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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行論 章
五行의 正義
五行이란 무엇인가? 五行이란 五段階의 宇宙時空 生克 및 逆順圜 理治를 말한 것이다
一、五行의 名稱
五行의 名稱은 金 木 水 火
土이다.
二、五行의 相生
五行의 相生 水生木 木生火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이다。
三、五行의 相克
五行의 相克 水克火 火克金 金克木 木克土 土克水이다。여기서 相生相克이란 뜻은 生克의 일방적인 順圓 흐름에 의한 영향이나 역할을 말한 것으로 逆圓流來는 말하지 않았으나 그 다섯단계 속엔 逆還理治도 모두 들어있다 할 것이다. 즉 역환은 定立해 보면 이렇다。相奪이라 하는 것이니 水奪金氣 金奪土氣 土奪火 火奪木 木奪水이다。
또 相憊이니 水憊土力 土憊木力 (土가 木의 발판으로 성장에 없어선 안 될 것이나,모든 土壤이 모든 나무마다 다 이롭다곤 할 수 없고 의 고닳게 파고드는데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木憊(殘)金、金憊火 金이 火의 단련이 없이는 器를 이루지 못한다 하나, 그렇더라도 烈火는 金氣를 녹이는 역할을 하게 되므로、고달픈 역할이란 뜻이다。火憊水 다시 水憊土가 된다 할 것이다.(이것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근거없는 생각이다)
四、다음은 五行의 漢字形에 대하여 설명하여야겠다。이것이 중요한 論據이니 여기서 특별히 比重을
두어 理論을 定立하는 바라 의미깊게 새겨야 할 要指인 것이다.
漢字는 뜻글로써 뜻을 體形化는 桓國의 象形字로부터이니 (창힐이 帝命으로 禽器足跡을 쫓아 字文을 創始했다 하나 지금와서 확증적인 고증은 할 수 없는 것이다) 漢字는 桓國象形字를 宗을 삼음이니 桓은 韓의 原字이며 그 音域 또한 같음이라。(桓字는 환이라 하기도 하고 한이라 하기도 하니、우리나랏 말씀「한」「환」에 대한 설명 또한 以前에 했다 할 것이다) 우리민족을 뜻하는 字인 것이니、따라서 그로부터 파생된 것은 모두 우리 것이며 우리로 부터이니 漢文이 어디 月世界나 (月世界 또한 桓의 일부이다) 理治를 모으지 못하는 곳에서 나온 것이 아닌 것이다。漢字가 現在 中華의 나라가 나랏글로 사용하는 글이라해서 事大文이라 할 게 아니라 事大도 우리민족이 큰 민족이며 우주근본인 桓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민족으로써 韓이라 함이라°우리를 諸方의 민족이 우러러 섬길래기지 우리가 작은 민족이 아닌 것이다.그러므로 한문을 排斥시할게 아닌 것이다.모든게 다 우리로부터 벌어지고 깨인 것이니 우리란 뜻을 간단히 말한다면 삼차원 논리 테 空 桓의 原 말씀과 뜻인 것이다。※ 어느 학자가 말하길、文字의 시초는 북방계 민족으로 부터라 하였으며 以中에서도 夷族으로부터 文字사용이 시작되었다한다。요순 임금이 또한 夷族에 뿌리를 둔것인줄 필자는 알고 있다。夷族은 어느 족인가 바로 桓족의 異名으로써 우리 배달민족이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뜻이다.그러므로 일체의 문자는 우리로 부터이니 漢字가 桓족에서 미리 예전에 분파된 虎족으로부터 생긴 것은 아닌 것이다.
五行字象形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 생긴 형용을 살펴본다면 역시 우주순환 논리를 뜻하는 것으로써 空
의 立長으로 볼 때 면적과 부피의 形成단계 및 生息을 象形化한 것이다.그럼 이제부터 五行象形字를 풀
어서 五行된바의 모습원리를 설명하기로 하겠다.모든건 면적과 부피의 敍頭를 잡는(執持) 心象(相)의 갈등 點으로부터라 하였다。흐름은 「
=
흐름의 표현形」갈등을 生成시키니 갈등은 쿡 ᆢ찌르는거와 같은 세 개의 點으로부터 표현된다 할 것이다.또는 말을 바꾸어 말하여도 되니 갈등에 의한 엇가고자하는 세 모습은 흐름(
)의 舒頭를 연다(開)해도 된다 할 것이다。(내 말이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할 것이나 일관성을 유지하다보면 의문과 모순이 많이 들고 일어나 여러 방면으로 비평을 加하고자는 것이 많아지기 때문에 일관성을 유지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三點의 흐름은 立體空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點은 正面에서 바라본 것을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라면 점의 연결 線化로도 볼 수도 있다 할 것이다。삼점에 의한 세선은 무언가 象을 짓기 위한 여건조성 線인 것이다. 마치 흐르는 시냇물의 형태(
=川)와 같다 할이다。이러한 점들의 세 선함이 면적과 부피 삼차원의 어리고자 하는 형태를 취한 것이 바로 물 수字 水形인 것이다。(아직 흐믈흐믈한 물체를 잡는 거와 같아 심대없는 단단치 못한 渾查 水氣形이다) 삼차원이 완전히 생성된 상태를 木=
形이라 한다。木形에 와서 空幹이 제대로 단단하게 이뤄졌다 할 것이다。다음 단계는 삼차원 諸空들의 變化活動 상태를 말한 것들이다。(물론 水木도 그렇치만) 火字形은 마치 꼬리를 뒤로 한 어떤 상상적인 짐승이 앞발 들고 춤추는 상(또는 뛰는 상)이다. 즉 힘차게 活動하는 象이다。土形에 와선 타던 불이 사그러지듯 한창 활동하던 것이 힘이 지친 듯 주저앉아 다음 단계를 위하여 휴식을 취하는 단계의 상태°멕이 찾다 크긴 다 하였으나 시름 여물을 단계란 뜻이다.또 수련자의 座禪 坐佛의 상태가 된다 할 것이다。金形에 와선 換骨脫態의 상태이니 굼벵이가 그 허물을 벗고 매미가 되듯 좌선 좌불한 상태에서 그 넋이 빠져 나가는 상태 金=
=초단계적으로 벗어치우게 된다。所謂 모여 ㅡ象體를 이뤘던 것들이 저갈대로 흩어져가 거듭되는 여건조성點이 된다는 것이다.(순환의 이치、윤회의 이치를
설명한 것이다) 所以 농익는 열매는 떨어져 다음단계를 준비하게 되고 낙엽은 귀근하고 一年草는 말라비틀어지고 나무는 冬眠상태로 접어들어서 하나의 一點化의 价體가 된다는 것이다。(이것은 사계절이 있는 지방의 얘기지 열대지방이나 한대지방은 그에따른 순환의 유추설명이 있을 것이라 할 것이다.諸宇宙 삼라가 또한 다 그렇다 할 것이다) 宇宙時空物事가 이렇게해서 1단계를 거쳐서 계속 순환된다는 논리이다. 그 互中에 서로간 協力과 離
완關係나 먹고 먹히는 사슬관계등 生克 관계가 形成되게 되는 것이다.앞서도 말했지만 상생이라해서 서로 生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방향으로 흐르면서 살려 나가며 진행한다는 뜻이고、相克이 또한 그러하니 어느 한 방향으로 먹이 사슬처럼 된다는 것이다。相生은 相克을 挾하였고 相克은 相生을 挾한 것이 五行의 形態이다。이 五行의 논리를 多方面으로 應用케 되니 時空 諸哲學에 있어서 음양과 五行이 根幹이 되는 것이다。以上 충분치 못하나마 五行에 대한 三次元 및 空成立 논리에 결부시킨 설명이었다。檀紀四。三。三。十。陰八月 十五日 丑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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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定數 卞卦論
여기서 大定數 卦卞方法(大定數=命理學에선 運命을 판단하는 干支六甲 八字의 數를、어떠한 方式을 취하여 抽出한 數를 갖다 大定數라 말하다。空(零)속의 自然數(空포함 十進數)는 九뿐이므로 이 數를 갖다八卦로 변환시키는 方式을 大定數卞卦 方法이라 한다)에 대하여 한말씀 짚고 넘어가야겠다。무슨 사상이나 理念이나、理論이던간 왜 그런가하는 原因이 확실치 않는걸 그냥 무조건하고 믿으라하면 迷信視化하여
이 學問에 뜻을 둔 자거나 如他思想을 추종하는 이나 他宗敎人들에게 미심쩍은 마음을 갖게 한다거나 경시 당하기가 십상일 것이다。그래서 모든 思想과 理念 및 結定的 論理는 왜 그래야만 되는가나? 왜 그런가하는 原因이 重要한 것이다。그 大定數卞卦論에서 九變一 八變八이요 六卞五요 등등하는 것을 그냥 그렇게 되있는 걸로 믿으라 한다면 이 학문에 뜻을 둔 배우는 이 조차도 의문이 대박들어 어째 그런가? 할 것이다.이 분야의 여러 서적류를 뒤척거려봐도 확실한 原因해설을 하여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필자가 책보길 게을리하여서인지 아니면 여러곳에 나왔는데도 전문分野의 書籍類라서 못찾아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只今까지 보지 못하였다。그래서 필자나름대로 어찌 그런가의 원인을 구하게 되었다.
궁구한바 糾明한 理治는 맞던 않맞던 그럴듯한 얻은 바 있음으로(이는 왜 이런말을 하는가? 하면 古代의 밝으신 照明이 달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이것이 이미 모두가 아는 理治나 벌써 나와 있는걸 필자가 늦게 깨달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를 여기다 정리해본다면 이렇다。대저 物事가 自體的으로 무슨의 조짐이 있을 때에는 內紅이 있던가 하여 안으로부터 하는 것이다。그래서 속의 內面상태를 봄으로부터 차츰 단계적으로 밖으로 變化가 진전된다는 뜻에서 內이나 初를 뜻하는 卦象의 초爻로 부터 動을 삼는 것이나 外部의 沖擊이나 接觸으로 變動이 있다거나 상태를 볼때엔 그 物事의 겉표면이나 겉에 나타난 상태로부터 차츰 단계적으로 속으로 向하여 變動이 있게 되는 것이다.
八卦中 乾坤괘는 다른 六괘상의 父母와 같은 位置에 있고 또、그 역할을 한다。모든 卦象은 건곤괘의 相合變化로부터이니 乾坤卦에다 數를 接觸시켜 卞卦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또 괘상은 八個이고 ○空속의 數는 九가지라서 꽤나 數가 數致上으로 (數가 한개 남음) 맞지 않는지라 數를 괘에다 접촉시켜 卦를 일으키게 되는지도 모른다.여기서 基本卦象을 自體的인 器로 보았고 數는 外部에서 接觸해 오는 物事로
본 것이다. 즉 數를 卦란 그릇(器)에 담기는 物事體로 보아 그 物事體가 담기면 全體的인 그릇이 어떻게 보이느냐가 關件의 卞卦가 된다는 것이다。基本的인 八卦에다 卞卦理解를 돕기 위하여 數配置를 順序대로 하여는 것이 (固有的인 性格을 띈다) 바로 一은 乾이고 二는 兌이고 三은 離이고 四는 震이고 五는 巽이고 六은 坎이고 七은 艮이고 八은 坤이라 하여 논 것이니 이또한 陰陽의 比律에 그렇게 定해진 것이니 즉, 앞서의 先天圖說明의 보기(八卦陰陽 對比順序)와 같다 할 것이다. 앞서의 先天數論에서 說明했지만 九는 老陽數로써 空內의 홀수의 最大數요 八은 小陰數로써 짝수의 最大數인 것이다。즉 數自體的으로 九는 乾이고 八은 坤이다。그러나 이것이 여기서 그냥그대로 乾坤의 卦가 되는건 아니다。이는 어디까지나外部에서 오는 그릇에 담기고자 하는 物事體이므로 서로 相合(凹凸意味와 같음) 그릇에다 갖다 接觸하게 되는 것이니 陽物事는 陰器에다 陰物事體는 陽器에다 담기게 되는 것이다。九는 陰器坤에 담겨 한그릇 가득한 것이 되어 陽器로 變化시켜 乾卦가 된다는 것이다。즉 이해하기 쉽게 故有的으로 붙여논 數 一이 된다는 것이다。이와같은 論理에 의거해서 陰數八도 마찬가지로 陽器乾卦에다 相合接觸시켜 가득담긴 物事體가 된 거와 같음으로 卞陰器 坤卦가 되 붙여논 故有數八이 된다는 뜻이다。以上과 같은 논리에 의거해서 陽數는 陰그릇에 담기고 陰數는 陽그릇에 담아 卞卦를 만드니 접촉되 들어오는 物事體는 그릇 겉부분으로부터 變化를 준다했음으로 數를 乾坤器에다 순차적으로 접촉시킨다면 一數는 坤卦上爻와 접촉해서 一卞艮 즉 七數의 故有名辭 性格을 띈 卦가 되고二數는 乾卦上 爻에 접촉하게 되므로、二卞兌 즉二數의 故有名辭卦가 되는 것이고 三은 坤卦의 中爻로 내려와서 접촉하게 되므로 三卞坎 즉 六數故有名辭가 되고 四는 乾卦中爻로 내려와서 접촉 四卞離 즉 三數의 고유명사 卦가 되는 것이고 五는 坤卦의 下爻로 내려와서 五卞震 즉 四數의 故有名辭 괘가 되고 六數는 乾卦의 下효에 내려와서 六卞巽 즉 五數의 고유명사 卦가
되고 七數는 모든 爻를 한번씩 動하고 남은 數나 다시 上효로 올라가 재차 坤卦의 上爻에 접촉시키게되므로 七卞艮괘가 되니 七數의 故有名辭가 되는 것이다.이렇게 說明 하여야지만 原因이 확실 해져 迷信視화 되지 않는 것이거늘 于先卜筵하는 데만 急急하여 제대로 된 理治를 밝혀놓치 않고 그냥 一卞七 二變二 三變六 등ᆢᆢ
하여놓곤 이것이 古來以來로 先人의 法則이라 하고 그냥 무조건하고 그 式을 따라 한다면 어찌 此學問에 뜻을 둔 자라 하더라도 미심쩍은 面이 있다 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他思想을 信俸하는 사람들이야 重要한 哲則과 같은 原理를 輕視할건 自明한 일이 아닌가? 그렇지않아도 韓(桓)國의 전통과 여러 樣式 및 維來된 學文이나 儀式行爲를 가벼히 여겨 저들의 文明이란데 현실적으로도 깊이 젖어 있고 깊이 젖게 하고자 하는 판인데 西神사상에 대적할만한 理論을 갖고 있으면서도 後脫者들이 제대로 活盛化시키지 못해 파뭍힌 것들이 한둘이 아니라 할 것이다。理論的으로 체계화시켜 허황된 사상이나 이념을 대항해야지만 능히 저들의 허구성을 증명한다 할 것이다.檀紀 四三三十 八月 九月(달을 넘기는 상간)三十日一日 夜中晨。
大將三殺論
◎ 무엇을 갖다 大將과 三殺이라 하는가? 所謂 世俗에서 크게 꺼리는 三殺大將이란 뭣인가? 이를 나름대로 밝혀 보고자 한다。뭣이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盲目的으로 (자기의 뚜렷한 주관도 없이 남이하니까 나도 따라 한다는 式) 信俸하는 것은 一種의 迷信이라 그렇게 됨。논리흐름에 拘碍됨이 없는 西氏(모든걸 포획해 먹는 입과 같다)에게 當한다。뭣이던 다理治가 있는 것이다。이것은 저 앞서 대략을 내빛친 十二長生論(生旺死絶等類의 舉論)에 依據하여 形成된 理論으로써 大將은 方局에 대한 年이 長生論에 의거 病死葬이 되기 때문에 그 年에 대한 그 大將方은 또한 氣運이 있게 되므로 함부로(法度式에 어긋나는 行爲作)造作해서 무례하게 對하지 못한다는 뜻에서 禁忌한다는 것이니 즉 諸格이 完備된 강한 것에게 힘이 쇠미해진 모양을 지어 대어들다간 도리혀 이쪽이 爲害를 받는다는 뜻이다。病死葬과 絶胎養은 흡사 장구 허리와 같이 연약해지는 모습을 그리는 과정과 같음이라 스스로에겐 약점이 되고 他에겐 먹이體가 되어 보인다는 것이니 함부로 약점을 들어내 보이지 않는게 좋다는 것이다. 움직이는 건((가만히 있는 物
體도 옮기(移)면은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時流 流年과 같음이라。사람이 그 時流 流年 代身한 모습을 지어서 그 旺方을 치면 어찌 그 方이 가만히 있겠는가? 하는데서 이러한 理論이 나 그 行事에 適用케 된 것이라 할 것이다.
三殺이 또한 大將과 마찬가지 논리이니 이는 合局을 갖고 적용하는 것이니 合局年의 絶胎養位方이 되는 곳이 三殺位로써 그 方을 무례하게 對하면 그 動靜行事物體가 絶胎의 氣流 運命을 받게 되어 爲害를 받게 된다는 것이니 모름지기 禁忌하게 된다는 것이다。絶胎養되었는데 무슨 기운이 있어 爲害를 끼친다 한단말인가? 한다면 내기운이 그 位에 가면 절태된다는 뜻이니 이말은 무슨 뜻인가? 그 時流年運이 그 位의함정에 빠져 포로된다(힘을 못 쓰게 된다는 것이니 즉 그 時流年(子年이면 子年ㆍ 丑年이면 丑年하는 그 해운년) 運을 代身하는 諸行事體들(이는 그 해운년의 기운을 받아 이루거나 삶을 영위하는 空의 形成體를 말함이다. 즉 그 해운년의 기운속에 있는 諸空을 말함이다)이 그 方位에 대한 適應에선 힘을 못추게 된다는 것이다.
十二支支의 方局은 亥子丑北 水方 寅卯辰 東木方 ㆍ巳午未南火方、申酉戌金方、合局은 申子辰水局、亥卯未木局、寅午戌火局、巳酉丑金局이다。즉 三位가 모여서 동서남북의 一方을 가르키게 되고 三位가 合해서 一合行性을 띄게 되는 것이다.水局 病死葬位는 寅卯辰位이고 絶胎養位는 巳午未位이고 木局 病死葬位는 巳午未이고 絶胎養位는 申酉戌이고 火局병사장位는 申酉戌이고 절태양位는 亥子丑이고 金局병사장位는 亥子丑位이고 절대양位는 寅卯辰이다。主管者(스스로 主된 位治에서 諸事를 관장하고 行하는 者)는 언제나 中央의 位置가 되어 諸事를 主管하는 것이다.이를테면 어떤 家屋이 주관자라면 그 周圍方에 대한 作爲와 行事를 살피고 主管하게 되는 것이다。大將은 方局의 病死葬年位에 대한 方局의 官旺衰位를 묶어서 말하
는 것이고 三殺은 絶位는 却殺方이라 하고 胎位는 災殺方이라 하고 養位는 歲殺方位라 함인 것이다。事의 주관자가 쇠미한 위치에 있어서 강한 위치를 상대한다면 제 몫어치나 추구하는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뜻이다。또 설령 주관자가 강한 위치라도 나아가 諸業事를 行할바가 쇠미해지는 곳이라면 함정에 들기 쉽다는 뜻이니 諸事를 深度있게 다루라(삼가해서 하라는 뜻에서 이런 이론이 나왔다 할 것이다。以上은 삼살대장에 대한 나의 견해를 피력해 본 것이나 그래서 그 논리가 맞지 않맞는지는 알 수 없거니와 그냥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것보단 좀 눈이 밝아지는 面이 있다 할 것이다.물론 先賢의 옳으신 照明이 있어서 이런 이론이 나왔겠지만 이렇게 착각인지도 모르는 조명을 해보는 것이다.이처럼 東洋哲理學이 모두 生成논리나 自然變理에 뿌리를 둔 理由가 있는 것이니 迷信이 아닌 것이다.
此學이 너무 어렵다하여 하고 몸통만 내어놓고 그게 그런것이라 하고 무조건하고 옛성현의 가르침이라 하여 믿으라 하니 세상 사람이 의심내고 迷信視化할 수 밖에 더 있겠는가? 如他 陰陽命理等 東洋類에 속하는 學說 大多數가 근거가 있는 것이니 왜 그런가를 제대로 밝혀논다면야 저들 서씨족에게 당할 근심이 있겠는가? 이런 뜻이다。무조건 맹신하라 할게 아니라「하느님이 세상을 어떻게 만들었다는 식으로 조리있게 논리정연하게 서술 照明한다면야 다른 귀신 세력들에게 업신여김 당할리 있겠는가 이런 뜻이다.
※ 다음에 나오는 글 내용은 運命論的 內用으로써 버릴려하다。 다시 살려놓다.
◎ 命理學이 運命에 미치는 영향
앞서 운명론에서도 말했지만 諸擇 諸生의 基本的인 四柱는 약 五十餘 萬价이다。여러가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감안한다면 어디에다 준칙을 세워서 요량을 할 것인가? 그러므로 몇가지의 四柱를 例를들어 나열해 놓곤 學說을 늘어놓는 것은 공교롭게 줏어 맞춰논 것일뿐 믿을바 못된다 할 것이다。이를테면 먹는 음식을 갖고 비유해서 뭐하지만 여기 떡과 밥과 국과 반찬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큰 떡도 먹이고 작은 떡도 떡이고 밥과 반찬이 또한 그러하다하면 도 개 걸 윷 모의 분별에서 상품이 만원걸린 윷판에 도는 상품이 千원걸린 윷판에 모보다 낳다 아니할 것인가? 大海의 고래새끼는 江河의 잉어 어미와의 비김에서 이미 그 노니는 짓이 다르다 할 것이다.
사주는 같아 똑같은 도라도 경쟁상품이 만원걸린 윷판의 도가 되야할 것 아닌가? 그래야지만 上等의 運命이라 할 것이다。그렇게되기 위한 중엔 節侯에 따른 運到와 하늘에 行하는 달에 의한 달의 大小盈仄과 그 음력날짜에 달린 것을 重하게 여김에서 오는 것이 많다 할 것이다。運到는 四柱를 갖고 論하거니와 큰 영향을 미치는 달의 영측을 나타내는 달의 大小月과 음력날짜는 배제하고 命理를 거론하는 것이 대다수이니 이러고선 어찌 밝은 논리의 운명學을 말한다 할 것인가? 음력月의 大小와 그 날짜를 넣고 運命을 판별하는 方式이 있어야지만 제대로 된 運命學이라 할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호랑이를 그리되 발톱과 이를 뺀격일 뿐이다. 소위 허챙이만 아니면 일색이란 말뜻이 여기에 적합한 인용이라 할 것이다。이러하여
서 달의 영향을 넣겠다는 뜻에서 자미두수法을 中國의 누가 만들었으나 이또한 日辰干支와 時干등이 배제되었으니 그릇을 이루되 이가 빠진격이라、영리한 재주꾼이 그럴듯하게짠 工式이라는걸 달달이 외워 두었다가 길가는 行人 아무나 붙들고 아는 소리하겠다는 생각에서 조잡스럽게 만들은 옛사람의 이름을 참칭한 僞作이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이를테면 세상에 立身揚名할려 하는 재주꾼이 글모르고 줄될곳 없어 登科치 못하고 작은 재주를 내보인다는게 길가는 行人을 붙들고 한다는 말이「나는 운명가 예언가인데 당신운명을 판결 해주겠다。몇일 몇시 생이요 한다면 이 말에 유혹된 行人이「정말이요 십년 오월 이십오일 오후 세시에 났다던가?」한다면 이렇게만 되어 준다면 命理보는 文書 없이도 자미두수法의 工式을 된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아무리 秀才라더라도 七八십년간의 日辰干支는 다외워 가지고 다니지 못할 것이니 日干支와 時干이 빠졌으니 이가 빠진격이 될 수밖에 더 있겠는가? 또한 토정선생의 일년신수 보는 책이 月의 大小와 그 날짜를 갖고 신수판결의 變化를 도모했으나 이또한 시각수가 배제되었으니 어찌 오른 판별방법이라 할 것인가? 이렇듯 갖은 잡다한 운명학설이 모두가 흠결되어 있으니 누구 말씀을 들어옳다 할 것인가? 그저 많은 方式中 多合이면 좋고 小合이면 나쁜 것으로 판가름 한다할 것이다. 혹이 말하길 한사람이 입에 거품물고 침튕기며 악을쓰면 여럿이 웅성거리는 것보다 낳다하나 그것은 제 악쓰는 것으로 돌리고 그것 아니다 한다면 牛耳讀經이 된 결과가 될뿐인 것이다。一例로 庚辰干支 四柱造가 秦王政의 사주조라 하여 좋다고 하나 三月節이 음력달로 三月인지 二月인지 四月달까지 가는 것인지 그 달이 큰지 작은 초승 어느날인지 中旬 어느날인지 末旬 어느날인지에 따라 運命의 犬羊의 差가 있을거라 할 것이니 이러므로 아무리 같은 윷이라도 上품이 걸린 판을 말하지 아니할 것인가? 또한 鬼谷者의 天中殺론을 따를 것같으면 몇년씩 周紀로 묶어 天中殺을 舉論하니 些小한 空亡殺은 비켜나갔다 하더라도
大 天中殺에 걸리지 않는다고 무얼갖고 증명할 것인가? 요행이 비켜 갔더라도 이현령 비현령이라 다른걸로 이유 달아 공망이라 하면 마음에 근심덩어리를 안게 되는 공망이 아니라고 무얼 갖고 발뺌할 것인가? 心治와 그에따른 身治는 辯在에 있다고 덮어씌우고 걷워치우고의 번복됨이 연속이라 할 것이다。사주 운명學이 徒是 허망한 이야기일 뿐일진데… 그렇다고 허망한 것으로 돌리자니 뭔가 아쉬움같은 미련이 남음에 자꾸 보고 또보나 겉만 빙빙돌뿐 알맹이를 잡아쥘 수가 없어 찾을려고 애쓰다보니 점점 깊은 함정에 빠져들듯하여 포로가 될 뿐이다。玉鑛山하는 者가 玉인가 하고 줏어보면 보통 水晶도 못되고 엉길려 하는 차돌같은 것일 뿐이요 중석 광산 하는자가 중석을 캐고자 하나 망골만 엉겨나오는 것 같을 뿐이로다。망골을 캐어 무쇠솥에 들달볶어 중석이라 우겨팔고자 하나 아무리 대동아 전쟁에 미친 왜놈들이라 하나 약고 약 아빠져서 잘 속아주질 않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짜맞추더라도 本質이 틀리면 가짜노릇도 못하는 것이다. 가짜노릇을 할려해도 本質은 같아야 한다.그래야지만 진짜를 이긴다하진 못한다 하더라도 능히 堪當하는 것이다.그러면 왜 가짜가 필요한가? 가짜가 있어야지 진짜인 것을 분별할 수 있고 또 진짜가 얼마 없기 때문에 가짜라도 필요한 것이다.앞서 말했듯이 만원짜리 상품은 하나인데 누가 타갔다면 차등에 또 그 차등밖에 더 있지 않겠는가?
소위 국왕도 왕이요 가수왕도 왕이요 주먹왕도 왕이요 乞王도 왕이다。諸方面에 一人者는 王이라 할 것이니 이러모로 가짜라고 비유하긴 하지만 가짜일 수도 있는 한시대의 모든 왕들이 앉을 의자가 있게 되는 것이다. 참깨 들깨는 성분은 좀 차이가 나나 기름이 나온다는 本質은 같다.또 사람이 먹을 수 있다는 것도 같다。그런데 엉뚱하게도 겉모습이 엇비슷하다 하여 벼 자라는데 훼방만 놓는 피씨를 갖다 달달볶아 들깨기름이 나온다고 나오라고 쥐어짜면 그 기름이 나올 것인가? 이러므로 本質과 그 性格이 틀리
면 맞지도 않을 뿐더러 가짜노릇도 못한다는 뜻이다.
六甲에 배열된 先天後天數를 論하여 大定數란 것을 抽出 易卦象을 만들더라도 三百八十四爻의 爻象에 메인辭 풀이에 局限한다 하더라도 格局의 差等이 千態萬象이라°어찌 그 괘상 그 효라하여 한가지라 할것인가? 一例로 甲己子午가 九라 한다면 (※ 이는 目軸太極에 의한 先天數論에 자세히 설명했겠지만 各空과 面積의 名分數를 내기 위한 수순에 불과한 진행과정의 수일뿐인데도 음양학자들은 그 數를 높이사서 應用하고 있는 것이다) 도도 九요 개도 九요 걸도 九요 윷도 九라 함에 진배없음이라°또 진술축미가 五나 十이라하면 또한 그와 마찬가지라 方位론에서 以上의 支들이 동서남북 모퉁이를 가르키고 있는데 모퉁이마다 모두 五나、十이라하면 一名分을 달지 뭣하러 辰戌 丑未라 할 것인가? (※ 정리때 생각이지만 이는 未洽한 引用이다.모퉁이格은 같은데 그 명분을 달리하여 어느 모서리라 하고 분류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앞서 선천수에 대한 것도 그렇다。各空이나 面의 (大小인지 경중인지) 等數는 같은데 단지 네가지라서 명분을 달리 定한 것뿐일 것이다) 모두가 다르거늘 일률적으로 미룬다는 것은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일 뿐이다。사주는 오십여만개라도 모두가 달라 달의 영향에 따라 천만가지요. 시각수는 분초를 다투니 또한 神殺이 无量個라 어찌 한결같을 것이며 한번 내려치는 칼날에 썰림도 차이가 있고 같은 시각에 떨어진 대추열매도 풍향 따라 여기저기 떨어져서 제각기 따로 굴르거늘 무엇이 같은게 있으며 일률적인게 있단 말인가? 그런걸 갖고 撓柱鼓瑟처럼 틀에 박아 그것만이라 한다면 일더하기 이하면 그 답이 五로 되는걸 몰라서 하는 말인 것이다。森羅의 出生 영향이 어찌 六甲뿐이랴? 제반 모든걸 미루어 복합적인 원인과 그 因果관계를 봐야할 것 아닌가? 格은 없는데서부터 格을 세워 格이라 하므로 格에 맞으면 제격이라하고 法또한 그러해서 제 法이라하니 그와 맞는걸 뜻함이라。맞는다는 것은 짝을 뜻함이니 제반게 짝이 맞
으면 합격 합법이라 하고 맞지 않으면 불합격 불법이라 한다。둥그런게 좋다하여 합격이라 한다면 사주가 조금 흠결이 있어 불합하더라도 다른게 채워 원만하게 한다면 어찌 좋다 아니할 것인가?
고유한 전통 전래된 미풍양속 및 주위환경이 잘 받쳐주고 부단한 노력으로 원만함을 이뤄나간다면 아름답게 되는건 큰 변수가 없는 이상 旣定된 理治다。四柱란? 일꺼리가 갖춰진 것에 불과한 것이요 제짝을 맞춰 원만하게 하는 것은 일이니 일하지 않으면 홍시 감이 떨어져 입에 드는 것은 천에 하나 요행일 뿐이다. 삼라가 불완전한 일감으로 나왔음으로 완전함으로 가기 위하여 일하는 것이다。이렇듯 사람의 운명은 모든게 제대로 잘들어 맞아야 좋다는 것이니 사주팔자 한가지에만 메어 달린다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그런데도 사람들은 사람의 운명이 어떻고를 보기 위해서 사주팔자를 알아보고 있는 것이다。불확실한 世上에 살면서 하도 답답하고 궁금하니 그거라도 들여다보고 알라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고유한 전통과 그 傳來된 來歷 풍속 환경 및 혈통이 운명에 끼치는 영향을 가벼히 여길 수 없으니 옛말에 측간에 가면 구린내 나고 꽃밭에 가면 향기난다 하였고 고정관념과 관행 관습은 깨기 어려운 것이며 좋고 나쁨 또한 血統을 갖고 論하기도 하니 혈통이란? 곧 씨앗 즉、家門인 것이다。정승에 아들과 종에 아들이 같은 시각때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 삶은 판이할 것이니 어찌 운명이 같다할 것이며 하다못해 일신에 붙은 左右手도 맡은 司命이 다르거늘 같은 운명은 없는 것이다。상전벽해가 되지 않는 이상 정승에 아들은 도련님이라고 고임을 받을 것이고 종에 아들은 천민이라고 하대받을 것이 아닌가? 또한 어느 殺魁星을 타고난 이가 세상을 뒤집어엎어 地天을 이룬다 하더라도 정승에 아들이 그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꺼꾸로 처박히고 종에 아들은 신분이 상승될 것이니 어찌 운명이 같다 할 것인가? 제반 삶의 영향을 끼치는 것 중엔 환경도 가벼히 여기지 못할 것이니 갖은 음양학설에 의한 풍수지리나 居止訣에 의한 음양택논이 또한 그렇다
할것이다.
一家門이 흥쇠하는 것은 家門에 運이므로 풍수나 居止의 영향이 左右한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집안이 大臣이 나면 청지기 팔촌도 힘을 쓴다고 그 위력을 무시치 못할 것이며 一門이 巨富가 되면 그 인척들에게도 영향이 있다. 아니할 것인가? 물론 사람의 마음씀에 달렸다 하지만 구두쇠같이 탐욕이 가득한 자가 아닌 이상 내 살붙이를 내몰라라 하진 않을 것이다。어지간한 상식이 있음바에야 있고서 厚하지 않는자 드물고 없으면서 조그만치 베풀고 생색내지 않는자 드믈므로 世間에 평판이 있는 것이다。또한 여유있는 이가 골고루 알아서 베풀고자 하더라도 혹 이에서 소외되어 혜택을 못받는자들이 생겨나서 비판의 헐뜯음이 있는 것이다.
소외됨의 원인도 여러가지나 이중 하나는 제 잘낫다해서 스스로 겉돌아 소외됨이고 또 하나는 察察하여도 不明하여서 혹 빠쳐먹어 그에 참여하고 싶으나 초대함이 없어서 소외되는 것이다。前者는 남보다 못한 주제에 그릇된 오기만 살아서 시건방지게시리 불손함이고 後者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게 되니 서운한 불평불만을 하게 됨이라。꼭 찾아 돌봐주어야 할 것이다。이와같이 家門의 흥쇠는 한사람의 사주팔자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제반 환경 및 여건에 달렸다 할 것이므로 어찌 음양술가의 말을 쫓아 求山求基를 하지 않을 것인가? 그 폐단이 강토를 파훼시키더라도 勢있는 자는 勢있는 자대로 勢를 유지하기 위하여 세 없는 자는 세 없는 자대로 세를 얻기 위하여 世人이 알게 모르게 橫行하는 것이다。또한 惡灌이 若滿이면 天必誅요 積善之家必有餘慶이라고 어찌 諸般當事에 臨하여 슬기로운 대처를 하지 않을 것인가? 제가 得道한 道師나 남보기에 自請他稱 如來처럼 해가지고 골은배에 한술밥에 감지덕지하여 그 집안의 內歷은 料量치 않고 대중에게 피해가 오게 하거나 저와 제 가문도 망신살이 뻗치거나 매국둔갑하여 애국으로 되 보이
는 자리를 명당이라고 잡아준다면 그 끼치는 해독이 天下와 만민에게 가득하게 시리하여 질곡속에 헤메이게 하는줄을 왜 짐작지 못한단 말인가? (※ 금새 영향을 끼치는 풍수法이 그럴듯한 理由가 있는가?가정하여 신빙한다면 있을 것이다。사람이 배고플때 밥을 먹으면 힘이 생기듯 그 영향이 그 行한 主題者(家門이나 사람、재물、其他등등)에게 미쳐 그 어떤 時空間을 헤집고 그 기운이 다할때까지 기승을 부리듯 떨어올린다 할 것이니 그 여파는 주위나 후대에 까지도 미친다 할 것이다. 한사람이 대추나무를 흔들면 열매를 여럿이 줏어먹듯 또는 만원 버스에 덩치 큰 사람이 또 타면 옆사람은 짓눌리는 피해를 보게 된다。서로 서로 회생하고 은혜를 베푸는 마음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러므로 정당하게 보이는(각 개인의 관점은 다르다) 일은 할 생각은 아니하고 천박하게시리 천박한 지식만 내보이고자 하는 術家後裔의 糞이 드물다 함인 것이다。머리에 천만가지 술법이 들었다한들 임시의 처지가 옹색하고 초라하다해서 그 재주나 팔아먹고자 하고 건전한 삶의 활력소가 되는 또 남들보기에도 이미지가 좋은 그런 생산적인 일은 아니하고 안일무사하고 대접받기만 원한다면 (혹 필자 자신을 훈계하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별볼일 없는 뒤는 뚝이 되는 것이다。분명코 그런 풍수가 如來가 아니라 악귀들린 돌파리 사탄으로써 眞覺者는 못되어 뒤는 뚝이 되었을 것이다。(얘기가 이상한 곳으로 흘러 가지만 정신이 들은바 있어 그렇게 기우니까 할 수 없다) 짓누르면 고통해 울분한다。이제 그 울분짓던 것은 멀리 사라질지 모르지만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냥 놔두면
사상누각도 누각이라함과 진배없음이니 소위 도적질해 부자된 다음 선심쓰면 탕감된다는 西氏논리와 다를바 없음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너도나도 옳바른 삶의 과정은 하나도 없고 한탕주의만 눈을 화등잔만하게 켜가지고 찾아다니는 난장판이 되고 말 것이다.또 지금 사회의 계층이 그렇게해서 형성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필자의 편견 잘못된 시각일 것이나 지난것을 맑게 하지 않고선 쌓은 업 옷을 벗었다 할 수 없는 것이니 한마디로 말해서 복수로 깨트림인 것이다。자정마다 魔의 저주數와 같은 원혼가진 귀신들의 웅얼거리는 呪術은 끝나지 않는 것이다。이렇게 세게 몰아치니까 한편의 마음이 한생각을 정리하여 다시 들고 일어나 반격하는데 내가 남을 놓아줄 마음이 없는데 남인들 나를 놓아줄 것인가? 너는 정신이란 그릇을 갖고 있는 이상 내가 사용할 수도 있는 그릇도 너가 내가 너를 부렸다고 억울한 것이라고 원망하며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면 동귀어진 하자고 할 것이다。그렇게 됨。휼방상지에 어옹득리라고 괜스리 엉뚱한 것들에게만 덕을 보게 할 것이다. 네 마음에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질때 사탄 악마도 미워하는 농단짓거리를 하지 못해 諸宇宙는 극락으로 변할 것이다。인내와 극기는 大達聖스러움으로 이르는 大道。몸이 가루가 될지언정 그 邪惡함이 어쩌지 못할 것이니 굳은 결단의 作心을 하면 북산우공처럼 되어 산신은 대행산과 왕목산을 옮겨지고 갈 것이다。九七。六。十三。晨早晚朝八時。
이제 원한가진 저주、주술부리는 귀신들은 저만큼 간 것같다.九八年 五月二十四日 夕에 곧쳐쓰면서 언젠가는 되살아 올런지 모르지만
ᆢㅡㅡ
다음은 格言과 같은 성격을 띈 內用이다。
※ 정신은 形態 自由自在로 움직이는 그릇이며 살아있는 시간 움직이는 시간이다。그것이 진리라 하는 것도 시간이 흐르면 (精神의 舊態) 시들해진다。내겐 시들해진 것도 남에겐 새롭게 느껴져 하고자 하면 다시 내가 하고싶은 욕망이 솟는다。별것 아닌것도 서로 하고자 하면 값어치가 치솟게 마련이다. 흡사 쉰밥、한그릇이라도 여럿이 숟갈들면 다툼속에 금새 없어지는 거와 같다 할 것이다.
※ 바로 앞론의 말미로 돌아가서 사람이 그 운명의 복수코자 하는 마음에서 원풀길 장구함을 도모한다면 인간이 잉태한지二百六十六日 정도이면 출생한다 하니 낳을 四柱 吉四柱라 하는 것을 加減逆算하여 잉태시키고 그 柱에 가서 出生할 기미없더라도 수술해 ·시킨다면 이래도 운명 저래도 운명이라 하니 한번 기대해 볼만도 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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