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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1호 : 석남암수석조비로자나불좌상(石南巖藪石造毘盧舍那佛坐像)
산청내원사, 1990.03.02 지정
(제1022호-제1040호, 90.5.21지정, 高麗靑瓷 등)
제1022호 : 청자상감동채연당초용문병(靑磁象嵌銅彩蓮唐草龍文甁) 호림박물관
고려시대 만들어진 높이 38.3㎝, 아가리 지름 6.9㎝, 밑지름 12㎝의 청자병으로, 길게 뻗어 세워진 목과 약간 벌어진 아가리를 가지고 있다. 어깨로부터 서서히 벌어지다 몸통의 하부에서 최대로 벌어지고, 다시 좁혀진다. 몸통의 가장 큰 배 부분까지는 양감이 없이 직선에 가까운 곡선으로 이어지다가, 몸통 아래에서 급하게 좁아져서 굽에 이르지만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다.
유약은 회청색으로 얇고 투명하다. 병의 윗부분은 부분적으로 산화되어 담갈색을 띄고 있으며, 유약의 상태가 좋지 않다. 목 부위는 6개의 단으로 구성되는데 3단까지는 번개무늬, 연꽃무늬를 백상감하고, 그 아래로 연꽃·국화꽃·구름·학을 흑백 상감하였다.
어깨 부위는 꽃무늬를 흰색으로 둘렀으며, 그 안에 산화동을 안료로 3곳에 점을 찍어 넣었다. 몸체에는 4면에 큰 원을 그리고, 원 안에 여의주를 들고 있는 용을 새겨 넣었는데, 여의주에 산화동을 채색하여 붉은 색을 띠고 있다.
병에 무늬를 꽉 차게 그려 화려한 장식효과를 내었고, 산화동을 곁들인 독창적인 장식기법을 사용한 14세기경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제1023호 : 청자음각운룡문“상약국”명합(靑磁陰刻雲龍文“尙藥局”銘盒) 국립중앙박물관
고려시대 만들어진 높이 9.3㎝, 아가리 지름 7㎝, 밑지름 5.5㎝의 청자합으로, 약을 담는 용기로 쓰였다.
뚜껑의 상단은 편평하며 밑으로 둥글게 층을 만들어 단을 이루었다. 맨 윗면에 구름과 용무늬인 운룡문이 음각되고, 바깥 측면의 뚜껑과 밑짝이 맞닿는 부분에는 각각 가로로 고려시대 의약을 담당하던 상약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유약은 청자계를 사용하여 투명하며, 가는 빙렬이 전면에 가득하다. 상감기법이 일반화되기 이전의 작품인 듯 하지만, 뚜껑 윗면에 섬세하게 새겨진 운용문과 단정한 그릇의 형태, 투명한 유색이 훌륭한 작품이다.
제1024호 : 청자양각연당초·상감운학문대접(靑磁陽刻蓮唐草·象嵌雲鶴文大楪) 호암미술관
고려시대 만들어진 청자 대접으로 높이 5.0㎝, 아가리 지름 16.2㎝, 밑지름 4.4㎝의 크기이다.
몸체가 부드럽게 벌어져 올라가다 위에서 바깥쪽으로 약간 휘어진 것이 전체적으로 날렵하게 되었으며, 그릇의 두께도 얇아 뛰어난 세련미를 보인다. 대접의 안쪽에는 얕고 정교하게 양각된 연꽃과 덩굴무늬가 옆면을 따라가면서 잔잔하게 베풀어지고, 아가리 아래에도 양각된 덩굴무늬 띠를 새겼다.
바깥 면에는 몸체의 아래 위에 두 줄씩 흰색 상감선을 둘러 띠를 만들고, 그 사이에 운학문을 상감하였다. 이 무늬는 구름과 학이 각기 독립되어 시원스럽게 표현되었는데, 삼감청자 전성기에 운학(雲鶴)이 뒤섞여 조밀한 구성을 보이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상감기법도 얕으면서 붓으로 그린 듯 자연스럽게 처리되고 있다. 바탕 흙은 약간 짙은 회청색에 표면은 맑고 투명한 푸른 빛깔을 머금고 있으며, 전면에 가는 빙렬이 보인다. 안팎에 양각과 상감무늬가 동시에 베풀어진 보기 드문 예로 모양과 무늬가 우수할 뿐아니라, 상감청자의 초기 상황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이다.
제1025호 : 청자도형연적(靑磁桃形硯滴) 리움미술관
고려시대 복숭아 모양을 본떠서 만든 상형청자의 일종으로 크기는 높이 8.6㎝, 폭 9.6㎝×7.1㎝이다.
잘 익은 복숭아를 보는 듯하며 몸통에 잎이 붙은 복숭아 나뭇가지를 뒤쪽에 붙이고, 앞쪽에는 나뭇잎 2개를 둥글게 맞붙여 잎으로 만들었다. 몸통 뒷면 가운데에 기다란 홈을 내어 복숭아의 질감을 생생하게 살렸고 잎맥은 가는 음각선으로 처리하였다.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수법으로 단순한 모양의 복숭아를 실물과 똑같이 만들면서, 잎과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연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창의력을 살린 솜씨가 빼어나다. 유색은 미세한 기포가 많은 아름다운 비취색으로, 복숭아 형태를 따라 자연스럽게 얇거나 두껍게 발라져 있어 더욱 생동감을 준다.
고려시대 청자연적 가운데 유일하게 전해오는 복숭아 모양의 연적으로 모양도 우수할 뿐아니라, 조선 후기에 성행한 백자도형 연적의 전신이 되는 셈이어서 더욱 흥미로운 작품이다.
제1026호 : 청자양인각도철문방형향로(靑磁陽印刻饕餮文方形香爐) 호암미술관
중국 주나라의 청동기 가운데 네모난 솥의 형태를 모방하여 만든 청자 향로로 높이 11.8㎝, 입지름 17.5×14.9㎝, 밑지름 12.5×9.4㎝이다.
네모형을 부드럽게 변형시켜 밑이 좁고 위가 넓은 사다리꼴로 만들고, 윗면에 각진 고리를 두 개 달았으며, 몸체 네 귀퉁이마다 두 마리씩의 매미를 조각하였다. 향로의 몸체 안쪽에는 무늬가 없으나, 손잡이와 턱쪽에는 꽃무늬와 번개무늬를 얕게 찍어 누르는 방법으로 새겨 넣었다. 이와 같은 무늬수법으로 몸체 바깥면에 돌아가며 빽빽하게 무늬를 새겼는데, 윗면에는 네모안에 동심원무늬와 회오리무늬가 교대로 배치되었다.
가운데에는 번개무늬가 잔잔하게 깔려 있고 그 바탕위에 두 마리의 도철(재물과 음식을 탐내는 악한 동물)이 마주보고 있는 무늬가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비취색의 유약이 전면에 얇고 고르게 입혀져 매우 정교한 각종 무늬를 세세히 볼 수 있으며, 얕게 찍어 누르는 방법으로 만든 양인각(陽印刻)의 무늬장식이 빼어나다. 이 무늬들은 소재와 배열에서 제기(祭器)라는 용도와 잘 어울리며, 양식의 특징으로 보아 12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청자 향로 중의 하나이다.
제1027호 : 청자구룡형삼족향로(靑磁龜龍形三足香爐) 리움미술관
입 주위 넓은 테인 전이 달리고 향을 사르는 몸체 위에 구룡(龜龍)이 장식된, 뚜껑이 있는 향로로 총 높이 20.4㎝, 향로 높이 10.2㎝, 입지름 10.2㎝이다. 머리를 쳐들고 앉아 있는 구룡은 거북 모양의 몸에 용의 머리를 지닌 신령스런 동물로 조각이 정교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얼굴의 갈기와 목의 비늘 등이 가는 음각선으로 자세히 묘사되었으며, 거북 등무늬 안에 ‘王’자가 새겨져 있다. 거북이 앉아 있는 형태의 뚜껑은 몸통이 뚫려 있어, 밑짝에서 향을 피우면 몸통을 통해 벌린 입으로 향이 피어오르게 되어 있다. 뚜껑의 아랫부분에는 꽃잎무늬와 번개무늬 띠를 둘렀으며, 사자머리가 조각된 다리가 3개 달렸다. 밑짝 테와 몸체에는 돌아가며 구름무늬가 음각 되어 있다. 전면에 맑고 깨끗한 비취색의 광택이 흐르는데, 구룡 부분은 좀 더 짙푸른 빛깔을 띄고 있다.
일찌기 중국 송나라의 서긍(徐兢)이, 『고려도경』에서 가장 맑고 깨끗하다고 극찬한 바 있는 고려 청자 향로 중의 하나이며, 12세기 전반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제1028호 : 청자반양각연당초문호(靑磁半陽刻蓮唐草文壺) 리움미술관
고려시대 만들어진 청자 항아리로 높이 24.4㎝, 아가리 지름 11.5㎝, 밑지름 11.5㎝의 크기이다.
구형에 가까운 모양으로 아래 위로 커다란 연꽃을 3송이씩 배치하고, 그 사이에 화려한 덩굴무늬를 가득 채워 넣었다. 아가리 부분은 가장자리가 밖으로 살짝 말려 있으며, 목이 짧고 볼록한 몸통에 굽이 없는 평평한 바닥면으로 되어있다. 문양의 윤곽 부분은 반양각(半陽刻)으로 시원스럽게 처리하고, 세부는 가는 음각선으로 정교하게 표현하였다. 음각의 일종이면서도, 문양의 윤곽 주위를 넓게 파서 문양을 도드라지게 하는 이러한 반양각 수법은 고려 비색청자가 최고 수준에 달하였을 때 완성된 화려한 장식 기교이다. 이 항아리에 시도된 반양각 수법의 문양 역시 굵고 가는 음각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약은 투명하고 아름다운 비취색으로 빙렬도 거의 없다.
고려청자의 모양으로는 매우 드물게 몸체가 풍만하고, 구형에 가까운 항아리로 그릇 전면에 반양각 수법으로 새긴 연꽃과 덩굴무늬도 빼어나게 아름답다.
제1029호 : 청자상감모란문주자(靑磁象嵌牡丹文注子) 호암미술관
고려시대 만들어진 청자 주전자로 높이 19.2㎝, 아가리 지름 3.4㎝, 밑지름 10.3㎝이다.
구형(球形)에 가까운 몸체에 뚜껑과 손잡이, 물을 따르는 주구(注口)로 이루어진 주전자로 뚜껑에는 연꽃잎무늬의 장식 위에 연꽃 봉오리무늬의 꼭지가 얹혀져 있고, 측면에는 둥근 고리가 하나 붙어 있다. 주전자의 아가리 둘레에는 연꽃무늬가 둘러져 있는데, 비취색 유약에 덮인 문양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주구는 몸체와 연결된 부분에 백상감의 물결무늬를 새겨 넣었다. 두 가닥 선을 겹쳐 놓은 듯이 만든 손잡이도 몸체와 어울리게 굽음새가 좋다. 이 주전자의 몸체 앞·뒷면에는 흑백상감으로 하나씩 모란꽃무늬를 넣었는데, 활짝 핀 모란꽃을 중심으로 아래편 양쪽에 작은 꽃봉오리들이 하나씩 달리고, 흑상감으로 줄기와 잎을 표현하였다.
다른 장식적인 모란문과는 달리 자연스럽고 상당히 회화적인 수법으로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장식적인 뚜껑과 시원스런 상감모란문, 정교한 양각 문양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드문 예로, 상감청자의 초기적 상황을 이해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
제1030호 : 청자상감운학문화분(靑磁象嵌雲鶴文花盆) 호암미술관
고려시대 만들어진 청자 화분으로 크기는 높이 23.0㎝, 아가리 지름 28.2㎝, 밑지름 22.0㎝이다.
위가 약간 넓은 원통형의 몸체에 밑바닥 중앙에 6㎝ 가량의 구멍을 뚫어 물이 빠질 수 있게 하였다. 화분의 아가리는 도톰하게 밖으로 말아 처리하고, 이와 비슷한 굵기의 줄무늬를 몸통 중간과 아랫부분에 둘러, 아래·위 두 부분으로 구역을 나누었다. 위쪽에는 구름과 학 무늬를 번갈아 가며 세 개씩 배치하였는데, 구름은 흰색만으로 표현하고 학은 흑색과 백색을 상감기법으로 처리하였다. 아래쪽은 연꽃잎이 겹쳐진 모양으로 둘러있다. 거의 이등분된 구성이지만 아래쪽은 약하게 음각선으로 처리하여, 윗면의 구름과 학무늬만이 도드라져 보인다.
유약은 광택이 거의 없고 전면에 빙렬이 퍼져있으며, 부분적으로 황록색을 띠고 있다.
제1031호 : 청자양인각파어포련문접시(靑磁陽印刻波魚蒲蓮文접匙) 리움미술관
고려시대 만들어진 청자 접시로 높이 9.3㎝, 아가리 지름 16.1㎝, 밑지름 6.1㎝ 이다.
밑둥 근처에서 거의 수평으로 퍼졌다가 다시 비스듬히 벌어져 올라간 넓적한 접시로, 안바닥이 평평하며 두께가 얇아 청동제 접시 같이 날렵하게 생겼다. 아가리 끝의 여섯 군데에 조금씩 홈을 내어 여섯 잎의 꽃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것은 고려 초기의 특징적인 꽃무늬 접시에서 퇴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릇 내면에는 마치 비단에 무늬를 넣은 듯, 섬세하고 정교한 최상급의 양각문양들이 새겨있다. 편평한 바닥면에는 물 속에서 놀고 있는 3마리의 물고기 무늬가 있고, 측면에는 각각 연꽃과 갈대와 물오리 등 연못의 풍경을 양각하였으나 바깥쪽은 아무런 무늬가 없다.
이 문양들은 손으로 하나하나 조각한 듯이 정교하고 치밀하면서도 부드러움과 우아함을 보이고 있다. 접시의 전면에 반투명한 유약이 은은하게 발라져 있다. 이 청자접시와 같은 모양과 문양, 유약색을 동시에 갖춘 것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제1032호 : 청자음각연당초·상감국화절지문대접
(靑磁陰刻蓮唐草·象嵌菊花折枝文大楪) 호암미술관
고려시대 만들어진 높이 6.9㎝, 아가리 지름 16.6㎝, 밑지름 4.0㎝인 청자대접으로, 바닥에서 아가리까지 거의 직선에 가깝게 벌어진 형태이다. 그릇 안쪽 아가리 가까이에는 음각된 덩굴무늬로 띠를 둘렀으며, 그 아래쪽에는 연잎모양을 꽉 차게 새겼고, 바닥에는 작은 원이 새겨 있다. 화려하고 섬세한 이러한 음각문양은 중국 오대(五代) 월주요(越州窯)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릇의 바깥부분에는 다른 장식은 없고 4군데에 국화문양을 배치하였는데, 도장을 찍은 듯한 국화송이는 흰색으로 상감하고 잎은 검은색으로 표현하여, 흑백의 대비가 선명하면서도 조화롭고 단정하다.
한 그릇에 음각문양과 상감문양이 함께 있는 드문 예로, 고려시대 상감청자의 초기 상황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제1033호 : 청자상감운학국문표형주자·승반(靑磁象嵌雲鶴菊文瓢形注子·承盤) 이헌
제1034호 : 청자상감연판문매병(靑磁象嵌蓮瓣文梅甁) 이헌
고려시대의 만들어진 청자 매병으로 높이 31.1㎝, 아가리 지름 4.4㎝, 밑지름 11.4㎝이다.
밖으로 약간 벌어진 짧은 아가리에 어깨부위는 둥근 원을 그리고 있는데,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매병보다 어깨가 좁고 둥글어 날씬한 모양을 하고 있다. 유약은 담청색을 띠는 투명한 유약으로 미세한 기포가 포함되어 있어, 약간 반투명한 효과를 보인다.
문양은 일반 매병으로는 드물게 어깨와 몸통, 아랫부분에 연꽃무늬가 둘러져 있다. 어깨부위와 몸통부분에는 흰색과 검은색을 이용하여 상감기법으로 무늬를 넣었고, 그 사이의 공간에는 3줄의 세로줄무늬를 5곳에 두었다. 아랫부분은 흰색만을 이용하여 연꽃무늬를 넣었고, 위와 마찬가지로 몸통과 아랫부분의 무늬 사이에도 3줄의 세로줄무늬를 4곳에 넣었다.
매병의 상감문양으로서는 단순한 소재의 선택과 단순한 구도가 특징적이다.
제1035호 : 청자음각여의운문병(靑磁陰刻如意雲文甁) 리움미술관
고려시대 만들어진 청자 병으로 높이 29.0㎝, 아가리 지름 5.9㎝, 밑지름 9.5㎝의 세련된 형태의 술병이다.
아가리 부분은 얇고 밖으로 넓게 벌어져 있으며 목이 길다. 어깨부위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몸통의 아랫부분이 볼록하며 굽은 다소 높고 넓어서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유약은 미세한 기포가 있고 얇고 투명하며 옅은 녹청색을 띤다. 아가리 아랫부분은 무늬의 배경을 넓게 파내어 양각의 효과를 내는 반양각(半陽刻) 기법으로 덩굴무늬를 새겨 넣었다. 어깨 윗부분은 줄무늬를 새겨 넣고, 아래에 꽃무늬를 반양각기법으로 둘렀다. 몸통에는 드문드문 작은 구름무늬를 새겼고, 몸통 아랫부분에는 연꽃무늬를 둘렀다.
제1036호 : 청자상감앵무문표형주자(靑磁象嵌鸚鵡文瓢形注子) 리움미술관
고려시대 만들어진 표주박 모양의 청자 주전자로 높이 26㎝, 아가리 지름 3.7㎝, 밑지름 7.8㎝, 뚜껑 높이 4.8㎝이다.
뚜껑에는 덩굴무늬의 고리가 붙어있고, 위로 뚫린 아가리는 뚜껑을 끼워 넣도록 안으로 단이 지어져 있으며, 윗부분이 볼록한 모습이다. 위쪽 박과 아래쪽 박 사이의 허리 부분에는 양각의 도드라진 띠가 둘러져 있고, 아래쪽 박은 밑으로 약간 처진 형태이다. 유약은 약간 어두운 담록색을 띠고 있고, 윗부분은 부분적으로 담황갈색을 띤다.
마개에는 연꽃무늬가 새겨 있고, 표주박 윗쪽의 마개가 덮이는 부분에는 구름무늬 비슷한 모양이 새겨져 있다. 아랫부분의 박에는 중앙의 전면에 꽉 들어차는 원을 흰색과 검은색으로 상감하고, 그 안에 한쌍의 앵무새가 있고 앵무새 사이에는 구름을 흰색으로 상감하였다. 물을 따르는 주구부분과 손잡이 아래에는 각각 연잎무늬와 버들가지무늬를 새겼다.
앵무새무늬는 대체로 12세기 대접의 안쪽면이나 합의 뚜껑 위쪽에 새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경우 아래쪽 박에 앵무새무늬를 상감기법으로 새겼다. 이 주전자는 12세기의 작품으로 매우 희귀한 양식을 지니고 있다.
제1037호 : 청자음각국당초문대접(靑磁陰刻菊唐草文大楪) 리움미술관
제1038호 : 청자철채양각연판문소병(靑磁鐵彩陽刻蓮瓣文小甁) 리움미술관
(제1041호-제1053호, 1990.9.20 지정)
제1041호 : 통도사영산전팔상도(通度寺靈山殿八相圖)
부처가 태어나 도를 닦고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일생을 8부분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이다. 가로 151㎝, 세로 233.5㎝의 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이 팔상도는 모두 8폭으로 액자에 끼워 벽에 붙여 놓아 보관하고 있다.
이 팔상도는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코끼리를 타고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장면인 도솔래의상, 석가모니가 룸비니공원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통해 출생하는 모습을 그린 비람강생상, 태자가 성문 밖의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의 사문유관상,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하는 장면을 묘사한 유성출가상, 설산(雪山)에서 신선들과 수행하는 모습을 그린 설산수도상, 태자가 수행 중 온갖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는 수하항마상, 부처가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낸 녹원전법상, 부처가 쌍림수아래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표현한 쌍림열반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폭은 거의 빈공간을 남기지 않고 건물과 나무, 구름 등의 배경으로 적절하게 구도를 나누어 해당되는 장면을 잘 표현하였다. 또한 각 묘사된 장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글을 써 놓아 이해를 돕고 있다. 산악이나 바위는 뛰어난 필치로 처리되었고 인물의 묘사도 생동감이 넘친다.
이 그림은 조선 영조 51년(1775)에 여러 화가에 의해 그려졌는데,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제작연대도 확실하여 조선시대 불교 회화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제1042호 : 통도사대광명전삼신불도(通度寺大光明殿三身佛圖)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 등 삼신불을 그린 삼신불도이다.
가로 3.15m, 세로 4.6m의 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이 삼신불도는 3폭으로 되어 있는데, 중앙에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하고 그 왼쪽에 노사나불을, 그 오른쪽에 석가를 배치하였다. 주존인 비로자나불은 양 어깨를 감싼 통견을 입고, 부처와 중생이 하나라는 의미의 손모양인 지권인을 하고 있다. 비로자나불처럼 통견을 입은 노사나불은 양손을 위로 한 설법하는 모습의 손모양을 하고 있으며,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다. 주존의 오른쪽에 위치한 석가여래는 왼쪽 어깨에만 옷을 걸쳤고, 마귀를 물리치는 의미를 가진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노사나불과 석가여래의 아래에는 각각 두 명의 천왕이 있어 전체적으로 사천왕이 삼신불을 호위하는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 삼신불도는 영조 35년(1759)에 임한, 하윤 등이 그린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석가,아미타,약사여래를 삼신불로 표현하였는데 비해 이 삼신불도에서는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여래로 삼신불을 표현한 드문 예로서 미술사적으로나 불교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제1043호 : 송광사십육조사진영(松廣寺十六祖師眞影)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해 송광사를 중심으로 고려 후기에 활약한 16명의 고승들의 초상화로 모두 16점이다. 보조국사의 초상화는 가로 77.4㎝, 세로 134.8㎝로 16점 모두 규모나 제작수법이 동일한 것으로 같은 화가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보조국사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7명이 중앙을 바라보며 있고 오른쪽에 8명이 중앙을 바라보며 있다. 보조국사는 녹색 장삼에 붉은 가사를 입고 오른손에 지팡이를 쥔 모습이다. 옷자락은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색의 농담으로 부드럽고 안정된 느낌을 보여준다. 정조 4년(1780)에 안치된 이 초상화들의 보존상태는 양호하며 조선 중기 불교 초상화의 기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제1044호 : 순천선암사대각국사의천진영(順天 仙巖寺 大覺國師 義天 眞影)
고려시대 승려인 의천의 초상화이다. 대각국사 의천(1032∼1083)은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로 천태종을 열어 불교를 통합하고자 노력했던 인물이다.
이 영정은 가로 110.2㎝, 세로 144㎝ 크기의 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것으로, 의자에 앉아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왼손은 긴 막대를 잡고 있으며, 오른손으로는 단주(短珠)를 팔목에 끼고 의자 손잡이를 잡고 있다. 사색에 잠긴 듯한 눈빛과 넓은 이마, 큰 코와 귀 그리고 꼭 다문 입에서 그의 학식과 수행자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녹색의 가사를 걸쳤으며 금빛의 둥근 고리로 매듭을 대신하였다.
이 영정은 승려화가인 도일비구(道日比丘)에 의해 순조 5년(1805) 수정·보완된 것으로, 앞 시대의 양식적 특징을 알 수 있는 당대의 대표작이며, 혜근(惠勤)의 글이 있어 더욱 가치가 있다. 습기로 인한 얼룩이 있고 일부 굴곡진 부분이 떨어져 나갔으나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제1045호 : 신해생갑회지도(辛亥生甲會之圖) 국립중앙박물관
명종 6년(1551) 신해년에 태어난 3명의 동갑내기 생일 잔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가로 57.0㎝, 세로 88.9㎝의 크기의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상·중·하 3단으로 구분되어 있다. 상단에는 ‘신해생갑회지도(辛亥生甲會之圖)’라는 제목이 쓰여 있고, 중단에는 주인공 3명과 잔치에 참석한 사람, 시중드는 사람 등 모두 9명이 빼어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단에는 계회에 참석한 이대기, 정인준, 홍순 3명의 관직·성명·본관 등을 기록한 글과 계회의 내용 및 감상을 적고 있다. 중단의 계회 장면은 16세기 초에 유행한 안견파의 화풍의 짧은 선이나 점으로 나타내는 단선점준이 구사되어 있으며, 흑백의 대조도 강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한 인물을 작게 표현하고 자연묘사에 중점을 두어 전반적으로 17세기 작품이면서도 16세기의 화풍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조 4년(1626)에 그려진 이 그림은 풍속화적인 성격을 가지면서 문인들의 생활단면을 묘사하고 있어 당시 양반들의 생활 일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며, 제작연대도 확실하여 회화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제1046호 : 화개현구장도(花開縣舊莊圖)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전기의 문신 정여창(1450∼1504) 선생의 지리산의 별장을 그린 그림이다. 정여창 선생은 성종 14년(1483)에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냈다.
이 그림은 정여창 선생이 한동안 성리학과 오경을 연구하면서 머물렀던 별장이 훼손되는 것이 아쉬워 정씨 문중에서 이징(李澄)을 불러 그리도록 한 것이다. 가로 56㎝, 세로 89㎝의 크기로 명주 바탕에 그렸는데, 화면의 맨 위에는 “화개현구장도”란 제목이 전서체로 적혀 있고, 중간에는 별장의 주변 산수를 엷게 채색하여 그렸다. 그림 전체의 배치가 오른쪽에 치우쳐 있으면서 근경, 중경, 후경이 잘 나타나 있고 산과 바위에는 흑백의 대조가 뚜렷하다. 그림 아래에는 정여창과 유호인의 시와 제작배경을 적은 글, 그리고 조식과 정구의 글에서 발췌한 글이 있다. 인조 21년(1643)에 그려진 이 그림은 일종의 기록화로 직접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기록을 참고하여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17세기의 안견화풍을 잘 보여주고 제작연대가 확실하여 안견화풍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며, 조선시대 유교문화를 연구하는데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제1047호 : 금동대세지보살좌상(金銅大勢至菩薩坐像) 호림박물관
지혜로 중생의 어리석음을 없애준다는 대세지보살로 연꽃대좌 위에 앉아 있는 작은 금동상이다.
머리에는 꽃무늬와 갖가지 보배로 화려하게 장식된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표현되었다. 보관 정면에 보병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오른손에 들려있는 경전과 함께 이 보살상이 대세지보살임을 알려준다.
신체에 비해 작은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으며 세련된 모습으로 탄탄한 인상을 준다. 신체 또한 매우 탄력적인데 가슴은 양감있게 표현됐으나, 허리와 배는 거의 구별되지 않게 하여 날씬한 모습이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자락은 등에 짧은 스카프로 표현되었으며, 가슴까지 바싹 치켜 입은 치마는 정면에서 주름을 지게하여 띠를 매고 있다. 퍼지는 치마를 매기 위해 허리에 또하나의 띠를 묶은 것이 특징적이이며 온몸에 크고 화려한 구슬 장식을 휘감고 있다. 대좌는 연잎이 3겹으로 중첩된 연꽃대좌인데, 연잎은 테두리에 단이진 특징적인 모습이다. 불상의 얼굴표정, 날씬한 허리, 치마의 주름단과 허리띠, 전신의 구슬장식, 연꽃무늬 등을 종합해 보면 14세기 말 내지 15세기 초의 보살상으로 추정된다.
제1048호 :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 호림박물관
지장보살과 심판관인 시왕을 그린 지장시왕도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의 고통에서 허덕이는 중생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보살로, 지장을 그린 그림에는 지옥을 지키는 호법신이나 심판관의 모습이 함께 등장한다.
이 그림의 화면 중앙에 본존인 지장보살을 크게 그리고 아래쪽 좌우에 작게 시왕, 사천왕, 도명존자 등을 배치하여 섬세한 필법으로 묘사하였다. 이러한 구도는 지장신앙과 시왕신앙이 결합되었지만 지장이 주가 되고 시왕이 종속적 의미를 지녔음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지장시왕도는 오늘날 전해지는 10점의 고려 불화 가운데 하나로 14세기 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불화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제1049호 :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권제6(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
諸菩薩萬行首楞嚴經卷第6) 대한불교천태종 구인사
이 책은 당나라의 반자밀제가 번역하고 송나라의 계환(戒環)이 쉽게 풀이한 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크기는 세로 36.5㎝, 가로 24.5㎝이며, 금속으로 을해자 및 한글활자를 만들고 볏짚을 섞어 만든 닥종이에 인쇄했다. 번역된 10권 중 그동안 권 제6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새로 발견되어 10권을 모두 갖추게 되었다.
원래는 조선 세종 31년(1449)에 수양대군(세조)에게 명하여 만들게 하였는데, 세조 7년(1461) 신미(信眉), 김수온 등 당대의 고승과 선비를 동원해 비로소 책을 완성하였다. 을해자본은 간경도감에서 만든 판과 비교하여 해석이나 토를 단 것 등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 사용된 글자나 체재는 간경도감판의 토대가 되었다. 인쇄 기록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다른 을해자 번역본의 인쇄시기를 추정하는데 있어서도 크게 도움이 된다.
제1050호 :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 대한불교천태종 구인사
아미타경은 ‘무량수경’, ‘관무량수경’과 함께 정토3부경의 하나이다. 아미타불과 극락정토의 장엄함을 설명하고 아미타불을 한마음으로 부르면 극락에서 왕생한다는 것을 중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후진의 구마라습이 번역한 것을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세조 10년(1464)에 펴낸 책1권이다. 간경도감은 세조 7년(1461)에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목판에 새겨 닥종이에 찍은 것으로 크기는 세로 30.4㎝, 가로 18.7㎝이다. 판을 새기고 바로 찍어낸 듯 인쇄상태가 깨끗하며, 불상 속에 넣었던 것으로 표지가 없으나 보존상태가 좋다. 글씨는 당대의 명필가인 안혜(安惠)가 썼다.
간경도감에서 처음 간행한 아미타경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는데, 이 책이 발견되어 그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