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쯤 초량에는 가느다란 비가 내렸다.
그리고 7시 30분 부터는 빗줄기가 거세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와도 간다는 시오름의 철칙 때문에 나는 우산을 쓰고 40분 되어서 집을 나섰다.
비가 너무 심하게 왔다. 우산을 썼지만 순식간에 바지가랑이를 흥건히 적시고 급기야는 엉덩이까지 젖게 만들었다.
부산역에 5분전에 도착하니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다.
비가 와서일까. 잠시 후에 영도큰오빠가 우산을 쓰고 나타났고, 이어서 김영선씨가 우산을 쓰고 나타났다.
오늘 일정을 말해 주니 영선씨가 망설이고 있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가야 하는냐는 표정이었다. 아직 시오름의 분위기에 완전히 젖지는 못했는가 보다. 그리고는 부인이 차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데 돌려 보내고 오겠다며 아리랑 뒷쪽으로 갔다.
그 뒤 총무와 최영환 씨가 나타났다. 모두 다섯이었다. 비는 줄기차게 내렸고 비올 때는 사자평보다는 간편하게 숫자도 적으니까 다른 산악회에 몸을 얹어 가자는 의견을 내었다.
다들 쾌히 승낙하여 8시 30분에 출발하는 천립산방에 합류키로 했다.
행선지를 물으니 지리산 삼봉산이라 한다.
삼봉산이라면 2년전 여름에 개그맨 전유성 씨와 함께 하룻밤을 보낸 뒤 오르다 중도 포기한 산이 아니던가.
지리산 자락은 아니고 지리산을 바라다 볼 수 있는 함양의 산이기도 하다.
함께 버스에 오른 뒤 출발 시간을 기다리는데 막판에 홍종숙씨가 우산을 쓰고 나왔다. 시오름 멤버가 6명이 되었다. 버스의 맨 뒷좌석에 앉아 그동안의 안부를 나누면서 실내를 시끄럽게 했다. 회비는 2만원이었다.
정각 8시 30분에 출발을 했다. 김해 벌판을 가로 질러 갈 때쯤 해가 반짝하고 나타났다. 가는 길은 막히지 않아 함양의 팔랑치에는 11시에 도착되었다. 흥부네 동네를 지나 산림연구소 옆을 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산길을 가는데 날이 참좋아서 반팔로 갈아 입었다. 천립산방에 모인 사람들은 우리를 합쳐 모두 21분이었다. 그 중에는 어슬렁의 같은 멤버인 정익준 교수와 김미라 선생이 함께 했다.
경남과 전북의 도계를 따라 올라가는 길은 무척 가팔랐다. 손총무가 매우 힘들어 했다. 발동이 늦게 걸린다고 했다. 감탄봉에 도착하니 12시 45분이었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시간은 30분 시오름의 1시간 여유하고는 전혀 느낌이 맞지를 않았다. 느긋하게 음식맛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저 도시락을 까먹는 시간 외에는 다른 틈이 주어지지 않았다. 일찍와서 일찍 점심을 먹은 팀이 서두ㅡㄹ러 출발을 하고 있었다. 제일 늦게 도착한 우리 일행은 아직 식사중에 있었다. 허겁지겁 핀잔 듣기 싫어서 짐을 챙기고 출발을 했다. 천립산방 김회장께서 다소 느긋하게 기다려 주시고 있었지만 어딘지 재촉하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감탄봉에서 삼봉산 정상까지는 1시간 20분이 소요 되었다. 등정식을 고인에 대한 묵념으로 끝내고 A,B조로 나누었다. A조는 봉우리를 하나 더 올라 능선을 타고 내려 가도록 했고 B조는 안부에서 계곡을 타고 하산하기로 했다.
시오름은 비조에 편입하여 내려 계곡을 타고 내려 갔다. 길은 희미했고 최근에 내린 큰 비에 의해 많이 지워져 있거나 나무가 쓰러져 길을 가로 막았다. 생각보다 계곡은 많이 길었다. 계곡을 타고 내려 가는 것이 편했다. 마지막 계곡 끝 지점에 이르러 밤밭이 나타났다. 너도 나도 밤을 주워 봉지에 담고 있었다. 애써 농사를 지은 밤인데...물욕은 끝이 없어 자제하기가 힘이 든다. 재촉하는 말을 수없이 해대어도 꿈쩍 하지 않아 그냥 버려 두고 하산할 수 밖에 없었다.
계곡물에 손을 씻고는 길을 재촉했다. 버스 앞에다 술판을 벌여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소주 두잔을 들이키고는 버스에 올랐다. 천립산방 대장이 우릴 위해 소주 댓병 한병을 사다 준다. 그걸 남강 휴게소에 이르기까지 여섯이서 다 마셨다. 물론 홍종숙 씨와 손총무는 덜 마셨기에 거즌 남자 넷이서 해치웠다.
술에 취한 최영환 씨가 비밀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며 비밀을 말했다.
미국에 이민 비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모두들 깜짝 놀라는 순간이었다. 언제 준비를 해 두었을까.
남강 휴게소에서 국수를 한그릇씩 말아 먹고는 잠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부산역에 다함께 내려 해산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