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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월 16일 페이스북에 '민주당 탈당을 결심한 이유'를 소상하게 올렸습니다. 이 글에서 저는 탈당의 이유로 민주당이 복지국가의 길을 가로막는 기본소득 포퓰리즘 정치에 포획되었다는 점,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점, 이재명 후보와 송영길 대표가 끝내 사퇴를 거부했다는 점, 포퓰리즘과 반민주 적폐의 개혁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 등을 거론했습니다. 그리고 17일 탈당했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이런 사실을 접할 경우,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내부적으로 돌아보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재명의 민주당'은 그렇게 하는 것 대신에 떠나가는 사람의 등에 대고 가당치 않은 헛소리로 저를 모욕했습니다.
'이재명의 민주당'에서 대변인직을 맡고 있는 현근택 씨는 "이상이 교수가 탈당하는 것이 뉴스가 되나요? 그동안 입당과 탈당을 몇 번이나 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라는 글을 트위트에 올렸습니다
이 글은 마치 제가 정치적 이득을 위해 입당과 탈당을 반복하는 철새 정치인인 것처럼 읽힙니다. 실제로 sns에 올라온 이 글을 보고 이재명 후보의 지지자들은 험한 말로 저를 조롱하고 모욕했습니다
저는 어이가 없습니다.
'이재명의 민주당' 때문에 저는 졸지에 이익을 쫓아 입당과 탈당을 반복하는 철새 정치인 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재명의 민주당'에서 간판격 대변인으로 활동하는 현근택 씨가 올린 sns 글에 대해 저는 이재명 후보가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책임성 있는 자세로 제게 사과하실 것을 요구합니다.
저의 민주당 입당과 탈당에 대해 진실을 밝혀드립니다.
1. 저는 1998년 5월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해서 2000년 8월 탈당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첫 번째 입당과 탈당입니다.
저는 1990년대 내내 보건의료 시민운동을 했습니다. 당시 국민건강보험제도 창설은 시민운동의 핵심 과제 중 하나였고, 50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는 시민사회와 맺은 정책협약에 따라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조합주의 의료보험제도의 통합일원화를 통한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창설을 제도적으로 실현해야 했습니다. 당시 집권여당은 이 일을 정책적으로 책임질 전문가를 시민사회에 요구했고, 제가 그 일을 맡았던 것입니다.
저는 김대중 총재 명의의 보건전문위원 임명장을 받았고, 5월부터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예방의학 전문의였던 저는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김대중 정부가 국민건강보험제도 창설과 의약분업 도입 등의 많은 성과를 내는 데 주도적으로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공채를 통해 2000년 9월 제주대 의대 교수가 되었습니다.
2년 4개월 동안 저는 여당의 전문위원으로 일했고, 처음부터 당은 입당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요구되는 절차를 따른 것뿐입니다.
이렇게 해서 저의 첫 번째 입당과 탈당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저는 2년 4개월 동안 일하면서 제대로 된 월급이나 상여금뿐만 아니라 퇴직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워낙 여건이 열악했기 때문에 월 250만 원 내외의 활동비를 받았습니다. 저는 전문의였지만 경제적 곤궁 때문에 야간에 대학교 시간강사까지 하면서 버텼습니다. 의과대학 졸업 후 제가 꿈꾸었던 것, "우리 국민 모두의 손에 제대로 된 건강보험증을 쥐어드리고 싶다는 바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저는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의약분업을 추진할 때는 동료 선후배 의사들과 의료계로부터 왕따를 당했고, 결국 서울에서는 저의 의약분업 추진 이력 때문에 주요 대학들부터 교수 자리를 모두 거부당했기에 국립대학을 찾아 제주도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선택한 삶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국민건강보험제도로 인해 많은 분들이 안심하시는 모습을 볼 때, 젊은 날의 제 고생과 투쟁이 뿌듯할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저의 치열했던 삶이 입당과 탈당을 반복하는 철새 정치인처럼 묘사된다면, 저는 이것을 제 삶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재명의 민주당'이 제게 정중하게 사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2. 저는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영입 대상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이미지 첨부). 원서 접수 첫날 민주당의 규정에 따라 입당하고 지원서를 제출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저는 저들로부터 배신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두 번째 입당과 탈당입니다.
민주당은 2010년 10월 전당대회에서 보편적 복지를 강령에 삽입했고, 2011년 연말과 2012년 연초에 걸쳐 이해찬 씨를 좌장으로 문재인, 문성근, 한명숙 등의 소위 친노세력이 민주당의 당권을 잡았는데, 이들은 민주당의 간판으로 복지국가를 내세웠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게는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 담론을 시민사회운동을 통해 정치사회적으로 공론화한 공로가 있었기에 당시 복지 분야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가 될 자격을 충분히 갖춘 것으로 인정되었습니다.
2012년 봄, 한명숙 대표 체제의 민주당에서 정치에 처음 입문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좌우에는 이해찬 씨와 김용익 교수가 각각 정무와 정책을 맡고 있었습니다. 김용익 교수는 1990년대의 시민사회운동을 저와 함께 했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당시의 보건복지 개혁과정을 함께 겪어온 저의 윗분이십니다.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저를 비례대표로 영입하기로 검토했고, 김용익 교수가 저의 멘토로서 저를 지지했기 때문에 저는 당연히 영입된 것으로 알고 있었고, 비례대표 지원서류 접수 기간의 첫날에 입당을 포함한 모든 지원 절차를 마쳤습니다. 당시 300만 원의 심사비도 납부했습니다. 그런데 지원서류를 제출한 날 오후 늦게 김용익 교수가 저를 보자고 했습니다. 서둘러 갔더니, 김용익 교수는 민주당의 친노 수뇌부에서 이상이 대신에 김용익을 공천하려 하니 제게 지원을 포기하든지 알아서 하라는 식의 말씀을 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 당황한 표정으로 "저는 벌써 지원서를 제출했는데요. 미리 말씀을 하셨으면 제가 포기했을 텐데, 왜 일이 이렇게 되도록 하셨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시 김용익 교수에게서 그동안 저를 지지하고 후원하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차가움을 느꼈고, 그것으로 상황은 끝난 것이었습니다.
제 원서는 지원 기간 첫날에 이미 심사료 300만 원과 함께 접수되고 말았고, 당시 이해찬 씨가 주도한 민주당의 한명숙 대표 체제에서 저는 무참하게도 서류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서류 심사 과정에서 제게 낙제점을 주라고 심사위원들에게 말하고 다니면서 공천과정을 실제로 주도했던 인물이 양정철 씨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김연명 교수(전 청와대 사회수석)로부터 제가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후 김용익 교수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그 일로 저는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한동안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저는 십수 년에 걸쳐 복지국가 건설의 꿈을 공유했던 인생의 윗분이 어떻게 제게 이렇게 하실 수 있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사실상 민주당의 당권을 잡은 이해찬 씨 등의 정치적 기획이 무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3년쯤 지나서야 저는 한 토론회에서 우연히 김용익 의원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과거의 참담했던 상처를 제 마음에서 지우기로 했습니다. 쉽지는 않았지만 노력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저의 민주당 당적은 사실상 하루 만에 심사료 300만 원과 함께 종결된 셈입니다. 이후 저는 민주당 근처에는 아예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복지국가 시민운동에만 몰두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두 번째 입당과 탈당입니다.
3. 저는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입당했고, 2022년 1월 17일 탈당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세 번째 입당과 탈당입니다.
저는 2012년 이후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로 제가 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복지국가 시민운동은 기대만큼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복지국가 의제가 이미 정당정치에 다양한 수준으로 수용되었기 때문에 미약한 시민단체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크지 않았던 것입니다. 복지국가 시민운동을 복지국가 정치운동으로 연계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풀뿌리 차원의 정치 운동체로 복지국가당을 만들기도 했지만, 오래 끌고 가진 못했습니다. 본진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마저 무너질 지경에 처했으므로 2016년 총선 직후 저는 복지국가당을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16년 10월, 저는 <이상이의 복지국가 강의>를 출간하면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로서 복지국가 대중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달라진 운동 환경에 따라 팟캐스트에 출연했고,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 진행 등의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2020년 연초, 저는 우연히 언론 보도에 나온 민주당 비례대표 국민경선 소식을 접했습니다. 국민경선인단이 투표를 통해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를 선출한다는 것이 신선하게 여겨졌습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내부 회의와 검토를 거쳐 복지국가 정치운동의 꿈을 민주당을 통해 실천해보기로 하고, 제가 출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의 세 번째 입당이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이 세 번째 민주당 입당이야말로 제가 진정으로 정치를 하길 원해서, 다시 말하자면 제가 복지국가 정치운동을 통해 복지국가 시민운동을 연계하고 이후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을 조직해서 보편적 복지국가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당찬 꿈을 안고 비례대표 국회의원 국민경선에 도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실은 이해찬의 민주당이 국민을 속였습니다. 그들은 진짜 국민경선을 한 것이 아니라 무늬만 국민경선을 했습니다. 저는 국민경선에서 좋은 성적을 얻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민경선 성적은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성적을 공개하지도 않았지만, 그것은 그냥 예비 합격자를 추려내는 1차 관문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진짜 당선 순위를 정하는 것은 당 지도부의 의사가 주로 관철되는 중앙위원 순위투표였습니다. 저는 아무런 연줄이 없었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뒤늦게 후회한들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는 민주당 비례대표 순위 14번을 받았습니다.
실망스러웠지만, 이후 한 번도 탈당을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제 인생의 마지막 열정을 다 쏟아내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병을 만났습니다. 바로 기본소득을 정치의 전면에 내건 이재명 경기지사와 정책적으로 대립한 게 그것입니다. 저는 보편적 복지국가의 길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기본소득을 비판했고, 민주당의 강령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기본소득과 복지국가를 둘러싼 이런 정책적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지난해 5월 민주당 윤리심판원에 저에 대한 징계 안건이 회부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저는 계속해서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 포퓰리즘을 비판했고,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된 후 '이재명의 민주당'은 다시 저를 징계 회부했고, 지난해 11월 29일 저는 8개월의 당원권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 포퓰리듬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는 당내 비판이 무의미하게 되었고, 비판을 계속 이어갈 여건도 사실상 종료되었기에 탈당을 결심한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세 번째 입당과 탈당입니다. 저의 세 번째 민주당 입당은 비록 눈속임 국민경선이었지만 제가 정치적으로 원해서 입당한 유일한 사례이므로 제게는 ‘사실상 첫 번째 입당’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민주당 탈당은 당원권 자격정지 8개월 중징계를 통해 ‘이재명의 민주당’으로부터 사실상 쫓겨나는 것이나 진배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진실이 이러함에도 저를 마치 입당과 탈당을 반복하는 정치 철새인 것처럼 몰아가는 ‘이재명의 민주당’에게 저는 분명하게 요구합니다. 정당은 이래서는 안 됩니다. 이재명 후보는 제게 책임성 있게 사과하시기 바랍니다.
2022년 1월 18일
이상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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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열우당, 민주통합당, 민주신당은 솔직히 민주당이고, 아무런 당에 소속되어 있지 않던 시절까지 무소속으로 표시해서 이당저당 왔다갔다한 철새를 만들어 놓았네요.
그러네요. 완전 악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