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id Three Block-Shoot Today"
필자는 호주 시드니에 이민 와 살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취미 삼아 다국적 젊은 청소년들을 모아 농구를 가르치기도 하고, 비록 40대 중반의 몸이긴 하지만 3대3 농구도 즐기고 있죠. 얼마 전에 한국에서 온 농구를 좋아하는 두 명의 유학생들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요즈음 농구를 함께 하고 있는 중입니다. 한 번은 이 곳 현지인들과 함께 농구를 하던 중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 학생 하나가 게임 중 3번의 블로킹을 성공시켰는데, 휴식시간에 호주 학생에게 “I did three block-shoot today.” (‘나 오늘 블록 슛 3개 했지’) 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까. 필자를 제외한 나머지 타국의 젊은이들은 그 말을 "아무도" 못 알아 들었습니다. "I rejected (or swatted) three shots today" 나 "I had three blocks today" 라고 했었어야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블록 슛’이란 단어에 많이들 익숙해져 있습니다. 농구 해설자도, 심지어 스포츠 기자들도 쓰는 용어이니, 아마도 은연중에 표준 농구 용어로 받아들여 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하고 정확한 용어는 ‘blocked shot’ 이고, ‘블락드 샷’이나 ‘블락 샷’ 이라고 발음하는 것이 올바릅니다. 이 외에도 상당히 많은 부분, 영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닌 국적불명의 “콩글리쉬” 농구용어들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호주가 같은 영어권의 나라라고는 해도, 호주 자체 내에서만 자주 쓰는 농구용어 표현들이 따로 있습니다. 호주의 농구 해설자나 캐스터들은, 덩크나 리바운드를 위해 점프를 높이 하는 경우 “He goes upstairs” (윗층에 올라가는군요...)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또한 1쿼터란 표현은 아예 안 쓰고, 1st Term이란 표현을 쓰죠.
이렇듯, 각 나라마다 선호하는 용어의 표현이 다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인정 할 수 밖에 없습니다만... 우리 국내에서 쓰는 대부분의 영어로 된 농구용어들 중에는 심각할 정도로 문법적인 오류가 보이는 단어들이 난무합니다. 그냥 우리끼리만 통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신다면 필자도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왕에, 순수 우리말인 ‘중거리 포’라는 말을 놔두고 굳이 ‘미들 슛’이라는 콩글리쉬를 쓸 것이라면, 정확하게 ‘미드 레인지 점퍼’ (Mid-range jump shot)라는 말을 배워서 쓰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몇 개월 전에 최연길 농구해설위원도 이 “미들슛”이란 용어사용에 대해 지적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언제부터 이 콩글리쉬의 사용이 시작됐는지는 필자도 모르겠습니다. 필자가 녹화해서 소장하고 있는 80년대부터 90년대 농구대잔치 경기들을 보고 있으면 분명히 해설자가 ‘중거리슛’ 또는 ‘중거리포’라는 말을 썼었습니다. 그리고 3점슛 근처에서 쏘는 슛은 ‘롱 슛’이나 ‘장거리포’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국내농구가 프로화가 되고, 케이블 TV를 통해서 많은 NBA 경기들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미들슛같은 잘못된 신조어가 만들어 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외에도, 한국어 농구중계를 들으면 ‘화스트 브릭’이란 말이 자주 들립니다. ‘Fast Break’을 잘 못 발음한 케이스죠. 우리 말에 ‘속공’이라는 좋은 단어가 이미 있는데도 굳이 영어로 부를 필요가 있을까요. ‘런앤건’ (Run-and-Gun)이나 ‘픽앤롤’ (Pick-and-Roll)같이 우리 말로 옮기기엔 거추장스러운 용어들은 굳이 영어표현을 그대로 따른다 하더라도, ‘속공’같은 좋은 표현을 썩힐 필요는 없다고 사료됩니다. 또한, 골밑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선수를 흔히들 '블루 워커'라 표현하는데, '블루 칼라 워커' ('Blue Collar Worker', 흰 와이셔츠를 입고 일하는 직장인과 대조적으로 푸른색 제복을 입고 일하는 막노동꾼으로부터 유래)라고 불러야 원래 의미가 제대로 전해지겠죠?
또한 우리 한국인들은, 영어단어를 발음할 때 ‘E’는 무조건 ‘에’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Scottie Pippen (스코리 피픈)을 스코티 피펜으로 발음한다든지, 많은 젊은 남성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있는 Eva Longoria (이바 롱고리아)를 ‘에바’라고 발음하는 것이 좋은 예가 되겠습니다. 흔히 쓰는 많은 농구 용어들 중에도 이와 같은 발음상의 실수가 발견이 됩니다. 좋은 예로 Perimeter가 있죠. 사이버 공간에서는 ‘퍼리미터’ 또는 ‘페리미러’라는 발음을 빌어 쓰는데, 농구 초보자들에게는 이처럼 어려운 말이 따로 없을 것입니다. 우리 말에 이미 ‘외곽’, ‘외곽슛’, ‘외곽 수비’라는 좋은 표현이 존재하는데 말이지요. 설마 영어단어를 써야 좀 더 전문적이고 유식해 보인다는 생각을 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죠?
그냥 요즈음 갑자기 들었던 생각이라 두서없이 적어 보았습니다. 필자의 주된 요지는 세가지입니다.
첫째, 잘 못 알고 사용하고 있는 콩글리쉬적인 농구용어 사용을 지양하고, 정확한 농구용어를 익히자는 것.
둘째, 이미 존재하고 있는 우리식의 좋은 용어와 표현법은 그대로 고수하자는 것.
셋째, 이왕 영어로 된 용어를 사이버상에서 사용할 것이라면 좀 더 원어발음에 가깝게 발음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단순한 필자의 취지가 회원 분들께 건방지게(?) 안 비쳐졌으면 하는 것이 작은 바람입니다. 위에서 어느 한국 유학생에 대해 언급했듯이, 이 세상은 점점 세계화 (Globalization)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이버 공간을 통해서, 그리고 쉬워진 외국유학을 통해서, 영어권의 사람들과 훨씬 용이하게 접할 기회가 많아진 작금의 상황에서, 올바른 농구용어들을 배우고 익히며 국내에 대중화 시키는 것도, 농구를 사랑하는 매니아들이 한번쯤 해 볼만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잘못 된 농구 용어들 외에도, 많은 전문 용어들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앞으로 이런 농구 용어들을 시리즈로 정리해 나가고자 생각 중에 있습니다. 회원님들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글 - Doctor J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원어발음에서 꽤 많이 탈피한 저를 돌이켜보게되는군요. 올바른 농구용어 연재 기대하겠습니다 ^^
정말 멋진 글입니다. 많은 것을 느끼게 되는군요....
백번 맞는 말씀입니다. 인터넷 및 메신저 시스템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우리말조차도 망가져가는 현 세태 또한 돌아보게 되는군요...
그냥 사족인데요, 본토 용어는 아니지만 '빽차' 는 어디서 유래가 된 것인가요?
정확한 어원을 알기는 힘들 것 같지만요..... 제가 70년대말과 80년대초에 농구를 할 때 보면, 농구선수들도 빽차란 말을 많이 썼거든요. 그런데 제 기억에는요, 백보드에만 맞고 림에는 안 맞은 공을 빽차라고 했지, air ball을 모두 빽차라고 부른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현역농구선수로서 air ball은 용납이 될 수 없는 현상이었기에 명칭 자체가 없었죠. 그저 air ball 내면 단체기합...줄빳다 정도...--;;) 그런데 동네 농구장에 가보니까 air ball도 다 빽차라고 하더군요. '빽차'의 의미는 대충 '공이 빽보드만 때렸다'입니다. 이 말이 림에 스치지도 못한 모든 슛을 의미하는 말로 어의가 전승된 것 같습니다.
아..원래 백보드에만 맞고 나온 공을 빽차라고 부른 것이었군요. 상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저도 몇번 되도 않는 글을 쓸때 느끼는건데 사실 농구 용어 좀 어렵더군요...게다가 정식 명칭들은 길기도 하고..."미드레인지 점퍼"가 정확한 명칭이라는걸 알면서도 쓰다보면 어느샌가 귀찬아져서 쓰고있는 미들점퍼-_-;;;정확한 용어를 알지 못하고 그냥 들리는 발음상의 한계로 막 부를때도 있기도 하구요..^^;;;(더블 피겨가 맞는지 더블 핑거가 맞는지 아직도 헤깔립니다...-_-;)
아마도 이런 작업을 체계적으로 해야 될 때가 오긴 온 것 같습니다.
i love nba 센안팸이어서 님글 많이 읽는데 여기 까페 운영진이셨군요ㅋ