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떠오르는 태양, 구로교당~!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³о 개인 여행기 스크랩 남인도 기행 18일차 2012. 01. 16(월요일. 첸나이)
윤상현 추천 0 조회 66 12.09.18 14: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2. 01. 16(월요일. 18일차. 첸나이)

 

인도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아온다. 간단하게 씻은 뒤 거울을 들여다보니 어쩐지 볼이 좀 홀쭉하고 몸꼴도 날씬하다. 짧지 않은 여정에 꾀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으리라. 절로 다이어트가 된 몸이 보기 좋다. 더군다나 스무날 만에 텁수룩한 수염을 밀었더니 검게 그을렸어도 제법 훤칠한 모습이 되었다. 이제는 여행 전의 평상 모드로 돌아갈 시간인 것이다.

아우는 아직 취침 중이다. 발걸음을 죽이고 조용히 객실을 나와 동 틀 무렵의 인근 동내를 돌아본다. 주택가 주변의 하천이 썩을 대로 썩어 있어 오염의 심각성을 알겠다. 바닷물에 몸을 담구는 순간 온갖 잡병에 감염되리라는 경고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그래도 여염집 골목의 깨어나는 아침 모습은 우리네의 어렸을 적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길가의 공동 작두 샘에는 여인들이 머리를 감느라 바쁘고 다른 한편에는 아침 식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 신 새벽 낯선 이방인에게 보내오는 눈길에는 무심한 듯 하면서도 호기심이 묻었고 건네는 인사말에 화답함이 스스럼없다.

호텔로 돌아와 마지막 남은 스프를 끓였다. 그래도 아우가 잘 준비해온 덕분에 참 잘 얻어먹는다. 그렇지 않았으면 매 끼니마다 무얼 먹을까 고민해야하고, 그만그만한 식당을 찾아다니며 그만그만한 음식들로 숙제하듯이 끼니를 해결해야 했을 것이니 퍽이나 피곤했으리라. 아무튼 고마운 일이다. 어제 남겨둔 밥을 한데 비벼 아침 식사를 해결하니 포만감에 마음까지 든든하다.

좀 쉬다보니 벌써 열시가 되어간다. 배낭을 귀국모드로 꾸려 한편에 챙겨두고서 호텔을 나선다. 귀국 비행기는 밤늦게 출발할 것이기에 오늘 낯 시간이 통째로 남아있다. 작은 보조배낭에 음료수와 약간의 간식을 챙긴 뒤 카메라만을 매고서 시내 투어에 나선다.

 

 

지도를 펼쳐보니 첸나이에서 볼 수 있는 주요 관광지들 거의가 이곳에서 멀지 않은 도심에 모여 있다. 더군다나 반대편에 자리한 ‘싼 토메 성당’은 어제 이미 다녀왔으니 오늘의 일정이 여유로우리라. 우선 시내에 있는 ‘세인트 조지 요새(FORT)'로 향한다. 그 곳은 1640년에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세운 인도 최초의 요새로서 아직까지도 고색창연 한 면모가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거리구경도 할 겸, 호텔을 나서 느린 걸음으로 ’왈라자 로드‘를 따라간다. 해는 이미 중천인데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곳은 구(舊)시가지 인지라 신축한 건물은 거의 보이지 않는 가운데 거의 완공을 앞둔 엄청난 규모의 빌딩이 막아선다. 공사장 차단막에 하였으되, ‘첸나이 메트로 레일 본부’ 공사현장 이란다. 족히 만 평이 넘어 보이는 부지 위를 거의 채운 원형(圓形)고리 형태의 건물과 임금님의 둥근 관모(冠帽) 모양을 한 돔형 빌딩이 현대적 설계로 아름답다. 하지만 낡고 작은 주변의 모습과는 너무 동떨어져서 좀 뻘쭘하고 비루먹은 개떼들만 어슬렁거리는 어수선한 정원 때문에 선뜻 친밀감이 일지 않는다.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는 고가 철로 위에는 ‘메트로 레일’의 열차들이 출입문을 날려버린 채 달리는데 열린 문에 몸을 내밀고서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승객들로 인하여 내 가슴만 오그라든다.

도시 하천 ‘쿰강’은 첸나이의 북쪽 도심을 가로질러 ‘뱅갈만’으로 빠져나가는 사상(蛇像)천이다. 느릿한 흐름의 강물이 굽이굽이 첸나이 시내를 돌아 바다로 흘러든다.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다리를 건넌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강물의 상태가 너무도 심각하다. 이것이 과연 강물일까 싶을 정도로 그 물빛이 검어 마치 탄광촌의 하천 같다. 하지만 그 물빛만 제외한다면 잔잔한 수면 위에 도영(倒影)된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양안(兩岸)에 울창한 아열대의 숲과 그 사이로 솟은 오래된 건물들의 첨탑이 푸른 하늘빛에 어울려 편안하고 강 너머에는 야자수 그늘 짙은 삼각주가 펼쳐졌다.

 

 

다리를 건너니 군부대(軍部隊)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멋쟁이 군인이 우리를 빤히 쳐다본다. 우리네의 헌병들 복장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머리에 쓴 모자만큼은 확실히 다르다. 하얀 바가지모자 대신, 진회색 터번 위에 닭 벼슬 모양의 붉은 깃을 꽂은 모습에서 인도인의 정체성을 본다. ‘인도의 육군이 되면 인생의 승리자.’라는 모병 포스터를 큼직하게 세워둔 것으로 보아 육군 부대의 병영이 틀림없겠다. 정문 양편에 놓인 대포와 고사포가 눈길을 끈다. 담장 안쪽에는 커다란 탱크가 자리 잡았다. 모두가 일차대전 때나 사용했음직한 골동품들이다. 현역 군인과 모병 간판만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곳을 박물관으로 여겼으리라.

삼십분 너머를 걷다보니 다소 지친다. 길가 그늘 한 편에 앉아 목을 축이며 ‘세인트 조지 요새’까지의 남은 거리를 가늠해보니 아직도 한참을 가야만 한다. 혹시나 하여 릭샤를 찾아보았지만 평소 일반인 통행이 뜸한 거리인지 그마저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다. 내친 김에 그냥 마저 걷기로 한다.

 

 

땡볕의 눈부심을 견뎌가며 이십 여 분을 걸은 끝에 ‘세인트 조지 요새’에 당도했다. ‘쿰강’의 물길을 끌어들여 해자(垓字)로 삼고서 돌로 쌓아올린 성벽이 무척 단단해 보이는 가운데 이곳이 요새임을 나타내는 깃발이 인상적이다. 대형 범선(帆船)의 선수(船首)부분을 옮긴 듯 한 성벽 위에 마스트를 세우고 그 꼭대기에 깃발을 펄럭이게 하여 당장이라도 뱅골만 넓은 바다로 항진하려는 기상을 드러내었다. 마스트 중간에 설치된 망루와 많은 가닥으로 늘어진 돛 줄로 인하여 이곳이 사백년 가까운 세월동안 꾸준히 이어진 생동감을 본다.

 

약간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요새 안으로 들어서니 오랜 역사에 비해서는 상당히 현대적인 모습이 많다. 격렬했던 여러 번의 전투로 인하여 파괴와 복구가 반복되었고 특히 1846년에 벌어진 프랑스와의 대 격전이 성터만 남겨질 정도로 치열했던 때문이다. 그래도 초입에 자리 잡은 ‘포트 박물관’과 ‘성 메리 교회’에는 묵은 세월이 담겨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니 벽면을 장식한 중세의 갑옷투구와 각종 도검들, 그리고 초기의 총포(銃砲)들이 눈길을 잡는다. 바닥에 전시된 각종 포탄들과 함께 전해오는 서늘한 느낌이 당장에라도 터지며 위력을 발휘할 것만 같다. 이층으로 올라가니 각종 그림이 벽을 메웠다. 거의 일백호가 넘는 크기의 당대 총독들의 초상화가 즐비한 가운데 특별히 가운데를 차지한 빅토리아여왕의 초상화가 눈길을 잡는다. 화려한 금빛 드레스와 백금 왕관, 왕관에서 빛나는 각종 보석들. 그 중에서도 고개를 반쯤 돌린 채 먼 곳을 응시하는 여왕의 표정은 그림의 백미라 하겠다. 이곳은 아직 관람객들의 사진촬영을 금지하지 않는다. 나 역시 여왕의 초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마련해둔다.

 

 

박물관을 나와 총독의 관저를 끼고 왼편으로 돌아드니 바로 ‘성 메리 교회(쎄인트 메리 처취)’가 나온다. 이 교회는 1678년에 건축된, 현재 아시아에 남아있는 영국 성공회 교회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곳이다. 외관을 살피니 어제 둘러보았던 ‘성 토마스 교회’에 비하면 아담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아열대 키 큰 나무 그늘 속에서 하얗게 깨끗한 모습으로 마을의 여염집들과 어울려 있음에서 도리어 차분함을 느낀다. 안으로 들어서니 수백 년의 세월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관리상태가 좋다. 자연채광 만으로 환히 밝혀진 교회당 안에 신자들이 묵상 중이다. 발걸음을 죽여 가며 한쪽 의자를 차지하여 앉는다. 눈을 감고서 함께 명상을 시도하니 역시나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

요새의 북쪽 성곽을 거닐어본다. 관리상태가 엉망이다. 이곳까지 신경 쓸 여건이 못되는가보다. 하지만 요새의 위용을 느끼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아치형의 성문을 통과하며 확인한 돌 성벽의 두께가 대략 오 미터가 넘으리니 정말 난공불락이라 해도 과히 틀리지 않겠다. 이런 성벽 안에 총독부를 두고서 식민지를 통치했던 제국주의 당사자들은 과연 어떤 느낌이었을까.

 

 

‘세인트 조지 요새’의 북쪽으로 천천히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조지 타운’이 있다. 인도가 독립하기 전까지의 영국인들의 거주지로서 왁자지껄한 재래시장과 함께 깔끔한 영국풍의 시가지를 볼 수 있단다. 좀 피곤하기도하니 너무 멀리 걷지는 말자. 비교적 가까운 조지타운의 남쪽에 식민지 시절의 유서 깊은 건물들이 모여 있다. 특히 첸나이의 고등법원은 ‘인도 사라세닉 건축’의 백미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건물로서 이번 여행길의 8일차에 들렸던 ‘깨랄라 주’의 ‘마이소르 궁전’을 건립한 ‘헨리 어윈’의 작품이라하니 솔깃하다.

 

멀리서도 보이는 고등법원 첨탑 시계 바늘이 정오를 훌쩍 넘겼다. 이십여 분 만에 도착한 붉은 벽돌의 고등법원은 울창한 숲 속 넓은 부지에 자리 잡았다. 안내에 의하면 재판 과정의 방청은 불가능해도 법원 내부를 둘러보는 것은 자유란다. 하지만 우선 짙은 그늘 벤취에서 쉬다보니 구경이고 뭐고 다 귀찮아온다. 이제 긴 여정에 조금 지쳐가는 가 보다. 보조배낭에 챙겨온 약간의 간식을 먹고 나니 이젠 졸립기 까지 하다. 나무 밑에 있으니 눈부심도 없고 얼마나 시원한지 모르겠다. 아예 드러누워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잠을 청한다. 잠깐 사이에 집 꿈을 꾸었다. 혹시 코는 골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쪽잠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

 

 

잠깐사이에 머리가 다 개운하다. 새롭게 에너지가 채워졌다. 잠이 보약이라더니 정말 그렇다. 호텔 체크아웃이 오후 두시이니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다. 다리가 아파 더 이상 걷기 싫다. 릭샤를 불러 세워 호텔로 향한다. 아까 걸어올 때 한가한 녹지를 통했던 것과는 달리 릭샤는 혼잡한 시장 거리를 통하여 철도를 따라간다. 연료통이 비었는지 주유소에 들른 기사는 차비를 선불해달란다. ‘첸나이 쎈트럴 역’을 스쳐지나 ‘쿰 강’의 다리를 건너 릭샤는 불과 십분 만에 우리를 호텔 앞에 내려놓는다.

객실로 들어가 조금 쉬어가자. 비록 방은 좁고 형편없어도 에어컨이 빵빵하여 다행이다. 침대에 몸을 눕히니 푹신한 침대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 행복이란 것이 정말 별거 아니다. “범사(凡事)와 소사(小事)에 감사하라.” 꼭 성인의 말씀만을 인용해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좀 눕다 보니 샤워도 못한 채 시간이 훌쩍 지나 방 비울 시간이 되고 말았다. 귀국길에 오르면 장시간 씻을 곳이 마땅치 않을 것 같아 비행장에 가기 전에 잘 씻고 떠날 요량이었다. 그런데 종업원이 와서 자꾸 방을 빼라 채근히니 어쩌겠는가. 이제는 할 수 없다. 그래! 한 번 쯤 안 씻는다고 무에 문제이랴.

우선 체크아웃이다. 하지만 무거운 배낭 짐을 지고 다니기가 마땅치 않아 일층 로비에 몇 시간 만 맡겨 두기로 한다. 호텔 앞에서 릭샤에 올라 시내의 쑈핑몰을 향한다. 최근에 개장한 현대식 복합 쑈핑 쎈터를 미리 수소문 해두었다. 정문을 지키는 경비원의 제복이 거의 군복에 가깝다. 더군다나 허리에 권총까지 차고서 고객을 살피는 눈길이 왠지 서늘하다. 비록 북쪽 보다는 덜하다지만 테러의 위협이 엄연하게 상존한 인도인 것이다.

 

 

쑈핑 몰 안으로 들어서니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큰 규로로 지어진 종합 문화쎈터이다. 우선 사층으로 올라가 ‘푸드 코트’를 찾으니 점심시간을 훨씬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테이블에 빈자리를 찾을 수가 없다. ‘KFC’가 눈에 띤다. 오랜만에 보는 상호에 군침이 돈다. 아우를 주문 줄의 끝에 세워두고서 빈 좌석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실내 화단의 난간 모서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여행길인데 아무렴 어떠랴. 많은 현지인들도 이나마 자리가 없어서 헤매는 판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옷차림이 바깥에서 보던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모두 고급스럽다. 인도에서 이런 쑈핑 몰은 부유층이 아니면 드나들기 어려운 곳이다. 오랜만에 맛보게 된 후라이드 치킨과 햄버거로 인해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확실히 느낀다. 이제까지의 거친 음식들도 싫지는 않았다만 부드러운 음식에 훨씬 군침이 도니 말이다.

배를 불리고서 쑈핑을 나선다. 얼마 되지는 않는다만 이곳에서 남은 인도 돈을 다 쓰도록 하자. 그간 이역의 뜨거운 땅바닥을 헤매느라 쌘달이 모두 닳았으니 신발이나 하나 건져보자. 매장에 신발 종류가 하도 많아 선뜻 고르기가 쉽지 않다. 크록스 상표의 아쿠아 슈즈가 그런대로 맘에 든다. 평소 한번 신어보고도 싶었던 터다. 마침 값도 맞춤하여 시원해 보이는 짙은 청색 디자인을 골라들고 매장을 나선다. 어쩌다보니 여행길 끄트머리에 신발 하나씩 장만하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 아래층에 자리한 슈퍼마켓에 들러 제법 유명세를 누린다는 ‘타지마할 티(TEA)'와 ‘칠리 파우더(고추가루)’를 구입했다.

우리가 이곳에 들린 가장 큰 목적은 비행장 가기 전의 시간 때우기다. 영화 한편이면 쉽게 그 목적을 이루리라. 인도의 ‘맛살라 영화’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한 장르로 정착된 지 오래다. 마침 육층에 대규모 멀티 상영관이 성업 중이다. 오늘은 월요일인데다가 낯 시간이니 바로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모든 인도인들의 첫 번째 오락거리인 영화는, 특히 개봉관에서는 미리 예매하지 않으면 원하는 시간에 절대 볼 수가 없었다. 실재로 자동 매표 시스템 앞에서 표를 사려고보니 대여섯 개의 상영관이 모두 늦게까지 매진 된 상태다. 실망이다. 그래도 모든 시스템의 대형 모니터가 ‘SAMSUNG'으로 채워져 있어 그나마 반가운 마음을 품고 발길을 돌린다. 내친 김에 아래층의 삼성 매장에 들러 가격 수준을 알아보니 같은 제품이면 한국에서보다 훨씬 비싸게 팔리고 있더라.

 

 

개봉관의 아쉬움을 안고 릭샤에 올라 호텔 앞의 동내 극장으로 왔다. 포스터를 보니 그런대로 시간을 때울만하겠다. 상영이 시작 된지는 이미 오래지만 어짜피 못 알아듣는 인도의 타밀어이니 어떠랴. 그림만 보면 되는 걸. 하지만 이것도 착각이었다.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듯, 육십년 대나 봤음직한 영상에다가 음향 상태도 완전히 엉망이어서 그 시끄러움을 도저히 감당해낼 수가 없다. 채 십 분을 견디지 못하고 그냥 나와 버렸다.

슬슬 걸어서 바닷가로 가보자. 마침 지역의 축제 중이어서 해변으로 통하는 지하도가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복잡하다.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는 백사장은 이미 사람으로 물결을 이루어 아예 난장판이 되었다. 도대체가 정신이 없어 아예 몸을 피하여 조금 한적한 곳을 찾아 앉는다. 뜨거웠던 낯 시간과는 달리 날이 저무니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낯에는 한가했지만 밤 시간에는 사람들이 복작댐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오가는 사람 구경을 하다 보니 무료하다. 마침 지나가는 장사꾼에게 땅콩 한바가지를 사서 까먹기 시작한다. 정말 심심풀이 땅콩이다. 무심히 땅콩을 까먹다가 얼마나 지났을까, 왠지 뒤통수가 간질거리하며 남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슬그머니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만 “아차차차!”, 무심히 먹다 버린 땅콩의 겉껍질과 속껍질이 온통 주변을 어지럽혔다. 자기네들끼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난장판을 만들면서도 낯선 이방인에는 눈총을 보내는 것이다. 이곳이 인도라는 것과 “노 프라브럼!” 문화를 너무 과신했나보다. 짐짓 모른척하며 슬그머니 일어나 부담스런 자리를 빠져나오고야 말았다. “젠장 ! 흐흐흐흐!”

 

 

이제는 그만 인도 여행을 마쳐야 할 시점이다. 호텔로 돌아가는 느린 걸음에 뭔지 모를 아쉬움이 묻었다. 저녁식사를 위한 마땅한 식당이 눈에 띠지 않는다. 길가의 닭 집 주인은 연신 후라이드 치킨을 튀겨내고 있지만 튀김 솥 안의 찌든 기름 상태는 입맛을 싹 가시게한다. 어제까지는 아무렇지도 않던 것들이 오늘은 눈에 거슬리니 확실히 돌아갈 때가 되긴 된 모양이다. 그냥 옆 가게에서 과일을 조금 마련하고서 가던 걸음을 재촉하는데 저만큼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깨끗한 빵집이 눈에 띤다. 작은 규모이긴 해도 진열된 것들이 제대로 모양을 갖췄다. 모처럼 과일과 함께 부드러운 빵에 콜라를 마셔가며 포만감을 즐기는 저녁이 되었다.

 

 

맡겨둔 배낭을 찾아서 호텔을 나선다. 지금 저녁 여덟시 반이다. 비행기 이륙시간은 아직 여유 있다만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일찌감치 공항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자. 나름 러시아워인지 공항로의 통행 상태가 만만치 않다. 가다서다가 반복될 때마다 어김없이 적선을 바라는 손길이 택시 안으로 들어온다. 우리나라에서는 도로가 막히면 뻥튀기 아줌마가 달려오지만 이곳은 아가를 앞으로 안은 어린 여자애들이 먼저 달려온다.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나니 탑승시간까지는 아직도 세 시간이 남았다. 복작대는 대합실의 말소리가 많이 시끄럽게 들리는 것으로 보아 내 상태가 좀 피곤한 모양이다. 배낭을 챙겨 구석진 곳으로 찾아간다. 아예 안대(眼帶)와 귀마개를 한 뒤 모자를 눌러쓰고서 길게 누우니 세상천지가 다시 내 것이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