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4장1-19절 고난을 택하는 지혜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본능적으로 살려고 합니다. 풀도 나무도 짐승도 새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광부들은 지하갱도에 내려가면서 카나리아라는 새를 데리고 갔습니다. 카나리아가 일산화탄소에 민감하여 살려고 소리를 내기 때문입니다. 본능적으로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사람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 생존 경쟁을 지나 생존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죽기 위해 육체의 고난을 받으신 분이 나오는데 그 분은 우리 주님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도 나를 따르기 위한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거친 물살이 흐르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가 어려운 것과 같이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고난을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능을 따라 발버둥 치게 됩니다. 그런데 본능을 거절하고 고난을 택하는 것이 지혜중의 지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존 본능은 타락한 옛사람의 본능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우리는 우리가 몸부림치는 것이 육에서 난 것인지 영에서 난 것인지 분별해야 하고 육에서 난 것이라면 본능을 거스려 죽음의 고난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금은 종말로 진입하는 시기입니다. 우리에게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뉴스가 ytn에 나왔습니다. 그는 머리에 컴퓨터를 넣어서 치료와 능력개발을 돕는다는 인체 실험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때가 악하니 세월을 아끼는 참 지혜를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육체의 때도 7-80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원중에 단 한 번의 시간이 주어진 것이고 이제 남은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남은 때를 2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을 좆아 살아야 합니다. 그 시작이 고난을 받는 것임을 1절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고난을 선택하는 지혜가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본성을 거스려 영이 사는 고난을 선택하는 지혜를 따라 어떻게 고난을 받아야 할까요? 첫째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지키기 위한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보낸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는 혹독한 기독교핍박이 휘몰아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방신들 섬기는 문화가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을 섬기는 것과 로마의 황제숭배는 갈등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문화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달랐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선포했고 유일한 구원자 예수그리스도를 선포했습니다. 제국과 교회는 대립했습니다. 그들은 권력과 힘을 가지고 무자비하게 핍박을 했습니다. 베드로사도는 [본문12절]에 불시험이라 말씀합니다. 앞으로 성경적 믿음이 공격당하는 상황이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사상적으로 다양성 정치적으로 무신론 경제적으로 무엇보다도 적그리스도의 등장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때 믿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예수만이 우리의 구원자 되심을 따라 고난을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살전2:2]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딤후1:8]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우리는 본성을 거스려 영이 사는 고난을 선택하는 지혜를 따라 어떻게 고난을 받아야 할까요? 선을 행함으로 삶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이기적인 세상에서 선을 쫒는 것은 손해 보는 일입니다. 선을 행함이란 늘 종노릇해주는 것입니다. 자기 주장하나 제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품성을 이룹니다. [벧전4:15-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벧전2:19-21]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우리는 본성을 거스려 영이 사는 고난을 선택하는 지혜를 따라 어떻게 고난을 받아야 할까요? 낮아짐으로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죄의 특성은 높아짐입니다. [사14:12]말씀처럼 죄는 뭇별위에 올라 가장 높은 자와 비교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바벨론의 시대입니다. 머리의 시대입니다. 왕의 시대입니다. 순금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다음 주가 성탄주일입니다. 주님은 그냥 여행오신 것이 아닙니다. [빌2:5절] 말씀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으신 것입니다. 낮아지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신에 속한 것입니다. 섬기는 것이 행복한 사람 그가 성숙한 사람입니다. [고후4: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우리는 본성을 거스려 영이 사는 고난을 선택하는 지혜를 따라 어떻게 고난을 받아야 할까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받아야합니다.
[골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히13: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딤후2: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고난의 지혜를 따라 사는 성도의 축복은 무엇인가요?
죄의 지배에서 자유함/ [벧전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에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가지고 오실 영광을 받음/ [벧전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영혼을 주님이 돌보심/ [벧전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잊지마십시오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