 글에 다시 한번 감사를 주고요.
나는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 400M 계주에 2위를 한 일본에 깜짝 놀랬지요.
아직도 "놈" 이라는 말만 하면서 저 멀리 가고 있는 걸 따라가지도 못하는 우리들에게 그저 한숨만 나오네요.
좋은 글 잘 읽고 좋은 의미 가지게 해주어 고맙고요.
예- 오늘 뉴스 보니까 태백산에 일본산이라고 50년된 나무 수십만 그루를 베어 낸다고 하는데..
그런 옹졸한 짓 하지 말고, 그 돈으로 일본 따라잡을 청소년들 공부시키고 키우느데 쓰면 좋겠습니다만.
2차대전에서 일본은 미국에 패하고도 미국을 배워서 세계2등의 경제대국을 만든 민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의 모든것을 배척하는 사상으로 살지는 않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읍니다. 좋은것은 모방해서라도 배워야합니다. 질서는 일본을 배워야하며 우리같이 목소리 큰놈도 않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하는데 너무 선비사상을 강조하지는 않았는지요?.수영은 3면이 바다인 우리에겐 반드시 생활체육이되어야하니 초등때부터 1년에 꼭 수영만하는 운동회를 개최하여 호주처럼 전국민이 수영에 자신이붙도록 해야할것입니다.
하사장님 건강하시죠?
무척이나 더웠던 여름이지만 워낙에 건강하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시니까 저희들 보다 더 건강하게 여름을 보내셨으리라 믿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생생한 일본 이야기 잘 읽었고요~
HJ가 "일본은 있다"고 출판하면 밀리언셀러.. !!
전모씨가 '일본은 없다'는 개소리 책이 얼마나 우리를 오도했는지.. ㅋㅋ
난 삿포로 - 아사히카와 - 후라노 - 오비히로 거쳐서 지금 쿠시로에 왔습니다. 지난 2주일 태풍 3개가 지나갔고 내일 또 하나 상륙한다네요.
혹가이도 동부는 JR 79본이 운휴.
내일 구룬마가 아칸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고만 여기서 살까~~ ㅎ
다음 19화를 기대하면서...
그저께 기상에보에 북해도 쪽 날씨가 안좋아서 그렇지 않아도 걱정했습니다. 조금은 궂은 날씨지만 건강과 안전에
유의하시고.. 북해도는 여러번 갔지만 쿠시로 오비히로 등 안쪽 깊숙히는 가본 적이 없어서 이번 여행기가 많이 기다려집니다. 그런데 정밀 좋은 데는 다 가시네요.!!!
호재씨의 글을 읽으면서 일본을 잘이해하고 있다고 믿읍니다 게다가 박상규씨도 일본을 잘알고 살아가니 서로통하는 기분이네요 좋은글 잘읽고 있읍니다 일본을 안다고 친일파로 몰아부치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불퇴"라 했거늘 용일(用日)을 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