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여행과 관련된 몇 가지 사항들
(1) 목적지 결정
장거리 자동차여행은 선을 긋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요. 점을 찍고 다니는 것보다 많이 보겠지만 면을 커버할 수는 없습니다. 좋다는 곳을 다 들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지요. 이동경로에서 벗어나면 좋은 곳도 불가피하게 생략하여야 합니다. 저는 한여름이라는 점 때문에 더운 지역은 가능하면 피하려고 했고,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은 중복이니까 과감히 생략하였습니다. 그 결과 네바다, 아리조나, 뉴멕시코의 많은 명소들, 예를 들면 데스밸리, 메사 베르데, 캐피탈 리프, 모뉴먼트 밸리, 세도나, 블랙캐년, 다이노서 모뉴먼트, 그리고 오레곤과 워싱턴, 몬태나의 여러 공원들, 즉, 캐논비치, 콜럼비아강, 세인트 헬렌스 화산, 마운트 레이니어, 워터튼-글레이시어 등이 빠지게 되었습니다(그 중에는 부근을 지나면서도 눈물을 머금고 그냥 통과한 곳도 있습니다. 적어놓고 보니 못 간 곳만 가지고도 한 달짜리 여행을 다시 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선이 처음 계획과 달라지면서 솔트레이크시티와 시카고를 못 들른 것도 큰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2) 여행정보 얻기
목적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AAA에서 제공하는 투어북(거의 기본서라 할 만합니다. 회원이면 얼마든지 제공받을 수 있으니까 지도와 함께 준비하시면 됩니다. 출발 전에 짬짬이 읽어 두시면 더 좋겠지요), 각 주나 도시, 국립공원의 비지터 센터에서 제공하는 자료들도 중요합니다.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는 현장 분위기를 익히는 데 좋은 자료가 많고, 유명 관광지는 우리나라 여행사에서 만든 일정표 같은 것이 웹문서로 떠있기도 하는데 연구할 시간이 없을 때 특히 유용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목적지의 홈페이지에 직접 부딪치는 것이 가장 좋을 때가 많습니다.
국립공원의 경우 www.nps.gov에 미리 들어가서 예습을 좀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미리 공부해서 차속에서 심심해하는 애들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세요. 제 경험으로는 애들이 아빠 보는 눈빛도 좀 달라지는 것 같고, 애들에게 목적지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해서 나중에 더 기억이 생생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국립공원에서는 입구에서 파크맵과 뉴스페이퍼를 꼭 받아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국립공원의 경우 접근도로나 비지터 센터가 여러 군데 있고, 내부에서 서로 연결이 안 되기도 하니까 잘 확인하셔야 합니다. 비지터 센터에서는 가능하면 안내영화를 보시고, 시간이 정 부족하면 파크 레인저에게 제한된 시간에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은지 조언을 구하기 바랍니다. 대개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레인저와 긴 대화가 필요하면 애들을 시키세요. 처음에는 어색해 하다가도 나중에는 재미 붙여서 적극적으로 합니다. 미국 온지 6개월 정도 되었다면 애들한테 주니어레인저 프로그램을 시키는 것은 더 없이 좋다고 봅니다. 놀이하듯 과제를 완수한 다음 간단한 테스트와 선서를 마치고 받는 배지나 패치는 여행 중 최고의 기념품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여행 중에는 애들한테도 숙소에서 물당번, 얼음당번, 이불개기, 주유할 때 앞 유리창 청소 같은 일거리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 영어가 좀 되는 큰 애들은 숙소 예약 확인 같은 것을 시켜도 좋겠지요.
(3) 이동시 준비와 주의할 점
구글맵이나 맵퀘스트,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이용하여 목적지까지의 경로와 소요시간을 미리 검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차피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지만 도상연습을 많이 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지요. 저는 구글맵을 이용해 소요시간과 거리를 계산해서 다음날의 구체적 계획을 짠 다음 내비게이션에 다음날 다닐 곳의 주소를 미리 입력해 두곤 했습니다.
서부는 어디든 이동거리 자체가 길고, 공사 중이거나 예상치 못한 험한 곳이 나타나기도 하며, 각 목적지들도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소요시간을 계산할 때 약간씩 여유를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여유를 가질 수 있는 가장 좋고도 유일한 방법은 아침에 일찍 출발하는 것입니다). 가끔 네비게이션이 길을 잃거나, 엉뚱한 길을 알려줄 수도 있으므로 절대 맹신하지 마시고 지도와 수시로 맞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가끔 길을 잃을 수가 있습니다. 이때는 당황하지 말고 차를 멈춘 다음 지도를 보고 전체적인 방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움직이면 됩니다. 우리도 길을 한 번 잃어 반대방향으로 한참 가서야 틀렸다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는데, 나중에 검토해보니 지도를 잘못 본 것으로 조금만 침착했더라면 하지 않았을 터무니없는 실수였습니다.
(4) 호텔 예약
숙소는 여행 초기와 후반에는 프라이스라인으로 가능하였습니다. 그러나 미 서부의 대도시 아닌 곳이나 캐나다에서는 AAA나 엑스페디아를 주로 이용하였습니다. 프라이스라인이 관광지에서는 잘 안 되는 경우가 많고, 어렵사리 된다 해도 이동경로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라이스라인에 매달리는 시간에 목적지나 동선을 연구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라스베가스는 주말에는 호텔비가 비싼데 주중에는 아주 싸니까 주중에 도착하도록 계획을 잡았고, 예약은 호텔과 직접 하였습니다. 라스베가스 호텔은 각자 특이한 컨셉이 있으니 취향대로 선택하시면 됩니다.
국립공원 내 로지가 공원을 구경하기에 좋으니(나중에 이용해보니 내부 시설이 썩 훌륭하지는 않더군요) 예약이 된다면 이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만약 몇 달 전에 미리 일정을 짤 수 있다면, 중요한 거점이면서 며칠 묵을 곳(그랜드캐년이나 옐로스톤 같은)의 로지를 예약한 다음 그 일정에 맞추어 전후의 여행계획을 세우면 되겠지요.
(5) 식사
우리는 아침식사는 보통 호텔에서 제공되는 것을 먹고, 점심이나 간식은 아침에 해 둔 밥을 국립공원 내 비지터 센터나 고속도로 중간의 레스트 에어리어에서 먹으며 다녔습니다. 대개 이것저것 집어넣은 특제비빔밥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애들은 지금도 이것이 먹고 싶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저녁은 호텔에서 제대로 된 밥을 해 먹었습니다. 사 먹는 것은 비용문제도 있지만 시간을 뺏기는 것이 더 큰 문제라서 되도록 자제하였습니다. 따라서 여행기간 중 집사람의 노고는 두 말할 나위가 없었지요.
하지만 워낙 먹는 것을 중요시하는 가족인 만큼 며칠에 한 번은 출혈을 감수하고 외식을 하였습니다. 이럴 때는 가장으로서 권위와 효과를 생각해 가족들의 예상보다 세게 지르는 것이 좋습니다. 브라이스 캐년 입구의 모텔을 겸한 스테이크집, 샌프란시스코 피어 39 옆의 비스트로(크랩을 먹었습니다), 빅토리아의 KEG스테이크, 라스베가스와 시애틀 부근의 한식당들, 캐나다 밴쿠버 근교의 한국형 일식집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여행 중 단백질 보충이 중요한데, 스테이크나 치킨 계통을 먹는 것이 가격에 비해 만족도가 높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곳곳의 지인들의 집에서 받은 환대는 어느 식당에서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반찬은 집에서 가져간 것들이 떨어진 다음에는 곳곳의 아시안마켓(저희는 덴버, 라스베가스, 밴쿠버 등에서 들렀습니다)이나 지인들의 집에서 보충하였습니다.
(6) 자동차 관리
렌트를 할까 하다 제 차(세도나)를 그냥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이 차에 대하여는 지금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애들은 이 차가 자기 고향(?)인 세도나에 못 들른 것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새 주인 밑에서 잘 지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출발 전에 엔진오일도 갈고 이것저것 점검을 하였지만, 워낙 장거리인데다 높은 곳도 많이 올라가고, 더운 지역도 많이 지나야 하니 신경이 많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경우 엔진오일을 세 번(콜로라도 스프링스, 몬테레이, 옐로스톤에서) 갈았고, 시애틀에서는 타이어 전문점에서 앞바퀴 두 개를 교체했습니다. 처음에는 타이어 로테이션만 하려 했는데, 직원이 교체하는 것이 낫겠다고 하여 조언에 따랐습니다.
AAA회원이라면 메일로 날아오는 쿠폰을 출력해 가지고 가면 제휴 카센터에서 엔진오일도 싸게 갈 수 있고, 다른 점검을 같이 받을 수도 있습니다(브레이크 점검 등 무료로 되는 쿠폰이 있습니다). 타이어는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인데 일반카센터보다는 Les Schwab 같은 타이어전문점을 들러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곳은 타이어 로테이션 같은 것은 무료로 해 주기도 하는데, 타이어 교체 후 워런티도 분명한 편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렌트카를 사용하시는 경우 엔진오일 교체비용 같은 것은 나중에 환불받을 수 있다고 하니까 영수증을 챙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쯤 되면 이번 여행의 총마일리지가 궁금하실 것 같네요. 11,800마일이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차 몰고 왔다는 제 얘기를 듣고 시애틀의 타이어전문점 직원은 거의 기절하려고 했습니다. 영국 플리머스에서 보스턴까지 메이플라워호 이동거리가 3,400마일 가량이라고 하더군요.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태평양을 바라보다가 저 바다가 육지라면 여기서 다시 지금까지 달린 만큼 더 달리면 우리나라에 도착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재미있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첫댓글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아이들에게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신 것 같네요. 11,800마일.. 저도 읽으면서 계속 그게 궁금했었는데 ㅋㅋ 글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지금 6월에 20일의 여행을 계획중입니다.. 11800마일!! 정말 대단하신 가장입니다...
정말 대~단한 정성이십니다. 넘 멋진 내용도 많구요. 저도 확실히 지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