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오전 4개월 간의 한국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영국 버밍엄을 향해 떠났다.
지난 한국에서의 4개월을 돌아보면 강권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몸소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지난해 8월 중순.
난 크로아티아에서 있는 유럽 동문회를 참석차 가족과 함께 갔다.
그곳에서 만난 김인기 선교사를 통해서 크로아티아 선교사로 첫번째 부름을 받게 되고, 망설이며(?) 기도하다 9월 초나 되어 크로아티아 선교사로 가기로 마음속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내가 결정하였다 하더라도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길은 그저 막연한 모험과도 같았다. 무모하게 느껴졌지만 한 줄기 소망만을 간직했다.
오랜세월, 근 10년 이상을 선교사로 준비했지만 막상 선교사가 되어 가려고 하니,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는 것만 같았다.
몸은 지치고, 용기는 사라지고 두려움이 엄습했으며, 또 나를 따뜻하게 후원해 줄 수 있는 교회도 없는 것 같았다.
또 총회도 나를 선교사로 받아줄지 몰랐다.
하지만 그런 상황 가운데, 내가 지금껏 하나님께 약속한 일이었기에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모든 악조건의 두려움 가운데 그냥 한발만을 내디뎠다.
그 한 발이..
내가 크로아티아로 가겠다는 결정이었으며, 그 당시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
하나님의 놀라운 예비하심은 전혀 모른체...
두려움에 떨며 시작한 나의 길이었다...
9월,
선교사로 가기로 결정한 후 이틀쯤 지난 것 같다.
크로아티아 선교사였던 김인기 목사님이 연락을 주었다.
뮌헨 한인교회 남진열 목사님께서 동유럽 선교사를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를 추천했다는 소식이었다.
남 목사님은 유럽 동문회때 이미 만나 뵌 적이 있는 분이었기에 안면이 있었는데, 며칠 후에 남 목사님께서 크로아티아 선교사로 나를 후원하겠다면 연락을 주셨다.
이 일은 막연하기만 했던 크로아티아 선교사로의 출발에 탄력을 가져다 주는 계기가 되었다.
아마 하나님께서 이 일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난 나름대로 선교사로 헌신하고 결정을 했다 하더라도 고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의 결정과 동시에 아주 빨리 후원처를 붙여 주셨다.
선교사역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금액이었기에, 난 용기를 얻고 크로아티아와 한국을 방문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리하여 10월 초에 크로아티아를 선교지 답사 목적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에 가기전에 독일에서 하이델베르그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김인기 목사님을 만나 정보를 얻은 뒤 크로아티아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 여행 일정을 마친 후 10월 말에 한국에 3주 가량의 일정으로 후원교회를 준비할 일정으로 입국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에서의 3주간의 체류는 나에게 많은 용기와 위로를 주는 시간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체류하면서 나를 후원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총회 선교부는 부족한 나를 믿어주고 모든 선교사로서의 준비 절차를 잘 이끌어 주었다.
하지만 그 당시가 교회들이 정책당회가 끝나갈 시점이어서 생각보다는 많은 후원처를 얻지 못하고 돌아가게 되었지만, 그래도 난 나를 돕기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내가 체류하던 영국으로 돌아가 한국으로 완전철수를 준비하게 되었다.
12월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근 4년만에 영국에서의 학업을 마치고 완전히 철수하는 길이었다.
아이들은 4년만에 처음으로 오는 고향길이었다.
영국에서의 4년...
수많은 추억과 기억을 간직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공식적인 선교사로서의 준비를 시작했다.
1월 한달 동안은 제주도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았으며, 그 다음에는 고향인 대구에서, 그리고 한달은 서울 영락교회 선교관에서, 마지막 2주 정도는 광명에 있는 충신교회 선교관에서 기거할 수 있었다.
그때쯤 나를 후원하는 기관과 교회는 뮌헨 한인교회(남진열 목사)를 비롯하여, 세광교회(최공칠 목사), 십자가 교회(강희찬 목사), 카타르 한인교회(김경태 목사), 그리고 고속철도시설공단(문원진 장로) 등이었다.
이렇듯 많은 교회와 기관에서 나를 후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크로아티아 선교사역에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선교사로 출발하기 바로 2주전 충신교회 박종순 목사님을 만나면서 예상치 못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이끌리게 되었다.
영국에서 철수하고 돌아올때 나는 왕복 티켓을 구입하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4개월로 fix된 티켓이었기에 내가 돌아가야 하는 날을 3월 30일로 정해져 있었다.
어차피 크로아티아에 들어가려면 유럽으로 다시 들어와야 했으므로, 왕복티켓을 구입한 것이다.
돌아올 날이 다가오자, 내 마음속에 두개 교회가 후원처로 마음에 떠 올랐다.
한곳은 새벽교회(이승영 목사)였고 또 다른 한곳은 충신교회(박종순 목사)였다.
하나님께서는 충신교회를 나에게 붙여 주셨는데, 그곳에는 나를 가장 잘 아는 길승민 목사, 조성욱 목사가 계셨기 때문이다.
그들의 적극적인 후원아래 나는 충신교회 선교사로 영입이 되고 떠나기 바로 전날인 3월 29일 주일 저녁 충신교회 본당에서 교우들의 후원아래 파송을 받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박 목사님께서는 강승삼 목사님에게 격려사를 하게 해 주셨고, 또 신방현 총무님이 설교 해 주셨다.
지난해 8월 중순부터 시작된 선교사로의 출발은 막연하기만 했었다.
하지만 현재 4월 초에 나 자신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하심과 돌보심 아래 이렇게 크로아티아 선교사로서 뮌헨에서 입국 준비를 하고 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다.
이제 입국을 준비하며 많은 일들이 남아 있다.
비자 문제부터 사역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지금까지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또 역사하심을 몸소 알기에 담대함으로 나갈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분명 나와 우리를 통해 하실 일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